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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직시한 자승 스님이 남긴 평생의 마지막 메시지는 수행과 전법

기자명 법보
  • 교계
  • 입력 2024.01.05 23:24
  • 수정 2024.01.06 05:48
  • 호수 1711
  • 댓글 7

[특별기고 : 해봉당 자승 대종사 입적에 대한 단상]

책임 있는 발표에도 추측 난무
입적 자체에만 왈가왈부 하고
쌓아온 행적은 주목하지 않아

수행·전법 가치 모를리 없지만
실행·독려 능력 갖추기 힘들어
자승 스님은 ‘수행=전법’ 해석

봉은사 간담회서 속내 드러내
어떻게 수행·전법할 것인지는
이제 남겨진 산 자들의 몫으로

지난해 11월 29일 원적에 든 조계종 전 총무원장 해봉당 자승 대종사의 49재가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신규탁 연세대 철학과 교수가 본지에 기고문을 보내왔다. 신 교수는 자승 스님의 입적을 둘러싼 불교계 안팎의 무분별한 비난에 대해 안타까움을 전하며 불자들에게 남겨진 과제는 수행과 전법임을 강조했다.편집자

불교계를 이끌던 지도자 중의 한 분이 입적하셨다. 입적의 기연(機緣)이 남달랐기에 놀랍기도 했고, 건강하시고 평소처럼 활동하시던 분의 갑작스러운 입적이었기에 더욱 놀라웠다. 필자는 법보신문 기사를 통해 자승 스님의 최근 정황을 알게 되었다. 지난 11월 27일 11시 봉은사에서 기자간담회가 열렸는데, 이는 자승 스님께서 자청해서 하는 처음이었고 결과적으로 마지막이 되어버렸다. 그로부터 이틀이 지난 29일 안성 칠장사 소식이 언론에 보도되었다. 

이때의 놀라움은 다만 필자만의 감정은 아니었을 것이다. 불교 안팎의 크고 작은, 다양하고 수많은 언론 매체에서 스님의 입적을 보도했다. 종단 구성원들도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고, 나아가 스님과 인연을 맺었던 각계의 사회 인사들도 그랬다. 그런데 스님의 입적과 관련하여 많은 추측이 난무했다. 조계종의 책임 있는 발표가 있었음에도 ‘사자명예훼손’이라고 판단할 만한 이야기들도 나왔다. 

◆ 죽음의 평가는 산 자의 몫
자승 스님이 총무원장으로 선출된 것은 2009년이었다. 재임을 거쳐 2017년에 임기를 마친다. 그 후 2023년 11월 27일 기자간담회 그날까지도 스님은 종단의 현실과 미래를 걱정하고 행동하는 실력자였다. 그런 스님의 입적에 대해 놀라고, 왜 그렇게 되었는지를 궁금해하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게다가 입적의 기연이 더욱 사람들을 그렇게 했다. 그런데 사람들은 스님의 입적 자체만 왈가왈부하고, 스님의 그간 행적과 뜻에는 그다지 주목하지 않는 듯하다.

한 사람의 죽음에 대한 기억과 평가는 산 자의 몫이다. 지난해 6월 16일, 필자는 20대 학창시절부터 따르고 닮으려 했던 스승 월운 스님의 입적을 겪었다. 무려 45년이 넘는 세월이다. 평소에 쓰시던 일기를 기초로 손수 추리신 회고록을 정리하여, ‘못다 갚을 은혜’라는 제목으로 칠칠재 기간 중 출판했다. 1차 자료의 보존이라는 측면에서, 당시가 상중(喪中)이었지만 이 작업을 했다. 

주목받는 스님의 입적에 즈음하여, 그것도 상중에 그분에 관한 글을 공개적으로 쓴다는 것은 쉬운 작업이 아니다. 월운 스님의 경우는 스님 일생 겪었던 일과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그중에는 살아있는 분들도 상당히 많다. 이것을 공개한다는 것이 과연 고인에게 누가 되지나 않을까? 수도 없이 고민했다. 그러나 1차 자료를 대중들과 공유한다는 점과 또 죽음에 대한 평가는 산자의 몫이라는 점에서 감히 결심하고 문도 스님들을 설득했다. 한국불교의 현대사 이해와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리라 생각한다. 자승 스님도 그런 분이시다.

