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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제식 교육 약화로 은사 역할 축소…신참출가자에겐 여전히 의지처

불교의 스승 - 5. 오늘날 스승(은사) 위상과 역할

승단세속화로 전통적 은사·상좌 제도 왜곡현상 심화
공교육·복지제도 개선됐다지만 여전히 은사제도 필요
낯선 환경 적응하는 상좌에게 은사의 관심은 버팀목 

현대에 들어서도 은사는 갓 출가한 발심자들이 여법하게 승단의 일원으로 자리매김 할 수 있도록 돕는 후견인이자 정신적 스승이다.  법보신문 자료사진
현대에 들어서도 은사는 갓 출가한 발심자들이 여법하게 승단의 일원으로 자리매김 할 수 있도록 돕는 후견인이자 정신적 스승이다.  법보신문 자료사진

부처님 입멸 후 2600여년 동안 불교가 그 전통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은사‧상좌 제도 때문일 수 있다. 기록문화가 발달하지 않았던 시대 은사의 말과 행동은 곧 법이었고, 깨달음으로 향해가는 지침이 됐다. 출가수행자로서 위의를 갖추고 여법하게 승단의 일원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이끄는 은사는 갓 출가한 발심자의 의지처이기도 했다. 그렇기에 은사와 상좌가 인연을 맺는 것은 부처님 법을 잇고 승단을 유지하는 불교의 오랜 전통이었다.

그러나 현대에 들어 이 같은 전통은 옅어지고 있다. 산업화에 따른 핵가족화로 전통적인 가족관계가 흔들리듯 승단 내에서 사제 관계도 큰 변화를 맞고 있다. 이제 후학들에게 은사는 더 이상 자신을 올바른 길로 인도해 주고 깨우쳐 주는 역할 만을 하는 존재가 아니다. 오히려 자신의 앞날에 도움을 줄 수 있는지 여부가 은사와 인연을 맺는 중요한 변수가 되고 있다. 이렇다보니 어떤 스님 밑에는 제자가 되겠다는 출가자가 넘쳐나고, 어떤 스님 밑에는 와달라고 해도 안 가는 기현상이 생겨나고 있다. 최근 출산율 감소와 탈종교화에 따른 출가자 감소가 이어지면서 이 같은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상좌를 받는 것에도 ‘부익부 빈익빈’이 심화되고 있는 셈이다. 

은사들이 감당할 수 없으면서 일단 상좌로 받아들여놓고 보자는 식의 문화도 이런 현상을 부추기는 요인이 되고 있다. 종단의 주요 대표자를 선거로 선출하다보니 교구본사주지 등에 나서기 위해서는 상좌가 많은 것이 득이 되기 때문이다. 심지어 ‘건당(建幢)’이라는 제도를 활용해 다른 스승 밑에서 출가한 스님들까지 상좌로 받아들이는 일도 빈번하다. 원래 건당은 ‘법의 깃발을 세운다’는 의미로 선지식으로부터 법을 이어 새로운 안목을 열었음을 대외에 드러내는 의식이었지만, 현대에 들어서는 은사를 바꾸는 것으로 곡해되고 있다. 

율장을 경시하고 사회제도를 조급히 도입하면서 승단에 깊숙이 물든 세속화가 초래한 결과지만, 스님들에 대한 안정적인 복지체계가 마련되지 못한 현실을 고려하면 무조건 탓할 수만도 없다. 그렇더라도 전통적인 은사·상좌제도의 붕괴는 또 다른 병폐를 양산하고 있다. 특정 스님 밑에 많은 제자들이 모이고, 이렇게 모인 대중은 거대한 문중을 형성한다. 이를 기반으로 특정 문중은 승단 내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문중에 속한 스님들은 그렇지 못한 스님들에 비해 더 많은 혜택을 받는다. 승단구성원 모두 부처님 법을 잇기 위해 출가한 스님들이지만, 이 같은 불평등은 승단 화합을 저해하는 요소로 지적되고 있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이제 은사·상좌제도의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는 시각도 있다. 

A교구본사주지스님은 “종단 혹은 교구본사를 중심으로 스님들의 교육과 복지가 이뤄지고 있는 상황을 고려한다면 과거와 같은 은사·상좌제도를 그대로 유지할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라며 “어차피 모든 대중이 일불제자라는 점에서 필요하다면 당대 종정스님을 출가자 모두의 은사로 모시도록 은사·상좌제도를 개선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종단 차원에서 승가교육제도를 도입하고 합동수계 등을 진행하면서 빠르게 공교육 체계가 자리 잡았고, 종단과 교구본사 차원에서 기본적인 복지제도를 운영하고 있는 점에서 굳이 과거의 ‘도제식’ 교육 제도를 그대로 답습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은사·상좌제도는 더 이상 필요 없는 것일까. 이에 대해 많은 스님들과 계율전공 학자들은 깊은 우려를 드러내고 있다. 세속에서 성장기에 있는 아이들의 인성함양을 위해 학교교육과 더불어 가정교육이 보완돼야 하는 것처럼 출가자가 여법하게 승단의 일원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은사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이다. 

