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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 수교 50주년, 상월결사 인도순례] 지도로 보는 상월결사 인도순례 여정과 주요 성지

  • 새해특집
  • 입력 2022.12.29 14:48
  • 수정 2023.01.19 11:26
  • 호수 1663
  • 댓글 0

1167km 대장정, 발길 닿는 모든 곳에서 우리는 위대한 부처님을 친견하리

상월결사 인도순례는 43일간 1167km의 대장정을 이어가며 불교성지를 순례한다. 부처님의 발자취와 숨결이 묻어나는 성지를 직접 발로 걸으며 부처님의 탄생부터 성장, 구도, 성도, 전법, 대열반의 순간들을 함께 숨쉬며 체화한다. 더불어 부처님과 인연 맺으며 불교사의 한 장면으로 남은 역사의 현장들을 순례하며 불자의 삶을 돌아보는 계기도 마련한다. 1167km 대장정에서 직접 만나게 될 불교성지와 그곳에서 펼쳐졌던 2600여년 전 불교사의 한 장면을 다시 떠올려 본다.
남수연 기자 namsy@beopbo.com

 

1 부처님을 맞이 하다 
차우칸디스투파는 한문으로 영불탑이다. 보드가야에서 무상정각을 이루신 부처님께서 전법을 결심하시고 걸어서 사르나트까지 오셨다. 부처님을 가장 먼저 맞이한 이는 꼰단냐를 비롯한 다섯 수행자들이었다. 그들은 맑은 얼굴과 몸에서 광채가 뿜어져 나오는 부처님의 모습을 보고 자신들도 모르게 몸을 일으켜 자리를 마련하고 부처님을 맞이했다. 바로 그 자리를 기려 ‘부처님을 맞이한 탑’이 서 있다. 
 

2 달빛 아래 최초의 법륜
녹야원 달빛 아래 부처님께서 처음으로 진리의 수레바퀴를 굴리셨다. 꼰단냐, 왑빠, 밧디야, 마하나다, 앗사지의 다섯 수행자들이 그 가르침에 의지해 차례로 아라한과를 얻었다. 부처님의 가르침이 최초로 인류에게 전해진 자리, 최초의 다섯 비구가 탄생한 자리, 진리의 가르침에 따라 처음으로 수행자들이 아라한과를 이룬 자리. 그 묵직한 불교사의 무게를 거대한 다메크스투파가 우뚝 서서 증명하고 있다.
 

3 가장 높고 바른 성취
동녘 하늘로 붉은 태양이 떠오를 때 천지가 찬란한 빛으로 가득 차고 대지와 강물이 기쁨으로 요동쳤다. 성도를 막으려는 마라의 마지막 훼방을 가슴 졸이며 지켜보던 천신들은 부처님의 성도선언에 마침내 힘껏 꽃을 뿌리며 가장 높고 바른 깨달음을 이루신 부처님께 경배했다. 부처님께서는 성도 후 49일간 계속 이곳에 머무르시며 마침내 전법의 결심을 굳히셨다. 인류에게 주어진 가장 큰 선물만큼이나 거대한 마하보디 대탑이 그날의 환희를 되새기고 있다. 
 

4 수자타의 위대한 공양
진리를 찾아 집을 나선지 6년, 수행자 싯다르타의 몸은 바스러질 것 같았다. 극심한 고행으로 말라버린 몸을 간신히 감싸고 있는 분소의는 시체의 피고름으로 더럽혀져 있었다. 사람인지조차 구분하기 어려운 수행자 싯다르타에게 수자타는 주저않고 유미죽을 공양했다. 그 정성스런 공양으로 기력을 되찾은 싯다르타는 깨달음을 향한 마지막 여정을 시작했다. 위대한 여정에 힘을 보탠 수자타의 집터는 지금까지도 순례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5 고행을 버린 바위산 
고행주의자 박가바, 명상주의자 알라라카라마와 웃다카라마풋타도 최상의 깨달음을 보여주지 못했다. 스승들의 가르침에 한계를 느낀 수행자 싯다르타는 홀로 바위산에서 극심한 고행을 시작했다. 하지만 고행은 답이 아니었다. 수자타의 유미죽을 먹고 최후의 명상을 결심한 싯다르타는 산을 내려가 보리수 아래서 깨달음을 얻으셨다. 고행을 버린 바위산은 ‘깨달음을 얻기 전’이라는 전정각산으로 불렸다. 
 

