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께서 이 땅에 출현하신지 어언 삼천년 사바중생 제도에 쉴새 없네 정축년 부처님 강탄을 봉축하여 등촉을 밝히니 성스런 지혜광명이 시방세계에 두루하네 마른 나무에 물흐르듯 일체중생과 뭇 중생이 제각기 이익을 얻는도다 민족통일 성취를 기운합니다 나무 석가모니불 세존출현삼천년(世尊出現三千年) 사바중생도무휴(裟婆衆生度無休) 정축성탄등촉명(丁丑聖誕燈燭明) 성조휘광긍시방(聖照輝光亘十方) 일체중생실고윤(一切衆生悉枯潤) 대지함생각득소(大地含生各得所) 미족통일원성취(民族統一願成就) 나무 석가모니불(南無釋迦牟尼佛)
오늘은 부처님께서 무명과 번뇌망상에 빠진 사바중생들을 제도코자 이 땅에오신 날입니다. 인류의 영원한 스승이시며 일체 진리의 등불이신 부처님께서는 오탁악세의우리들에게 가르치신 말씀을 가슴 속 깊이 되새기는 참회의 날이 되어야 할것입니다. 대자대비한 마음 대신에 이기심으로 무장한 것이 우리들의 마음입니다. 이기심과 아집을 버리고 제법실상을 직관하여 내 마음 바로 세우는데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합니다. 초발심시변정각(初發心是便正覺)을 항시 새겨 부처님께 귀의하던 처음 때의그 마음으로 쉼 없이 행을 닦아 바른 깨달음으로 가야 할 것입니다. 올바른수행을 위해 재가자나 일반인이나 할 것 없이 삼독심을 없애고자 노력해야합니다. 특히 진심(嗔心)은 3겁의 선업(善業)을 일시에 불태운다고 하였습니다. 우리
원래 부처님께서는 가심도 오심도 없이 항상 여여(如如)히 진리로 계시지만무명(無明)에 가리워져 사바를 헤매이는 중생에게 진리의 빛을 보이게 하시려고 저 인도 정반왕의 태자로 나투셨습니다.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은 중생이 곧 부처임을 깨닫게 한 사자후(獅子吼)였습니다. 석가모니께서 모든 것을 버리시고 고행하심은 중생을 위한 대자비였고 보리수 아래에서의 깨달음은 중생들에게 지혜광명(智慧光明)이었습니다. 이 뜻 깊은 오심은 모든 불자, 아니 온 인류의 축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이 축복은 중생들의 탐진치로 인하여 오염되고 파괴되어 가고있습니다. 인간의 고귀한 존엄성은 물신주의로 무참히 짓밟혀 버리고 아름다운 지구의환경은 오염되어 생태계가 위협받고 있으며, 국
10년 동안, 가까스로 모은 은 육십량을 잃어버리고 딸을 찾을 길이 없어 죽음을 결심한 동사굉으로 하여금 죽음 직전에 분심을 내도록 해서 생에 대한 애착을 되찾게 한 제전선사는 동사굉을 데리고 길을 가면서 노래를 읊는다. 문득, 제전선사가 어느 소슬대문 앞에 멈추어 섰다. 동구밖을 바라다보며 서있었다. 대문 앞에는 십여명의 그 집 하인들이 서 있었다. 선사는 동사굉에게 "자네는 이 곳에서 잠시 기다리게 조금 있으면 자네의 나이와 생일을 묻는 사람이 있을테니 정직하게 대답하고 그사람이 시키는대로 하게 그러면 반드시 딸을 만나게 되거야." 동사굉은 어렴풋이 나마 제전선사가 보통 스님이 아님을 깨닫고 있었으므로 "스님께서 시키는대로 하겠습니다"하였다. 선사는 대문 앞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 다가
