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남북 간의 경색 국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고조되고 있다. 김대중과 노무현 정부가 지난 10년간 유지해 온 햇볕정책으로 남북은 북한의 핵 문제에도 불구하고 분단 이후 가장 평화로운 관계를 유지했다. 또 정부의 전폭적인 대북 지원에 힘입어 우리 불교계를 비롯한 종교와 경제, 문화 등 전반에 걸쳐 교류는 괄목할만한 성장을 거두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지 불과 40여일 지난 지금, “북한 핵무기 사용 이전 타격”이란 남측 군부의 발언에 북측이 “군사적 대응 조치를 취하겠다”고 하면서 남북 간 경색이 장기화 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이명박 정부의 대북 정책과 관련, 더욱 걱정스러운 대목은 민간 교류 부문까지 남북의 정치, 군사적 대립과 함께 경색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
길거리에서 선교행위를 하던 개신교인이 처음으로 구속됐다. 십 수 년 간 도로를 무단으로 점유하고 스피커 등을 설치해 불특정다수의 시민들에게 불편을 초래해 오던 공격적 선교행위에 대한 법적 제재는 기초질서 확립의 차원에서 당연한 결과라 할 수 있다. 오히려 지금껏 이러한 행위를 방치했다는 점에서 늦은 감이 없지 않다. 일부 종교, 특히 개신교계의 극단적 맹신자들에 의한 거리선교행위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었다. 거리는 물론이며 지하철 등 대중교통 시설은 물론이며 심지어는 사찰 등 타종교시설 앞에서 행해지는 다분히 의도된 공격적 선교행위는 이미 종교의 자유라는 법의 테두리를 넘어서고 있다. 특히 합법적인 절차를 거쳐 시민의 축제로 거듭나고 있는 연등축제의 현장에까지 극단적 개신교인들의 난입이 매년 반복되고
세상의 목탁이고 소금이어야 할 종교계가 권력단체로 전락했다는 비판이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자신이 속한 종교나 교파의 이권을 위해 신도들을 부추겨 정치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정치권 인사와의 밀실거래가 종종 이뤄진다는 얘기도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특히 대통령 선거나 국회의원 선거 때면 평소에 얼씬도 않던 정치인들이 변질나게 종교계 인사를 찾아 그 종교와의 관련성에 대해 강조하거나 심지어는 표를 위해 종교 간의 갈등을 부추기는 현상도 버젓이 일어나고 있다. 요즘 부각되고 있는 모 교회의 예가 아니더라도 종교계 또한 그러한 현상을 마다하기는커녕 노골적으로 특정후보를 지지하고 종교색을 강조함으로써 이익을 도모하기도 한다. 이러다보니 속(俗)이 성(聖)을 걱정하는 얘기들이 여기저기에서 나오고 종교계에 대한
조계종이 불교계에서는 처음으로 공익기부재단 설립 준비를 마치고 마지막 출범준비에 한창이다. 세상의 그늘진 곳을 찾아 먼저 손을 내밀고 보듬으며 종교적 이념을 실천하고 있는 이웃종교에 비하면 늦은 감이 없지 않으나, 이웃의 아픔에 눈과 귀를 돌리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려는 강한 의지의 실현이라는 점에서 성공적인 출범과 활동을 기원하는 바이다. 조계종은 기부법인 설립을 공표하면서 불교계의 기부문화 확산과 공익활동 증진을 목적으로 제시했고, 앞으로 독립적 성격의 비영리 공익법인으로서 국내외 재난 및 난민구호와 소외계층 지원 등 대사회 공익활동을 체계적이고 전문적으로 하기 위해 모금활동을 전개하겠다고 밝혔다. 여기서 기부재단 운영의 주체가 될 조계종은 한 가지 분명히 해야 할 일이 있다. 기부재단의 활동력이
21세기 밀레니엄 시대를 맞으면서 우리나라의 지성인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과연 우리나라도 선진국이 될 수 있을까’라는 화두를 생각해 보지 않은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이 물음에 대해 낙관적 견해를 가진 사람도 많겠으나 회의적 견해를 가진 사람이 더 많지 않나 생각된다. 이제 우리의 소득은 2만불 대에 진입, 선진국 대열에 들었으나 국제기구의 각종 조사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지도자 부패지수나 정치수준은 세계 120여개 국가 중하위권에 머물고 있는 게 현실이다. 경제 발전을 이룩했으나 세월이 흘러도 요지부동인 것은 바로 지도층과 정치인의 수준이다. 민주사회의 발전은 성숙한 여론을 바탕으로 이루어진다. 그런데 우리사회는 언제부터인가 논리적인 토론보다는 목소리 큰 사람이 여론을 만드는 것처럼 되어 버렸고, 법
이명박 대통령은 천하가 다 아는 개신교도이고, 개신교도 중에서도 광적인 개신교도는 아닐지라도, 열성적인 개신교도인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분은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되기 전, 서울시장 자리에 있었을 적에 “서울을 하나님께 봉헌하겠다”는 망언을 해서 세상을 시끄럽게 한 전력이 있을 뿐만 아니라, 여러 차례에 걸쳐 종교편향적인 언행을 해서, 불교계의 기피 인물 다섯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바로 그러한 이명박 씨가 이 나라 대통령이 되었으니, 솔직히 말해서 우리 불교계는 크게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대한민국을 통째로 하나님께 바치겠다”고 만용을 부리지나 않을까, 그게 걱정이었고, 대통령이라는 최고의 지위와 권세를 이용해서 편파적인 종교정책을 교묘히 펼침으로써 개
