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그동안 4년에 걸쳐 ‘법보신문’에 원고를 써왔다. 첫해에는 불교의 미래가 어떠해야 할지에 대해 토론했고, 그 뒤부터 3년간은 매달 동양, 서양, 현대, 불교 인물이 남긴 일화를 소개한 다음 불교 교리의 관점에서 그 의미를 짚어보았다.그 과정에서 부처님과 그분의 주변 인물을 다룬 적이 많았지만 다시 부처님으로 되돌아와 글쓰기를 마무리하고자 한다. 그렇기는 하지만 부처님의 일생은 단 1회로 논급할 주제는 아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인 부처님. 찬탄을 올리고 올린 다음 또다시 찬탄을 한다 해도 부족한 이 위대한 분을 어
일본 작가 하루토(1906~1988)는 마사코라는 여인과 결혼했는데, 두 사람 사이에 아이는 없었다. 꽤 오랜 시간이 흘러 하루토 부부는 ‘노인’이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 마사코에게서 세상 사람들이 ‘치매’라 부르는 징후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치매는 알츠하이머와 혈관성 뇌병변으로 생기는 경우가 많고, 수십 가지의 원인에 의해 생기기도 한다. 통계에 따르면 이 매우 곤란한 병은 65세 이상 노인의 4~6퍼센트, 85세 이상 노인의 25퍼센트가 앓게 된다.치매는 3기에 걸쳐 진행되는데, ‘건망기’라고도 불리는 초기에는 기억 장애(
영문학자이자 시인인 금아(琴兒) 피천득(皮千得, 1910~2007)은 수필가로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현대문학’을 통해 수필가가 된 뒤에 필자는 선생께 편지를 보냈었다. 얼마 후 필자가 근무하던 ‘한국문학’으로 선생이 오셨다. 그러고는 롯데호텔 커피숍으로 데리고 가서는 차를 대접해 주셨다.그런데 차를 시켜놓고 나서 선생이 차를 마시지 않는 것이었다. 알고 보니 체질이 매우 민감해서 커피만 마셔도 잠을 주무시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니 술을 못 마시는 거야 당연지사. 선생의 수필에 선생이 동료들과 함께 한 술자리에서 양주 시켜놓
기독교 신약성서 ‘누가복음’에 ‘돌아온 탕자 이야기’가 있다. 한 아버지가 있었다. 그에게는 두 아들이 있었는데, 큰아들은 모범적이고 충실한 사람으로 아버지를 모시고 열심히 집안일을 했다.그에 비해 작은 아들은 바르지 못한 사람이었다. 그는 아버지에게 재산을 달라고 청하여 허락을 받았다. 노력 없이 생긴 재산을 갖고 그는 외지로 나갔다. 거기에서 그는 친구들과 어울려 방탕한 생활을 한끝에 가진 돈을 다 써버리고 말았다.그러자 전에는 친구라며 가까이하던 자들이 다 떠나버렸고, 그는 결국 남의 집 하인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돼지가 먹는
당(唐)나라 사람 유란지(劉蘭芝)는 열일곱 살에 초중경(焦仲卿)의 아내가 되었다. 결혼을 한 뒤 새벽닭이 울면 곧 베틀에 올라 쉬지 않고 하루 종일 베를 짰다. 문제는 시어머니였다. 그녀는 이런저런 이유로 날마다 며느리를 구박했다. 견디다 못한 유란지가 남편에게 자신을 친정으로 보내 달라고 부탁했고, 이에 초중경이 어머니에게 나아가 항의하자 어머니는 화를 내면서 “며느리가 예절도 없고 행동도 제멋대로여서 내가 그동안 화를 참아왔다. 동쪽 마을에 모습이 아름다운 진나부라는 아가씨를 데려올테니 네 마누라를 내쫓아라”고 말했다.진나부는
서양(아프리카) 역사상 가장 매력적인 여성 중 한 사람으로 기억되는 클레오파트라 7세(Cleopatra VII Philopator, 기원전 69~30)는 이집트 여왕의 아버지는 라지드 왕가의 프톨레마오스 12세이다.클레오파트라는 매우 영특해서 어려서부터 여러 공주들 중 두각을 나타냈다. 그녀는 여러 나라의 언어에 능통했으며, 대수학, 서사시, 역사, 수사학, 정치학 등에도 조예가 있었고, 미용술에 관한 책을 썼다는 이야기도 전해져오고 있다. 그녀는 지적이고 교양이 높으며 대화에 능했다. 그녀의 타고난 미모는 당대로서 가장 선진적인
