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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전 번역서 대중포교·이타행 실천까지…불교는 스승의 역사

기자명 성재헌

불교의 스승 - 2. 고승전에 수록된 스승들

부처님 당시부터 법 체계화하고 교단 결속해 세력 유지한 고승들
까마득한 초원, 사막 건너며 불교 세계화 앞장섰던 구법승과 전법승
양나라 시작된 ‘고승전’ 편제서 역대 제자들의 스승 면모 볼 수 있어

중국 불교의 발원지 낙양 ‘백마사(白馬寺)’. 명제 11년(68) 중국 북위 시대 후한의 명제(明帝, 재위 57~75년)가 세웠다고 알려져 있다. 중국에 최초로 불교를 전한 가섭마등(迦葉摩騰), 축법란(竺法蘭) 스님이 흰 말에 경전과 불상을 싣고 왔다고 해 백마사라는 이름을 갖게 됐다. 전승과 문헌으로 확인되는 중국 최고(最古)의 절이기도 하다. 
중국 불교의 발원지 낙양 ‘백마사(白馬寺)’. 명제 11년(68) 중국 북위 시대 후한의 명제(明帝, 재위 57~75년)가 세웠다고 알려져 있다. 중국에 최초로 불교를 전한 가섭마등(迦葉摩騰), 축법란(竺法蘭) 스님이 흰 말에 경전과 불상을 싣고 왔다고 해 백마사라는 이름을 갖게 됐다. 전승과 문헌으로 확인되는 중국 최고(最古)의 절이기도 하다. 

속담에 ‘삼대 가는 부자 드물고, 큰 권세도 10년을 지속하기 힘들다’고 했다. 하지만 불교교단은 2600여년이나 지속됐고 교주를 숭상하고 그 가르침을 실천하고자 매진하는 교도들이 세계에 퍼져 있다. 지금도 교세를 만방에 떨치고 있으니 실로 세상의 통념을 뛰어넘는 큰 부자요 큰 권세를 누리고 있다 하겠다.

불교가 이렇게 오래토록 세상에 큰 영향력을 끼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물론 교주이신 석가모니 부처님의 위대한 행적과 시·공간을 뛰어넘는 보편적 가치가 구현된 가르침 때문이란 건 재론의 여지가 없다. 명백한 사실이다. 하지만 과연 이것뿐일까? 이것만으로는 이 거대한 흐름을 설명하기에 무엇인가 미흡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역사 속 등장하는 위대한 현인은 실로 헤아릴 수 없다. 부처님 당시만 해도 부처님보다 큰 명성을 떨친 브라흐만이 있었다. 니간타 나따뿟따(Nigantha Nātaputta) 등 육사외도(六師外道)라 불리는 사문(沙門)들 유명세 또한 부처님 못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긴 역사가 강물을 따라 흐르는 동안, 불교 교단은 날로 흥했으나 다른 현자의 교단들은 날로 시들어갔다. 왜 이런 결과가 나타났을까?

불교는 모든 현상을 인연(因緣) 법칙으로 설명하는 종교다. 따라서 이 현상 역시 인연 법칙으로 추론해야 마땅할 것이다. 이 결과를 이끈 인(因)이 부처님과 그 가르침이라면, 인을 도운 연(緣)이 분명히 존재했을 것이다. 물론 그 연을 추궁하자면 여러 가지를 거론할 수 있다. 하지만 수많은 연 가운데 결코 빠트릴 수 없는 것이 바로 부처님의 제자들이다. 

명석한 두뇌와 언변으로 부처님 가르침을 체계화해 널리 교육했던 사리불(Sāriputta), 뛰어난 지도력으로 교단을 결속하고 단속했던 목건련(Moggallana)이 없었다면 부처님 당시 교단이 규모를 키우고 명성을 떨칠 수 있었을까. 탁월한 선정의 힘을 갖춰 규범을 철저히 지켰고 그 모습에 외도들마저 숭상했던 대가섭(Mahākāśyapa), 부처님 말씀을 빠짐없이 기억해 후세에 전한 총명한 아난(Ananda)이 없었다면 부처님 사후 교단이 그 세력을 유지할 수 있었을까. 