서울 봉헌, 기독교 중심의 내각 구성으로 특정 종교에 편향된 행보를 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아왔던 이명박 대통령이 이번에는 청와대 예배 논란으로 또 다시 구설에 올랐다. 서울신문은 “이 대통령이 대선 때 자신을 지지했던 뉴라이트전국연합 상임의장 김진홍 목사를 초청해 청와대에서 예배를 보았다”고 밝혔다. 특히 이 과정에서 김 목사와 총선 공천 등 민감한 정치적인 사안에 대해서도 의견을 나눈 것으로 보도되면서 논란은 정치권으로까지 확대되고 있다. 이에 대해 청와대는 “사실과 다르다”며 곧바로 해명을 했다. 또 “이런 내용을 보도한 언론사를 상대로 대응하겠다”는 경고의 메시지를 보냈다. 논란이 확대되는 것을 사전에 차단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로 보인다. 그러나 이런 청와대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교계가 받아들이는 충격
중국의 티베트 자치구 수도인 라싸에서 발생한 티베트인들의 유혈 사태로 최소 10명이 사망했다. 티베트 망명정부에서는 “적어도 100여명 이상이 숨졌다”는 주장을 제기하고 있다. 그럼에도 중국 정부는 이번 사태에 대한 참회 한 마디 없이 유혈 사태의 배후에는 “달라이라마가 있다”며 “유혈 사태로 인해 선량한 라싸 주민 4명만이 숨졌다”는 터무니없는 거짓말만을 늘어놓고 있다. 티베트의 유혈 사태를 지켜보면서 과연 우리 한국 불교가 티베트인들이 받드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함께 따르는 일불제자인가라는 질문을 던져본다. 우리는 이번 사태를 겪는 과정에서 수많은 티베트인들이 중국의 총칼 앞에 무참히 죽어 가는 현실을 목격했으며, 이런 사태를 두고도 침묵으로 일관하는 한국 불교의 모습을 통해 ‘끝없는 절망’을 온몸으로
올 8월 베이징 올림픽을 앞두고 티베트에서 분리 독립을 요구하는 시위가 발생했고 이제는 라싸를 중심으로 대대적인 검거가 시작됐다고 한다. 1950년 10월, 중국이 티베트를 식민지로 삼은 이래로 1959년 3월 10일 무장독립 투쟁은 중국에 대한 봉기의 신호탄이라 볼 수 있다. 이 와중에 티베트 민족의 영적 지도자 달라이 라마가 인도의 다람살라로 피난해 티베트 망명정부를 세우게 된다. 중국의 문화혁명의 기간에도 숱한 사원이 파괴되고 승려 수가 대폭 줄어드는 등 티베트의 역사와 종교에 대한 탄압은 멈추지 않았다. 그러나 독립에 대한 티베트인들의 의지는 꺾일 줄 몰랐다. 티베트 독립운동이 여타 소수민족의 그것과 다른점은 그 선봉에는 늘 승려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중국은 소수민족을 중국화 시키기 위해 민족적,
얼마 전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얼굴을 손으로 감싸고 걸어오는 사람을 보았다. 더운 여름도 아니고 또 황사가 몰아치는 봄날도 아닌데 왜 저렇게 걸어오나 하고 가까이 왔을 때 보니 현 정권에 각료로 내정되었다가 검증과정 에서 탈락한 사람이었다. 참 딱하다고 생각했다. 얼마나 부끄러우면 저렇게 얼굴을 가리고 다니겠는가. 또 앞으로 얼마동안 저렇게 다녀야 하는가? 양자강에서 황제가 한 스님과 함께 뱃놀이를 즐기고 있었다. 황제가 말했다. 참으로 배들이 많군요. 스님이 대답했다. 제 눈에는 오직 두 개의 배만 보입니다. 수많은 배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배는 명예를 낚는 배와 이익을 낚는 배 단 두 종류뿐 입니다. 새 정권이 들어서서 정부요직에 새로운 인물들이 발탁되었다가 검증과정에서 그 일부가 부적절한 과거 행
종교환경회 순례단의 일원으로 운하 예정지를 순례하고 있는 수경 스님이 3월 13일 「법보신문」에 운문사승가대학을 비롯, 각 강원에서 수행․정진하고 있는 학인 스님들을 순례 행렬에 초청하는 편지를 보내왔다. 특히 스님은 3월 7일 문경 봉암사에서 봉행된 ‘부처님 마음과 생명의 눈으로 우리의 삶을 성찰하는 참회·정진 법회’에 동참했던 운문사 학인 스님들에게 감사를 표하면서 도보 순례는 수행과 성찰의 과정이기에 함께 할 것을 요청했다. 편집자 3월 7일 문경 봉암사에서 열린 ‘부처님 마음과 생명의 눈으로 우리의 삶을 성찰하는 참회·정진 법회’를 감동적으로 장엄해 주신 운문사 학인 여러분! 먼저 이 법회를 주관한 종교환경회 순례단의 한 사람으로서 깊은 존경을 담아서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그
3월 7일 문경 봉암사에서 열린 ‘부처님 마음과 생명의 눈으로 우리의 삶을 성찰하는 참회법회’를 감동적으로 장엄해 주신 운문사 학인 여러분. 먼저 이 법회를 주관한 종교환경회순례단의 한 사람으로서 깊은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그날 여러분들의 모습은 눈부셨습니다. 아무 말 없이도 승가의 위의라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를 여실히 보여 주었습니다. 저도 한때는 천하를 통째로 삼킬 량으로 토굴살이를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시절 인연으로 환경 운동의 말석에 서게 되었습니다. 난폭한 주인이 노예를 부리듯 자연을 대하는 세상의 성정을 제도할 법력은 턱없이 모자라는지라, 고통 받고 신음하는 자연과 함께하는 쪽을 택한 것이지요. 운문사 학인 여러분!도대체 어떻게 하는 것이 ‘중생 제도’일까요? 소박하게 얘기하자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