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9.  마하리쉬의 힌두 명상 ②
129.  마하리쉬의 힌두 명상 ②
  • 김정빈
  • 승인 2019.10.01 10:20
  • 호수 15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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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에 갇히는 건 육체가 ‘나’라 여기기 때문”

순례자들 머무는 힌두교성지서
해충 물고 몸 피고름 범벅 돼도
사마디에 자주들었던 마하리쉬

생각의 세계 벗어나는 길 묻자
‘나는 누구인가’ 의문 몰입하고
신에게 나 완전히 맡기라 주문
그림=육순호
그림=육순호

아루나찰나 산에 도착한 벵카타라만은 아루나찰라 신을 모신 사원을 찾아갔다. 그 누구로부터도 방해를 받지 않은 채 그는 성소에 들어가 링가(linga : 전대자를 상징하는 남근 모양의 심볼) 앞에 섰다. 격정이 소용돌이쳤다. 그는 링가를 껴안았다. 잠시 후, 격정이 가라앉으면서 완전한 엑스타시 속에서 그는 아루나찰라 신과 하나가 되었다. 그는 사원에서 나왔고, 머리를 깎겠느냐는 누군가의 물음에 응하여 삭발했다. 그는 자기가 갖고 있던 남은 돈과 먹을 것을 모두 버렸다. 입고 있던 옷을 찢어 허리만 걸치는 간단한 옷으로 바꿔 입고 그는 다시 사원으로 향했다.

사원에 들어간 벵카타라만은 순례자들이 머무는 곳의 한쪽 구석에 앉아 사마디에 들었다. 그때 개구쟁이들이 돌을 던졌으므로 그는 지하로 내려갔는데, 그곳은 햇빛이 들지 않는, 개미·모기·파리·지네 등 해충이 들끓는 곳이었다. 그는 거기에서 외부 세계의 모든 것을 잊고 사마디에만 몰입한 채 며칠 동안을 보냈다. 그러고 있던 그를 지하실 입구를 지나던 어떤 사람이 발견했는데, 벵카타라만을 깨우려고 아무리 소리를 쳐도 그는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벵카타라만을 다른 곳으로 옮기기 위해 그가 다른 사람들과 함께 들어 올리자 이 특별한 명상인의 몸 밑 부분에서 흙과 뒤범벅이 된 채로 수많은 상처와 피고름이 흘러내렸다. 

사람들은 그의 몸을 깨끗한 곳으로 옮겼다. 그러나 그는 눈을 감은 채 여전히 깨어나지 않았으며, 며칠에 한 번만 눈을 떴다. 그러면 사람들은 그의 곁으로 다가가 우유나 죽, 음료수 같은 것들을 먹여주었다. 그런 상태로 두 달이 흘렀다. 나중에 그는 제자들에게 말했다. “그때 내게는 외부 세계에 대한 지각이 전혀 없었다. 사마디에 들어 있다가 간혹 눈을 뜨면 어떤 때는 밝았고, 어떤 때는 어두웠다. 내가 시간이 지나고 있다는 사실을 느낀 것은 오직 그것만을 통해서였다.”

그는 장소를 옮겨 자주 사마디에 들었고, 제자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1899년, 그는 자신의 거처를 아루나찰나 산으로 정하고 이후 거기에서 17년간 머물러 살았다. 사람들이 찾아오면 그는 거의 말을 하지 않고 그 사람을 응시하곤 하였다. 어떤 때는 몇 시간이고 조용히 앉아 사람에게 연민의 눈길만을 보내기도 했는데, 그러면 그를 찾아온 사람들의 내부에 쌓여 있던 모든 것이 눈 녹듯이 녹아내리는 것이었다. 울음을 터뜨리는 사람도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에게서 성스러움을 느끼고 발밑에 엎드려 예배했다. 그는 그런 침묵의 힘으로도 감화되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서만 말을 사용해 진리에 대해 말해 주었다.

저명한 시인이자 학자인 가나파티 무니가 그를 브하그완 스리 라마나 마하리쉬(Bhagvan Sri Ramana Maharish)라 부를 것을 제안하였고, 그때부터 그것이 그의 새로운 이름이 되었다. 브하그완은 ‘전능한 신’을 의미하고 스리는 존칭어이며 라마나는 벵카타라만에서 따온 말이며 마하리쉬는 ‘위대한 성취자’를 의미한다.

가나파티 무니가 어느 때 라마나 마하리쉬에게 타파스(tapas : 고행)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물었는데, 라마나 마하리쉬는 이렇게 대답했다.

