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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안거 해제 현장] 정진 마친 선객들 산문 열고 세상에 나서다

  • 수행
  • 입력 2024.02.24 14:13
  • 수정 2024.02.27 11:59
  • 호수 1718
  • 댓글 0

수좌 10명 3개월 동안거 회향
선원장스님 배웅 받으며 만행
‘행주좌와어묵동정” 정진 당부

은빛 눈꽃으로 물든 산맥을 따라 올겨울 마지막 정진을 알리는 목탁소리가 “또르륵…또르륵” 메아리쳤다. 하나 둘 선방에 자리 잡은 스님들은 3개월 동안 동고동락한 좌복에 다시 가부좌를 튼 채 삼매에 빠져들었다. 해가 산등성이로 숨을 무렵, 경쾌한 죽비소리가 공기를 갈랐다. 길고 긴 정진 끝에 깨달음이 있었을까.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스님들이 좌복을 털고 기지개를 켰다.

전남 장성 백양사 운문선원. 2월 24일 선원장 보인 스님을 비롯한 10여 명의 스님이 안거를 마치고 만행에 나섰다. 1400년 전 백제 무왕 때 여환조사가 창건한 백양사는 호남불교의 요람으로 불리는 곳. 특히 백양사에서 산속으로 1시간가량 더 걸어 들어가야 닿는 운문선원은 수많은 선지식이 거쳐갔으며 조계종 종정을 7명이나 배출한 제일의 수행도량이다. 정월 대보름, 선기 가득한 이곳에서 정진을 마친 수좌들이 다시 산문을 나섰다.

해제에 앞서 운문선원장 보인 스님은 수좌들에게 행주좌와어묵동정의 마음가짐으로 언제 어디서나 정진을 게을리 하지 말 것을 당부했다. 스님은 “각자 살아온 삶과 환경에 따라 배우고 느낀 바가 다르겠지만, 만암 스님과 조계종 전 종정 서옹 스님의 선풍이 살아 숨쉬는 이곳에서 올바른 철학과 신념을 세웠길 기대한다”며 “부처님 법은 과거에도, 미래에도 없다. 수좌들은 처음 방부를 들일 때 마음가짐이 3개월이 지난 지금도 같은지 스스로 되물음과 동시에 대중들을 위해 어떻게 법을 설할지 현실적인 고민을 이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백양사 고불선원 수좌 일수 스님의 충고도 이어졌다. 스님은 “담장에 소뿔이 튀어나와 있으면 그곳에 소가 있는걸 알듯이 치열한 정진 속에 언제나 그 자리에 있던 자기 자신을 발견했길 바란다”며 “중국 선종의 초조 보리달마 대사가 말하듯 모든 것은 심즉시불이며 불즉시심이다. 여러분이 오랜 화두 참구 끝에 얻어야 할 건 오직 자신의 마음자리, 본래 성품을 찾는 것임을 잊지 말라”고 당부했다.

운문선원장 보인 스님과 수좌 일수 스님의 당부처럼 백양사에서 정진한 수좌들은 안거 동안 만암종헌(1876-1957) 스님과 조계종 전 종정 서옹석호(1912-2003) 스님의 유지를 이어 정토 세상을 향해 ‘참사람 운동’을 전개할 것을 다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참사람 운동’은 자유와 공존, 자비, 평화, 평등의 가치를 지님으로써 괴롭거나 고통스러운 마음이 일절 생기지 않는 경지의 존재를 말한다.

서옹 스님은 만암 스님의 수행 전통에 따라 간화선을 통해 참사람이 되었을 때 비로소 중생들이 과학 문명의 병폐와 이기에서 벗어나 구제될 수 있음을 강조했다. 즉, 무상무주를 깨달아 자비를 베풀며 생활하고, 어디에도 걸림 없이 자유자재하여 삼라만상의 모든 생명체를 인류가 서로 존중하고 도우며 집착 없이 바르게 행동해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는 것이 참사람 운동이다.

백양사 주지 무공 스님은 “근현대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선지식 만암 스님과 서옹 스님의 실천적 가르침은 오늘날까지 이어져 현대사회가 당면한 사회적 문제의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다”며 “만행에 나서는 수좌들은 언제 어디서니 화두를 놓지 말고 일념 정진해 금생에 견성오도하고야 말겠다는 각오로 부처님의 혜명을 밝혀달라”고 말했다.