그런 경험이 있는 필자로서는 법보신문에 2023년 12월 13일자, 20일자 그리고 2024년 1월 1일자 총 3회에 걸쳐 연재된 ‘파격의 입적, 자승 대종사와 한국불교’ 기획기사가 남의 일처럼 보이지 않았다. 꼼꼼히 읽었다. 위의 기사를 집필한 남수연 편집국장은 스님의 행적을 크게 네 범주에서 엮어낸다. 첫째, 정확한 판세 분석과 승부수, 둘째, 주고받음의 정치학, 셋째, 극한의 인내와 수행력, 넷째, 대대적인 결집 행사로 말이다. 그러면서 해당 범주에 속한 사례들을 객관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종교계 큰 인물의 죽음에 즈음하여, 그가 살아냈던 일생의 행적을 추켜세우거나 깎아내리는 억양의 감성을 노출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위의 기사는 담담하게 1차 자료를 토대로 자승 스님의 행적을 독자에게 소개한다.

요즘같이, 산산이 조각난 유리의 파편처럼 그것을 만지는 자의 손에도 상처를 내고 더욱이 남에게 겨누는 세월, 공적인 사건에 대해 공개적으로 글을 쓴다는 것은 쉬운 게 아니다. 그러나 회피할 수 없는 게 언론기관의 생태적 운명이고 거기에 봉직하는 기자의 일상이다. 불교를 지난 세월의 화석이나 유물을 연구하는 연구자를 넘어서, 이 시대의 문제를 지금의 언어로 설명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소위 철학하기를 자임하는 필자도 그런 운명이나 일상을 스스로 자처한다.

◆ 현대한국불교사의 자승 스님
1962년 ‘대한불교조계종’이라는 이름으로 오랜 전통의 한국불교가 하나의 공동체임을 세상에 알린다. 필자는 그 50주년을 돌아보면서 ‘한국 근현대 불교사상 탐구’(새문사, 2012년, 총521쪽)를 출판했다. 한국불교의 정체성을 밝혀보기 위해, 종단 출현의 역사, 불교 관련 법령, 불경의 한글 번역, 불교 의례 등을 분석했고, 또 각 방면의 지도자급 스님들의 사상을 분석했다. 

한국 현대불교의 역사 속에서 자승 스님은 2009년에서 2017년까지 8년간 총무원장 직을 수행했다. 1962년부터 2009년 제32대 총무원장 지관 스님의 퇴임까지, 총무원장의 재임기간은 평균 1년10개월 정도였고, 43년 동안 32대를 거쳤다. 1년도 임기를 못 채운 원장이 17명, 4년을 채운 원장은 의현, 월주, 지관 등 세 분이었다. 남수연 편집국장은 그렇게 적고 있다.

자승 스님의 출현 이후 총무원장 자리는 안정적이었다. 50대 중반에 총무원장이 된 스님은 8년이나 재직했고, 퇴임 후에도 활동했기 때문에 스님에게는 현장의 경험치가 많다. 필자는 이런 축적된 경험이야말로 불교계의 유산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스님이 입적 이틀 전에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기자간담회를 자청했다. 이 자리에서 스님은 ‘상월결사’의 정신을 사부대중이 함께 수행과 전법을 해 나아가는 것이라고 자리 매겼다. 메시지는 간결하면서도 분명하다. 2019년 겨울부터 시작되었던 ‘상월결사’ 현장을 필자는 방학을 이용해, 신도들을 위해 마련한 법당에 참배한 적도 있다. 당시 종정스님이 쓰신 ‘상월선원(霜月禪院)’이라는 현판도 보았다. 사찰 단위로 각지의 신도들이 참여하는 것도 직접 보았다. 

불교의 긴 역사를 아는 사람이라면 ‘수행’과 ‘전법’이야말로 불자가 해야 할 중요한 실천임을 모르지 않는다. 그것을 강조한 수행자도 많았다. 그런데 중요한 건 그것의 실행 능력이다. 자승 스님에게는 그것을 실행하자고 독려할 능력이 있었다. 이전의 어느 경우에도 유래를 찾을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진다. 종정스님께서 직접 방문하시고, 전국의 각 사찰에서 신도들이 모여들고, 나아가 최근에는 대학생 전법을 위한 기금까지 약정을 받아냈다. ‘수행’과 ‘전법’, 불교책 좀 본 사람이면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이지만, 그러나 아무나 그것을 종단 조직에서 현실로 옮길 수 있는 게 아니다. 전무후무할 것이다. 기자간담회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수행’과 ‘전법’ 중에서 스님은 ‘전법’을 더 근원으로 보았다. ‘수행’이란 ‘전법’의 또 다른 길이라고 말한다. 이런 연장선에서 결제를 마친 뒤 수행자들이 ‘전법’을 소홀히 하는 경향을 비판하기도 했다. 