일제강점기 민족 지도자였던 이상재(李商在, 1850~1927)는 충남 서천군의 한 몰락한 양반 가문에서 태어났다. 그가 젊었을 때 조상의 산소 문제 때문에 부친이 감옥에 갇힌 일이 있었다. 그때 상재는 관서를 찾아가 아버지를 대신해 옥살이 하기를 청하여 사흘간 갇혀 지냈다. 그런 다음 고을 수령을 만나 억울함을 호소하여 아버지를 무죄 방면케했다.열여덟 살에는 상경하여 과거에 응시했는데, 당시 과거장 풍경은 엉망진창이었다. 대놓고 글을 베껴 쓰는 사람이 수두룩할 정도로 타락해 있었던 것이다. ‘한심하다. 다시는 이런 곳에 발을 디딜
톨스토이(R. Tolstoy, 1828~1910)는 도스토옙스키와 함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소설가로 꼽히는 인물이다. 그는 큰 영지를 가진 백작 가문의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어려서 부모를 잃고 친척들에 의해 교육되었으며, 카잔대학을 중퇴한 다음에 자신의 영지인 야스나야폴랴나로 돌아왔다가 1851년에 군인이던 형을 따라 카프카로 가서 자신 또한 군인이 되었다. 톨스토이는 첫 작품인 ‘유년 시절’로 평단의 큰 찬사를 받았다. 군대에서 퇴역한 후 그는 작가로서 더 큰 성공을 거두었는데, 그중에서도 그가 서른다섯 살에 발표한 ‘전쟁과 평
아사다 마오 선수의 클린에도 불구하고 연아는 전혀 기죽지 않은 당당한 연기 ‘007 제임스 본드’로 78점을 얻었다. 경쟁자 마오 선수보다 5점을 더 얻은 세계 신기록이었다.그리고 운명의 날, 프리 스케이팅 경기. 프리에서의 경기 순서는 쇼트와 정반대였다. 김연아 선수가 3번, 마오 선수가 4번. 연아가 앞에 나서 ‘조지 거쉰, 피아노 협주곡 바장조’를 한순간의 실수도 없이 깨끗하게 연기함으로써 218점이라는 올림픽 신기록을 세우며 우승했다. 독일 방송 해설자는 그날 연아가 펼친 프리 경기에 대해 말했다. “지금 이 순간은 역사의
피겨 스케이팅 선수 김연아는 1990년에 경기도 부천에서 태어났다. 일곱 살 때 취미로 배우게 된 피겨 스케이팅에서 재능을 보인 그녀를 보고 류종현 코치가 김 선수의 어머니 박미희씨에게 전문 선수로 키워보면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한다. 김 선수의 어머니는 고민 끝에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김연아 선수에게는 한번 마음먹은 것은 끝까지 해내는 뚝심이 있었다. 그녀를 지도한 류종현 코치에 따르면 새벽에 훈련을 위해 차를 몰고 일곱 살 연아가 사는 아파트에 가면 어린 연아가 머리까지 단정하게 잘 단장을 한 모습으로 계단에 앉아 있었다고 한다.
아루나찰나 산에 도착한 벵카타라만은 아루나찰라 신을 모신 사원을 찾아갔다. 그 누구로부터도 방해를 받지 않은 채 그는 성소에 들어가 링가(linga : 전대자를 상징하는 남근 모양의 심볼) 앞에 섰다. 격정이 소용돌이쳤다. 그는 링가를 껴안았다. 잠시 후, 격정이 가라앉으면서 완전한 엑스타시 속에서 그는 아루나찰라 신과 하나가 되었다. 그는 사원에서 나왔고, 머리를 깎겠느냐는 누군가의 물음에 응하여 삭발했다. 그는 자기가 갖고 있던 남은 돈과 먹을 것을 모두 버렸다. 입고 있던 옷을 찢어 허리만 걸치는 간단한 옷으로 바꿔 입고 그는
현대 힌두 명상의 대가 라마나 마하리쉬(Ramana Maharshi, 1879~1950)의 어릴 적 이름은 벵카타라만이다. 그는 어렸을 때 한 번 잠이 들면 남들이 어떤 짓을 해도 눈을 뜨지 않는 특징이 있었다. 심지어 친구들이 그의 몸을 옮기거나 얼굴에 심한 장난을 해도 그는 깨어나지 않았다.어릴 때 그의 마음속에서 ‘아루나찰나’라는 신비한 고동소리가 항상 울려 퍼졌다. 그는 그 말의 의미를 알지 못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집에 온 친척 한 사람이 아루나찰라라는 말을 사용했기 때문에 그에게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물어보았다. 알고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