먼저 걷다 죽어간 이들 해골을 이정표 삼아 까마득한 초원과 사막을 건넜던, 또 온갖 특수 장비에 식량을 헬기로 나르고도 사망 사고가 빈번히 발생하는 히말라야 빙벽을, 봇짐 하나 달랑 매고 맨 손으로 기어올랐던 구법승(求法僧)들. 의혹과 질시의 눈길 속에 평생 시달리다 기꺼이 비참한 최후를 맞아야 했던 수많은 전법승(傳法僧)들…. 그들이 없었다면 부처님 가르침이 인도를 넘어 중국, 한국으로 전해질 수 있었을까. 글쎄 아마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불자들이 부처님[佛], 부처님 가르침[法]과 더불어 위대한 스승[僧]을 세 가지 보배[三寶]로 삼는 것은 실로 그 까닭이 분명하다고 하겠다.

위대한 스승의 행적을 기록한 문헌을 ‘승전(僧傳)’이라 한다. 또 이런 스승들 전기를 하나의 책으로 엮어낸 것을 흔히 ‘고승전(高僧傳)’이라 부른다. 고승전의 본격적인 편찬은 중국에서 시작됐다. 

물론 대승불교를 크게 흥성시킨 마명(馬鳴, Aśvaghoṣa), 제2의 붓다로 추앙받았던 용수(龍樹, Nagarjuna), 유식 불교를 개창한 무착(無着, Asanga)과 세친(世親, Vasubandhu), 해박한 어학과 지식으로 많은 경론을 번역했던 구마라집(鳩摩羅什, Kumārajīva) 등 인도와 서역 스님들의 전기가 몇몇 전해오긴 하나 이 분들을 하나로 엮은, 소위 인도 고승전이나 서역 고승전은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고승전’이라 하면 중국, 한국에서 활약한 고승들 이야기를 엮은 책이라 이해해도 무방할 것이다. 

처음 고승전을 편찬한 분은 양나라 혜교 스님(慧皎, 495∼554)이다. 불교가 중국에 처음 전래됐던 후한(後漢) 영평 10년(67)부터 양나라 천감 18년(519)까지, 453년 동안에 활약했던 고명한 승려 257명 전기를 모아 10편으로 분류하고 모두 14권으로 편찬해 그 이름을 ‘고승전’이라 했다. 이를 보통 ‘양고승전(梁高僧傳)’이라 칭한다. 이후 당나라 도선 스님(道宣, 596~667)이 이를 계승해 양나라 초기부터 정관 19년(645)까지 활약했던 고명한 승려 340명 전기를 모아 ‘속고승전(續高僧傳)’, 즉 ‘당고승전(唐高僧傳)’ 30권을 편찬했다. 

이를 송나라 찬영 스님(贊寧, 915~999)이 계승해 당나라 초기부터 송나라 옹희 4년(987)까지 활약했던 고명한 승려 533명 전기를 모아 ‘송고승전(宋高僧傳)’ 30권을 편찬했다. 이후 1617년 명나라 여성 스님(如惺)이 계승해 989년부터, 630여년 동안에 활약했던 고명한 승려들 전기를 모아 ‘명고승전(明高僧傳)’을 편찬했다.

우리나라에도 고려 말에 각훈 스님(覺訓)이 편찬한 ‘해동고승전(海東高僧傳)’, 조선 후기 편찬된 ‘동국승니록(東國僧尼錄)’, 각안 스님(覺岸, 1820~1896)이 편찬한 ‘동사열전(東師列傳)’ 등 고승전이 있다. 

이렇듯 고승전은 전적의 양도 방대하고, 수록된 인물 수도 방대하다. 이들이 드날린 도덕과 업적 또한 다양하다. 따라서 만약 이 짧은 원고로 몇 분의 면모를 새삼 부각시키려 애쓴다면 이는 한 바가지 물로 광활한 바다의 면모를 소개하려는 우(愚)를 범하는 꼴이 될 것이다. 

그래서 일단 고승들의 구체적 활약상을 소개하는 것은 차지하고, 여러 고승전 편제(編制)가 대동소이한 점에 착안해 이 편제를 살펴봄으로써 불자들이 어떤 분을 스승으로 삼았는지, 즉 어떤 면모를 모범으로 삼고 어떤 행실을 숭상했는지 돌아보고자 한다. 

후대에 편찬된 여러 고승전은 혜교 스님이 편찬한 ‘양고승전’ 편제를 모범으로 삼고 있다. ‘양고승전’은 역경(譯經), 의해(義解), 신이(神異), 습선(習禪), 명률(明律), 망신(亡身), 송경(誦經), 흥복(興福), 경사(經師), 창도(唱導) 등 10편으로 구성돼 있다. 

