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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열 가지 성스러운 삶

기자명 마성 스님

깨달음 여부, 삶의 모습서 확인할 수 있어

붓다, 제자들에 “성현들 사는 곳에 ‘열 가지 삶·일’ 있다”고 설해
‘증일아함경’ 행동 초점 둔 반면 ‘앙굿따라 니까야’는 정신 덕목
그럼에도 내용적 측면 같아…과거·현재·미래 성자 같은 삶 살아

빨리 삼장 전체를 태국어로 대리석에 새긴 석경(石經)이다. 이 경전 속에 성자(아라한)가 되는 붓다의 가르침이 설해져 있다.
빨리 삼장 전체를 태국어로 대리석에 새긴 석경(石經)이다. 이 경전 속에 성자(아라한)가 되는 붓다의 가르침이 설해져 있다.

‘아리야와사-숫따(Ariyavāsā-sutta, 聖居經)’(AN10:20)에서 붓다는 제자들에게 과거의 성자들도 ‘열 가지 성스러운 삶’을 살았고, 현재의 성자들도 ‘열 가지 성스러운 삶’을 살고 있으며, 미래의 성자들도 ‘열 가지 성스러운 삶’을 살 것이라고 했다. 이 경과 대응하는 ‘증일아함경’ 제42권 제2경(T2, 775c)에서는 성현들이 사는 곳에 ‘열 가지 일’이 있다고 설해져 있다. 두 경의 내용이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지만 같은 내용을 다루고 있다.

‘아리야와사-숫따’에 의하면, ‘열 가지 성스러운 삶’이란 “다섯 가지를 끊어버리고, 여섯 가지를 갖추고, 한 가지에 의해 보호되고, 네 가지에 의존하고, 독단적인 진리를 버리고, 갈망을 완전히 포기하고, 깨끗한 사유를 유지하고, 몸의 의도적 행위[身行]가 고요하고, 마음이 잘 해탈하고, 지혜로써 잘 해탈한다.”[AN Ⅴ, 30]는 것이다.

첫째, ‘다섯 가지를 끊어버리고’란 수행에 방해가 되는 다섯 가지 장애[五蓋, pañca-nīvaraṇa]를 끊어버렸다는 뜻이다. 다섯 가지 장애란 감각적 욕망, 악의, 해태와 혼침, 들뜸과 후회, 회의적 의심이다. 이 다섯 가지 장애를 극복하지 못하면 첫 번째 선정(初禪定)에 들어갈 수 없다. ‘증일아함경’에서는 ‘다섯 가지 일을 이미 제거했다[五事已除]’로 나타난다. 즉 오결(五結)을 이미 끊어버렸다는 뜻이다. 오결이란 오하분결(五下分結)을 말하는데, 유신견(有身見, 자아가 있다는 견해), 계금취견(戒禁取見, 잘못된 의례와 계율에 집착하는 견해), 회의적 의심(삼보와 계율 등을 의심하는 것), 욕탐(欲貪, 감각적 욕망), 진에(瞋恚, 악의, 노여움) 등이다. 오개(五蓋)와 오결(五結)을 완전히 제거하지 못했다면 성자라고 할 수 없다.

둘째, ‘여섯 가지를 갖추고’란 육근(六根)이 육경(六境)을 대할 때 그 어디에도 집착함이 없는 평온(upekkhā)을 유지하는 것을 말한다. 즉 “여기 비구는 눈으로 형상을 볼 때 마음이 즐겁거나 괴롭지 않고 평온하고 알아차리면서 머문다. 귀로 소리를 들을 때…코로 냄새를 맡을 때…혀로 맛을 볼 때…몸으로 감촉을 닿을 때…마노로 법을 알 때 마음이 즐겁거나 괴롭지 않고 평온하고 알아차리면서 머문다. 비구들이여, 비구는 이와 같이 여섯 가지를 갖춘다.”[AN Ⅴ, 30] ‘증일아함경’에서는 ‘여섯 가지 일을 성취한다[成就六事]’로 나타난다. 이것은 여섯 가지 중요한 법[六重法]을 성취했다는 뜻이다. 육중법이란 육근으로 육경을 인식할 때 기뻐하지도 않고 근심하지도 않고 평정한 마음으로 바른 기억과 바른 앎에 머문다는 뜻이다.