6 교단 최초의 대숲 도량
카사파 삼형제의 귀의로 천명의 승가로 급성장한 교단을 이끌고 부처님이 마가다국의 수도 라즈기르에 들어서자 도시 전체가 술렁였다. 빔비사라왕은 곧바로 달려나와 부처님 앞에 머리 조아리고 승가가 머물 거처를 마련했다. 낮에도 사람들의 왕래가 많지 않고 밤에도 시끄러운 소리가 들리지 않는 곳, 도성에서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대나무숲을 보시했다. 교단 최초의 도량 죽림정사는 그렇게 탄생했다. 
 

7 ‘법화경’ 영산회상의 무대
부처님께서 설법단에 오르시고 천이백오십 비구승가가 자리를 잡자 천상의 보살·신장들까지 내려와 모여들었다. 라즈기르 동북쪽에 자리한 영취산에서 부처님은 ‘법화경’을 설하셨고, 그 모습은 유명한 ‘영산회상도’로 불교미술사에 한 획을 긋게 된다. 날개를 접고 앉은 독수리 모양의 바위로 인해 ‘신령스런 독수리산’이라 불리는 영취산은 ‘법화경’의 설법지로, ‘영산회상도’의 무대로 불자들에게 각인돼 있다. 이후로도 수 많은 가르침이 이곳에서 설해졌다. 
 

8 목숨 건 구법행의 목적지
7세기 중국의 구법승 현장 스님이 방문할 당시 날란다사원에는 ‘보대가 별처럼 줄지어 섰고 옥루가 산처럼 솟아’ 있었다. 그곳에서는 매일 100여개의 강좌가 열렸고 1만여명의 스님들은 2000여명의 교수들로부터 불교를 포함한 세상의 모든 학문을 배웠다. 전 세계의 불교학자와 스님들이 날란다사원에 가서 공부하기 위해 기꺼이 목숨을 걸었다. 하지만 12세기 이슬람세력의 침략으로 불길에 휩싸인 날라다사원은 무려 6개월간 거센 불이 타올랐다고 한다.
 

9 최초 불사리탑은 전법의 창고
부처님께서 입멸하시고 320여년 후 인도를 통일하고 법왕이 될 것을 선언한 아쇼카왕은 부처님의 사리가 최초로 봉안되었던 여덟 개의 사리탑을 조심스럽게 다시 열었다. 그곳에서 수습한 사리로 인도 전역에 사리탑을 세우는 한편 인도아대륙 전체로 불교를 전파시켰다. 최초의 불사리탑이었던 근본팔탑은 부처님의 가르침이 전 세계로 퍼져나갈 수 있도록 씨앗을 품고 있던 거대한 법의 창고였다. 그 흔적만으로도 오늘날까지 경배받기에 충분하다. 
 

10 여성출가 이끈 아난다의 공덕
석가족 여인들이 스스로 삭발하고 부처님의 뒤를 따랐다. 카필라성에서 바이샬리에 이르기까지 수백킬로미터에 달하는 여정은 여성 출가를 둘러싼 부처님과 여인들의 팽팽한 줄다리기였다. 그리고 바이샬리 대림정사에서 부처님은 마침내 아난다의 간청을 받아들여 여성 출가를 허락하셨다. 그 자리에는 아난다에 대한 감사를 담은 대탑이 서 있다. 또한 부처님께서 마지막 여정을 떠나신 쿠시나가르를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는 아쇼카왕의 석주와 사자가 남아있다.
 

11 삭발한 자리에 발우를 묻고
누구도 감히 손댈 수 없었던 싯다르타 태자의 검은 머리카락이 단칼에 잘려 허공에 흩어졌다. 굳건한 몸을 감싸고 있던 화려한 보석도 땅에 떨어졌다. 태자는 스스로 삭발하고 이곳에서 수행자가 되었다. 그리고 51년 후 대열반을 예고하며 바이샬리를 떠나는 길에 부처님은 눈물을 감추지 못하는 릿차위인들에게 자신의 발우를 건네주며 위로하셨다. 부처님의 출가와 마지막 유행의 자리에 세워진 케사리야대탑에는 부처님의 발우가 봉안돼 있었다. 
 

