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범천은 잊혀진 신이다. 인도 내에도 이 신을 주신으로 모신 신전은 몇 군데를 제외하고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조각물은 여전히 많이 존재하지만, 문헌 속에서 베다 시대를 제외하면 이 신이 주목받는 경우는 썩 많지 않다. 힌두교의 만신전에서 이 신이 주변부로 밀려나면서 다른 보조적인 역할을 맡는 것이 대부분이다. 한국에서도 이 신은 일부 석탑이나 부도에 불자(拂子)를 들고 있는 모습으로 새겨지거나, 탱화 속에서 관모를 쓴 귀인의 모습으로 제석천 옆에 나란히 서있는 모습으로 만나게 된다.범천은 고행자거나 혹은 현자사제들 신으로서의
우리가 만나는 대부분의 금강역사는 대체로 근육질의 상반신을 드러낸 채 한 손에 칼을 들거나 또는 눈을 부릅뜬 채 맨 주먹을 치켜들어 곧 내리칠 것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이러한 모습은 대체로 탑신의 문비(門扉) 좌우에 새겨지거나 사찰 전각의 벽면과 문 위에 그려진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이 신을 금강역사(金剛力士), 집금강(執金剛), 또는 인왕(仁王) 등으로 다양하게 부르고 있는데 본래 이 이름은 산스크리트 명칭인 ‘바즈라파니(vajrapāṇi/ vajradhara)’를 번역한 것이다. 즉 ‘바즈라(vajra
구요(九曜). 이 이름은 다소 낯설게 들릴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신들을 볼 수 있는 기회는 한국불교인들조차 쉽지 않기 때문이다. 불교 속에 자리 잡은 천문 신앙이라면 당연히 칠성각을 떠올리겠지만 그 안에서 구요의 모습을 볼 수는 없다. 지금은 고려 불화 속, 혹은 불경 속에서나 그 이름을 찾아볼 수 있겠지만, 고려 당시만 해도 이들은 제법 중요한 신격이었다. 임금이 구요당(九曜堂)을 짓고 거기서 나라의 안녕이나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 제사를 지낼 정도였으니 말이다. 고려 태조부터 제석원을 비롯해 구요당을 짓고 초재를 올렸다는
지난 번 글에 소개한 것처럼, 인드라와 경쟁하여 전투신으로 등극한 위태천에 대한 이야기를 기억할 것이다. 위태천은 비록 전투에서 신들의 왕인 인드라를 무릎 꿇게 했으나 자신이 왕의 권좌에 오르는 대신 인드라를 다시 왕으로 추대하고, 자신은 신들의 사령관으로 한걸음 물러나게 된다. 이 신화적 장면은 신들의 왕인 인드라가 차후 실제 인간의 역사 속에서 어떻게 묘사될 것인가를 암시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듯하다.베다 전후 영웅호걸 모습과패륜아적 면이 동시에 혼재이 시기 불교 속으로 들어와제석천 역할 통해서 볼 때신적인 지위는 불교의 신중부처
낙타를 타고 고비사막을 건너왔는지, 혹은 밀항선을 타고 벵골만을 거쳐 남지나해를 거슬러 왔는지는 모른다. 현재까지 한국에서 이민신청을 받은 수많은 이국(異國)의 신들은 큰 불편 없이 한반도에 귀화해 살고 있다. 다행이다. 수백 년 또는 천년이 넘는 시간동안 이들은 큰 갈등 없이 한국사의 질곡을 함께 견디며 고스란히 우리 문화유산의 몸뚱이가 되어버렸다.제석천 요청에 신들 왕에 올라역동적·무장한 모습에 힘 넘쳐호법신장 대표되는 위상은인도 ‘마하바라타’서 전해인도 북부에서는 ‘스칸다’로남부에선 ‘무르캉’으로 불려한국에 귀화한 많은 이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