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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가화합 우선했던 정화주역이자 율의 수호자

  • 교학
  • 입력 2022.07.15 19:40
  • 호수 1641
  • 댓글 1

이자랑 동국대 불교학술원 교수, 논문 ‘학월 경산의 수행과 지혜’서 
“승가 파괴하는 행동은 오무간죄…개인 아닌 지도자로서 내린 결정”

동국대 케이부디즘 문화콘텐츠구축사업단이 7월12일 경산 스님을 조명하는 학술대회를 열었다.

“수행자에겐 계율이 곧 생명이다.” “계를 지키지 못하는 승려는 출가 득도자가 아니다.” “계율을 어긴 승려는 속인보다 못하다.” “교단의 생명은 계율이 살아있을 때만 가능하다.”

학월경산 스님(1917~1979)이 생전 강조한 말이다. ‘탁월한’ 행정력으로 늘 종단의 중책을 맡았지만 냉정하리 만큼 공사가 분명했던 어른. 학월경산 스님의 삶과 사상을 조명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동국대 불교학술원(원장 자광 스님) 케이부디즘 문화콘텐츠구축사업단(단장 김종욱)이 7월12일 서울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국제회의장에서 ‘대한불교조계종의 정법당간, 경산 대종사’라는 주제로 학술대회를 열었다. 경산 스님을 주제로 다룬 학술대회는 이번이 처음이다. 

총무원장 원행 스님은 “경산 스님은 불교정화운동 기수로 통합종단 조계종 출범을 이끈 청정 율사셨다. 세 차례 총무원장을 역임하면서 총무원장 중심제도를 마련했다. 종비생 제도, 군승 제도 확립과 동국역경원 개원으로 종단의 3대 불사를 구체적으로 실현했고 ‘부처님오신날’ 공휴일 제정을 이뤄냈다”고 설명했다.

김종욱 케이부디즘 문화콘텐츠구축사업단장은 “경산 스님이 근현대 한국불교에 미친 영향에 비해 관련 자료나 연구가 많지 않아 아쉽다”며 “오늘 학술대회가 스님의 업적을 조명하고 그 정신을 계승하기 위한 좌표설정 자리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학술 발표에 앞서 짤막한 다큐멘터리가 소개됐다. 20분간 상영된 다큐에는 2011년 2월 입적한 전 원로의원 혜정 스님, 용인 와우종사 조실 해곡 스님, 경산 스님의 상좌인 동국대 불교학술원장 자광 스님과 해군본부 군종감실 군종감 출신인 강남석 법사 등 경산 스님과 인연 있는 인물들이 차례로 등장해 생전 에피소드를 전했다. 

해곡 스님은 “아무리 친해도 경산 스님에게 사심으로 무언가를 부탁하면 벼락이 떨어진다. 부탁할 수 있는 건 딱 하나다. ‘스님, 좋은 법문 하나 붓글씨 써주십시오.’ 이건 얼마든지 해주셨다. 그 이상은 안됐다”고 웃으며 “늘 공사(公私)가 명확하신 분이셨다. 여름만 되면 동치미 국물에 면 말아 잡수시던 스님이 생각나 그립다”고 말했다.  자광 스님은 “은사스님은 해외에 나가실 때도 예불 시간만 되면 비행기 안에서 예불을 드릴 정도로 철저했다”고 설명했다. 

영상이 끝난 뒤 본격적인 학술 발표가 시작됐다. 이날 이자랑 동국대 교수는 논문을 통해 “정치적 격변기라는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경산 스님이 한 점 흔들림 없이 활동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지계’(持戒)에 있었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에 따르면 경산 스님은 계율이야 말로 선과 교를 안착하게 만드는 기반이고 교단을 지탱할 수 있는 원동력이라고 보았다. 이 교수는 경산 스님이 계율을 강조하게 된 시대 배경과 그런 스님이 생각하는 ‘율’이 무엇이었는지를 차례로 탐색했다. 

경산 스님은 입적하기 며칠 전 ‘삼처전심’이라는 책을 냈다. 물론 급작스런 뇌출혈로 세연을 마쳤기에 마지막을 염두에 둔 책은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이 교수는 이 책이 “오랜 세월 수행자로 살아온 경산 스님이 중시한 가치를 파악할 수 있는 단서”라고 분석했다.

경산 스님은 이 책에서 ‘율시불행’(율은 부처님의 행동이다)이라는 제목으로 “선과 교와 율은 세 발이 달린 솥과 같다. 어느 다리 하나라도 떨어지면 제대로 서지 못하듯 선·교·율 가운데 어느 한 부분이라도 결여되면 마치 발 하나 떨어진 솥과 같다”고 강조하고 있다. 또 서두에는 ‘범망경’이 말하는 율의 중요성을 별도로 기술하고 있다. ‘범망경’을 아주 중요하게 여겼음을 추측할 수 있다. 

이 교수는 “저서를 통해 경산 스님이 범망계를 자성·불성을 계발하기 위한 수단이자 수행을 완성해 깨달음에 이르게 하는 심지계로 이해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경산 스님은 1965년 3월16일 출범한 조계종 화동위원회의 종단 대표로 나선다. 이날 양측 대표 8명은 “비구·대처를 떠나 대동단결하자”고 뜻을 모았다. 청담 스님과의 갈등도 여기서 시작됐다.

율사로서 ‘꼿꼿한’ 면모를 잃지 않았던 경산 스님이 비구·대처의 화동(和同)을 주도한 행동은 이해하기가 어렵다. 하지만 이 교수는 “계율 수지에 대한 의식이 엄격했지만 제2의 대처승만 나지 않도록 하자는 결론에 이른 것 같다. 무엇보다 폭력에 의한 정화를 그치는 것이 중요했다”고 분석했다. 

물론 당시 청담 스님의 주장처럼 비구는 취처승과 함께 승가를 구성할 수 없다. 보살계에서도 음욕은 중죄로 취급된다. 그러나 경산 스님도 이를 몰랐을 리 없다. 이 교수는 “승가를 파괴하는 행동 역시 오무간죄(五無間罪) 중 하나로 거론될 만큼 무거운 죄이고 구족계 말미를 장식하는 것도 ‘사분율’ 칠멸쟁법(승가의 다툼을 가라 앉히는 7가지 방법)으로 승가 화합을 위한 노력은 비구·비구니가 반드시 지켜야할 규범”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경산 스님에 대한 평가는 나눠질 수 있지만 개인적 차원의 계율보다 승가 구성원으로서 지켜야할 계율을 우선시한 부분은 높이 평가받을 수 있다. 화동의 목적은 승가화합 통한 한국 불교발전이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어 △경산 대종사의 정화불사와 종단화합(한동민/ 수원화성박물관장) △학월 경산의 총무원장 중심제(조기룡/ 동국대 불교학술원 교수) △경산 대종사의 포교행(김응철/ 중앙승가대 포교사회학과 교수)이 발표됐다. 토론자로는 해인사 승가대학 학감 법장 스님, 김성연 동국대 불교학술원 연구교수, 불교인권위원회 공동대표 진관 스님, 군승장교 중령 원경 스님이 나섰다. 

이 자리에는 조계종 원로의원 원행 스님과 중앙종회의장 정문 스님, 교육원장 진우 스님, 포교원장 범해 스님, 불교문화재연구소장 제정 스님, 동국대 전자불전문화콘텐츠연구소장 주경 스님 등 100여명이 참석했다.

정주연 기자 jeongjy@beopbo.com

[1641호 / 2022년 7월2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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