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이 빨리 찾아옵니다. 오후가 되면 어느새 문밖이 어두워져 있습니다. 일년 중 밤이 가장 긴 동지가 다가오나 봅니다. 밤이 길어지는 것을 느낄 즈음이면 그 정점이 다가옴을 알 수 있고 조금 지나면 다시 밤이 짧아짐도 알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들은 모두 이렇게 가득 차면 다시 줄어들고 작아지면 다시 늘어나는 현상들 위에 살아갑니다. 어제도 밤하늘의 달을 보았습니다. 반달보다 작은 달이 떠올랐습니다. 며칠 전 손톱같이 작은 달이었는데 어느새 커졌습니다. 어찌 보면 달은 작아지면 작다고 걱정하고 커지면 커진다고 걱정하는 나
‘추우강남(追友江南)’은 중국의 고사에서 나온 말이다. 자신의 뚜렷한 주관 없이 남에게 끌려서 덩달아 하게 됨을 이르는 말이다. 이 말의 핵심은 자신의 주관이 없음을 말하는 것이지 나의 행동에 대한 책임이 주변 친구에게 돌아갈 수는 없다. 어릴 적 가장 많이 듣는 말이 좋은 친구를 사귀라는 것이다. 나쁜 친구와 어울리면 자신도 나쁜 사람이 될 거니 좋은 친구를 만나라는 말이다. 그래서 자신의 아이가 나쁜 행동으로 학교에 왔을 때 많은 부모님들이 우리 아이는 착한데 나쁜 친구들 때문에 이렇게 되었다는 말을 가장 많이 한다고 한다. 어
재난이 있는 곳에 깨달음이 있습니다. 중생을 가엾이 여기는 것으로 자비심이 싹트게 됩니다. 자비는 보리의 어머니입니다. 깨달음은 자비심 속에서 태어나 자비심의 양분을 먹고 자라서 지혜라는 열매가 됩니다. 그래서 참다운 지혜는 자비심의 결정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자비는 고난과 역경이 있는 곳에서 더 크게 얻을 수 있습니다. 고요와 평온 속에서는 강렬한 자비심을 얻기 어렵습니다. 지장보살은 지옥을 다니며 중생을 구제한다고 하며 관음보살도 구고구난이라고 고난에 처한 이들을 구제하십니다. 고통 속에 헤매는 중생에 대한 끝없는 연민입니
살다 보면 정신이 번쩍 드는 순간이 있다. 오늘이 바로 그날, 이 글을 쓰는 지금이다. 일주일 후로 알았던 원고 마감 날이 갑작스레 오늘로 변경되었다. 긴급한 순간을 맞이하면 멈칫하게 되지만 이럴 때는 스피드가 중요하다. 할 건지 말 건지. 이것저것 재면서 할까, 말까를 고민하다 보면 선택은 더뎌지고, 불안과 고통은 늘어난다. 얼마 전 서울대 최종훈 교수의 ‘인생 교훈’이라는 글을 우연히 보고 오늘부터 이렇게 살 거라 다짐했던 것도 선택에 큰 도움이 되었다. “갈까 말까 할 때는 가라. 살까 말까 할 때는 사지 마라. 말할까 말까
일요일 오후면 축구를 합니다. 스님들과 불자들이 모여서 운동하는 시간입니다. 적적하실까 봐 은사스님도 모시고 나가고 함께 모시는 보살님들도 나가게 됩니다. 은사스님께서는 주말이면 바다가 보이는 카페에서 편안한 소파에 앉아 커피 한잔하면서 담소를 나누는 것도 좋아하십니다만 제가 축구 일정이 있는 날에는 종종 운동장에 가자고 하십니다. 스님께서 함께 운동장에 가면 앉아만 계셔야 합니다. 이렇게 계신 것이 다소 힘드실 텐데도 제가 운동하고 있는 모습을 보는 것 자체를 즐기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날은 추운 날씨에 좀 오래도록 밖에 계셔
대학시절에 본 헐리우드 영화 가운데 뭔가 모를 불쾌함의 기억으로 남아있는 장면이 있다. 선악의 대결이라는 전체적 주제아래 선(善)을 대표하는 백인 주인공과 악(惡)을 대표하는 인물의 결투 장면이었다. 그 때 절대악의 형상이 유럽 절반을 지배했던 몽골 칭기스칸(1162~1227)을 그대로 묘사한 것이다. 유럽사회가 과거 칭기스칸에 대한 두려움이 있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지금의 영화에서 조차 동양에 대한 편견된 시각아래 표현된 장면이라는 것에 실망감이 있었던 것이다.동양의 영어적 표현중 하나가 오리엔트(orient)이다. 라틴어로
봉정암은 우리나라 제일 기도 도량이어서 전국 불자들의 순례가 이어집니다. 특히 10월 중순 단풍이 절정일 때는 3000명씩 몰려 도량에 발 디딜 틈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코로나 후유증일까요? 저출산 노령화 탓일까요? 아니면 탈 종교화의 영향 때문일까요? 인파가 예전만 못합니다. 봉정암에서는 2016년 전후 큰법당을 낙성했는데 산중에 108평의 넓은 법당이 들어서 예전에 비하면 천지개벽입니다. 구법당은 크기가 작아 주말엔 앉을 자리도 없었는데 넓은 법당이 생기고 나니 사람이 아무리 많아도 기도할 자리가 부족하지 않습니다.2008년부터
