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껍질 안에서 기척이 들릴 때까지 기다리며 품어내는 게 스승

불교의 스승 - 3. 선(禪)의 스승

선에선 홀로 깨닫는 것 지극히 경계…사제 간 교육 행위가 중요
제자가 언어로 건넨 말에 빠지지 않고 그 너머 볼 수 있게 유도
선사들은 그저 스승으로 살고 다만 스승으로 기억되는 것일 뿐

일본 무로마치 시대 셋슈 토요 스님(雪舟等陽, 1420~1506?)의 ‘혜가단비도’. 달마가 암벽 속에서 면벽 수행을 하고 있고, 달마에게 가르침을 구하고자 온 혜가가 자신이 끊어버린 왼팔을 부여잡고 얼굴을 찌푸리고 있다. ‘혜가가 팔을 자르다’ ‘팔을 잘라 법을 구하다’는 마음과 분별에 관한 중요한 화두로 불교에서 오랫동안 전승되고 있다.
일본 무로마치 시대 셋슈 토요 스님(雪舟等陽, 1420~1506?)의 ‘혜가단비도’. 달마가 암벽 속에서 면벽 수행을 하고 있고, 달마에게 가르침을 구하고자 온 혜가가 자신이 끊어버린 왼팔을 부여잡고 얼굴을 찌푸리고 있다. ‘혜가가 팔을 자르다’ ‘팔을 잘라 법을 구하다’는 마음과 분별에 관한 중요한 화두로 불교에서 오랫동안 전승되고 있다.

영수여민 선사에게 어떤 제자가 물었다.
“조사가 서쪽에서 오신 뜻이 무엇입니까?”
선사가 잠시 말없이 있다가, 제자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내가 나의 행장비(行狀碑)를 세우려고 하는데, 비에 쓸 한마디 말을 지어 보라. 만약 들어맞는다면 조사서래의(祖師西來意)를 물을만한 자격이 있다고 할 것이다.” 
제자들이 저마다 한마디씩 했지만 아무도 스승의 뜻에 들어맞지 않았다.
나중에 영수여민이 세상을 떠난 뒤한 제자가 운문 선사에게 물었다. 
“누군가가 열반하신 스승을 위해 비를 세운다면 무어라 해야 하겠습니까?”
운문이 대답했다. 
“스승[師]이니라.”

운문문언(雲門文偃, 864~949)은 중국 당말 오대시기의 빼어난 선승이었다. 선종 오가(五家)의 하나인 운문종의 창시자로 알려진 인물이다. ‘마른 똥 막대기’ ‘호떡’ ‘날마다 좋은 날[日日是好日]’ 등의 화두로 유명한 바로 그 선사이다. 

운문은 제방의 여러 선사를 친견하고 점검하며 수행했는데, 그중에 한 사람이 영수여민(靈樹如敏, ?~920) 선사였다. 그는 문하에 수백 명의 대중을 거느리고 참선 지도를 하면서도, 운문 선사가 찾아오기 이전까지 20년 동안이나 수좌(首座) 자리를 비워놓고 있었다고 한다. 

두 사람이 만난 때는 건화(乾化) 원년, 서기 911년쯤으로 알려져 있다. 어느 날 아침, 영수 선사는 “오늘은 수좌 스님이 올 것이니 모든 대중은 맞을 준비를 하여라”고 일렀다. 시간이 되자 과연 한 낯선 수행자가 산문 어귀로 들어섰다. 영수 선사가 “수좌 자리에 모셔라!”하니, 대중들이 운문 선사를 수좌 자리에 안내했다. 

그때 갑자기 대중 가운데 한 사람이 칼을 들고 뛰어나와 운문 선사의 정수리에 대고 소리쳤다. 

“이때를 당해 어떠한가?” 

운문이 대답했다. 

“피가 하늘 세계 범천궁(梵天宮)까지 넘쳤느니라.” 

말을 마치자 칼 든 사람이 칼을 거두고 큰절을 했다. 영수여민과 운문문언은 그렇게 만났다. 

