打破虛空出骨 閃電光中作窟타파허공출골 섬전광중작굴有人問我家風 此外更無別物유인문아가풍 차외갱무별물(허공을 깨트려서 뼈를 들추어내고 / 번쩍이는 번갯불 가운데 토굴을 짓노라 / 누구 있어 나의 가풍을 물을진대 / 이 밖에 다른 물건 없다 말하리라.)문경 봉암사 조사전에는 세 부분 12개의 주련이 있다. 이번 주련과 13회차에서 소개했던 주련은 모두 조계종 종정을 지낸 서암 스님의 글씨다.이번 주련은 고려 말 나옹혜근 스님(1320~1376)의 어록인 ‘나옹화상가송’에서 자찬(自讚)이라는 시제로 다섯 수가 실려 있는 가운데 네 번째에 해당
마스크 착용이 일상이 되면서 생긴 우스개 소리가 있다. “요즘은 모두가 미남 미녀”라는 말이다. 마스크 위로 눈과 이마만 보이니 모두가 잘생겨 보인다는 뜻이다. 며칠 전 신규직원 채용을 위해 면접을 보았다. 모두가 인물이 훤해보였다. 하지만 본인 확인을 위해 잠시 마스크를 벗고 보니 그 첫인상이 각양각색이었다. 인상을 좌우하는 것이 눈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그 생각이 바뀌었다. 얼굴의 중심은 코이고 입 또한 인상의 상당 부분을 좌우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러고 보니 가끔은 마스크를 벗은 직원의 얼굴이 상당히 낯설어 보일 때도 있다.
승이 영주 조횡산의 유화상에게 물었다. “부처란 무엇입니까.” 유화상이 말했다. “평지인데 높은 언덕이 보인다.”영주(郢州) 조횡산(趙橫山)의 유화상(柔和尚)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없다. 부처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은 선문답에서 가장 보편적으로 등장하는 공안이다. 이에 대한 답변은 정해진 것이 없다. 동일한 질문이라고 해도 답변은 동일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질문자의 능력뿐만 아니라 답변자의 능력에 따른 결과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답변이 모두 다를 수밖에 없는 까닭은 공안은 각자의 삶과 사유에 따른 모습이 드러난 것이기 때문
동서양을 막론하고, 연장자를 공경하는 것은 그 형식은 달라도 동일하다. 동양은 그 형식면에서 서양보다는 발달했지만, 형식이 발달했다고 해서 동양이 서양보다 연장자를 더 공경한다고 말하는 것은 고려해 보아야 할 측면이 있다. 형식이 의미가 있기 위해서는 그 내용이 담보되어야 한다. 한편 생물학적 나이가 많다고 하는 이유만으로 공경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공경이란 그 사람의 인격에 대한 존경이 전제되어야 되는 것이다. 공경이 형식이라면 인격이 내용이 된다. 인격이 갖추어지지 않은 사람에게 우리는 공경이란 형식을 갖추지 않는다. 때론
세계 가톨릭교회를 지배하는 로마 교왕청과 중국 정부 사이에 주교 임명권을 둘러싸고 이어져온 갈등이 쉽게 풀릴 것 같지 않다. 교왕청에서는 주교 임명이 자신들의 당연한 권리라고 주장하지만, 중국 정부는 그 요구를 ‘인정하지 못하겠다’며 자신들이 선발한 주교 임명을 강행하고 있다. 교왕청과 중국 정부가 서로 “이번에 밀리면 모든 것을 잃게 된다”는 절박한 상황으로 보고 있기 때문에 이 갈등은 앞으로 오랫동안 해결되지 못할 것이다. 중국 정부의 압력에 굴복하게 되면 다른 나라들에서도 비슷한 요구를 해올 것이므로 ‘물러설 곳이 없다’고 판
퀘이드는 자신이 누구인지 알 수 없었다. 낯선 이에게 건네받은 노트북의 화면에서는 자신과 똑같은 모습을 한 과거의 자신이라는 자가 ‘미래의 나에게’라며 현재의 자신에게 말을 건넨다. 네가 아는 너는 네가 아니라고. 나인 너는 독재자의 하수인이었으나 이제 잘못을 깨닫고 반군이 되었으니 독재자를 처치하는 것이 나이자 너의 임무라고. 존재하지 않는 기억으로 갖은 난관을 뚫고 만난 반군의 두목은 그에게 말했다. “그대가 누구인지 몰라서 괴로운가? 하지만 그대를 규정하는 것은 기억이 아니라 행동이다.”영화 ‘토탈 리콜’(1990)의 장면이다
