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응스님 법보신문은 창간과 동시에 새로운 신문체제와 폭넓은 기사 수용으로 그 참신성을 교계 내외에 널리 선양해왔다. 더구나 보편적이고도 중립적인 입장에서 날카로운 필봉을 분출했던 사설은 '법보신문'의 자랑이요, 교계의 긍지였다. '법보신문'이 시대의 변화를 선도하고 새 사회를 견인하는 법륜으로서 더욱 더 힘차게 전진할 것을 기원한다. ◇서돈각 급변하는 세태속에서 언론매체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도 지나치지 않다. 그런만큼 사회를 바르게 이끌어야 할 언론의 사명 역시 막중한 것이다. 따라서 '법보신문'은 부처님 가르침을 이 땅에 바르게 알려 참다운 세상을 실현한다는 무한의 책임과 자긍심을 바탕으로 불교가 모든 사람들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방안을 모
새학기가 시작되었다. 전국의 초중고와 대학은 일제히 신입생을 맞아들이고 1학기 학사일정에 돌입했다. 새봄과 함께 시작되는 우리 나라 각급 학교의 학사일정은 분주함 속에 진행된다. 새로운 얼굴을 익히고 뜻있는 학교생활을 위해 동아리 방을 기웃거리는가 하면 학업에 대한 계획을 철저히 세워 열의를 다져나가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학교생활의 첫 출발은 인생에 있어서 중대한 역할을 미친다. 무엇을 어떻게 선택하느냐에 따라 향후 인생의 진로문제가 결정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에서 새내기들을 상대로 한 포교 역시 중요한 과제로 지적되고 있다. 정확한 통계는 나오고 있지 않지만 갈수록 어린이 법회 및 중고교 불교학생회 활동이 줄어들거나 침체되고 있다는 분석은 안타까움을 던져준다. 7~80년대 활
명문사학을 졸업한 M씨. 대불련 출신이기도 한 그는 전자공학을 전공했고 이를 불교계에서 일이 주어진다면 기꺼이 자신의 능력을 펼쳐보이겠다는 야심가다. 그러나 졸업과 동시 그는 꿈을 접어둬야 했다. 종단 실세스님의 후광을 필요로 하는 인력채용구조가 그를 외면했기 때문이다. 교계의 인재등용은 예나 지금이나 늘 인연 있는 실세스님의 후광에 의한 `특채형식'으로 일관하고 있다. 실력있는 인재를 선발하기 위한 공채제도는 `희망사항'일 뿐 현실화되고 있지는 않다. 공채제도는 교계언론사와 일부 단체를 제외하곤 극소수에 불과하다. 따라서 교계에서 일하겠다는 포부를 피력했다가 그것이 `허황'임을 알고 포기하는 예는 비단 M씨에 국한되지 않는다. 일반사회에서의 모든 기업체 및 제단체들이 공채
1999년은 UN이 정한 세계 노인의 해로서 이는 전 세계적으로 노인문제가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불·유교 사상을 근본으로 해서 孝를 가장 큰 덕목으로 삼았던 나라였기에 노인문제에 대한 충격은 여타 나라에 비해 더욱 클 수밖에 없다. 또한 서구의 여러 나라에서는 2~3백년에 걸쳐서 일어났던 사회현상이지만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불과 몇십년 만에 급격히 진행되어서 노인문제에 대한 준비나 의식의 전환도 이루어지지 않은 채 노인문제가 우리 앞에 닥치고 말았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나라 노인인구는 급속도로 증가하는 추세에 놓여있다. 1960년에는 65세 이상이 전체 인구에 2.9%에 불과 하였는데 70년에는 3.1%, 80년에는 3.8%, 90
식견 있는 불자들이라면 지금 한국불교의 모습 속에 너무도 비불교적인요소가 많음을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입춘과 정초를 맞아 사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부적도 그 가운데 하나다. 요즘 사찰들이 왜 이렇게 부적에 관심을 갖는지 알 수 없다. 심지어 사찰 내에 있는 불교용품 매점에서까지 부적을 진열해 팔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이는 불교 신행을 하는 것이 아니라 부적을 신앙하고 행위다. 절에 찾아오는 사람을 혹세무민하는 행위를 보고 지적하는 사람도 없을 뿐만 아니라 사찰을 보호 감독하는 총무원은 관심이 있는 건지 없는 건지…. 더구나 군소 종단 소속 사찰은 더하다. 한때는 조계종 총무원에서 조계사 앞 일반 불교용품 상회에까지 부적을 팔지 않도록 하는 서한도 보낸 적이 있었지만
