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48. 아바야 왕자에게 설한 붓다의 교설

기자명 마성 스님

연민에서 우러난 진실어라야 감동·이익 준다

붓다 “말을 해야 할 때, 해서는 안되는 때 알아야 한다”고 설법
말·글로 표현하기 전 마음 살피고 숙고해야 상처 주지 않을 것 
순간적 악의서 비롯된 그릇된 언어 차단하려면 늘 깨어있어야

스리랑카 고대 수도 아누라다뿌라(Anuradhapura)에 위치한 아바야기리 대탑(Abhayagiri stupa)의 웅장한 모습. 대탑은 왈라감바(Valagamba) 왕이 건립한 것으로 대승불교의 본거지가 되었다. 아바야기리위하라(Abhayagirivihāra, 無畏山寺派)는 상좌부의 전통을 고수한 마하위하라(Mahāvihāra, 大寺派)와 경쟁 관계에 있었다. 그러나 12세기경 상좌부 마하위하라가 승리함으로써 아바야기리 대탑은 오랫동안 방치됐다. 1997년 스리랑카 정부에서 이 대탑의 복원 작업을 실시하여 현재의 모습을 되찾았다.
스리랑카 고대 수도 아누라다뿌라(Anuradhapura)에 위치한 아바야기리 대탑(Abhayagiri stupa)의 웅장한 모습. 대탑은 왈라감바(Valagamba) 왕이 건립한 것으로 대승불교의 본거지가 되었다. 아바야기리위하라(Abhayagirivihāra, 無畏山寺派)는 상좌부의 전통을 고수한 마하위하라(Mahāvihāra, 大寺派)와 경쟁 관계에 있었다. 그러나 12세기경 상좌부 마하위하라가 승리함으로써 아바야기리 대탑은 오랫동안 방치됐다. 1997년 스리랑카 정부에서 이 대탑의 복원 작업을 실시하여 현재의 모습을 되찾았다.

인터넷상에는 정제되지 않은 험한 말들이 난무하고 있다. 그 사람의 언어가 거칠다는 것은 그 사람의 심성이 거칠다는 것을 의미한다. 코로나19 장기화로 사람들의 심성이 황폐화 되어가는 것 같아 염려스럽다. 특히 정치인들과 시사평론가들의 막말은 상대방에게 적개심을 불러일으키게 하여 반사이익을 얻고자 한다. 저질 중의 저질이다. 무심코 내뱉는 말이 때로는 상대방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주기도 하고 절망에 빠트리기도 한다.

한때 붓다는 아바야 왕자(Abhaya rājakumāra)에게 말을 해야 할 때와 말을 해서는 안 되는 때를 가릴 줄 알아야 한다고 가르쳤다. 아바야 왕자는 마가다국의 빔비사라(Bimbisāra) 왕과 웃제니(Ujjeni)의 미인이었던 빠두마와띠(Padumavatī) 사이에서 태어났다. 부왕이었던 빔비사라 왕을 시해하고 왕위를 차지 한 아자따삿뚜(Ajātasattu)와는 이복형제였다. 그는 자이나교의 개조 니간타 나따뿟따(Nigaṇṭha Nātaputta)의 신도였다. 니간타 나따뿟따는 아바야 왕자에게 사문 고따마를 논파하라고 시켰다. 그는 사문 고따마를 논파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니간타 나따뿟따는 다음과 같이 질문하면 사문 고따마를 논파할 수 있을 것이라고 일러주었다.

“‘존자시여, 여래도 다른 사람들에게 사랑스럽지 않고 마음에 들지 않는 말을 하십니까?’라고. 만일 사문 고따마가 이런 질문을 받고 ‘왕자여, 여래도 다른 사람들에게 사랑스럽지 않고 마음에 들지 않는 말을 합니다’라고 대답하면 그대는 그에게 이렇게 말해야 한다. ‘존자시여, 그러면 당신과 범부는 무슨 차이가 있습니까? 범부도 역시 다른 사람들에게 사랑스럽지 않고 마음에 들지 않는 말을 하기 때문입니다’라고.”

“만일 사문 고따마가 이런 질문을 받고 ‘왕자여, 여래는 다른 사람들에게 사랑스럽지 않고 마음에 들지 않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라고 대답하면 그대는 그에게 이렇게 말해야 한다. ‘존자시여, 그러면 왜 당신은 데와닷따(Devadatta)에 대해 설명하시기를 데와닷따는 악처에 떨어질 것이다. 데와닷따는 지옥에 떨어질 것이다. 데와닷따는 겁이 다 하도록 지옥에 머물 것이다. 데와닷따는 선도될 수가 없다라고 하십니까? 당신의 말씀 때문에 데와닷따는 화를 내고 불쾌하게 여깁니다’ 라고.”