잔설 한 줌 없는 산길, 봄기운 완연한 길이 낯선 것은 생사를 걸고 화두와 한판 승부 펼치던 선불장의 시간이 벌써 끝났음이 실감나지 않기 때문일지 모른다. 눈보라 몰아치던 겨울을 지나 산문 나서는 수좌는 외호대중들의 은혜를 서리서리 바랑에 넣어 어깨에 짊어졌다. 결제와 해제가 따로 있으랴마는 누군가의 수고로움에 기대었던 지난 한철의 은혜를 갚고자 이제 산문 밖 세간으로 발걸음 옮긴다. 어디선가 저 바랑 펼쳐질 때 눈푸른 납자의 사자후가 봄꽃 소식처럼 들려오길 기다리는 마음이 오랫동안 수좌의 뒷모습을 따른다. 동안거 해제를 맞아 공개된 고불총림 백양사 운문선원의 해제풍경은 한겨울 지나고도 푸른 산죽잎처럼 여전히 성성한 정진의 기운으로 가득하다.

어느덧 바랑을 멘 수좌들이 신을 신고 마당에 나섰다. 다시 굳게 닫힌 선방 문고리와 선원장 스님의 배웅을 뒤로, 수좌들은 부처님 법을 전하기 위한 길에 올랐다. 

잔설 한 줌 없는 산길, 봄기운 완연한 길이 낯선 것은 생사를 걸고 화두와 한판 승부 펼치던 선불장의 시간이 벌써 끝났음이 실감나지 않기 때문일지 모른다. 눈보라 몰아치던 겨울을 지나 산문을 나서는 수좌는 외호대중들의 은혜를 서리서리 바랑에 넣어 어깨에 짊어졌다.

결제와 해제가 따로 있으랴마는 누군가의 수고로움에 기대었던 지난 한철의 은혜를 갚고자 이제 산문 밖 세간으로 발걸음 옮긴다. 어디선가 저 바랑 펼쳐질 때 눈푸른 납자의 사자후가 봄꽃 소식처럼 들려오길 기다리는 마음이 오랫동안 수좌의 뒷모습을 따른다. 동안거 해제를 맞아 공개된 고불총림 백양사 운문선원의 해제풍경은 한겨울 지나고도 푸른 산죽잎처럼 여전히 성성한 정진의 기운으로 가득하다.

운문선원에서 내려다 본 백암산. 
운문선원 여름 풍광.
운문선원 여름 풍광.
한국 선불교 법통 이어온 선지식들 정진처

‘북 마하연, 남 운문’ 우리나라 최고의 선원으로 북쪽에는 마하연선원, 남쪽에는 운문선원이 있다는 말이다. 운문선원은 백양사의 산내암자 운문암을 일컫는다. 운문암은 백양사 내에서도 가장 전망 좋은 곳에 위치해 있다. 지금도 선객들 사이엔 “운문암 선방 문고리만 잡아도 삼악도를 면한다”는 말이 회자될 만큼 우리나라 최고 선원으로 꼽힌다.

여름에는 운무, 겨울에는 백설이 별천지를 만드는 이곳은 오랫동안 한국 선불교의 산실이었다. 조선의 벽송, 정관, 백파 스님에 이어 근대의 학명, 용성, 인곡, 석전, 만암, 고암, 서옹 스님까지 선불교의 법통을 이어온 스님들이 이곳에서 수행과 교화를 펼쳤다.

운문선원 멀리 보이는 능선은 200봉의 군신들이 머리를 조아리고 있는 모습이며, 맑은 날에는 광주 무등산이 훤히 보인다. 아침에 구름이 끼면 산 밑에 구름이 문을 만들 듯 머문다 하여 ‘운문(雲門)’이다. 지금도 안거 때마다 선객들이 앞다퉈 찾는 정진처다.

운문선원에는 조계종 전 종정 서옹 스님이 직접 쓴 현판이 달려있다.
운문선원에는 조계종 전 종정 서옹 스님이 직접 쓴 편액이 걸려있다.

운문선원은 백양사가 창건될 즈음 함께 세워진 것으로 전해진다. 11살에 백양사로 출가해 광복 후 조계종 종정으로 추대된 만암종헌 스님은 운문암에 주석하며 ‘우음난야(愚陰蘭若)’라는 움막을 짓고 정진에 들기도 했다. 스님은 백양사 주지를 지내며 고불선원을 짓고 백양사를 중창시켰으며, 한영·만해 스님 등과 일본의 조동종 병합에 맞서 한국 전통의 선종인 임제종을 세웠다.

운문선원은 한국전쟁 당시 인민군의 보급로를 차단하기 위해 국군에 의해 소실됐다. 방화 이후 하산하던 국군은 인민군을 만나 몰살됐고, 방화에 반대했던 국군 한 명만 생존한 것으로 전해진다. 운문선원은 조계종 5대 종정을 지낸 서옹 스님에 의해 1985년 중창돼 예전의 명성을 되찾았다.

장성=고민규 기자 mingg@beopbo.com

[1718호 / 2024년 2월 2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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