나에게는 그때그때 마음에 새기는 단어, 인생 키워드가 있다. 화두처럼 마음에 품고 있는 시기가 길 때도 짧을 때도 있다. 긴 호흡으로 오랫동안 지녀온 키워드는 감사와 사랑이다.감사보다는 불평불만으로, 사랑보다는 두려움으로 살아온 시간이 길었기에 더 소중하고 귀하게 와 닿았는지도 모른다. 이미 감사로 충만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에게 감사라는 말은 자연스러울 테고, 사랑의 존재가 된 사람에게 사랑이라는 말은 특별한 단어가 아닐 테니 말이다.몇 년 전 큰 분노에 휩쓸린 경험이 떠오른다. 평소에 화가 덮치면 호흡이 가빠지고, 생각과 말이 거
서울에서 부산 내려가는 밤 기차를 타고 있습니다. 이렇게 기차 안에서 원고를 쓰는 것도 처음입니다. 오늘까지 원고를 보내야 하는데 이런저런 일로 지치기도 하고 힘도 들어서 미루기만 하였습니다. 자정을 몇 시간 남기고서야 할 수 없이 글을 써 내려갑니다. 서울역에서 기차를 탔을 때는 몸이 많이 피곤하고 어깨도 몹시 무거워서 천근만근이란 표현이 떠올랐습니다. 그런데 한 시간 눈을 붙이고 나니 몸이 조금 나아지고 그 느낌이 사라졌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됩니다. 힘든 몸의 느낌도, 힘들다는 생각도 지금은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습니다. 여전
“실려도 편먹기” “실려도 편먹기” 온 동네가 떠나갈 듯 손등과 바닥을 연신 교차해 가며 외쳤던 말이다. 필자의 고향인 부산에서는 이렇게 외치며 편을 갈라 놀았다. 어른이 되어서 언제 편을 나눠 뭔가를 한 적이 있었는지 곰곰이 생각해봤지만,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린 시절에는 매번 편을 나눴지만 어느 한 편이 고정되어 있지는 않았다. 하지만 어른이 되어서는 어떤 형태이건 어느 편에 속해 있었기에 편을 나눌 일이 거의 없었던 것 같다. 편(偏)이라는 말이 놀이에서는 즐거움을 위한 선택이지만, 이념이나 전쟁의 상황에서는 생사의 갈림길이
울산불교환경연대 대표 천도 스님이 찾아오셨습니다. 황룡사도 ‘녹색사찰’ 선언을 하자는 제안이었습니다.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싶어 현실적인 입장을 말씀드렸습니다. “스님, 사실 일찍부터 녹색사찰이 되고 싶었는데 저희 절에는 무료급식을 해서 어렵지 않을까요? 떡을 나누려면 하나하나 랩으로 포장을 해야 하고 주먹밥도 호일에 싸서 줍니다. 법회 후 남는 음식이나 과일도 비닐봉지에 담아 드립니다. 북카페에서 테이크아웃 주문이 들어오면 일회용품을 사용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녹색사찰 선언을 할 수 있을까요?”천도 스님은 이렇게
출가 전 템플스테이에 참여해 명상을 처음 접했던 때가 생각난다. 살면서 한 번도 마음에 관심을 가진 적도, 마음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관찰해본 적도 없었다. 마음을 바라보기 위해 눈을 감았다가 나는 너무 놀라 금방 눈을 떠버리고 말았다. 무작위로 올라오는 많은 생각을 마주하니 머리가 어지럽고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이렇게 많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니, 머리가 터지지 않고 지금까지 제정신으로 살아온 것이 신기할 정도였다.우리의 마음은 찰나 찰나 무상하게 변한다. 저절로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생각 중에 내가 좋아하
“스님이 너무 세게 차요! 위험해요!” “스님이 차면 사람이 다쳐요!” “골만 넣으려고 하니 그래요!” 오늘 아침 조기축구를 나갔다가 들은 말입니다. 허리보다 낮은 작은 골대에 10여명이 넘게 공을 차는 그야말로 아침에 하는 가벼운 운동입니다. 그런데 내가 너무 열심히 했던가 봅니다. 왼발로 슛을 한다는 것이 허리 밑으로 낮게 차야 하는데 잘못 맞아 공이 떠 20대 젊은이의 얼굴에 맞았습니다. 너무 미안한 마음인데 여기저기서 이런 말들이 들려옵니다. 아마도 오래 참았다가 상황이 발생하니 나타나는 마음들인 것 같습니다. 순간 너무 부
이제 얼마 있지 않으면 음력 7월15일 절기로는 ‘백중’이 다가온다. 불가에서는 하안거를 마치는 날인 동시에 우란분절로 부른다. 우란분절은 석가모니 부처님 제자인 목련존자의 일화에서 유래하여 돌아가신 부모님을 비롯한 조상님의 극락왕생을 위한 제사를 모시고 스님들께 공양 올리는 날이다. 이때 많이 독송되는 경전이 ‘불설대보부모은중경’이다. 이 경전의 내용은 불자가 아니어도 대한민국에 사는 대부분 국민이 알고 있을 것이다. 5월8일 어버이날이면 어김없이 불르는 노래가 바로 ‘어버이의 은혜’ ‘어머니의 마음’이다. 이 노래 가사에 나오는
