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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삼척 천은사 영월루(映月樓)(2)

기자명 법상 스님

나의 청정한 본심 어디에 있는가

‘염불한다’는 생각마저 버려야
삼독심 무너지고 여래성 뚜렷
때·장소 가리지 않는 수행법

삼척 천은사 영월루(映月樓) 2 / 글씨 대산혜봉(大汕惠鳳 1918~2000) 스님
삼척 천은사 영월루(映月樓) 2 / 글씨 대산혜봉(大汕惠鳳 1918~2000) 스님

自性彌陁何處在 時時念念不須忘 
자성미타하처재 시시염념불수망
驀然一日如忘憶 物物頭頭不覆藏
맥연일일여망억 물물두두불복장
(자성아미타불 어느 곳에 계시는가?/ 언제나 생각하고 생각하여 모름지기 잊지 말게나/ 갑자기 어느 날 생각조차 잊음에 이르면/ 삼라만상으로 덮어도 감추지 못하리라.)

삼척 천은사 영월루 뒤편에 걸린 이 주련은 건물의 특성상 촬영이 매우 어려운 위치에 있어 부분 사진을 찍어 편집했다. 내용은 고려 말 나옹혜근(懶翁慧勤, 1320~1376) 스님의 가송집 ‘나옹화상가송(懶翁和尙歌頌)’ 가운데 모든 사람에게 아미타 염불을 권하는 ‘시제염불인(示諸念佛人)’ 여덟 수 중에서 두 번째 시문으로 정토 염불에 대한 가르침이다. 

자성은 자성본불(自性本佛)의 준말로 중생이 본디 가지고 있는 진성(眞性)을 말한다. 미타(彌陀)는 아미타불이다. 시문의 요점을 놓치지 아니하려면 이 첫 구절을 잘 살펴보아야 한다. 자성(自性)은 곧 나의 마음을 말하고 미타는 불(佛)을 의미한다. 선문(禪門)에서는 심즉시불(心卽是佛)이라 하여 마음이 곧 부처라고 하며, 부처가 곧 마음이라고 하여 불즉시심(佛即是心)이라고 한다. 

‘화엄경’에서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를 내세우고 있다. ‘대지도론(大智度論)’ 제29에 보면 “삼계(三界)에 있는 모든 것은 마음이 지었다. 왜냐하면, 마음으로 염하는 바에 따라 모두 다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마음으로 부처를 보고 마음으로 부처님을 지었으니, 마음이 곧 부처요. 마음이 곧 나의 몸이라고 말하지만, 마음은 스스로 알지 못하고 또 스스로 보지도 못한다”라고 하였다. 

따라서 ‘자성미타하처재’는 나의 청정한 본심이 어디에 있는가를 묻는 것이다. 이를 모르면 아미타불을 찾겠다며 업은 아이 삼 년 찾는 격을 면하기 어렵다.

시시(時時)는 때때를 말하기에 우리의 일상이며 염념(念念)은 생각하고 생각함이니 생각이 끊이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시시염념(時時念念)은 간절함을 나타낸다. 

수행은 나를 찾아가는 여행이기에 정진이 없으면 안 된다. 처마 끝 낙숫물이 바위를 뚫는다는 수적천석(水滴穿石), 도끼를 갈아서 바늘을 만든다는 마부작침(磨斧作針), 산을 옮기려고 하는 우공이산(愚公移山) 등의 표현처럼 염불자는 내 마음이 부처라는 그 생각을 놓치는 순간 마구니가 침노하여 극성을 부리게 된다.

맥연(驀然)은 갑자기, 별안간, 문득, 쏜살같이 이러한 뜻이다. 뒤에 나오는 일일(一日)과 함께 살펴보면 ‘어느 날 갑자기’ 이러한 표현으로 뜻하지 아니하게 벌어지는 일을 말한다. 수행은 목표가 있을지언정 답을 먼저 구하면 그만 알음알이에 빠지게 된다. 그러므로 수행에는 정진이 필요한 것이다. 염불자가 분명 염불하건만 염불하고 있다는 생각마저 잊어버리는 경계를 염불삼매(念佛三昧)라 한다. 이쯤 되는 경계를 고려의 지눌 스님이 저술한 십종염불(十種念佛)에 대한 가르침인 ‘염불요문(念佛要門)’에서는 아홉 번째 무심염불(無心念佛)이라고 하였다.

염불하는 마음이 극에 달하면 삼독심은 저절로 무너지고 여래(如來)의 일성(一性)이 뚜렷하게 드러나기에 이를 진여염불(眞如念佛)이라고 한다. 두두물물(頭頭物物)은 삼라만상을 말한다. 삼라만상으로 덮으려고 하여도 덮어 감출 수 없다고 하였으니 이를 ‘화엄경’ 입장으로 보면 눈앞에 화장세계(華藏世界)가 드러남을 말함이요, ‘미타경’ 입장으로 보면 이 세상 모두 극락정토 아님이 없다는 것을 노래하고 있다.

마음은 감출 수가 없는 법이다. 여기에 대하여 약산유엄(藥山惟儼) 스님은 ‘운재청천수재병(雲在靑天水在甁)’이라고 하여 “구름은 푸른 하늘에 있고 물은 병 속에 있다”라고 하였다.

염불은 어려운 것도 아니고, 때와 장소를 가리는 것도 아니다. 오직 정진만 요구하는 훌륭한 수행법이다. 예부터 모든 고승이 권하는 이유도 아주 손쉬운 수행법이기 때문이다.

법상 스님 김해 정암사 주지 bbs4657@naver.com

[1629호 / 2022년 4월2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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