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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체 유정 교화할 교육방편과 능력 두루 갖춘 위대한 스승

불교의 스승 - 1. 부처님

권위로써 군림하지 않고 항상 존중하며 진리의 길 함께 걸어
자비심 가득한 교육애로 제자 외호하고 적절한 방법으로 지도
지식 위주 채워주는 교육보다 잠재 능력 이끌어낸 참 교육자

부처님은 절대 진리를 가르친 것이 아니라 진리로 가는 길을 가르쳤다. 사진은 기원후 3세기 무렵 간다라에서 조성된 부처님 모습.
부처님은 절대 진리를 가르친 것이 아니라 진리로 가는 길을 가르쳤다. 사진은 기원후 3세기 무렵 간다라에서 조성된 부처님 모습.

부처님은 삼계의 중생을 해탈로 인도하는 위대한 스승[三界導師]이다. 뭇 중생의 스승인 부처님은 모든 중생이 고통을 여읠 수 있는 정법을 제시했고, 그 법은 다시 스승에게서 제자에게로 끊임없이 이어오며 진리의 등불을 밝혀왔다. 부처님은 “만약 수행자가 올바른 스승(선지식)을 만났다면 도의 절반을 이룬 것이겠습니까?”라는 아난의 질문에 “아니다. 도의 전체를 이루느니라”고 답했다. 법보신문은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스승의 의미를 되짚어보았다. 편집자

종교적 의미의 스승이란 단순히 지식이나 기술만을 가르쳐주는 이가 아니라 세계와 인생의 궁극적 실상을 알게 하고 이에 따라 사는 길을 인도해주는 사람이다. 스승을 의미하는 아짜리아(ācariya)라는 말은 일반적으로 수행인의 스승이라는 의미로 쓰였으나, 상좌부 경전에는 오직 고오따마 붓다에게만 최고의 스승이라는 의미로 사따아(satthā)라는 용어로 사용하였다. 스승으로서의 붓다의 위상과 역할은 여래 십호 가운데 ‘천인사(天人師)’ ‘조어장부(調御丈夫)’ 등의 별칭으로 표현되고 있다. 불자들이 조석으로 드리는 예불문에도 ‘삼계의 대도사(大導師)’이시며 ‘나의 근본 스승님’이라고 부르고 있다. 여기에서 대도사란 진리의 길로 인도하는 큰 스승이라는 의미이다. 붓다는 밝은 지혜와 따뜻한 자비심과 복덕을 구족한 구세대비(救世大悲)의 성자로서 일체 유정을 교화할 수 있는 교육 방편과 능력을 두루 갖춘 큰 스승이었다.

‘유가사지론’에는 스승으로서의 붓다의 특성을 다섯 유형으로 제시하고 있다. 첫째, 묘색(妙色)은 32상의 아름다운 신체의 모습을 갖춘 단정하고 조화로운 모습이다. 둘째, 정적(靜寂)은 탐진치와 모든 번뇌로부터 해탈하여 평화와 고요로 가득 찬 분이라는 뜻이다. 셋째, 승지(勝智)는 밝은 지혜를 지니고 늘 깨어있는 정신에서 광명을 발하는 존재라는 의미다. 넷째, 정행(正行)은 항상 팔정도를 실천하며 중생에게 위안과 복덕을 주는 세간의 의지처라는 뜻이다. 다섯째, 위덕(威德)은 신이(神異)한 능력과 교화력으로 위의를 갖춘 성자라는 것이다. 이와 같이, 붓다는 외적으로는 누구에게나 환희심을 내게 하는 아름답고 조화로운 모습을 지녔고, 내적으로는 모든 번뇌에서 완전히 벗어나 평정한 마음으로 정법을 가르쳤다. 또한 삼명·육통과 무애자재한 변재로서 제자들의 의문에 대해 상세하게 가르쳐준 이상적인 교사의 모델이었다.