“‘나’라는 생각이 어디에서 생기는지를 바라보면 마음은 그것(that) 안으로 흡수됩니다. 이것이 타파스입니다. 만트라를 반복할 때에도 그 만트라의 소리가 일어나는 근원을 바라보면 마음은 그것 안으로 흡수됩니다. 이것이 타파스입니다.”

바로 이것이 ‘자기 탐구(self-enquiry)’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라마나 마하리쉬의 수행법이다. 라마나 마하리쉬는 인간들은 ‘육체가 나’라고 생각하고 있으며 그 때문에 마음, 즉 생각의 세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런 상태를 벗어나 해탈을 하는 데는 두 가지 길이 있다. 첫 번째로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의문을 가지고 그 의문이 일어나는 근원으로 몰입하면 마침내 마음의 세계를 벗어난 진아에 이르게 되는 것으로서, 그는 방법을 권장한다. 두 번째는 자기의 모든 것을 절대자, 즉 신에게 완전히 맡겨버리고, 마음 즉 에고와는 전혀 타협하지 않음으로써 마음이 사라지도록 하는 헌신의 길(박티 요가)이다.

1949년, 라마나 마하리쉬의 오른쪽 팔목 위에 작은 혹이 생기더니 점점 커졌다. 수술을 했지만 치료되지 않았으며, 라마나는 마취를 하지 않은 채로 수술을 감당했다. 종양 때문에 고통을 받았지만 그는 여전히 평소처럼 사람들과 면담을 하며 지냈다.

그는 병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육체 자체가 우리에게 나타난 일종의 병이다. 그 근본적인 병에 다른 병이 나타난다는 것은 우리에게 오히려 좋은 일이 아니겠는가?” 그는 자신의 병을 슬퍼하는 제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대는 마치 내가 어디로 가는 것처럼 슬퍼하고 있구나. 내가 어디로 가겠으며, 어떻게 가겠느냐? 가고오는 것은 육체에게나 있는 것이지 어떻게 진아가 그럴 수 있겠느냐?” 마지막 날, 그는 가까이에 있는 시바난다 스와미에게 말했다.

“나는 기쁘다(Santhosham).” 

1950년, 4월14일 금요일 저녁, 제자들이 방밖의 베란다에 모여서 ‘아루나찰나-쉬바’를 찬송하는 소리를 들으며 그의 눈이 조용히 열렸다. 그는 평화로운 미소를 지었고, 그의 두 눈에서는 눈물이 가득 고여 있었다. 이윽고 깊은 숨이 한 번 있은 다음 그는 더 이상 숨을 쉬지 않았다.

라마나 마하리쉬가 제시한 자기 탐구법은 선불교의 ‘이 뭣고’ 수행과 비슷한 데가 있다. 더하여 그에게 깊은 선정력이 있었다는 점이 신비롭게 여겨진 탓인지 한국에서 라마나 마하리쉬에 대한 인기 내지 숭배는 대단하다.

부처님의 가르침과 매우 유사하기는 하지만 라마나 마하리쉬의 가르침은 불교와 다른 점도 있다. 깨달음의 경지를 ‘진아’로 본다는 점도 그렇고, 세간법으로서의 현상계를 온전한 헛것으로 보는 점도 그렇다. 불교인 중에도 ‘금강경’의 ‘여몽환포영(如夢幻泡影)’이 그런 가르침인 줄 여기는 사람들이 없지 않지만 부처님은 현상계 ‘자체’를 부정하신 것이 아니라 현상계를 ‘집착하는 마음’이 몽환포영과 같은 것임을 지적하신 것뿐이다.

또한 부처님께서는 몽환포영 같은 현상계 ‘너머’에 진아가 따로이 있다고 말씀하시지 않았다. 부처님은 현상계 ‘너머’가 아니라 현상계 ‘자체’에서 진실을 구하셨다. 그럼으로써 부처님의 가르침은 힘있는 가르침이, 즉 현상계를 떠난 적정주의자(寂定主義)가 아닌, 현상계를 개선하고 향상시키는 현실적인 가르침이 되었다.

라마나 마하리쉬의 놀라운 성취에도 불구하고 그의 가르침이 널리 퍼지지 못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와 부처님의 가르침이 전세계적, 통시대적으로 전파된 것은 아마도 그 때문일 것이다. 라마나 마하리쉬는 불교의 입장에서 일종의 벽지불, 즉 전세계적, 통시대적인 스승이 아닌 한 지역, 한 시대의 위대한 스승인 것으로 보인다.

김정빈 소설가 jeongbin22@hanmail.net

 

[1506호 / 2019년 10월 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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