나이가 들면 더 너그러워지고, 자비로워지며, 이해해주고, 사랑해주고, 양보와 희생의 일상이 되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왜 더 예민해지고, 감정적이며, 짜증이나 화를 자주 내게 될까요?여름방학을 맞아 청소년들과 탐험 활동으로 한라산 등반을 하였습니다. 3박4일 일정으로 삼천포에서 저녁 배를 타고 아침 일찍 제주에 도착하여 평화통일 사리탑을 친견했습니다. 비 때문에 야외 활동 대신 아쿠아리움 관람 후 약천사에 들어갔습니다. 이튿날에는 비를 홀딱 맞고 한라산을 등반했습니다. 정상을 목표로 삼았으나 악천후로 진달래 대피소까지 다녀오게 되었고
알아차림의 중요성은 부처님과 경전, 많은 스승이 이야기해 왔고 나 또한 그 이익을 잘 알기에 만나는 이들에게 자주 언급한다. 그렇다면 무엇을 알아차려야 할까? 알아차림의 대상 세 가지를 기억한다면 몸과 마음이 조금 더 편안하고 자연스러워질 것이다.첫 번째 알아차림 대상은 ‘긴장’이다. 긴장됨을 알아차리는 시간은 참 소중하다. 명상하기 전에는 내가 이렇게 긴장을 많이 하며 사는지 몰랐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긴장하며 산다. 스스로 이완하지 않으면 긴장은 계속 쌓여서 몸과 마음에 문제를 일으키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이마, 눈썹, 입
비가 많이 오는 날입니다. 아침공양 후 절 앞 명상센터에 앉아 창문으로 밖을 바라봅니다. 일찍부터 용두산을 오르는 사람들이 쓴 우산이 심심찮게 지나갑니다. 하늘에는 구름이 가득하고 비가 쏟아집니다. 그런데 이 공간에서는 누군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노래를 불러주고 비도 바람도 없이 무척 편안합니다. 벽 하나 사이로 다른 세상입니다.세상은 늘 이렇게 함께하는가 봅니다. 번뇌가 가득한 세상과 번뇌가 없고 지극히 편안한 세상이 동시에 실재합니다. 주의를 어디에 두는가는 자신의 선택입니다. 빗속으로 나아갈지 편안한 이곳에 머물지는 내가 선택함
부부나 연인들이 서로에게 표현하는 습관적 표현 가운데 소통이 아닌 다툼으로 번질 수 있는 대화가 있다고 한다. 그것은 “나 사랑해?” “그럼” “얼마나 사랑해?” “그걸 꼭 말로 해야 알아” “당신 내말 듣고 있어?” “듣고 있어” “내가 무슨 말 했는지 말해봐?” “미안해” “뭐가 미안한지 말해봐” 등이라고 한다.우린 ‘대화’라는 수단을 사용하면 소통을 하고 있다는 착각과 소통이 되리라는 과도한 기대를 가지는 경향이 있다. 대화로 소통하기 위해서는 먼저 대화의 방법과 목적을 어린 시절부터 배우고 반복적으로 연습해야 한다. 하지만
황룡사는 10여 년 전부터 매월 사찰 순례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전국 명산대찰을 찾아다니는 순례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기도입니다. 도량에서 1~2시간씩 기도를 정성스럽게 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기 때문입니다. 기도는 참여자들에게 신심을 불어넣으며 함께하는 염불에서 뭉클한 감동이 있어야 합니다. 마치 콘서트에서 가수가 노래할 때 팬들이 같이하며 점점 팬들의 소리가 커져서 가수보다 팬의 소리가 더 우렁차게 울리는 이른바 ‘떼창’이 법당에서도 재현되는 것입니다. 그런 상황을 목표로 하다 보면 법회를 진행하는 자도 함께하는 사람도
‘지금 여기 감사일기’라는 책을 낸 후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 책 소개와 함께 감사일기란 무엇인지, 어떤 이로움이 있는지 자주 이야기하게 된다. 100일간 감사일기와 분노일기를 쓰면서 지금 여기서 감사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마음의 근력을 키우는 연습을 하는 것이 책 내용의 핵심이다. 몇 년간 감사일기를 쓰면서 감사한 마음을 알아차리며 살고 있지만 아상을 내세우며 감사한 마음을 놓치는 나를 늘 발견하고 더욱 겸손해진다.이미 있는 그대로 완전함을 깨닫고 지금 여기를 온전히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추가하는 것은 사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