IMF 한파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불우 이웃을 위해 쓰라는 돈을 많은 수의 복지관에서는 개인의 안위와 이익을 위해 착복했거나 아무렇게나 사용했다는 소식에 실망감을 감출 수 없었다. 하루하루 끼니를 걱정하는 무의탁 노인이나 장애인, 소년·소녀 가장 등 불우 이웃을 위해 일한다는 사람들이 어떻게 그런 일을 할 수 있는지 …. 몇 번을 다시 생각해봐도 화가 나는 일이다. 불교계 신문에서 `이웃을 돕자'는 내용의 기사가 게재됐을 때마다 전화를 해 해당 복지기관에 후원금을 냈는데 그 돈이 잘 쓰였는지 궁금한 생각이든 것은 지나친 걱정일까. 얼마 전 서울시에서 감사한 결과 불교 복지관은 큰 비리가 나타나지 않은 것으로 밝혀져 다행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일부 불교 복지관에서도
새해가 되면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들의 운명이나 운세에 대해 알고 싶어한다. 이러한 심리를 이용해 점술을 알리는 광고가 일간지를 비롯해 잡지와 생활정보지까지 폭넓게 게재되고 있다. 그런데 이 점술·예언 등의 광고에 부처님의 상호를 담은 사진이나 불·보살의 명호, 심지어는 종단의 종명까지도 앞세워 광고를 한다는 것에 대해 불교인으로서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그런 광고가 나가게 되면 일반인들은 으레 점술과 불교가 관계가 있는 듯 비춰지고 사찰이 마치 점을 치는 곳으로 오인할 수 있기 때문에 결국 불교전체의 이미지에도 적지 않은 영향이 미치리라고 본다. 광고는 광고주에 의해 게재되는 것이어서 옳던 그르던 별다른 조치를 취할 수는 없지만 불교와는 무관한 일에 불·보살·명호가 이용당해서도 안되겠다.
근대 포교의 거장 광덕 큰스님께서 입적하셨다. 사람은 죽음 앞에서 숙연해진다. 죽음은 삶의 가치에 대한 평가이다. 그러면서도 그 가치의 허무함이 엄습해 온다. 생전에 뵈온 광덕 큰스님의 첫인상은 부드러움과 밝음이었다. 나는 광덕 스님을 계사로 법명을 받았다. 이 연담이라는 법명에서 바로 부처님의 위신력과 광덕 큰스님의 원력을 느끼게 된다. 인간의 무한한 가능성을 역설하시다 열반하신 큰스님의 자비는 소멸될 수 없는 고요한 역동으로 남아있다. 내가 알고 있는 광덕 큰스님은 원력으로 이 세상에 오셨다가 그 원력을 우리에게 심으시고 가신 광명의 부처님이라고 생각한다. 어느 친척이 광덕 큰스님을 찾아뵈었다. 봉은사에서 만난 큰스님은 환한 빛을 머금고 있었다 한다. 우리가 진실로 진리를 그리워
불교TV를 시청하고 있는 재가불자다. 불자들의 염원을 모아 출발한 불교TV가 심각한 재정난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알고 있다. 올해는 뉴스만 빼 놓고 모든 방송을 재방으로만 돌리고 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불교TV가 언제 파산할 지 모른다는 이야기만 들리고 회생을 위한 어떤 노력의 목소리도 종단에서는 들리지 않고 있다. 처음 불교TV 설립을 위한 주식공모를 할 때 종단의 스님들은 미래 영상포교 시대를 열기위해 불교TV 설립은 무엇보다 중요한 불사라고 강조했고 불자들은 그런 스님들의 원력을 믿고 주식공모에 아낌없이 참여했다. 그런데 그런 불교TV가 파산의 위기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스님들과 종단은 그저 침묵만 하고 있는 것은 믿고 따른 재가불자들에 대한 배신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지난 주말 송수권을 찾아 변산반도까지 갔다가 변산반도도 못보고 흥심은 남도잡놈의 것이라 파도소리 따라 태평양으로 보내고 수심은 내 것이라 물새 잎으로나마 오래오래 살게 하고 허영허영 찾아간 주막 `웬매 세상살기도 요로코롬 심든디 그 높은 설악산에서 오라범 송선생 뫼 시로 우리집까지 오셨소 잉 오라범 소식이야 물 썬 다음 뻘자국으로 낭자히 나타날 것이구만요 고때 동서사방 어디로 가셨나요 찾아보소 잉' 주모는 술상인지 무슨 수작인지 한상 보아왔는데 보아하니 전라도 땅 반은 들어 있더라 전라도 땅 반은 송수권의 것이더라 송수권이 바라보아야 노을도 변산반도 노을이 그림이 되고 송수권이 팔을 들어 흔들어야 기러기도 변산반도 기러기는 시가 되고 송수권이 집
