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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 수교 50주년, 상월결사 인도순례] 상월결사 인도순례의 의미

  • 새해특집
  • 입력 2022.12.29 13:46
  • 수정 2022.12.29 20:06
  • 호수 1663
  • 댓글 0

깨달음으로 가는 힘찬 여정…불교로 한국·인도 하나되는 전환점

세티야 찾아 종교적 영감 얻고 윤회의 바다 건너는 구도의 길
순례 떠난 구법승 덕에 사리라카·파리보가카 전해질 수 있어
인도불교 성지들 하나로 연결하며 고대 순례 네트워크 복원

상월결사의 삼보사찰 순례는 인도불교의 순례문화를 한국에 재확산시켜 한국불교를 중흥하는 틀을 만드는 것이었다.[법보신문DB]
상월결사의 삼보사찰 순례는 인도불교의 순례문화를 한국에 재확산시켜 한국불교를 중흥하는 틀을 만드는 것이었다.[법보신문DB]

순례는 세계의 많은 종교에서 나타난다. 이슬람의 경우 평생 한 번은 메카를 순례해야 한다고 의무로 정하고 있다. 기독교의 경우 유럽에서 예루살렘으로 수많은 순례가 이루어졌고, 사실상 십자군 전쟁의 시발점이 되었다. 인도의 경우 순례는 이슬람과 같이 의무조항은 아니지만, 힌두교, 이슬람교, 자이나교, 불교의 다양한 성지들이 만들어져서 오래전부터 신자들을 맞이하는 독특한 순례문화를 만들어 왔다. 

인도에서 순례는 띠르타 야뜨라(tīrtha yātrā)라고 한다. 티르트하(tīrtha)는 길, 성스러운 장소, 강이 깊지 않아서 건널 수 있는 곳, 몸을 씻을 수 있는 장소를 의미한다. 인도에서는 모든 생류들이 끊임없는 윤회의 바다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고 비유적으로 이야기한다. 티르트하는 이러한 윤회의 바다를 건너가는 길을 뜻하며 피안의 세계로 갈 수 있는 통로가 된다. 힌두교에서 띠르타는 갠지스강 중류의 와라니시 강변처럼 현생서 지은 업을 깨끗이 씻어낼 수 있는 장소를 뜻한다. 야뜨라(yātrā)가 여행, 출발, 행진, 탐험을 뜻한다고 했을 때, 띠르타 야뜨라는 단순한 여행이 아니라 윤회의 바다를 건너는 것으로써 일종의 종교적인 수행이 된다. 이를 힌두교적으로 이야기하면 해탈을 향한 여행의 출발이고, 불교적으로 이야기하면 깨달음을 향한 여정의 출발이 된다. 

불교의 순례는 기본적으로 째띠야(cetiya)로 알려진 불교적 봉헌의 대상과 관련된다. 역사적인 부처님을 기억하기 위한 물건, 장소, 건물들을 세티야라고 한다. 이는 다시 부처님의 신체의 일부인 사리라까(śarīraka), 부처님께서 사용했던 물건 빠리보거까(pāribhogaka), 부처님을 기억할 수 있는 물건 웃데사까(uddesaka)의 세 가지로 분류된다. 

여기에서 사리라까는 부처님의 신체 일부를 의미한다. 화장한 후 남은 뼈, 치아, 머리카락 등 우리가 ‘사리’라는 용어를 통해 지시하는 것을 사리라카라고 할 수 있다. 부처님께서 사용하셨던, 부처님과 관련 있는 물건 빠리보거까는 보리수나무, 가사, 바루, 불족적 등과 함께 부처님의 출생, 깨달음, 첫설법, 열반과 관련되는 4대 성지와 라자그리하, 와이샬리, 상까샤, 슈라와스티로 이어지는 4가지 기적을 행한 장소를 더한 8대 성지가 포함된다. 마지막으로 웃데사까는 기억할 수 있는 물건을 의미하는데, 대표적으로 불상이 여기에 해당한다. 비록 웃데사까는 직접적으로 부처님의 신체나 행적과 연결되지는 않지만, 부처님을 기억하고 부처님을 기념하는 물건이라는 점에서 불교적 봉헌의 대상이 되며 웃데사까 째띠야라고 한다. 