셋째, ‘한 가지에 의해 보호되고’란 비구가 사띠(sati)에 의해 보호된다는 뜻이다. 즉 수행자는 걷거나 서있거나 잠자거나 깨어있을 때 항상 지견(智見, ñāṇa-dassana)이 현전(現前, paccupa ṭṭhita)해야 한다. ‘증일아함경’에서는 ‘한 가지 일을 늘 보호한다[恒護一事]’로 나타나는데, ‘마음’에서 번뇌 있음[有漏]과 번뇌 없음[無漏], 함이 있음[有爲]과 함이 없음[無爲]을 항상 보호하여 열반의 문에 이른다고 해석한다. 같은 의미라고 할 수 있다.

넷째, ‘네 가지에 의존하고’란 어떤 것을 심사숙고한 다음 수용하고, 신중하게 참아내고, 신중하게 피하고, 신중하게 제거한다는 뜻이다. ‘증일아함경’에서는 ‘사부대중을 이끌어 보호한다[將護四部衆]’로 나타난다. 이것은 비구가 사신족(四神足)을 성취하여 사부대중을 이끌어 보호한다는 뜻이다.

다섯째, ‘독단적인 진리를 버리고’란 사문이나 바라문들이 가지고 있던 ‘세상은 영원하다’ 등과 같은 형이상학적인 견해, 즉 독단적인 진리를 모두 없애고 제거해버렸다는 뜻이다. ‘증일아함경’에서는 ‘약한 이를 보살핀다[觀諸劣弱]’로 나타난다.

여섯째, ‘갈망을 완전히 포기하고’란 감각적 욕망을 제거하고, 존재에 대한 갈망을 제거하고, 청정범행에 대한 갈애를 제거한다는 뜻이다. ‘증일아함경’에서는 ‘평등하게 가까이 지낸다[平等親近]’로 나타난다.

일곱째, ‘깨끗한 사유를 유지하고’란 감각적 욕망에 대한 사유, 악의에 대한 사유, 남을 해치고자 하는 사유를 제거한다는 뜻이다. ‘증일아함경’에서는 ‘번뇌 없는 곳으로 바르게 나아간다[正向無漏]’로 나타난다. 이것은 비구가 교만을 없애버린다는 뜻이다.

여덟째, ‘몸의 의도적 행위가 고요하고’란 제4선에 들어 들숨날숨이 가라앉은 상태를 가리킨다. 즉 “여기 비구는 행복도 버리고 괴로움도 버리고, 아울러 그 이전에 이미 기쁨과 슬픔을 소멸했으므로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으며, 평온으로 인해 알아차림이 청정한 제4선에 들어 머문다.” ‘증일아함경’에서는 ‘몸의 행을 고요히 한다[依倚身行]’로 되어 있다. 두 경의 내용이 완전히 일치한다.

아홉째, ‘마음이 잘 해탈하고’란 마음이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으로부터 해탈하는 것을 말한다. ‘증일아함경’에서도 ‘마음이 잘 해탈한다[心善解脫]’고 되어 있다. 두 경의 내용이 완전히 일치한다.

열째, ‘지혜로써 잘 해탈한다’는 것은 비구가 ‘나의 탐욕은 제거되었고 그 뿌리가 잘렸고 줄기만 남은 야자수처럼 되었고 멸절되었고 미래에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끔 되었다’라고 꿰뚫어 안다는 뜻이다. ‘증일아함경’에서도 ‘지혜로써 해탈한다[智慧解脫]’로 나타난다. 즉 “비구가 괴로움에 대한 진리, 괴로움의 발생, 괴로움의 소멸,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대한 진리를 사실 그대로 안다”는 것이다.

위에서 살펴본 열 가지 내용 중에서 넷째, 다섯째, 여섯째, 일곱째는 두 경의 내용이 일치하지 않는다. ‘증일아함경’에서는 성현들이 사는 곳에서 일어나는 ‘열 가지 일’에 초점을 맞추었고, ‘앙굿따라 니까야’에서는 성자들이 갖추어야 할 정신적 덕목에 초점을 맞추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아무튼 과거의 성자들은 열 가지 성스러운 삶을 살았다. 그리고 미래의 성자들도 열 가지 성스러운 삶을 살 것이다. 또 지금의 성자들도 열 가지 성스러운 삶을 살고 있다. 따라서 어떤 사람이 깨달았다고 말한다면, 붓다가 제시한 ‘열 가지 성스러운 삶’을 살고 있는가를 살펴보면, 그가 정말로 깨달은 성자인가를 곧바로 확인할 수 있다.

마성 스님 팔리문헌연구소장 ripl@daum.net

[1610호 / 2021년 11월2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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