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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빠세나디 왕과 붓다의 대화

기자명 마성 스님

맹렬히 다가오는 죽음 앞에 할 일은 ‘십선업’

붓다, 빠세나디 왕에 “재난·죽음 상황서 무엇 할 것인가” 질문
군대·권력·재물로도 막을 수 없고 정행·선업을 실천하는 것뿐
‘상윳따니까야’ ‘잡아함경’ 등 경전도 의·법·복·자 닦을 것 강조

2세기 초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간다라 보살상.
2세기 초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간다라 보살상.

나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니까야를 읽는다. 이해가 잘 안 되는 부분은 대응하는 아가마와 대조해 보기도 한다. 그러면 선명하게 이해될 때도 있다. 초기경전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감동이 조금씩 다르다. 예전에는 별로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던 경이 요즘에는 가슴에 와 닿는 경우도 있다. 연륜이 쌓이지 않으면 공감할 수 없는 내용이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최근 ‘빱바뚜빠마-숫따(Pabbatū pa ma-sutta, 산의 비유경)’(SN3:25)를 읽으면서 큰 감동을 받았다. 이 경은 꼬살라국의 빠세나디(Pasenadi, 波斯匿王) 왕과 붓다의 대화로 이루어져 있다. 이 경은 거대한 석산이 무너져 내리는 것과 같은 큰 재해가 일어났을 때 왕이 무엇을 해야 하며, 늙음과 죽음이 맹렬하게 추격해 올 때 왕이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빠세나디 왕이 한낮에 먼지를 뒤집어쓴 채 붓다를 찾아왔다. 붓다는 “대왕이시여, 어디서 오는 길입니까?”라고 물었다. 그러자 왕은 “광대한 영토를 다스리는 끄샤뜨리야 왕에게는 왕으로서 해야 할 일들이 있습니다. 저는 요즘 그 일에 성심을 다하고 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주석서에 따르면 왕은 조금 전 반란을 모의한 500명의 반역자를 잡아 극형에 처했다고 한다. 그러나 경에서는 이에 대한 언급이 없다. 다만 붓다는 왕에게 다음과 같이 묻는다.

“대왕이시여, 크나큰 재난이 일어나서 무시무시한 인간의 파멸이 벌어지고 인간으로서 더 이상 존재하기가 어려워졌을 때 그대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이 물음은 국가적으로 큰 재난, 즉 지진이나 화산 폭발과 같은 천재지변이 일어났을 때 왕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이다. 경에서는 큰 석산이 모든 것을 쓸어버리고 있다고 묘사하고 있다. 이것은 화산이 폭발하여 용암이 흘러내리는 광경을 묘사한 것처럼 보인다.
“세존이시여, 이와 같은 크나큰 재난이 일어나서 무시무시한 인간의 파멸이 벌어지고 인간으로 더 이상 존재하기가 어려워졌을 때에는 법대로 행하고(dhamma-cariyā, 法行) 바르게 행하고(sama-cariyā, 正行) 선을 행하고(kusala-kiriyā, 善業) 공덕을 짓는 것(puñña-kiriyā, 福業) 외에 더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SN.Ⅰ.101]

왕은 국가적 재난 상황에서는 ‘법대로 행하고 바르게 행하고 선을 행하고 공덕을 짓는 것’ 외에 더 무엇을 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한다. 영민한 왕의 통찰력이다. 이것은 시사(示唆)하는 바가 크다. 왕이 말한 ‘법대로 행하고, 바르게 행하고’를 주석서에서는 ‘열 가지 유익한 업의 길’, 즉 십선업도(十善業道)를 실천하는 것이라고 해석한다.

사실 지진이나 태풍 등 자연재해가 발생했을 때,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다. 국가적으로 크나큰 재난이 닥쳤을 때, 왕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은 선정(善政)을 베푸는 것뿐이다. 즉 재난을 당한 사람들을 구제하고 그들에게 필요한 물품을 제공하는 것이 왕이 할 수 있는 일이다. 그것을 다하지 않는다면 훌륭한 통치자라고 할 수 없다.