인도의 바르후트(Bharhut)와 산치(Sanchi)의 부조들은 주요한 불교의 성지에서 다양한 순례행위를 하는 사람들이 다채롭게 묘사되어 있다. 이미 고대 인도에서 세티야에 대한 봉헌이 일종의 종교 문화로 정착되었고 순례로 부처님의 주요한 행적과 관련된 지역들이 일종의 네트워크처럼 하나로 연결되어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즉 순례는 불교적 봉헌의 대상인 째띠야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연결고리로써 고대 인도의 불교인들에게 부처님의 발자취를 따라가면서 종교적인 영감을 얻고 윤회의 바다를 건너 깨달음으로 가는 기나긴 여정의 출발점으로 받아들여졌다. 

불교의 순례는 부처님의 행적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동인도를 향하고 있다. 동인도의 8대 성지에서 부처님의 숨결을 느끼면서 부처님의 발자취를 따라간다는 것은 모든 불교인에게 꿈과 같은 일이다. 고대·중세 아시아에서 불교가 전파된 중앙아시아, 동남아시아, 동아시아 불자들에게 동인도의 불교성지 순례는 사실상 목숨을 걸어야만 하는 위험한 여정이었고 구도를 향한 열정이 기존의 자신의 삶에 우선하는 몇몇 승려들에게만 국한된, 거대한 사막과 망망대해를 건너는 처절한 사투였다. 따라서 불교가 인도 전역으로 확장될 때 함께 이동했던 세티야는 불교의 아시아 확산과 함께 아시아 전역으로 이동하게 된다. 

유명한 아쇼까왕의 사리 재분배 일화를 통해 사리라카가 아쇼까왕이 통치했던 인도 전역과 이웃 나라로 퍼져나가게 된다. 그리고 사리라카는 중앙아시아와 동남아시아의 거대한 사막과 망망대해를 넘나들었던 구법승들의 노력으로 동아시아로 동남아시아로 퍼져나가게 된다. 사리라까와 함께 붓다의 행적과 관련된 물건과 장소인 파리보가카 또한 이동하게 된다. 아쇼까왕의 딸인 상가밋따가 스리랑카로 올 때 보드가야 보리수나무의 가지를 꺾어서 갖고 왔다. 이 보리수나무는 아누라다푸라의 중심부에 화려한 행사를 통해 이식돼 아직 살아있다. 이 보리수나무의 가지가 다시 스리랑카 전역의 불교사원에 이식되면서 보리수나무가 스리랑카 전역으로 퍼져나가게 되고 계속해서 동남아시아의 순례승들과 함께 동남아시아 전역으로 퍼져나가게 된다. 사실상 동남아시아의 테라와다(Theravāda) 불교는 아누라다푸라 보리수나무의 맥을 잇는 수많은 파리보가카 세티야를 통해 단일한 정체성을 지니게 되었고 이들을 연결하는 순례길로 사실상 하나가 되는 것이다.

