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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고양이 - 하 

돌발적 행동·엉뚱함으로 경계 대상

고대 인도인이 가까이 안한 동물
걸식 시 주의할 점 설명 위한 설법
외모 현혹·마음 다스리지 못하면
수행자 계 버리고 모든 것 잃게 돼

고양이는 쥐의 천적이다. 고양이가 가장 쉽게 사냥하고 먹어치우는 것이 쥐이기 때문에 인간은 쥐를 박멸하기 위해 고양이를 길들이려 하였다. 동물행동학에서 고양이가 쥐를 좋아하는 것은 쥐를 놀이감으로 여기기 때문이라고 한다. 반려묘에게 쥐모양의 장난감을 주면 고양이는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 고양이는 쥐를 먹이로서보다 잦은 움직임을 갖고 있어 자신의 사냥본능을 만족시키기 때문에 좋아한다. 또한 고양이가 잡은 쥐를 빨리 죽이지 않고 장난치듯이 노는 것은, 고양이가 잔인해서가 아니라 타고난 주둥이가 짧기 때문에 먹이동물의 반격에 상처를 입지 않기 위해 쥐를 기진맥진하게 만들려는 조심성에서 비롯된 행동이다.

고대 인도인들은 고양이가 충성심을 발휘하지 않는 동물이고 길들이기 쉽지 않기에 가까이 두지 않았다. ‘마누법전’에서도 엉뚱한 짓을 하는 이를 고양이 같은 자라고 말하며 돌발적 행동을 하는 고양이를 경계했다. 인도의 우화나 경전에서 고양이는 어리석고 비열하게 묘사되지만 고양이를 긍정적이고 사랑스럽게 여기기도 했다. 요가의 기본 좌법에 ‘고양이자세(mārjarīāsana)’가 있고, 어미고양이가 새끼고양이의 목을 물어 옮기는 동작을 신이 신자를 보호하는 자애로운 행위와 같다며 찬미하기도 한다. 인도설화집 ‘까따사리뜨사가라(Kathā saritsāgara)’에서 여주인공 아할야(Ahalyā)가 몰래 숨은 연인을 “고양이(mārjāra)!”라고 부르는데, 고양이의 속어(俗語)가 바로 ‘나의 사랑스러운 연인’이기 때문이다.

한편 남인도 타밀나두(Tamilnadu)의 마말라푸람(Mamallapuram)에는 강가(Gaṅgā)여신이 지상으로 하강(下降)하는 장면을 조각한 석굴사원이 있다. 이 사원은 강가여신 옆에 새겨진 아르주나의 고행(Arjuna’s Penance) 조각으로 유명하지만 사람들의 눈길을 끌면서 웃게 하는 것은 아르주나 옆에 새겨진 배불뚝이 고양이 한 마리이다. 

고양이는 다리 하나로 선채 머리 위로 두 손을 잡는 요가자세로 고행하고 있으며, 그 발 아래 쥐떼들이 모여 기도하고 있다. 이 고양이는 ‘딴뜨로빠끼야나(Tantropā khyāna)’에서 경건한 고행자처럼 위장하여 쥐들을 속인 후 배불리 잡아먹었다고 알려져 있다. 다른 힌두교 경전에서도 쥐는 어리석은 신도들을 나타내고 고양이는 이들을 속이는 위선적인 종교 지도자로 자주 등장한다.

불교경전의 대표적인 고양이와 쥐의 이야기는 ‘잡아함경(雜阿含經)’의 ‘묘경(猫經)’에 나타난다.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을 때 비구들에게 말씀해주신 고양이 이야기이다. 과거세에 너무 굶주려 바짝 마른 고양이가 쥐구멍에서 쥐가 나오기를 기다리며 잡아먹기를 기대하고 있었다. 때마침 작은 새끼쥐 한 마리가 구멍에서 나오자 고양이는 재빨리 쥐를 삼켜버린다. 하지만 잡아먹은 쥐가 너무 작아서 고양이 뱃속에서도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새끼쥐는 살기 위해 고양이의 내장을 갉아먹었고, 고양이는 참을 수 없는 고통을 느끼며 이리저리 미친 듯이 날뛰다가 끝내 죽고 말았다.

부처님이 비구들에게 고양이에 관한 설법을 하신 이유는 청정(淸淨)비구가 마을에 가서 걸식할 때 주의해야 할 점을 설명해주기 위해서이다. 비구들은 걸식을 위해 마을을 방문할 수 밖에 없고, 그곳에서 만나는 보시자들은 대개 여성들이었다. 

아름다운 여성의 외모에 현혹되어 마음과 생각을 다스리지 못하기 시작하면 수행자는 모든 것을 잃게 된다. 걸식은 수행에 정진하기 위한 경건한 생계수단이지만 걸식 중에 한 눈을 팔면 자신 안에 욕망이 날뛰고 커지면서 몸과 마음을 다 태워버린다. 결국 수행처를 좋아하지 않게 되고 내면의 법을 침식당하여 계(戒)를 버리게 된다. 

부처님은 비구들에게 관능적 쾌락을 주의할 것을 늘 강조하셨다. 고양이가 배고픔에 새끼쥐를 삼켜버리고, 새끼쥐는 뱃속에서 고양이의 내장을 먹어치우며 점점 성장하여 고양이를 죽인다는 이 이야기는 여성을 혐오하거나 경멸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독신승가를 이끌기 위해 이성의 매력을 늘 경계해야 한다는 것을 비구들에게 경고하기 위해 사용한 비유이다.

김진영 서강대 연구교수 purohita@naver.com

[1637호 / 2022년 6월2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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