“부처님의 바른 가르침은 따르지 않고 근거도 없는 귀신만 믿으려 한다.”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사찰에서 '부적'이란 말이 나오면 부처님의 정법에 위배되므로 근절시켜야 한다는 소리가 불자들 사이에서 자발적으로 나돌았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몇 년 사이에 `부적'은 대부분의 사찰에서 새해 초하루나 정월 보름 법회 때 어김없이 나누어주는 법보시용 불서와 같이 취급받고 있다. 부적이 판을 치게 된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사찰의 무분별한 세속화를 그 이유로 들고 있는 스님과 불자가 적지 않다. 점을 봐서 그해 액운이 있으니 부적을 사서 지니고 다녀야 한다는 막연한 믿음을 갖고 있는 불자들이 사찰에서 직접 제작한 부적을 요구하게 되고, 이 때 일정 정도의 돈을 불자가 사찰에 지불하게
1961년 5월 16일, 군사쿠데타가 일어난 당시의 불교계는 정토교단인 조계종의 비구.대처승 사이에 1954년 5월 이래 이어온 분규가 심화되어 그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었다. 이 분규는 일제식민통치하에서 한국불교에 침투한 왜색불교의 대표적인 산물로 지적받고 있던 대처승은 사찰에서 퇴거하라는 이승만 대통령의 유시(1954년 5월 21일)가 계기가 되어 기왕에 불교정화를 논의해 오던 비구승측에 의해서 제기되었다. 따라서 비구승측은 처음부터 정부의 힘을 얻었고 대처승측은 이를 정부로 부터 가해전 법난으로 단정하였으며 비구승측은 한국불교안에 자리잡고 있는 일본불교의 잔재를 없앤다는 명분아래 이를 불교정화 운동이라고 이름하였다. 이것은 대처승을 일컬어 친일승이라 단정하고 이 친
“만약 여성이 여래의 가르침을 따르고 준수하여 출가하면 깨달음에 이를 수 있습니까?” “아난다여, 여성이라 하더라도 깨달음에 이를 수 있다.” 2600여년 전 부처님의 이 한마디는 가히 혁명적이다. 당시 인도, 중국, 그리스 등 고대 사회에서 여성의 위치는 노예나 다름없었다. 특히 인도의 여성은 남성에게 복종하는 것이 최고의 의무였으며 아들을 낳는 것이 절대 조건이었다. 또 남성의 경우와는 달리 여자는 제사를 지낼 필요도, 어떤 종교적 의식이나 사회적 의례를 수행할 권리도 없었다. 그리고 바라문교 최고의 경전인 《베다(Veda)》마저 읽을 수도 들을 수도 없는 처지였다. 부처님이 그 무렵 사회구조를 변혁시킨 것 가운데 가장 두드러진 점은 철저한 신분제도의 혁파와 여성해방이었
2월 27일 입적한 금하당 광덕 스님은 불광법회 법주와 월간 불광 발행인, 대각회 이사장을 역임하는 등 대중교화와 문서포교에 지대한 역할을 한 선지식이었다. 용성 - 동산으로 이어지는 선맥을 계승했고, 특히 불광법회를 통해 한국불교의 현대화·대중화에 새로운 장을 연 선각자로 평가받고 있다. 유교적 가풍에서 자란 광덕 스님은 어릴 적부터 말수가 적고 총명하여 공부를 잘했고, 노래와 작문에 뛰어난 재질을 보여 주위 사람들로부터 장차 큰 일을 할 재목이라는 기대를 받았다. 독학으로 공부에 열중한 나머지 건강 마저 해치게 된 스님은 당시 석학이었던 서울대 박종홍 교수의 추천으로 휴식차 3개월을 기한으로 범어사에 갔다가 동산 대종사와 인연이 돼 인생의 대전환점을 맞게 됐다. 광덕 스
승가교육의 목적은 ‘깨달음’과 ‘중생제도’ 전통강원의 장점 최대한 살린후 개선해야 “어리석은 중생들은, 진리를 알지도 보지도 못해서 종내 고통으로부터 벗어날 날이 없다. 그러므로 출가한 자는 부지런히 정진해 배움을 닦아 자기의 학문을 성취시키는 한편 중생들로 하여금 도리에 맞는 학문을 닦도록 해 청정한 온갖 부처님의 가르침을 얻게 해야 한다.” 《불모출생경(佛母出生經)》에 나오는 구절처럼 출가해 스님이 되고자 하는 목적은 개인적으로는 수행의 완성에 있으며 나아가 중생을 제도하는데 있다. 그래서 중생을 교화하는 스님을 가리켜 사람과 하늘의 스승이라고 일컬어 왔다. 