부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은 미혹(迷惑)한 사바세계를 제도하시고 모든 중생에게 참다운 삶의 길을 열어 주시기 위해서 입니다. 중생의 세계는 5욕탐심을 근본으로 하여 분노심과 우치심으로 서로 싸우고 해치고 죽이고 하는온갖 죄업을 짓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자신이 본래 지니고 있는 부처 성품(佛性)을 등지고 캄캄한 밤길을 걸으며 무서운 삼악도(三惡道)에 떨어지고 있습니다. 부처님은 이러한 중생들을 밝고 바른 길로 인도하고 생사고해(生死苦海)에서 한없이 부침(浮沈)하는 중생을 다 자비의 큰배에 태워서 영원한 안락의 세계로 건져 주시기 위해 오신 것입니다. 오늘날 과학 문명과 기계문명이 고도로 발달하여 비록 물질의 풍요로움과 생활의 편리를 가져왔다고 하나 인간성 상실과 인간소외는 날로 심해감으로써 그 어느
부처님께서는 자비로써 인간의 고통을 벗겨 주시고 지혜로써 일체의 어리석음을 깨닫게 해주셨습니다. 그리하여 모든 사람이 고통 없는 세상에서 평화롭고 행복하게 살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의 우리 인간들은 많은 고통과 어리석음 속에서 불행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아직도 기아와 질병에 시달리고 있으며 전쟁에 대한 불안감도감추지 못하고 있습니다. 또한 인간이 인간을 못 믿는 불신과 사람이 사람을속이고 해치는 지극히 혼란한 말법(말법)시대의 세계에 살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오늘의 인간들이 자기 자신만을 생각하고 고집 하는 지나친이기주의와 인간보다 물질과 금전만을 더 중시하는 전도된 가치관에서 비롯된 어리석음 때문인 것입니다. 이러한 잘못된 사고와 의식과 편견들이 결국 민중을 굶주리게 하
항상 봄 돌아간 곳을 찾지 못해 한하였더니 언제나 이 가운데에 스스로 굴러들어옴을 알지 못했더라 여래께서 이 세상에 시현하심이 이 무엇인고? 삼라만상이 모두가 참(眞) 아님이 없도다. 상한춘귀무멱처(常恨春歸無覓處) 부지전입차중래(不知轉入此中來) 여래시현시심마(如來示現是甚?) 삼라만상총시진(森羅萬象總是眞) 부처님 오심은 온누리의 빛이요. 온중생의 생일과 같습니다. 너와 내가 따로 없고 시비와 선악이 따로 없으며 지옥과 정토가 따로 없는것입니다. 우리모두 함께 겁외(劫外)의 노래와 무애(無碍)의 춤을 한 웃음 가운데 토(吐)해 냅시다!
△1912년 출생. △1932년 양정고 졸업, 백양사 만암스님 문하에서 득도 수계. △1935년 중앙불교전문학교 졸업. △1941년 일본 임제대학교 졸업. △1941년 일본 임제종 총본사 묘심사선원에서 3년 안거 성만. △1962년 동국대 대학선원장. △1964년 무문관, 동화사, 백양사, 봉암사 선원 조실 역임. △1974년 조계종 제5대 종정에 추대. △현재 백양사 고불총림 조실˙방장. △저서:《선과 현대문명》, 《절대현재의 참사람》 《임제록 연의》.
"모든 인간·모든 생물은 절대적 존엄성 지녀" 고불총림 방장 서옹 스님이 오랜만에 법보신문 독자들을 위해 특별법문을 했다. 스님은 작년 5월 법보신문이 설문조사를 통해 공표한 `불자들이 가장 존경하는 스님'이기도 하다. 금년도 부처님 오신날을 맞아 서옹 스님이 내린법문의 주제는 `참사람주의'. 스님은 5월6일 상도동 백운암을 찾은 법보신문의 취재 팀을 반갑게 맞아들인후 30여분간 차분한 어조로 설법을 했다.