Q. 친한 친구가 요즘 들어 기운도 없어 보이고, 한숨도 많아졌습니다. 조금 지나면 괜찮아지겠지 하고 넘겼지만 이제는 사는 게 의미없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삽니다. 날이 좋아져 얼굴을 보자고 해도 집에서 나오지 않고, 무슨 일이 있는지, 왜 그러는지 이유를 물어도 아무 일도 없다, 괜찮다는 대답만 할 뿐입니다. 평소 씩씩했던 친구가 웃지도 않고 목소리에 힘도 없으니 걱정이 됩니다. 혼자 지내고 있는 친구를 도와주고 싶은데 방법을 모르겠습니다.A. 무기력하고 기운없어 하는 친구가 많이 걱정되시는 것 같습니다. 예전 씩씩했던 친구의 모습
오윤(吳潤, 1946~1986)은 민중미술, 판화가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원래는 서울대 조소과를 졸업한 조각가이다. 그가 추구한 민중미술이란 무엇일까? 여기서는 필자 마음대로 불교적인 해석을 시도해 보려고 한다. 민중의 중(衆)은 ‘무리’, ‘많은 사람’을 의미하는 것인데 인도에서 불교교단을 지칭하는 상가(saṃgha)를 발음으로 번역해 승가(僧伽)가 됐고, ‘중’이란 뜻으로 번역했다. 현재 불자들은 스님들을 ‘스님’, ‘승’으로 부르고 ‘중’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오히려 스님들을 무시할 때 ‘중’이라고 표현하지만, 원래 ‘중’에
吾住此庵吾莫識 深深密密無壅塞오주차암오막식 심심밀밀무옹새函盖乾坤沒向背 不住東西與南北함개건곤몰향배 부주동서여남북(내가 사는 이 암자는 나도 모르지만 / 깊고도 은밀하되 옹색함은 전혀 없다네. / 건곤을 모두 가두었으니 앞과 뒤가 없고 / 동서남북 어디에도 머무름이 없도다.)지난 호에 이어 이번에도 문경 봉암사 내 전각 중 한 곳의 주련을 소개하고자 한다. 봉암사 동방장(東方丈)은 방장 스님이 주석하는 장소다. 이 공간은 고려 말기에 수행했던 태고보우(太古普愚 1301~1382) 스님의 어록 가운데 ‘태고화상어록’의 ‘태고암가’에 실린
지난번 연재 글에서 불교교리는 존재와 사물에 대한 추상화의 산물이 아니라 ‘경험’에 대한 직접 고찰이라는 점을 말씀드렸습니다. 아울러 여기서 경험이란 뇌 속에서 벌어지는 에피소드가 아니라 바깥세계와의 교류의 산물이라는 점 또한 강조해서 말씀드렸습니다. 그 경험을 우리는 ‘지각’ 그리고 ‘인지’라고 부릅니다. 이 지각과 인지를 통해 우리는 바깥세계와 교류하면서 매번 새롭게 창발됩니다. 매번 새롭게 ‘창발 되는 나’가 곧 무아에 대한 생활 세계적 이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생활 세계’란 일상적 삶의 영역을 의미합니다. 일상적
티베트의 로종수행에서는 자비심을 상대적 보리심이라 하고, 지혜심을 절대적 보리심이라 한다. 깨달은 마음의 두 측면에 자비심과 지혜심이 있다는 것은 비단 로종수행만의 관점이 아닌 불교의 보편적 관점이라 하겠는데, 자비심을 상대적이라 하고 지혜심을 절대적이라 명시한 것에 주목하게 된다.로종(lojong)은 마음(lo) 수련하기(jong)를 뜻한다. 마음은 지성적인 측면만 있는 것이 아니라 감정적인 측면도 있다. 이 두 측면을 동시에 닦는 수행이 로종수행이다. 근본지성으로서의 지혜심이 절대적 보리심이라면, 지말지성으로서의 자비심이 상대적
스티브 라이히(Steve Reich, 1936~)는 필립 글래스와 함께 미국의 미니멀리즘을 대표하는 작곡가이다. 음악에서의 미니멀리즘은 소리의 움직임을 최소한으로 억제하고 패턴화된 음형을 반복시킴으로서 구성되는 형태를 말한다. 어렸을 때부터 클래식 음악을 좋아했던 라이히는 코넬 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한 뒤 줄리어드 음악원에 입학했다. 개방적이고 현대적인 음악을 추구했던 그는 현대음악의 중심지인 샌프란시스코로 옮겨 밀즈 대학에서 루치아노 베리오를 사사했다. 뉴욕으로 그는 돌아와 미니멀리즘 미술가들과 교류를 하며 주로 갤러리에서 연주회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