‘율장 건도부 분석에 의한 승가의 지도자상 정립(이자랑)’에 따르면 은사제도는 부처님 당시 신참 출가자의 교육을 위해 처음 도입됐다. 승단의 일원이 된 신참 출가자들은 가사를 올바르게 착용하는 방법도, 출가자로서 지녀야 할 위의도 제대로 몰랐다. 탁발을 하러 가서도 품위 없는 행동으로 재가신도들의 비난을 샀다. 이를 알게 된 부처님은 신참 출가자들이 승려로서의 위의를 갖출 수 있도록 화상(和尙)제도를 마련한 것이 은사·상좌제도의 기원이 됐다. 

화상은 훗날 덕이 높은 스님을 가리키는 말로 통용되고 있지만, 초기에는 출가에 뜻을 둔 재가자가 정식 절차를 밟아 승단구성원이 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출가한 이후 낯선 환경에 잘 적응하도록 일정기간 교육을 담당하는 스승을 의미했다. 

부모가 자식을 돌보듯, 화상은 자신의 제자가 어엿한 출가자로 자리 잡을 때까지 출가생활에 필요한 기본적인 지식을 비롯해 물심양면으로 세심하게 지도하는 역할을 했다. 화상과 제자의 관계가 단순히 사제관계를 넘어 부모와 자식의 관계에 비유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화상이 되기 위한 자격요건도 까다로웠다. 율장에 따르면 화상이 반드시 지녀야 할 덕목으로 법랍 10년 이상이어야 하며, 율에 정통하고 잘 지키며, 제자의 질문에 대답해 의문을 풀어줄 수 있어야 하고, 스스로 부끄러움을 느끼고 참회할 줄 알아야 하며, 제자를 잘 돌보며 제자의 행동이 율을 어긴 것인지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안목 등을 갖춰야 했다. 지혜와 수행력 등을 갖춘 스님만이 화상이 될 수 있었던 셈이다. 

오늘날 출가한 스님들에게도 처음 승가의 일원이 되면 모든 것이 낯설기는 매한가지다. 세속과 다른 환경에 적응해야 하고, 스님으로서의 위의와 예법도 익혀야 한다. 때론 대중생활 속에서도 최소한의 경비가 필요하고, 학문적 영역을 넓히기 위해 유학 등을 갈 경우 막대한 비용이 따른다. 

일부 교구본사에서 학인스님들에 대한 재정적 지원을 확대하고, 종단차원에서도 장학제도를 늘리고 있지만 모든 스님들에게 고루 지원되는 것은 아니다. 이럴 때 학인스님들이 기댈 곳은 세속의 부모와 같은 은사스님 밖에 없다. 물질적인 지원뿐 아니라 신참 출가자에게 은사는 정신적 스승이기도 하다. 어떻게 하는 것이 부처님 법에 어긋나지 않는 행동인지를 알려주고, 제자의 잘못을 보면 나무라고 깨우쳐 주는 것도 은사의 몫이다. 

사찰승가대학에서 학인을 지도하고 있는 B스님에 따르면 요즘 출가한 스님들은 은사스님 만나는 것을 꺼리는 경향이 있다. 억겁의 시간동안 이어져 온 지중한 인연이지만, ‘제도적인 은사·상좌’로 맺어진 탓에 은사도 상좌도 서로에 대한 애틋함이 부족하다. 이렇다보니 만나도 특별히 나눌 대화가 없다. 때론 같은 승가대학에 다니는 다른 학인들로부터 배려 깊은 은사의 이야기를 듣게 되면 소외감도 갖는다. 부모의 관심을 받지 못하고 성장한 아이가 사회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일이 종종 있듯, 은사로부터 소외된 출가자들이 출가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배회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B스님은 “요즘 출가한 스님들은 경제적 지원보다 은사스님으로부터 따뜻한 배려를 원하고 있다”며 “자신의 공부가 어디에 이르고 있는지, 출가생활에 어려움은 없는지,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지 등 살뜰하게 살펴 전하는 은사의 그 한마디 한마디가 상좌에게는 출가생활을 이어가는 버팀목이 된다”고 말했다.  

‘상좌가 하나면 지옥이 하나’라는 말이 있다. 스승이 된다는 것이 그만큼 어렵다는 의미다. 여법한 출가자를 키워내는 것은 은사로서도 인고의 시간이다. 그렇기에 서로 인연을 맺고 함께 살아가는 것은 은사와 상좌 모두에게 출가수행자로서 본분을 찾아가는 수행의 과정일 수 있다.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보듯 상좌의 허물이 곧 자신의 허물임을 깨닫고, 올곧은 스승의 삶을 닮아가려는 것은 그 자체로 깨달음으로 향해가는 첩경이기 때문이다. 

통도사 율원장 덕문 스님은 “일부 스님들이 이제 은사를 따로 둘 필요가 없다는 주장을 하지만 이는 제도적인 은사·상좌 관계로만 바라보기 때문”이라며 “출가해서 부처님 정법을 잇고 새롭게 승단을 이끌 지도자를 키워내는 것만큼 큰 보람이 없고, 훌륭한 스승의 애정 어린 지도만큼 값진 보물이 없다. 세속화가 급격히 진행되는 현대 승가에서 율장 정신에 바탕으로 둔 은사·상좌제도는 화합하고 청정한 승가공동체를 유지하는 데 꼭 필요한 제도”라고 강조했다. 

권오영 기자 oyemc@beopbo.com

[1586호 / 2021년 5월1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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