스승으로서 붓다의 능력과 태도에 대해 대소승 경론에는 ‘십팔불공법(十八不共法)’으로 정형화하고 있다. 불공법(不共法)이란 다른 사람들과는 함께 공유하지 않은 붓다만이 지닌 특별한 능력이라는 뜻이다. 여기에는 모든 청법자의 성향과 근기 등을 바로 아는 열 가지 지적 능력[十力], 진리를 설하는 데 두려움이 없는 당당한 용기[四無畏], 청법자의 반응이 어떠하든지 간에 평정한 마음에 머물러 흔들리지 않는 태도[三念住] 등이 있다. 그리고 이에 더하여, 교육자의 가장 근본적인 덕목인 교육애로서의 대비심[大悲]을 강조하는 것이다.

교육애란 자라나고자 하는 생명에 대한 사랑이며 미성숙자를 이상적 인간으로 인도하고자 하는 연민심이다. 붓다의 정각 직후 깨달음의 난해성과 중생의 우매함으로 인하여 설법을 주저하고 있을 때, 범천이 내려와 “연꽃이 비록 땅에서 나오긴 했지만 아직 물 위쪽으로 나오지 못해 피지 못했더라도 때가 되면 마침내 물 위로 솟아오르고 그 꽃은 물에 젖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말한다. 붓다는 범천의 말과 같이 중생의 무한 향상 가능성에 대한 확신에서 설법을 결심하게 됐다. 미혹한 이들에 대한 교육적 연민심이 대중교화를 결심케 한 동인이 됐던 것이다. 붓다는 자비심으로 가득한 교육애로 제자를 외호(外護)해 주고 동행(同行)하면서 적절한 방법으로 가르쳤기 때문에 그 교육 성과는 탁월했다. 그러면 인류의 이상적 스승으로서 붓다의 교육 원리와 그 특징은 무엇일까?

붓다는 무엇보다도 권위로써 군림하려는 카리스마형 스승이기를 원치 않았다. 붓다는 기존의 신(神)의 개념에서 벗어났으며, 성직자의 교권주의를 비판하면서 어떤 권위에도 의지하려고 하지 않았다. 스스로를 신격화하려고 하지 않은 것은 자신만이 진리를 소유하고 있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입장은 붓다의 제자 교육에도 그대로 반영되었다. 진리는 스스로 관찰하고 배워야지 스승에게만 의지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특정 사람에 의지하지 말고 법에 의지하라(依法不依人)’고 경계하였다. 붓다는 제자에게 권위적 존재가 아닌 서로 존중하고 경애하는 ‘좋은 친구’가 되고자 하였다. 진리의 길을 함께 가는 동행자가 되고자 한 붓다의 태도는 민주적인 교사상의 모범이라 할 것이다.

붓다의 교육 방식은 철저하게 학습자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붓다의 설법은 대부분 제자들의 질문에 의해 전개되었으므로 그 설법 주제도 자연스럽게 학습자의 요구에 따랐다. 붓다의 설법은 개인의 능력과 성향을 먼저 연구하고 이에 대응하여 적절한 가르침을 베풀어주는 이른바 ‘개별화 원리’에 따르고 있다. 교육에 있어서 개별화란 학습자의 지능과 성격, 욕구와 정서적 특징 등의 차이와 수준을 고려하여 이에 맞게 지도하는 것이다. 붓다에게는 중생의 근기의 높고 낮음과 우열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는 독특한 교육적 능력이 있었다. 청법자들의 과거⋅현재⋅미래의 행위 및 실태를 여실히 알고 그 성향과 근기를 심층적으로 이해했으므로 그 교육적 성과는 탁월했던 것이다.