앞의 이야기는 ‘선문염송’ 가운데 제853칙에 수록된 공안이다. 원문을 살펴보면 시차를 둔 두 가지 사건이 하나의 고칙(古則)에 중첩되어 들어가 있어 앞뒤가 잘 맞지 않는다. 하지만 찬찬히 살펴보면 겨우 맞춰진다. 앞의 이야기는 앞뒤를 맞춰 재구성한 것이라 원문 내용과는 약간 차이가 있다. 

영수여민의 생전에 그 문하의 제자들이 ‘조사서래의’ 공안에 관해 묻곤 했던 모양이다. 그런데 영수 선사는 매번 양구(良久), 즉 아무 대답도 해주지 않았다. 답답해하던 제자들을 보다 못한 그는 짓궂은 질문을 했다. 내가 행장비(行狀碑)를 하나 세우려고 하는데, 비에 쓸 한마디 말을 잘 지어 보라는 주문이었다. 제자들은 당연히 온갖 좋은 말귀를 동원해서 이런저런 비문을 지었을 테고, 또 번번이 퇴짜를 맞았을 것이다. 그렇게 영수 선사는 끝내 제자들에게 아무 대답도 남기지 않은 채 입적하고 말았다.

영수의 법석을 이어받은 인물이 바로 운문 선사였다. 제자들은 갑자기 나타나 수좌 자리를 꿰차고 법석까지 이어받은 그에게 물었다. 

“열반하신 스승을 위해 비를 세운다면 무어라 해야 하겠습니까?” 

그것은 세상 떠난 스승이 생전에 던졌던 질문이었고, 끝내 스승의 뜻에 들어맞는 답을 주지 못한 물음이었다. 운문의 대답은 섬뜩할 만치 간명했다. 

“스승[師]이니라.”

200년 동안 이 ‘사(師)’자 하나를 두고 5호(湖)의 납자들 모두가 의심했다고 ‘염송’에는 적혀 있다. 운문이 내지른 ‘스승’이라는 한 마디는 쉽사리 가늠되지 않음으로써 사람들 입에 오랫동안 오르내렸다. 책에서는 다시 덧붙이기를, “단단한 돌에다 억지로 새겨 넣는다고 해서 이름이 남는 게 아니다. 길거리 오가는 사람들의 입이 곧 비석이니라.” 

운문 선사는 ‘스승[師]’이라는 한 마디로 세상에 둘도 없는 행장비를 세웠고, 영수 선사는 사람들의 입을 통해 이름이 남았다.

뒷사람들은 운문의 “스승[師]이니라”는 한 마디를 두고, 바닷물을 먹으로 삼아 쓰더라도 다할 수 없다고 했다. 아무리 행장을 구구절절이 적고 공덕을 나열해도 ‘스승’이라는 한 마디에 필적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운문은 깊게 새기고 길게 적는 것의 가망 없음에 몸서리쳤을 것이다. 깊고 길게 적는 것이 새겨지는 자를 위한 것인지 아니면 새기는 자를 위한 것인지 그는 되묻고 싶었을 것이다. ‘스승’이라는 한 마디는, 선사들은 그저 스승으로 살고 다만 스승으로 기억될 뿐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 

맹자는 사람에게 흔히 몹시 나쁜 병폐[人之患]가 있는데, 바로 남의 선생 노릇 하기 좋아하는 것[在好爲人師]이라고 꼬집었다. 송대의 주자는 왕면(王勉)이라는 사람의 말을 인용해서 맹자의 이 말에 대해 설명했다.

“학문하다가 여유가 있는데 남들이 자문하면 부득이 응하는 것은 옳다. 하지만 남의 선생 노릇 하기를 좋아하게 되면 스스로 만족하게 되니 다시는 공부에 진전이 없게 된다. 이것이 바로 사람의 큰 병폐이다.” 

왕면은 ‘부득이(不得已)’라는 한 마디로 폐단에 빠지기 쉬운 마음을 막아서려 했다. 남의 선생 노릇 하기 좋아하는 마음을 막아서기에 ‘부득이’라는 한 마디는 많이 힘겨워 보인다. 

동아시아 문화가 내포하는 강한 역사성과 사회성을 보여주는 것이 바로 교육이다. 교육을 통한 사문(斯文)의 유지와 존속은 공자(孔子) 이후 동아시아 문화를 지탱해온 절대 가치였다. 