한역 불경 이해 위해 구결·이두 창안 구결불경 시대 따라 표기 변화 '국어사 연구 중요 자료' 한자 차용 표기 체제 정착에 기여…한글 창제 원동력 Ⅰ 어떤 종교든 종교의 교리가 담긴 경전의 가치는 존엄하고 숭고하다. 경전은 각종교의 교시를 문자화한 것으로 각기 그 종교의 특징을 가름하고 대중을 교화하는 중요한 수단이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경전의 문자는 종교인들에게는 교리 전파의 방편으로 중시되었고, 언어학자들에게는 언어사 및 문자사 연구의 자산으로주목 받아 왔다. 이런 이유로 어느 시대, 어느 종교를 막론하고 경전의 문자는종교학과 언어학 두 분야 모두에서 연구의 중요 대상으로 다루어졌다. 그 좋은예
재적 사찰 신도등록, 불교의 '주인 만들기' 신도조직화 기여…종단 재정 정상화 일익 `재적사찰'과 `신도등록'은 불교의 `주인만들기' 이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아니다. 왜냐하면 우리 불교는 주인의식이 빈약한채 표류하고 있기 때문이다. `1995 인구주택 총조사 결과'에 의하면 불교인구는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23.2%인 1천32만명에 달하여 단일 종교로는 최대의 교세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1주일에 1회 이상 종교행사에 참석하는 불자는 전체의 4.6%인 47만명에불과한데 비해 기독교인은 78%인 6백88만여명이 1주일에 한 번 이상 교회에서 예배에 참석하는 것으로 나타나 엄청난 격차를 보여주고 있다. 물론 윤원철 교수의 말(법보신문 417호 1면 시평)처럼 `불교는 한국인의 생활과 의식
※여론광장은 독자 여러분들의 공간으로 항상 열려 있습니다. 격주로 게재되는 여론광장에 불자 여러분들의 많은 동참 바랍니다. 수필, 시, 사진투고등다방면에 걸쳐 자유로운 주제로 누구나 참여할 수 있습니다. 보내실 때 연락처와 주소를 꼭 기재해 주시기 바랍니다. 02)725-7014 보낼곳:우편번호 110-170 서울특별시 종로구 견지동 87-1 진우빌딩 1층 법보신문 편집국 여론광장 담당자앞
나는 가끔 과학˙기술 만능주의적 물질문명이 지금 이쯤에서 그 발달을 멈춰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막연한 직감적 판단이지만, 과학˙기술 발전이 인간의 행복을 도왔거나 도울 수 있는 긍정적이고 진보적인 기능의 한계를 지난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들기 때문이다. 과학과 기술을 직분으로 하는 사람들은 "모르는 소리!"하고 비웃거나 반대하겠지. 하지만 그런 걱정은 반드시 비과학도이거나 반과학적인 정신주의자들이 염려하는 미래상만도 아닌 성싶다. 고전적 이야기로는 다이나마이트의 발명자인 알프레 노벨이 떠오른다. 그의발명품인 다이나마이트가 인간의 행복을 위한 자연정복의 수단으로 쓰이기보다 온갖 전쟁무기의 주성분으로서 생명과 인간과 재물의 대량파괴를 위한 가공할 수단으로 쓰이게 된 것을 후회
선배 교수들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부처님 오신 날이 화제로 떠올랐다. 올해 부처님 오신 날을 맞는 불교계의 주제 가운데 하나가 종교 사이의 화합이 아닌가싶을 정도로 교계의 신문, 방송 등 언론에 그와 관련된 기사와 보도가 많이 등장하였다. 다른 종교의 지도자들로부터 축하의 말씀도 많이 있었고, 다종교사회에서 종교 간의 화합문제를 다룬 기획 기사가 게재되기도 했다. 그러나 시평자가 그것을 언급하자 선배 교수 한 분이 그 이야기를 빛 바래게하는 소식을 한 가지 전해 주었다. 서울 조계사 앞에서, 부처님 오신 날 법요식에 참석하기 위해 몰려드는 사람들을 향해서 일군의 타종교 사람들이 좌대와현수막을 펼쳐 놓고는 선교 활동을 하는 것을 목격했다고 한다. 한동안 아무런제재도 받지 않고 계속해서 큰
법무부는 부처님 오신날을 맞이해 모범수형자 3백54명을 특별사면했다. 무기수 3명과 장기수 38명을 포함한 이들 4백여명은 부처님 오신날 전날인5월 13일에 특별사면돼 사회에서 부처님 오신날을 맞이했다.
