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졸한 맛을 간직하고 있는 팔공산 뜬구름집(雲浮庵)을 둘러보는데, 이 광경 앞에서 어느 이름 모를 노스님의 초상화가 환하게 떠올랐습니다. 정갈하게 씻어 새워놓은 까만 고무신, 비스듬히 기운 지팡이 하나, 반들반들 윤이 나는 마루바닥, 바람을 막기 위해 틈으로 삐져나온 문풍지, 불편한 다리를 돕기 위해 옆의 다락으로 올라가는 보조계단, 그리고 스님의 동무가 되어줄 강아지 한 마리. 소박하면서도 무심할 것 같은 성격이 그대로 묻어나는 모습입니다. 금방이라도 저 문을 열고 스님이 나올 것만 같습니다.
순천 송광사에 갔더니, 본당인 대웅보전을 둘러 친 축대가 보통 솜씨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정교하게 짜맞춘 축대 중에서, 이상하게 돌 하나가 삐죽이 나와 있었습니다. 절로 웃음이 나오게 하는 고추 돌. 이 정도로 치밀하게 돌을 쌓을 줄 아는 사람이, 엄격하기 그지없는 승보사찰의 한 가운데에다 무슨 배짱으로 이런 파격을 버젓이 저질러 놓은 것일까요? 그 돌을 쓰다듬어 보는 순간, 정신의 자유로움과 해학이 전해져 왔습니다. 그 장인의 마음은 참으로 순진무구했을 겁니다.
소수서원에 갔다가, 돌담을 기어오르는 붉은 담쟁이와 눈이 마주쳤습니다. 내게 말을 걸어옵니다. “천지에 가득 찬 가을 기운을 보러, 사방을 다 쏘다닐 필요는 없어. 나 하나로 충분해. 하지만, 나 하나 물들이기 위해 천지가 다 동원되었지.” 전 미소지으며 대답합니다. “나도 그래. 인간을 알기 위해 인류를 다 분석할 필요는 없어. 나 하나면 충분해. 하지만, 지금의 나 속에는 태양계 50억년 진화의 기억이 저장되어 있어. 나 하나 만들려고 그 긴 세월과 이 넓은 우주 공간이 동원되었나 봐.”
계룡산 갑사 올라가는 길에서 걸음을 멈추었습니다. 낙엽을 떨구고 겨울 채비에 들어간 나목들, 이끼 낀 바위와 그 위에 얹힌 소박한 정성 덩어리 적석들, 비에 젖어 더욱 깊은 빛깔로 잦아들고 있는 갈색 낙엽들, 이미 자연의 일부가 되어버린 돌계단…. 그 모습을 보며, 왜 머릿속에 는 말이 스쳐지나갔을까요? 모든 것이 하루가 다르게 파괴되어 가는 요즈음, 거기 그런 모습으로 있어준 옛길이 고마웠던 거지요! 저는 대웅전으로 올라가는 것도 잊고 마냥 여기서 서성거렸습니다.
대한불교 조계종 제13교구본사 쌍계사 주지인 원정 스님이 9월 25일 오후 산중총회에서 신임 주지 후보로 추대했다. 주지 후보로 단독 입후보한 원정 스님은 75년 고산 스님을 계사로 사미계를 수지했으며 88년 백양사승가대학 대교과를 졸업했다.