12 세상의 등불이 꺼지는구나 
“나는 방일하지 않았으므로 바른 깨달음을 얻었느니라.” 마지막 가르침을 남기고 부처님께서 눈을 감자 세상의 등불이 꺼진 듯했다. 아난다는 서러운 눈물을 감추지 못했지만 아라한과를 얻은 제자들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되새겼다. 쿠시나가르의 두 그루 살라나무 아래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 자리엔 부처님 열반상이 봉안돼 있다. 마지막 인사를 올리기 위해 모여든 천신들로 빈틈없던 대열반의 날처럼 열반당에는 지금도 불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13 장작더미 불길이 하늘로 치솟고
무릎까지 쌓이는 꽃잎을 헤치고 부처님의 법구가 앞으로 나아갔다. 일산을 받쳐 든 말라족의 서글픈 배웅을 받으며 법구는 쿠시나가르의 다비장에 안치됐다. 마하카샤파의 마지막 예배가 끝난 후 향나무 장작더미에 저절로 불이 붙었다. 하늘까지 삼킬 듯 치솟던 화염이 금곽과 철곽까지 모두 녹여버린 후 불길에도 타지 않은 사리가 수습되었다. 사리는 공회당에 모셔져 칠일 간 예배됐고 지혜로운 도나의 중재로 여덟등분 되어 각 국에 여덟개의 사리탑이 조성됐다.  
 

14 천상에서 꽃비 내리던 동산
온갖 꽃 만발한 룸비니동산에서 마야왕비는 무우수 가지를 살포시 잡고 아무런 산통 없이 왕자를 낳았다. 오른쪽 옆구리로 태어난 아기는 오른손으로 하늘을 가리키로 왼손으로 땅을 가리키며 사방으로 일곱 걸음 걷고 사자처럼 당당하게 말했다. “하늘 위, 하늘 아래, 내 오직 존귀하니, 온통 괴로움에 휩싸인 삼계, 내 마땅히 편안케 하리라.” 땅에서는 수레바퀴만큼 큰 연꽃이 솟아올랐고, 천지가 진동하며 삼천대천세계가 밝아졌다. 하늘에선 꽃비가 쏟아졌다. 
 

15 인천의 스승 길러낸 복된 땅
숫도다나왕은 태자가 지혜롭고 용감하며 자애로운 품성과 재능이 넘치는 전륜성왕이 될 수 있도록 모든 노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태자는 카필라성에서 밭 가는 농부의 고단함과 먹고 먹히는 동물들의 숙명, 모든 중생의 생로병사를 직관했다. 마침내 아름다운 부인 야소다라와 사랑스러운 아들 라후라를 뒤로하고 위대한 출가의 걸음을 내딛으셨다. 카필라성은 그렇게 인천의 스승을 길러낸 복된 땅이었다. 
 

16 가장 위대한 신통을 보이시다
부처님은 코살라국의 파세나디왕과 외도의 수행자들을 망고나무 숲으로 불러모으셨다. 신통을 보이리라 예고하셨다. 부처님은 망고 씨 하나를 심어 무성한 나무가 되게 하시고 허공으로 솟구쳐 올라 몸에서 물과 불을 번갈아 쏟아내셨다. 그리고 천 개의 몸으로 화현하셨다. 쉬라바스티의 모든 외도들이 항복하고 국왕과 백성들이 귀의했다. 후대인들은 이를 ‘사위성의 신변’이라 부르며 천불화현대탑을 세워 기렸다.
 

17 가장 많이 설법하신 교단의 터전
수닷타장자와 제타태자의 보시로 쉬라바스티에 세워진 기원정사에서 부처님께서는 25년 가까이 안거하시고 900여번 이상 설법하셨다. 당시 인도 최강국 코살라의 수도에 자리잡은 기원정사는 쉬라바스티의 랜드마크인 동시에 불교가 당대 최대, 최고의 종교로 성장할 수 있는 터전이 되어주었다. 라즈기리의 죽림정사와 더불어 부처님 재세시 교단의 양대 포교거점이 된 기원정사. 부처님께서 머무시던 향실 간다쿠티엔 오늘날까지 향내음이 그윽하다. 
 

18 불교사에 남은 영광의 이름 수닷타
수닷타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이익을 남기는 일이라면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그가 창고에서 금을 꺼내 동산을 덮었다. 부처님을 쉬라바스티에 모시는 일,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따르는 일이 그에게 더 없는 이익이 될 것임을 누구보다 잘 알았기 때문이다. 그의 예상대로 기원정사를 기반 삼아 불교는 당대 최고의 종교로 성장했고 수닷타장자는 교단 최고의 도량을 보시한 영광스런 이름으로 불교사에 남았다. 수닷타장자의 집터까지 성지가 되었다.

[1663호 / 2023년 1월 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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