보리수나무와 유사하지만 조금은 전설적인 방식으로 불족적 또한 스리랑카로부터 동남아시아로 이동하게 된다. 스리랑카 남서부의 스리파다(Sri Pada)는 붓다의 발자국이 있는 산봉우리로 유명하다. 이 발자국은 붓다가 직접 스리랑카를 다녀갔다는 증거가 되며 불교가 지역화(localization)하는데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한다. 따라서 이곳은 중요한 순례지가 되었고 마르코폴로의 ‘동방견문록’에도 등장하게 된다. 즉, 사리라카와 파리보가카가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 전역으로 이동하면서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의 불교인들은 목숨을 걸고 동인도로 순례 여행을 떠나지 않아도 자신이 속해있는 지역에서 사리라카인 불사리와 파리보가카 보리수나무와 불족적을 만날 수 있게 되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경우는 어떠한가? 신라시대 많은 구법승이 직접 인도와 중국을 찾아 순례를 이어갔고 이러한 흐름은 고려 중기까지 이어지게 된다. 그러나 점차 해외로 구법 순례를 가는 것이 어려워지고 조선시대에 들어 일반인들의 국경 출입이 금지되면서 해외 구법 순례는 거의 불가능하게 된다. 조선시대에는 한국의 많은 산 이름이 인도나 중국의 중요한 순례지나 불교 경전에 등장하는 산의 이름으로 바뀌게 된다. 가야산, 영축산, 오대산, 금강산, 미륵산 등등 지명이 변화하면서 조선시대 불자와 승려들의 순례는 국내에서 이어지게 된다. 사실 출가한다는 것은 집이 있는 상태에서 집이 없는 사문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출가사문의 삶이란 안거 기간이 아니면 한곳에 머무르지 않고 끊임없이 이동하는 순례 그 자체였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한국불교는 순례문화에서 멀어지기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불교인들의 깨달음을 향한 여정의 출발점이 사라졌고 부처님의 발자취를 따라가 보겠다는 강한 의지와 활력 또한 찾아보기 쉽지 않게 됐다.

상월결사 삼보사찰 순례는 한국불교의 순례문화를 다시 한번 일으켜 세우려는 출발점이었다. 조선시대 이래 삼보사찰이라는 개념이 생겼고 불[Budd ha], 법[Dhamma], 승[Sangha]을 통도사, 해인사, 송광사가 대표했다. 각각의 삼보사찰 대웅전 뒤에는 적멸보궁, 판전, 조사당이 위치해서 삼보사찰로서의 위상을 더하고 있다. 비록 불교의 삼보가 정확하게 불교적 봉헌의 대상인 사리라까, 빠리보거까, 웃데사까에 대응되지는 않지만, 해인사 팔만대장경은 가르침의 신체로서 부처님에게 직접 연결된다. 그리고 승단이 붓다의 애정 어린 손길로 만들어져 지금까지 이어졌다고 한다면 승보사찰 송광사는 파리보가카의 명맥을 잇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는 사리라까와 빠리보거까가 동아시아의 끝에 있는 한국까지 이동한 것이다. 상월결사 삼보사찰 순례는 우리나라의 삼보사찰을 순례를 통해 하나로 연결하는 작업이었다. 불자들에게 부처님의 발자취를 따라가면서 종교적인 영감을 얻고 윤회의 바다를 건너서 깨달음으로 가는 기나긴 여정의 출발점을 제시했다. 동시에 거의 사라져버린 인도불교의 순례문화를 한국에 재확산시켜 한국불교를 중흥하는 틀을 만드는 것이었다.

이제 상월결사의 순례는 부처님의 발자취가 남아 있는 동인도를 향하고 있다. 2023년은 한국과 인도가 수교를 맺은지 50주년이 되는 뜻깊은 해다. 상월결사 인도순례는 한국불교의 순례문화를 통해 한국과 인도를 새롭게 연결하려고 한다. 부처님의 자취가 남아 있는 인도불교 성지에서 부처님과 함께 호흡하며 부처님의 발자취를 따라가려고 한다. 이를 통해 인도불교 성지들을 하나로 묶을 수 있다면,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고대 인도의 순례 네트워크를 상월결사가 새롭게 복원할 수 있게 된다. 순례는 종교적인 의무로부터 시작되기도 하고, 삶의 중요한 전환점을 기념하면서 시작되기도 하며, 스스로 의지를 새롭고 굳게 다지기 위해 시작되기도 하고, 위대한 스승의 발자취를 따라가기 위해 시작되기도 한다.

상월결사 인도순례는 불교인으로서 깨달음으로 가는 힘찬 여정을 인도에서 시작하고, 불교로  한국과 인도가 하나가 되는 전환점을 만들며, 한국불교 중흥을 향한 의지를 굳게 다지는 힘찬 발걸음을 내딛고, 인류의 위대한 스승이신 부처님의 걸음걸음에 우리의 걸음걸음을 맞추려고 한다.

황순일 동국대 불교학과 교수

[1663호 / 2023년 1월 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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