필자가 스님을 만난 것은 두 번이다. 한번은 우연히 불교서점에서 만났고, 한번은 총무원에 볼일이 있어 갔다가 역시 우연히 뵈었다. 대화의 내용은 기회가 되면 이야기하겠지만, 스님은 진솔하셨다. 수행승인 체, 학승인 체, 심지어는 승속의 격식조차 없이 필자에게 말씀하셨다. 기자간담회에서 스님이 “간화선 풍토를 향한 통렬한 비판도 주저하지 않았다”고 기자는 쓰고 있지만, 내가 만난 스님은 수행이나 학문을 비판하는 분이 아니었다. 통렬한 비판은 간화선 자체가 아니라, 수행자들이 선방의 수련을 혼자만 만족하고 ‘전법’ 하지 않는 것이다. ‘전법’을 강조한 것이다.

◆개혁의 종착점 “전법합시다”
1994년은 필자의 인생에도 중요한 해였다. 약 6년 6개월의 유학을 마치고 그해 3월 동경대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연세대에 취직했다. 조계종에는 그해에 개혁종단이 출범했다. 필자는 관심 있는 ‘교육’과 ‘의례’ 부분에 주목했고, 특히 승가대학(강원) 커리큘럼 논의와 통일법요집 편찬에는 일정의 역할을 맡기도 했다. 개혁종단 출범 이후 종단에서 제정한 각 분야의 제도는, 향후 어떤 제도도 여기에서 출발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잘 정비되었다.

그러면 현장의 재가불자 수행과 포교는 어떠한가? 역시 제도적으로 정비되었다. 예를 들면, 신도회 조직을 위한 표준 규칙을 비롯하여 각 사찰 소속의 불교대학 설립 운영에 관한 규정 등도 잘 정비되었다. 그러나 긴 관행에 젖어있는 현장에서 정비된 제도를 운용하기에는 여러모로 부족했다. 불공과 기도에 전념하시던 ‘어머니들’ 덕분에 조선 시대의 그 어려운 여건에서도 사원경제가 꾸려졌고 지금도 역시 그렇다. 이제는 그런 ‘어머니들’을 모시고 남녀노소를 모두 아우르는 불자 공동체를 길러내야 한다. 그들에게 부처님의 말씀을 전해야 한다. 자승 스님이 생각한 개혁의 종착점은 여기였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스님은 힘과 능력을 갖추는 데에 주력했고, 그 성과가 현실화되면서 스님의 시선은 그 힘과 능력을 회향할 곳으로 향했다. 그 지점이 바로 ‘전법’이다. 필자는 생각한다. ‘2023년 11월 27일 11시 봉은사 기자간담회’야 말로 스님의 그런 속내를 직접 공표한 것이라고. 

신규탁 교수
신규탁 교수

1994년의 개혁종단의 기상도 희미해져 가고 있고, 그때의 일원이던 스님들도 점점 나이 들어간다. 지난 30년 세월, 그리고 죽음을 직시한 한 스님의 삶. 이 모두에 대해 불교도들은 승속을 막론하고 외면해서는 안 될 것이다. 마음먹고 기자들 앞에 남긴 평생의 마지막 메시지, “사부대중이 함께 수행과 전법을 향해 나아가자.” 오래 묵은 이야기이지만 순간순간 새로운 말씀이다. 석가모니부처님도 그러셨고, 삼세의 제불이 출현해도 역시 ‘수행’과 ‘전법’을 말씀하실 것이다. 어떻게 ‘수행’할 것인가? 또 어떻게 ‘전법’할 것인가? 그것은 남겨진, 산 자의 몫이다.  

신규탁 연세대 철학과 교수  ananda@yonsei.ac.kr

[1711호 / 2024년 1월 1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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