붓다는 교육에서 방법의 중요성을 실천으로 보여준 스승이었다. 보리수 아래에서 처음 설법을 결심한 붓다에게 다가온 고심은 ‘깨달음의 진리를 과연 중생에게 잘 전달할 수 있을까?’ 하는 방법의 문제였다. 붓다는 절대 진리를 가르친 것이 아니라 진리로 가는 길[mārga]을 가르쳤다. 붓다의 교법이 단지 방편이라는 것은 그 설법의 언어에서 진리를 찾기보다는 그 언설이 사용된 맥락과 쓰임의 문제를 더 중요시해야 함을 의미하는 것이다. 세간적 언어와 관습의 논리를 떠나 진리를 설할 수 없으므로 붓다는 세간적 방편을 중시하였다. 붓다의 설법은 단지 맥락적 진리이므로 진리는 방법 그 자체에서 찾을 수 있다. 따라서 궁극적 진실[勝義]과 방편은 상호 순환적인 역동적 관계에 있게 되는 것이다.

붓다의 설법은 대부분 점진적 교육과정과 논리적 설명으로 채워져 있다. 슈라바스티국의 녹자모 강당에서 당대의 수학자였던 한 브라만과의 대화를 통해 붓다는 수학의 학습 과정과 같이 자신의 가르침에도 체계적인 교육과정이 있다고 하였다. 붓다는 삼업(三業)을 청정히 하는 것을 먼저 가르치고 나서 그것을 잘 실행하면 그 위 단계의 진리를 가르친다고 답하고 있다. 마치 능숙한 말 조련사가 자질이 좋고 혈통이 좋은 말을 얻어 처음에는 재갈을 무는 것에 익숙하게 하고 이어서 그 이상의 동작을 할 수 있도록 훈련시키는 것처럼, 여래도 조련시켜야 할 훌륭한 학생을 얻어서 처음에는 계율을 가르치고 나서 그 이상의 단계로 인도한다는 것이다. 붓다는 교리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종교 수행이나 체험의 영역에서도 점진적 교육을 선호하였다. 쉬운 데서부터 점차 어려운 데로 전개해가는 계열성의 원칙은 대중적인 교육과정에서 필수적이다. 교육에서 직관적인 요소도 중요하나 일반 대중에게는 점진적인 교육과정이 더 필요하기 때문이다.

붓다는 불필요한 회색의 이론이나 형이상학적 논의보다는 학습자가 현재 필요한 문제를 먼저 해결해 주고자 했다. 이러한 실존적 접근법은 붓다의 모든 설법의 기본 원리가 되었다. 즉 현재의 사실 확인에서 출발하여 그 사태의 원인을 규명하고 이에 따른 사태의 전환 가능성과 목표를 설정하고 그 달성을 위한 방법을 찾아 실천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스스로 문제를 찾아 해결하는 자기 주도적인 탐구학습이 중요하다. 붓다의 교육은 단순히 이론적 지식을 전달하는 ‘채워주는 교육’보다는 학습자의 잠재적 소양을 계발시키려는 ‘이끌어 내주는 교육’이자 학습자가 ‘스스로 발견하는 교육’이었다. 붓다는 ‘자신은 길을 가르쳐줄 뿐이며 그 가르침을 따라 목적지에 가든지 가지 않는다든지 하는 것은 가는 자의 문제’라고 하였다. 법을 등불 삼고 자신을 마지막 귀의처로 삼아야 한다는 것은 교육이 결국 자신의 문제이며 학습의 궁극적 주체도 자기 자신임을 일깨워주는 것이다.

김용표동국대 명예교수
김용표
동국대 명예교수

이상과 같이, 붓다의 교육자로서 특성은 현대에도 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교사들의 모델이 되기에 충분하다. 붓다는 있는 그대로의 실상을 깨달은 지혜인인 동시에 동체대비를 몸소 실천한 자비인이었다. 그는 자신이 증득한 진리를 대중들에게 가르쳐 주체적으로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살도록 인도하였다. 그러므로 붓다의 교육 이상은 지혜인·자비인·주체인·자유인의 형성을 지향하고 있다. 붓다가 인류의 큰 스승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도 인간에 대한 무한한 사랑과 연민심에 바탕을 둔 교육애와 그 교육 방법의 뛰어남에 있었다. 다양한 방편 시설과 수기적 교육을 통해 보여준 뛰어난 교수법은 붓다를 인류의 위대한 스승의 모델이 되게 하였다.

[1586호 / 2021년 5월1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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