지난 10월 27일은 한국불교사상 미증유의 법난인 소위 `10.27법난'이 일어난지 15주년이 되는 날이다. 이 날을 맞이하여 조계종 총무원은 `10.27법난 15주년을 맞이하는 우리의 입장'이라고 하는 성명을 발표하고 이 법난의진상규명을 촉구하였다. 1980년 10월 27일, 당시 권력을 탈취한 신군부는 불교계의 비리와 부패를 척결한다는 구실을 내세워 조계종 총무원장을 비롯하여 1백53명의 스님과 신도를 영장없이 구속하였다. 그리고 10월 30일에는 용공분자와 불순분자를 색출한다는 명목으로 최소한 5만이 넘을 것으로 추산되는 군경의 대병력을 동원하여 전국의 3천여 사찰에 일시에 투입, 진흙묻은 군화발로 법당에 난입하는 등, 교권의 유린을 자행하였다. 이 때, 전국에서 무고하게 체
한달 동안 미국을 여행하면서 나는 좀처럼 불교를 만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기독교의 본고장이라고 할 수 있는 그곳에서 무슨 불교이며 불교인이겠느냐는 생각은 당연하기도 하다. 그렇지만 나는 이번 짧은 여행가운데서 결코 만만치 않은 불교의 모습을 접하면서 어떤 희망같은 것을 가슴에 새길 수 있었다. 뉴욕에는 물론 원각사를 비롯한 한국절이 10여군데나 된다고 하니까 당연히 불교의 모습이 상당한 크기를 차지하고 있을 것같지만 내가 만난 한국신문들의 특파원들은 한결같이 기독교도들이라서 그런지 그들로부터 들을수 있는 이야기는 거의 교회의 동향에 관한 것들 뿐이라 섭섭한 마음 지울길 없었다. 그런만큼 내가 뉴욕에서 접한 불교는 사찰이 아니라 박물관에서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뉴욕이
노 전대통령의 비자금파동으로 온 나라가 시끄럽다. 연일 신문.텔레비전에서는 은폐된 사건을 밝히는 보도들이 나오고 있고 국민감정 또한 매우 복잡다단하다. 또 `통치자금'이라는 희한한 조어가 등장해서 어리둥절해 진다. 우리는 대통령이 통치를 위해서 써야 할 돈이 많으리라는 것을 짐작한다. 언제나 `높은 사람'들은 희사를 할 때면 금일봉이라고 표현한다. 물론 액수를 밝히기 어려운 면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 또한 권위주위적인 발상이라고 생각한다. 대통령이라고 꼭 많이 내란 법도 없지 않은가. 오히려 적은 액수이기 때문에 더욱 진실하게 느껴질수도 있지 않을까? 요컨대 그 금일봉을 비롯해서 촌지, 후의금, 경조사 까지를 포함해서 보통사람들보다는 씀씀이가 훨씬 크리라고 짐작한다. 그러나 그것은 재임중이기
일주일 전 성지순례차 몇군데 사찰을 방문했다. 갈때마다 법당에 가서 부처님께 인사를 드리려고 일주문을 들어서면 그 절에 계시는 보살님들이 "등이나 기와 접수하세요"하는 것이다. 참배객이 많으면 좀 덜할텐데 어떨 땐 나혼자 법당에 들어가서 108배를 좀 하고 나올 요량이면 꼭 등뒤에서 그러니여간 난처하지 않다. 물론 부처님께 공덕을 짓는다고 볼 수도 있으나 한편 생각해보면 장사속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시주라는 것은 본인의 마음이 우러나야 하는 것이지억지로 강요에 의해 하는 시주는 안하니만 못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최근 나에게 있었던 일은 그런 의미에서 살아있는 시주였다는 생각이 든다. 지난 음력 2월24일 관음재일의 일이다. 지금은 전주의 어느곳에서 잘 자라고있을 강아지와의 불연이다. 그날
가을하늘이 너무 맑아 눈이 부시던 지난달 22일, `문회의 달' 10월을 마감하는 어린이행사들이 다양하게 열렸다. 행사에 참가한 어린이들은 선의의 경쟁을 하면서 불심과 우정을 함께 나누었다. ○…제3회 불교아동 미술대회가 도선사(주지 동광스님)에서 월주(조계종총무원장)스님, 덕신(문화사회부 국장)스님을 비롯 어린이 7백여명이 동참한 가운데 성대히 열렸다. 월주스님은 격려사에서 "부처님의 말씀을 잘듣는 착한 어린이가 되달라고 "당부했다. 목동청소년회관, 영화사, 석불사, 조계사 등 각각의 사찰에서 참가한 어린이들은 시작을 알림과 동시에 경내로 흩어져 각자의 미술실력을 뽐내느라 정신이 없었다. 이날 미술잔치에서 최우수상으로 뽑힌 유나영(성심사 신강국교 3년)양은 "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