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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저탄광 수장된 고혼들이여, 80년의 한 풀고 극락왕생하소서”

  • 교계
  • 입력 2022.11.30 22:51
  • 수정 2022.12.02 21:09
  • 호수 1660
  • 댓글 0

관음종, 일제강점기 조세이탄광 수몰사고 희생자 추모 위령재 봉행
11월29일 일본 야마구치현 우베시 조세이탄광 희생자 추모광장서
종정 홍파·총무원장 법명 스님 비롯 사부대중·유족 100여명 참석

“그동안 찾아오지 못해, 더 일찍 찾아뵙지 못해 죄송합니다. 강제징용돼 그 차가운 바닷속에 묻히셨으니 얼마나 억울하고 원통하실지 생각하면 그저 눈물이 앞을 가릴 뿐입니다. 부디 부처님께서 돌봐주시어 고국으로 하루빨리 돌아오길 간절히 염원합니다.”

탄광이 있던 자리에는 숨구멍이었던 피안만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탄광이 있던 자리에는 숨구멍이었던 피안만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일제에 의해 강제로 끌려가 머나먼 곳에서 노역에 동원돼 수몰사고로 희생된 조선인들의 넋을 위로하고 유골의 발굴과 환국을 염원하는 법석이 마련됐다. 관음종(총무원장 법명 스님)은 11월29일 일본 야마구치현 우베시 조세이탄광 수몰사고 추모광장에서 ‘일제강점기 조세이탄광 수몰사고 희생자 추모 위령재’를 봉행했다. 하늘에서 비가 오는 등 궂은 날씨에 봉행된 위령재에는 종정 홍파 스님과 총무원장 법명 스님, 부원장 도각 스님을 비롯한 관음종 스님들과 신도들, 한국과 일본인 희생자 유가족, 임시흥 주일 히로시마 총영사 등 100여명이 참석했다.

조세이탄광은 시모노세키 남쪽 61km지점인 야마구치현 우베시에 위치한 해저 탄광으로 1942년 2월3일 오전 9~10시경 갱도붕괴로 수몰돼 조선인 136명과 일본인 47명이 수장됐다. 그러나 일본과 탄광회사가 수몰사고를 은폐해 진실이 드러나지 못한 채 십수년이 흘렀다가 마침내 1976년 역사학자 야마구치 다케노부에 의해 세상에 알려졌다. 이후 1991년 지역의 일본인들을 중심으로 ‘조세이탄광 수몰사고를 역사에 새기는 모임’이 발족했으며, 이들은 2013년 사고해역서 500m 떨어진 곳에 위치한 가정집을 매입해 추모비와 광장을 조성했다. 한국불교계는 2015년 한국불교종단협의회가 처음으로 위령재를 봉행한 후 관음종이 이어오고 있다.

법회는 사고해역이 바라다보이는 해변에서 시작됐다. 동참대중은 꽃을 한송이씩 바다에 던지며 넋을 위로한 뒤, 시련의식으로 고혼들을 추모광장으로 인도했다. 이후 추모광장에는 영산작법연구회 스님들이 여법한 위령재를 위해 바라춤과 나비춤으로 불보살들을 청했다. 도각 스님은 상축으로 고혼의 극락왕생을 축원했다.

종정 홍파 스님은 유골 발굴과 환국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스님은 추도설법을 통해 “부처님께서 삶은 고(苦)라고 하셨으나 그 가운데서도 희망을 찾고 또 기쁨을 찾는 것이 인생의 여정”이라며 “조세이탄광은 조선·일본인 노동자들의 피와 땀이 고스란히 엉켜 있는 곳”이라고 설명했다. 또 “일제와 탄광주는 전쟁과 수탈을 위한 물자를 생산하기 위해 그들을 사지로 내몰았다”며 “이제는 그들의 뼈와 넋을 유족의 품으로 반드시 돌려보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법명 스님은 추모사에서 “오늘 이 추모재에는 부모, 조부모, 삼촌 등 친인척의 손길을 느껴보지도 못한 채 수십년 동안 가슴앓이를 해온 한국과 일본인 희생자 유족들이 함께하고 있다”며 “삼가 고인의 명복을 기원한다”고 유족들을 위로했다. 

그러면서 “관음종은 부처님 가르침을 따라 자비희사와 인도적 역할을 실천하기 위해 위령재를 봉행해왔다”며 “이제 바닷속 고혼들을 수면 위로 올리고 고향의 품으로 보내야 한다. 우리 모두 열심히 기도 정진하고 발굴을 위해 노력하자”고 당부했다.

임시흥 주일 히로시마 총영사는 “조세이탄광 수몰사고는 전쟁과 차별로 얼룩졌던 20세기의 한 단편이었다”며 “정겨운 고향을 뒤로하고 낯선 땅 지하에서 그리운 사람들을 부르며 목숨을 잃은 분들의 비통한 심정을 생각하며 그날의 희생을 애도하자”고 말했다. 이와 함께 “치유되지 않는 유족들의 상처와 차가운 바다 밑에 잠들어 있는 영령들이 위령재로 조금이나마 안식을 얻길 기원한다”고 덧붙였다. 

역사에새기는모임과 한국유족회는 법석을 마련한 관음종에 감사한 마음을 전했다. 이노우에 요우코 공동대표는 오바타 타이카쿠 사무장이 대독한 인사말에서 “관음종이 앞으로도 지혜와 힘이 되어주시길 부탁드린다”며 “위령재를 지속적으로 봉행해주시고 관심을 가져주심에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고 말했다. 

양현 유족회장을 대신해 인사말을 전한 이기병 부회장은 “억울하게 희생된 영혼들의 넋을 위로하고 역사를 바로 세운다는 취지로 위령재를 지내왔다”며 “코로나 위기 속에서도 멀리 현해탄 건너 재를 지내준 관음종에 머리 숙여 인사드린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후지다 류죠 일한불교교류협의회장과 이시오카 료코 일한불교교류협의회 이사장도 추도사를 보내 위령재에 의미를 더했다.

종정 홍파 스님과 총무원장 법명 스님을 시작으로 스님들과 유가족들이 헌화와 헌향으로 영령들을 위로했다. 위령재는 장엄염불, 사홍서원으로 마무리됐다. 일부 유족들은 자리에 남아 기도를 올리기도 했다. 사부대중의 간절한 발원에도 희생자 유골 수습은 한일 양국 정부가 나서지 않는 한 요원하기만 하다.

김다연(백연심) 묘각사 신도회장은 “위령재에 동참할 때마다 마음이 울컥해지는데 오늘은 유족회 대표님 말씀이 더욱 와닿았다”며 “비가 오고 그치는 등 종잡을 수 없는 날씨가 고혼들의 마음을 대변하는 듯하다”고 안타까워했다. 이경수(경소화) 법성사 신도회장은 “처음 현장을 직접 돌아보니 너무 가슴이 아팠다”며 “모든 국민이 조세이탄광 희생자들 유골 발굴과 환국을 위해 기도해주셨으면 좋겠다”고 서원했다.

관음종은 앞서 11월27일 일본 후쿠오카 동장사에서 조세이탄광 희생자 추모 위령재 봉행을 부처님께 고하는 고불식을 가졌다.

일본 우베시=윤태훈 기자 yth92@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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