그리고 만해 스님도 “출가 승려는 중생 속에서 수행을 하고 중생을 위해 회향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지난 12일, 실천불교전국승가회는 '지방자치시대와 불교'를 주제로 한 세미나를 개최했다. 이 세미나에서 있은 "지방화시대에 불교는 무엇을 할것인가"라고 하는 주제발표는 지방자치로 인하여 우리 사회에 일어날 전반적인 시스템의 변화에 불교가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조계종단의 현행 교구본사제도가 정부의 지방행정조직에 맞추어 대대적으로 개편되어야 한다고 주장해서 주목을 끌었고 이러한 진단에 대한 조계종단의 반응에 대해 교계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특히 현행의 교구본사제도의 그러한 개편은 그에 속한 말사의 이동을 불가피하게 할 것이므로 여러가지 점에서 어려움이 예견된다. 오늘의 교구본사제도가 일제의 식민통치를 위해서 총독부가 제정한 사찰령에 근원을 두고 있고 총독부가 한국불교의 특징인
각 종교의 지도자들이 한 자리에 모여 3·1정신을 오늘에 되살릴 것을 다짐했다. 한국종교지도자협의회는 3월 1일 3·1절 80돌 기념식 및 현창 선언문 선언식을 탑골공원에서 개최했다. 불교 개신교 가톨릭 원불교 유교 민족종교 등의 지도자와 관계자들이 참석한 이날 대회에서 조계종 총무원장 고산 스님은 축원문을 통해 “폭력을 이기는 부처님의 무차별 사랑과 우주적 생명관이 이 땅과 세계에 가득 넘쳐 모든 생명들이 공생하며 화합하는 아름다운 생명의 세계를 열어가자”고 발원했다.
우리나라 인구 4천3백여만명 가운데 절반은 특정종교를 믿지 않은 것으로 집계, 발표된 일이 있다. 정부의 공식조사를 거쳐 발표된 통계였으니 국민으로서는 믿지 않을 수 없다. 이 조사결과에 의하면 인구의 반은 무종교요, 믿는 인구 가운데 반은 불교요, 그 다음에는 개신교, 천주교, 기타 종교를 믿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조사결과에 의하면 우리나라 인구 가운데 4분의 3에 해당하는 약 3천만명의 인구는 분명히 비기독교인이라는 점이다. 이렇듯 절대 다수의 국민들이 기독교도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겨우 4분의1에 해당되는 기독교인들 가운데 대한민국이 마치 기독교공화국인듯이 착각하고 있는 무리들이 섞여 있어서 말썽을 빚고 있다. 지하철역 입구나, 버스정류장에서 〈예수 천당, 불
최근 불교계 일각에 수자(水子) 수자령(水子靈) 수자영가(水子靈駕) 수자관음(水子觀音) 수자지장(水子地藏) 이라고 하는 말이 등장하였다. ‘수자'는 일본에서 만들어진 한자어(漢字語)이다. 그러나 일본의 대표적한자 및 한자어사전인 대한화(大漢和)사전이나 광사림(廣辭林)에 이 말은수록되어 있지 않다. 그리고 유수한 일본의 국어사전에도 수록되어 있지 않다. 또 이 말은 현교와 밀교를 불문하고 어느 사전에도 수록되어 있지 않다. 이것은 이 말이 일본어 중에서도 언어생활속에서 흔히 쓰이는 말이 아님을 말해 주며 불교의 용어가 아님을 뜻한다. 다만 몇개의 사전에는 첫째로 ‘갓 태어난 어린 아기’ 라고 풀이하고 있다. 갓 태어난 아기를 수자라고 한 것은 아마도 ‘모태집물' 즉 양수(羊水)가 몸
요즈음 물질 만능의 풍조가 만연되어 가치관이 붕괴되고 사회를 병들게하는 악습들이 빈번히 발생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현상은 진정한 행복이무엇인지 모르는 무지(無知)에서 생긴 것으로 삶에 대한 가치와 보람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불교는 자기의 삶이 최상의 행복을 향해 나아가도록 하는 구체적인 방법과 이유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불법을 통해 윤리와 도덕을 명백히 밝히고, 인간이 가지고 있는 지적인사고와 이성을 통해 지혜의 삶으로 인도합니다. 또한 불교에서는 선(善)한 행위의 으뜸으로 효(孝)를 들고 있습니다. 효는 만가지 선의 근본이 되며 인간이 행하여야 하는 의무이자 권리입니다. 불교에서 선과 효를 특히 강조하는 것은 선 속에 윤리와 도덕이 있기 때문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