선 수행에도 이러한 정신이 강하게 내포돼 있다. 선문의 교육은 당 송대 선사들의 법거량(法擧揚)과 공안(公案) 공부에서 확인되는데 스승과 제자, 교육자와 피교육자 사이의 ‘관계’와 ‘말[言語]’을 핵심적인 교수법으로 했다. 그리고 여러 선어록과 공안집에서는 공안을 통한 말[言語]의 전복(顚覆)과 줄탁동시(啐啄同時)의 교육행위가 두드러진다.   

선에서는 독각(獨覺)을 지극히 경계했는데, 독각에서는 스승과 제자의 관계와 교육 행위가 성립되지 않기 때문이다. 독각은 그 자체로 비사회적이며 몰역사적 깨침의 성격을 내포한다. 선에서는 깨침의 내용이나 결과 못지않게 깨침의 방식과 과정에도 비중을 두었다. 선에서 교육은 살활(殺活)과 기용(機用)이라는 압축적이고 상징적인 개념으로 나타난다. ‘벽암록’에서는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하는 칼은 예로부터 전해오는 지도법이며 또한 이 시대의 요체이기도 하다”고 했다.

인도불교 전통에서 깨달음의 지혜를 나타내는 말은 한자어 반야(般若)로 음역됐고, 지혜(智慧)로 의역됐다. 지(智)와 지(知) 사이의 간격을 정확히 확정할 수는 없으나 선문 안쪽의 ‘지지일자 중묘지문(知之一字 衆妙之門)’이나 ‘공적영지(空寂靈知)’라는 표현에는 지(知)를 통해 지(知)를 넘어서려 했던 동아시아 지성의 엄중함과 교육에 대한 강한 믿음이 내포돼 있다. 

선에서 제자는 공안이라는 말의 형식을 통해 ‘실재-인식-말’, 이 세 가지 사이의 불협화음과 그 자체의 한계를 알아채도록 교육받는다. ‘소’라는 말속에는 소[牛]가 없는 것처럼, 공안은 애초부터 읽어 내거나 알아내야 할 어떤 진리가 내포되어 있지 않다. 그러니 스승은 가르쳐야 할 것이 없고 제자는 배워야 할 것이 없으며, 가르치고 배움이 없으니 스승도 제자도 끝내 없는 것이다. 그러니 남의 선생 노릇 하기 좋아하는 습성은 선문 안쪽에서는 어림도 없는 짓이다.

언어로 된 공안을 드는 이유는, 말을 말미암지 않고는 도(道)가 드러날 수 없기 때문이다. 공안 수행은 말을 타고 말을 넘어가는 방법이다. 그러므로 공안은 활(活)이 된다. 

반면 수행자가 말속에서 길을 잃게 되면 홀리고 죽게 되니 공안은 언제라도 살(殺)이 될 수 있다. 말을 타고 마침내 말을 넘어서야 하는 공안 수행은, 언어의 자기 완결성과 자기 분열성을 동시에 확인해야 하는 일이다. 이것은 곧 언어 자체가 본래 자기 완결적이면서 또한 자기 분열적이라는 뜻이고, 존재가 또한 그러하다는 얘기다. 공안은 그런 세상을 본떠 놓은 것이다.

박재현
동명대 교수

‘조사서래의’를 묻는 제자들의 절박함을 더는 못 본 체할 수 없어, 영수 선사는 부득이하게 행장비에 쓸 한마디를 지어 보라고 했다. 스승의 뜻에 걸 맞는 한마디를 끝내 찾지 못한 제자들이 안타까워, 운문 선사는 또 부득이하게 ‘스승[師]’이라고 한마디 겨우 일렀다. 선문의 다른 스승들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선문의 스승들이 행한 선문답은, 말을 하지만 말의 덫에 빠지지 않고 말 너머를 보게 하려고 부득이하게 행한 교육이었다. 

선문의 스승들은 남의 선생 노릇 하기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라, 알 안쪽에서 기척이 들릴 때까지 알을 품어내는 고단함을 견뎌낸 이들이었다.

[1586호 / 2021년 5월1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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