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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0 의승’ 충혼 기리는 순의비 건립 ‘쾌보’

  • 사설
  • 입력 2024.02.05 10:41
  • 호수 1715
  • 댓글 0

정당한 역사적 평가 고려하면
‘금산의총’ 편액도 걸려야 마땅
청주성 탈환·행주대첩 ‘큰 공적’
산성 쌓고 지킨 스님 기억해야

‘금산 칠백의총’(사적)에 의승장 영규(?~1592) 대사와 800 의승을 기리는 순의비를 세운다. 비문은 조계종 총무원장 진우 스님이 ‘의병승장비(義兵僧將碑·충청남도 문화재자료)’를 참고해 쓸 것이라고 한다. ‘칠백의총’이라는 사적지 명칭도 바로잡힐 가능성이 있다. 문화재청이 ‘금산 칠백의총’ 명칭 개선을 위한 연구 용역을 연내 착수하겠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조계종 중앙종회 ‘영규대사 및 800의승 명예회복을 위한 특별위원회’는 일련의 사업들이 원활히 이뤄질 수 있도록 문화재청 등의 기관과 긴밀한 협의를 이어가고 있다. 

금산 보석사 입구에 서 있는 의병승장비는 임진왜란 때 조선을 구하려다 순국한 의승장 기허영규 대사의 충혼을 기리는 비이다. 따라서 순의비의 비문에는 임진왜란 당시 절체절명의 위급한 상황에서 전세를 뒤집었던 의승 활동과 공적이 비중 있게 담길 것으로 보인다.

임진왜란이 발발한 지 얼마 후 조선의 국왕 선조는 식량 창고에 불을 지르게 하고는 한양을 떠났다. 전쟁의 참혹함은 날이 갈수록 더해갔다. ‘(왜군은) 들도 산도 섬도 불태우고 사람을 쳐 죽인다. 산 사람은 대나무 통으로 목을 묶어서 끌어간다.’ ‘기근이 극에 달해 굶어 죽은 사람들이 들판에 널려 있다. 시체들은 살쾡이와 이리의 밥이 되고 까마귀와 솔개가 쪼아대니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다.’

이처럼 끔찍한 난국에 처음으로 군사를 일으킨 백성은 대쪽 같은 기개를 가졌다는 선비가 아니었다. 의병승장비의 주인공인 기허영규 대사다. 갑사사적(岬寺史蹟)에 실린 ‘임진의병승장복국우세 기허당대선사일합영규사실기’에 따르면 영규 대사는 성품이 침착하고 강직했으며, 말수가 적고 용력이 뛰어났다고 한다. 

한양이 점령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사흘 동안 식음을 전폐한 영규 대사는 결단을 내리고 사찰에 격문을 보내 구국의 항쟁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 “우리가 일어난 건 나라의 명령에 의한 게 아니다. 죽음을 두려워하는 자는 따르지 말라.” 영규 대사가 이끄는 의승은 청주성을 빼앗긴지 3개월 만에 탈환했다. 의승군 최초의 승리였다. 

영규 대사의 호령에 감히 어기는 이가 없었고, 모든 의승은 영규 대사를 믿고 진군했다고 ‘선조실록’은 기록했다. ‘선조수정실록’에도 나와 있듯이 ‘청주성 전투는 실로 영규가 지휘하고 계획한 것’이었다. 청주성 탈환 소식을 들은 선조는 영규 대사에게 종삼품의 ‘지중추부사(知中樞府使)’ 벼슬을 추증했다. 청주성 승리 소식이 퍼지며 곳곳에서 의승이 일어났다. 

임진왜란 3대 대첩 중 하나로 손꼽히는 행주대첩의 승전을 이끈 인물은 권율만이 아니다. 의승장 뇌묵처영 스님을 기억해야 한다. 행주산성 전투 당시 의승은 왜군의 공격이 가장 심한 일선에서 전투를 치렀다. 정예군도 아닌 의승을 전면 배치한 건 스님의 목숨을 가볍게 보았다는 반증이다. 그럼에도 처영 스님과 의승은 구국의 정신으로 왜적과 맞섰다.

이외에도 법견 스님은 무기를 만들고 성을 쌓았으며 해안 스님은 경상도에서 혁혁한 공을 세웠다. 평양성 탈환 전투에서 활약했던 인오 스님과 천연 스님, 의승을 모집하고 권율 장군의 지휘 아래 적과 싸우다 순국한 설미 스님, 평안도와 황해도에서 수비대장으로 임무를 수행한 법정 스님도 새겨야 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죽산성 수비대장을 맡았던 영주 스님, 파사성을 축조했던 승군사령관 의엄 스님, 월계산성을 쌓았던 견우 스님의 활약도 잊어서는 안 된다. 

정묘·병자호란 당시에도 의승은 결연히 일어나 외군과 결사 항전으로 대항했다. 남한산성과 북한산성을 축조하고 지켜낸 이도 스님들이었다. 심지어 둔전(屯田)을 경작하며 군량미까지 조달했다. 그러나 역사는 서산 대사와 사명 대사 외에는 의승에 대한 평가를 제대로 하지 않고 있다. 

누구에게 의지할 일이 아니다. 우리가 발굴하고 선양해야 한다. ‘칠백의총’을 ‘금산의총’으로 바꾸는 일은 그래서 지중하다. 총무원장 진우 스님이 담대히 써 내려간 ‘순의비’를 세우는 날 ‘금산의총’ 편액이 걸리기를 기대한다. 그래야 ‘의승의 날’ 지정도 가능하다.

[1715호 / 2024년 2월 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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