먼저 ‘역경편’은 서역에서 경전을 가져와 중국말로 번역했던 스님들 전기가 수록돼 있다. 언어는 뜻을 전하는 수단이다. 이심전심(以心傳心)으로 뜻을 전할 수 있다면 좋으련만 범부(凡夫)는 언어가 아니면 끝내 뜻을 통할 수 없다.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끼리도 뜻을 정확히 전달하기 위해서는 듣는 사람에 따라 표현을 달리해야할 때가 있다. 사실 이것도 쉬운 일이 아닌데 하물며 다른 언어로 바꾸는 것은 어떻겠는가. 

게다가 표의(表意) 문자인 중국어는 표음(表音) 문자인 범어와 기본적 체계부터가 판이하게 다르다. 언어 구조가 다르다는 것은 곧 생각 구조가 다르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거대한 장벽을 넘어 두 언어를 이해하고 서로 소통하도록 돕는다는 건 난해한 작업일 수밖에 없다. 게다가 전하려는 내용이 그럭저럭 이해하고 넘길, 이만저만한 일이 아니다. 누군가의 삶을 송두리째 바꿀 성현의 말씀이니 그 뜻이 손상되도록 언어를 정교히 선택하고 다듬는 과정들이 필수적이다. 

구마라집 번역본을 읽을 때마다 나는 감탄을 금치 못한다. 말은 100년만 지나도 사장되고, 퇴색하는 단어가 흔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구마라집이 선택한 단어는 1600여년 장구한 시간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생생하다. 세월의 영향을 무색케 하는 보편적이면서도 원초적인 단어를 어떻게 이리도 정확히 골라 썼을까. 가히 신이(神異) 영역에 들어서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이라 하겠다. 

‘의해편’은 경전의 가르침을 자세히 강설해 부처님 뜻을 분명히 이해시키는 데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던 스님들 전기가 수록돼 있다. 부처님 가르침은 실로 미묘하니, 그 종착지는 가히 말로 닿을 수 없고 생각이 미칠 수도 없는 자리다. 하지만 말과 생각이 아니고서는 중생을 열반으로 이끌 수단이 없다. 말과 생각을 정교히 갈고 닦아, 많은 사람들을 말과 생각이 끊어진 자리로 이끄는 솜씨를 갖췄다는 것, 이는 진리를 온전히 체득한 분이 아니고서는 감히 할 수 없는 일일 것이다. 

‘신이편’은 보통 사람이면 불가능한 신비한 능력과 기이한 행적을 보인 스님들 전기가, ‘습선편’은 선정을 철저히 닦았던 스님들 전기가, ‘명률편’은 계율을 철저히 지켰던 스님들 전기가, ‘망신편’은 타인을 위해 혹은 불법을 위해 자신의 목숨마저 헌신짝처럼 내던졌던 스님들 전기가, ‘송경편’은 경전을 지극히 독송해 덕화를 널리 펼쳤던 스님들 전기가, ‘흥복편’은 불상을 조성하고 사찰을 건립하며 대중들에게 복을 짓도록 권하고 포교에 앞장섰던 스님들의 전기가, ‘경사편’은 아름답고 웅장한 범패로 대중을 감화시켰던 스님들 전기가, ‘창도편’은 대중들 앞에서 부처님 가르침 요지를 간략히 설명하고, 사람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인연과 비유를 섞어 이야기하는 능력이 탁월했던 스님들 전기가 수록돼 있다. 

이상 10편을 나름의 기준에 따라 다시 분류해 보자면 ‘역경편’ ‘의해편’에 수록된 스님들은 부처님 가르침을 정밀히 탐구했던 전문적인 연구가에 해당된다. ‘명률편’ ‘습선편’ ‘송경편’ ‘신이편’에 수록된 스님들은 계정혜(戒定慧) 삼학(三學)을 철저히 닦아 신통을 터득한 참다운 수행자에 해당된다. 또 ‘망신편’ ‘흥복편’ ‘경사편’ ‘창도편’에 수록된 스님들은 불사·염불·법문으로 대중 포교에 앞장서는데 목숨을 아끼지 않았던 대승보살에 해당하겠다. 

성재헌동국역경원 역경위원​​​​​​​
성재헌
동국역경원 역경위원​​​​​​​

누가 불교계의 스승일까. 긴 역사 가운데 불자들은 부처님 가르침을 정밀히 연구하는 학자, 계율과 선정과 지혜를 철저히 닦는 수행자, 이타행을 실천하며 대중 포교에 앞장섰던 대승보살을 모범으로 삼고, 스승이라 보았다. 예전에는 이런 분들을 스승으로 삼았을까? 아득한 세월이 흐른 뒤 불교계에서 추앙하는 스승들은 역시 이런 분들일 것이다.

[1586호 / 2021년 5월1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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