“왕자여, 사문 고따마가 이런 양극단을 가진 질문을 받으면 그것을 뱉을 수도 없고 삼킬 수도 없을 것이다. 예를 들면 목에 쇠꼬챙이가 걸리면 그 사람은 그것을 뱉을 수도 없고 삼킬 수도 없는 것과 같다. 왕자여, 그와 같이 사문 고따마가 이런 양극단을 가진 질문을 받으면 그것을 뱉을 수도 없고 삼킬 수도 없을 것이다.”

아바야 왕자는 붓다를 자기 집으로 초대하여 공양을 올렸다. 공양이 끝나자 아바야 왕자는 붓다께 “세존이시여, 여래도 다른 사람들에게 사랑스럽지 않고 마음에 들지 않는 말을 하십니까?”라고 물었다. 그러자 붓다는 “왕자여, 거기에 대해서는 한 가지로 대답할 수 없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왕자는 “세존이시여, 그렇다면 니간타들이 졌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왕자는 전후 사정을 붓다께 말씀드렸다. 그러자 붓다는 왕자에게 다음과 같이 설했다.

“왕자여, 그와 같습니다. ①여래는 그 말이 사실이 아니고 진실이 아니고 이익을 줄 수 없다고 알고, 또 그 말이 다른 사람들에게 사랑스럽지 않고 마음에 들지도 않는 것이면 여래는 그 말을 하지 않습니다. ②여래는 그 말이 사실이고 진실이지만 이익을 줄 수 없다고 알고, 또 그 말이 다른 사람들에게 사랑스럽지도 않고 마음에 들지도 않는 것이면 여래는 그 말도 하지 않습니다.
③여래는 그 말이 사실이고 진실이고 이익을 줄 수 있다고 알지만 그 말이 다른 사람들에게 사랑스럽지 않고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면 여래는 그 말을 해줄 바른 시기를 압니다. ④여래는 그 말이 사실이 아니고 진실이 아니고 이익을 줄 수 없다고 알면, 비록 그 말이 다른 사람들에게 사랑스럽고 마음에 드는 것이라도 여래는 그 말을 하지 않습니다.
⑤여래는 그 말이 사실이고 진실이지만 이익을 줄 수 없다고 알면, 비록 그 말이 다른 사람들에게 사랑스럽고 마음에 드는 것이라도 여래는 그 말을 하지 않습니다. ⑥여래는 그 말이 사실이고 진실이고 이익을 줄 수 있다고 알고, 또 그 말이 다른 사람들에게 사랑스럽고 마음에 드는 것이면 여래는 그 말을 해줄 바른 시기를 압니다. 그것은 무엇 때문이겠습니까? 왕자여, 여래는 중생들에게 연민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이야기는 ‘아바야라자꾸마라-숫따(Abhayarājakumāra-sutta, 無畏王子經)’(MN58)에 설해져 있다. 이른바 중생에 대한 연민이 없는 말은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만 안겨주고 이익을 줄 수 없지만, 반대로 중생에 대한 연민에서 우러난 말은 다른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이익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중생에 대한 연민에서 우러난 진실어(眞實語)라야 중생들을 감동시키고 이익을 줄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말이나 글로 표현하기 전에 그것이 중생에 대한 연민에서 우러난 것인지 아니면 상대방에 대한 분노심에서 일어난 것인지 먼저 숙고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상대방이나 다른 사람들의 마음에 상처를 주지 않고, 사랑스럽고 마음에 드는 말을 하게 된다. 이 붓다의 가르침은 너무나 쉬운 말이지만, 범부들은 그것을 일상생활에서 실현하기 어렵다. 그러나 점차 익숙해지면 인격향상과 함께 그렇게 될 수도 있다.

사실 지혜와 연민의 마음이 몸에 배어있지 않으면 말을 해야 할 때와 말을 해서는 안 되는 때를 판단하기 어렵다. 늘 깨어있어야 순간적인 충동에 자극받은 악의에서 비롯된 그릇된 언어를 사전에 차단할 수 있다. 나도 젊었을 때는 연민에서 우러난 말이 아닌 상대에게 상처를 주는 말을 많이 했다. 그 때문에 많은 사람을 잃기도 했다. 지금은 예전보다는 많이 나아졌지만 아직도 부족하다. 종종 나도 모르는 사이 내뱉는 말에 상처를 받는 사람이 있다. 그만큼 주의를 기울여 숙고한 후에 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신과 다른 의견을 피력함에도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도 자신의 견해를 전달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남을 먼저 배려하는 것은 자기 자신을 존중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마성 스님 팔리문헌연구소장 ripl@daum.net

[1585호 / 2021년 5월1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