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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 경북 문경 묘적암

기자명 법상 스님

번뇌망상 없는 경지의 시원함 노래

‘나옹화상가송’ 산거 8수 인용해
수행자의 모든 행위 하나가 수행
여유가 있다는 건 열반 얻은 것
냉랭은 망상 없는 경지를 말함

경북 문경 묘적암. / 글씨 청오 신용섭(靑吾 申龍燮).
경북 문경 묘적암. / 글씨 청오 신용섭(靑吾 申龍燮).

白雲堆裏屋三間 坐臥經行得自閒 
백운퇴리옥삼간 좌와경행득자한
磵水冷冷談般若 淸風和月遍身寒
간수냉랭담반야 청풍화월변신한
(흰 구름 덮인 언덕 속에 세 칸 누옥(陋屋)이 있어/ 앉고 눕고 거닐므로 스스로 한가함을 얻었네./ 골짜기 물 흘러가는 소리 반야를 이야기하고/ 맑은 바람 달과 함께 어울리어 온몸에 그득하네.)

고려 말 고승 나옹혜근(懶翁惠勤, 1320~1376) 스님은 경북 영덕군 창수면에서 출생했다. 20세 때 친구의 죽음을 보고 경북 문경시 산북면 전두리 대승사에 딸린 공덕산(功德山) 묘적암(妙寂庵)에서 요연(了然) 스님을 찾아가 문하가 되기를 청했다. 요연 스님이 물었다. “너는 무엇 하러 출가하려 하느냐?” 나옹 스님이 답했다. “삼계를 떠나 중생을 이롭게 하고자 하오니 부디 가르침을 주십시오.” 이 문답을 마친 후 득도하였다. 공덕산은 사불산(四佛山)의 다른 이름이다. ‘삼국유사’에는 신라 진평왕 9년인 587년 사면에 여래의 상을 새기고 붉은 비단에 쌓인 석불이 하늘에서 떨어졌다 하여 사불산이라고 하였다. 

주련은 나옹 스님의 시자였던 각뢰와 각련이 기록하고 제자인 환암혼수(幻庵混修)가 교정한 ‘나옹화상가송(懶翁和尙歌頌)’에서 산거(山居) 8수 가운데 네 번째 시문을 인용한 것이다.

퇴(堆)는 단순하게 언덕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언덕은 고정불변(固定不變)하기에 곧 진여의 자리를 말한다. 진여는 무심한 도리를 나타낸 것이므로 흰 구름을 끌어들였다. 옥(屋)은 누옥(陋屋)으로 자기 집을 낮추어 부른 것이다. 삼간(三間)은 세 칸이며 원문은 간(間)이 아니라 한(閒)이다. 간(間)의 본자(本字)가 한(閒)이기에 문제가 되진 않는다. 세 칸 누옥이라는 것은 가장 기본적인 건물에 머무르며 수행함에 장애가 되지 않고 오히려 더 훌륭함을 보여 준다. 

앉고 눕고 하는 좌와(坐臥)는 행주좌와(行住坐臥)를 줄여서 표현한 것으로 거수투족(擧手投足)이라고 한다. 수행자의 모든 행위 하나하나가 수행이라는 뜻이다. 수행에 있어 행주좌와를 강조하는 것은 심수(心隨) 때문이다. 이를 심수전법(心隨轉法)이라고 하여 중생의 마음 씀에 상응해 작용하는 법을 말한다. 

스스로 한가함을 얻었다는 것은 마음에 걸림이 없어야 말하고 행함에 걸림이 없기에 이를 일러 한가하다고 하는 것이지 어떤 일에 대하여 여유가 있다고 하는 것은 아니다. ‘반야심경’에서는 ‘마음에 걸림이 없으면 마침내 열반을 얻는다’고 했다.

간(磵)과 간(澗)은 같은 의미로 계곡의 시내를 말한다. 따라서 간수(磵水)는 산골짜기에 흐르는 물이다. 이어지는 구절에서 제법 많은 사람이 영령(泠泠)이라는 오류를 범한다. 원문은 영령(泠泠)이 아니라 냉랭(冷冷)이다. 차가울 냉(冷) 자와 맑은소리 령(泠) 자를 착각하면 안 된다. 여기서 ‘차다’라는 뜻인 냉랭은 번뇌 망상이 없는 경지를 말한다. 

산골짜기 물소리가 반야를 이야기한다는 것은 곧 무진법문(無盡法門)이라는 뜻이다. 선사는 흰 구름과 계곡의 물소리도 예사롭게 보지 아니하고 반야의 경지로 보았다. 이것은 법안(法眼)을 갖춘 것이다. 법안이 없으면 법(法)을 노래하지 못하고 정(情)을 노래하기 때문이다.

부드럽고 맑은 바람인 청풍(淸風)은 마음의 번뇌를 날려 보내는 법풍(法風)을 말한다. 화월(和月)은 달과 어우러진다는 표현이다. 달은 법을 나타내기도 하고 마음을 나타내기도 한다. 이어서 차다는 의미를 지닌 한(寒)은 여러 뜻이 있지만 가득하다, 넉넉하다는 만(滿)과 같이 쓰일 때도 있다. 또 차다는 뜻으로 볼 때는 기분이나 느낌이 깨끗하고 시원한 모양을 나타내 ‘산뜻하다’보다 큰 ‘선뜻하다’라는 표현으로 쓰였다. 이는 앞서 노래한 분별과 망상을 떠나 참다운 실상을 꿰뚫는 지혜인 반야의 도리를 깨달아 얻으면 법신을 구족할 수 있다는 것을 여실히 드러낸다.

법상 스님 김해 정암사 주지 bbs4657@naver.com

[1653호 / 2022년 10월 1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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