“자네도 검버섯이 피었네 그랴.” “자네도.” “자네는 이제 삭기 시작하네 그려.” “이렇게 우리가 나란히 지붕에 얹혀 비바람과 눈과 태양빛을 쪼인지 벌써 얼마나 됐나?” “까마득해서 이젠 기억도 나지 않네 그려.” “지금까지는 어쨌든 그럭저럭 잘 버텨왔지만 앞으로는 어찌될지 몰라.” “글쎄 또 이렇게 무정한 세월이 하릴없이 흐르겠지.” 지붕위에 나란히 얹혀진 기왓장들이 나직이 대화를 나누고 있습니다. 어느 듯 이끼가 슬고 마모되어가는 우리도 어깨동무를 풀지 말고 한 세상 소용이 다하는 날까지 함께 하면 좋겠습니다. - 문경 대승사에서
비원 깊은 숲속에 있는 연경당은 흔히 아흔아홉 칸 집으로 불립니다. 천천히 둘러보는데, 열린 방문이 하나의 액자가 되어, 바깥 경치가 그림처럼 벽에 걸렸습니다. 각 방의 열린 화폭에는 나무와 야트막한 담장이 다양하게 그려져 있습니다. 그 그림은 햇살과 바람의 변화에 따라 미묘하게 움직였습니다. 나는 그림 속에서 순간적으로 옛날 이 집에서 살았을 누군가의 인기척을 느낀 것 같습니다. 그림 속에선 시간이 흐르지 않는 법인가 봅니다.
서산 개심사를 둘러보다가 문득 누군가의 마음의 흔적을 느끼고 놀랐습니다. 수백 년 전 그 어느 땐가, 정신적으로나 심미안의 경지에서 뛰어난 디자이너 고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는 절터를 잡고, 건물을 배치하고, 계곡 입구에서 금당까지의 동선을 소나무 숲 사이로 자유자재로 배치하고, 경내의 적재적소에 꽃나무를 심고, 풍수지리에 따라 연못을 파서 비보를 해놓고…, 한 마디로 산 전체 국면을 놓고 거대한 정원을 꾸며 놓은 것입니다. 그 섬세한 손길과 담대한 스케일과 탁월한 심미안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기차를 타니 창밖으로 풍경이 스쳐 지나갑니다. 그 모습을 보며 문득 돌이켜 봅니다. 움직이는 건 기차인지, 풍경인지? 시계를 보니, 나를 감싸고 시간이 지나갑니다. 그런데 흐르는 것이 나인지, 시간인지? 이제 기차에서 내리니, 가는 건 풍경이 아니라 기차입니다. 잘 생각해보면, 시간이 따로 있어 흐르는 게 아니라, 우리가 흐르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언젠가 인생 기차에서 내리게 되겠지요. 그때 물끄러미 물러서서, 떠나는 기차를 바라보는 심정은 어떨까요?
한국정원의 원형으로 “산수정원”이 있습니다. 일정한 장소를 정해 인공적으로 만든 정원이 아니라, 원래 산천 경치가 좋은 곳을 찾아 사방 벽이 텅 빈 정자 하나만 달랑 세운 것. 즉, 자연 자체를 정원으로 삼은 것입니다. 영월 땅, 두 강이 만나는 절경의 언덕 위에 요선정이란 작은 정자가 있습니다. 정자 앞에는 마애불이 새겨진 바위가 천연 연화대 위에 절묘하게 자리 잡고 있습니다. 물방울 다이아몬드 같은 저 알바위는 자연국보로 손색이 없습니다.
영주 성혈사의 조선 중기 때 창살에는 여름날의 한가로운 연못 풍경이 조각되어 있습니다. 보일 듯 말 듯한 소년의 미소는 시간을 초월한 무슨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 합니다. 바랜 나무 색 때문일까요? 세속의 때를 말끔히 씻어버린 듯한 작은 얼굴에는 내면의 해맑은 빛이 스며 나오는 것 같습니다. 장자가 꿈속에서 나비가 되어 훨훨 날아다녔듯이, 동자의 자리에 앉아 이 세상이라는 만화경을 꿈꾸어 봅니다.
희미한 비명소리를 들은 것 같습니다. 내 안의 꽃을 내가 밟고 있다니요. 저는 얼른 발을 떼고 자세히 살펴보았습니다. 다행입니다. 아직 꺾이지 않았습니다. 하마터면 이 아름다운 꽃을 영영 꺾어놓을 뻔 했습니다. 안의 소리에 민감하게 됩니다. 마음을 살펴보게 됩니다. 행여나 안에 핀 꽃을 밟고 있지나 않은지 수시로 돌아보게 됩니다. 꽃은 밟히지 않을 때, 스스로 아름답습니다. - 아침고요 수목원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