그러자 다시 붓다는 왕에게 “지금 늙음과 죽음이 그대를 향해 맹렬하게 추격해 오고 있습니다. 대왕이시여, 늙음과 죽음이 그대를 향해 맹렬하게 추격해 오고 있을 때 그대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라고 물었다.

“세존이시여, 늙음과 죽음이 저를 향해 맹렬하게 추격해 오고 있을 때에는 ‘법대로 행하고 바르게 행하고 선을 행하고 공덕을 짓는 것’ 외에 더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광대한 영토를 다스리는 끄샤뜨리야 왕에게는 코끼리 부대(象軍)가 있습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나 그런 코끼리 부대로도(기마부대로도, 전차부대로도, 보병부대로도) 맹렬하게 추격해 오는 늙음과 죽음에 대해서는 어떻게 해볼 여지도 없고 어떻게 해볼 대책도 없습니다.”[SN.Ⅰ.101]

왕의 곁에는 큰 위력을 가진 대신들이 있고, 왕은 많은 재물을 보관하고 있다. 적들이 쳐들어오면 뛰어난 대신들이 책략으로 저들의 분열을 획책할 수 있고, 재물로 적들을 설득할 수 있다. 그러나 대신과 재물도 맹렬하게 추격해 오는 늙음과 죽음에 대해서는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다고 실토한다. 그러자 붓다는 왕에게 이렇게 말한다.

“참으로 그러합니다. 대왕이시여, 참으로 그러합니다. 대왕이시여, 늙음과 죽음이 그대를 향해 맹렬하게 추격해 오고 있을 때에는 ‘법대로 행하고 바르게 행하고 선을 행하고 공덕을 짓는 것’ 외에 더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SN.Ⅰ.101]

이것은 코끼리 부대, 기마부대, 전차부대, 보병부대와 훌륭한 대신, 그리고 많은 재물을 가진 왕일지라도 맹렬하게 추격해 오는 늙음과 죽음에 대해서는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다는 것이다. 다만 그 대안으로써 ‘법대로 행하고 바르게 행하고 선을 행하고 공덕을 짓는 것’뿐임을 강조하고 있다.

한편 이 경에 대응하는 ‘잡아함경’ 권42 제1147경 ‘석산경(石山經)’에서는 재난으로 위기에 처했을 때에는 “오직 바름을 행하고 법을 행하고 복을 행하며, 오로지 부처님의 가르침에 귀의하는 것일 뿐(唯有行義・行法・行福, 於佛法敎專心歸依)”[T2, p.305b]이라고 되어 있다. 또 늙음과 죽음이 추격해 올 때에는 “마땅히 바름을 닦고 법을 닦고 복을 닦고, 선을 닦고, 자애를 닦고, 부처님의 가르침 안에서 방편으로 노력하는 것일 뿐(正當修義・修法・修福・修善・修慈, 於佛法中精勤方便)”[T2, p.305c]이라고 나타난다.

이 경의 앞부분에서는 바름을 행하고[行義]. 법을 행하고[行法], 복을 행하고[福行]라고 표현하고 있지만, 뒷부분에서는 바름을 닦고[修義], 법을 닦고[修法], 복을 닦고[修善], 자애를 닦고[修慈]로 표현하고 있다. 말만 다를 뿐 그 의미에는 큰 차이가 없다. 마찬가지로 ‘상윳따 니까야’에 나타난 교설과 한역 ‘잡아함경’에 나타난 교설이 서로 표현만 다를 뿐 내용이 일치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자연재해와 코로나바이러스와 같은 전염병이 인류의 안전을 위협하고 있다. 또 개인적으로는 늙음과 죽음이 추격해 오고 있다. 이러한 때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법대로 행하고 바르게 행하고 선을 행하고 공덕을 짓는 것’뿐이다.

마성 스님 팔리문헌연구소장 ripl@daum.net

[1594호 / 2021년 7월2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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