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초의와 추사, 다산과 혜장의 우정을 깊게 만들어 그들을 돈독하게 했으며 오우(五友)를 벗 삼아 수신(修身)을 게을리 하지 않았던 윤선도에게 자연은 이슬과 바람과 햇볕, 그리고 하늘과 땅의 기운을 품은 이것을 선사했으며 소치에게 이것은 말년의 고독을 달래주고 죽을 때까지 계속해서 그림을 그릴 수 있게 했다. 또한 진묵대사는 이것을 통해 부처가 된 최초의 인물이며 경봉선사는 불법을 물어오는 이들에게 언제나 이것을 권했다고 한다. 이것은 무엇일까? 명상적 산문과 고승 소설의 대가로 잘 알려진 소설가 정찬주 씨가 차를 주제로 우리 곁에 찾아왔다. 차 한 잔에 담긴 깊은 의미와 향, 선가의 울타리를 훌쩍 뛰어넘는 『茶人기행』. 고운 최치원에서부터 초의선사를 거쳐 춘원 이광수에 이르기까지 우리 역사 속
300여 문도, 22일 24주기 추모법회 봉행경봉장학회, 학인 42명에 장학금 2500만원 “비가 내리는데도 경봉 대종사의 추모일을 잊지 않고 찾아주셨습니다. 이렇게 찾아와서 그냥 갈 것이 아니라 큰스님의 발자취를 두드려보고 돌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영축총림 통도사 경봉문도회(회주 원명 스님)는 6월 22일 오전 통도사 극락암 극락호국선원(선원장 명정 스님)에서 조실 경봉 대종사의 열반 24주기를 추모하는 법회를 엄수했다. 문도를 대표한 해동선원 조실 성수 스님은 “항상 그 순간을 잊지 말고 수행하기를 당부한다”는 법어로서 문도 스님들을 향한 인사를 대신했다. 경봉 대종사의 열반 24주기 추모법회는 헌공, 청혼, 헌차, 장학금 전달, 문도대표 인사 등 순으로 진행됐다. 헌차는 경봉 대종사의 은제자,
경봉 대종사 24주기 추모법회명정 통도사 극락암 호국극락선원 선원장 스님은 6월 22일 오전 10시 호국극락선원 무량수전에서 경봉 스님 열반 24주기 추모법회를 봉행한다. 태고종 초대 대구종무원장 취임경묵 스님이 6월 14일 대구 진석타워에서 열린 한국불교 태고종 대구교구 종무원장 취임식을 통해 초대 종무원장에 취임했다. 中 만월사 지도법사 위촉진명 스님은 6월 11일 중국 베이징 조계종 포교당 만월사의 지도법사로 위촉돼, 포교원장 도영 스님으로부터 위촉장을 받았다. 군종교구 법당서 귀국 신고문정호 자이툰 부대 법사는 지난 6월15일 조계종 군종교구 법당에서 귀국 신고식을 가졌다. 문 법사는 6개월 동안 자이툰부대에서 지도법사로 활동했다.
6월 21일 수△코엑스 ‘2006 티월드 페스티벌’=오전 10시 30분, 인도양홀, 25일까지. 02)6000-8000△부산 혜원정사 ‘백중 지장기도’=오전 10시, 혜원정사, 8월 1일까지. 051)866-7771 △서울 봉은사 ‘제3차 참살림 수행결사-백중에서 생전예수재까지’=봉은사 지장전, 9월 17일까지. 02)3218-4801△화성 용주사 ‘백중 49일 지장기도 및 조상천도재’=오전 10시, 용주사 대웅전. 031)234-0040△경주 불국사 ‘백중기도 및 영가천도 법회’=오전 10시, 불국사 무설전. 054)746-9913△삼전종합사회복지관 ‘개관 15주년 기념행사’=오후 2시, 송파구민회관 대강당. 02)421-6077△인천불교회관 ‘백중 49재 8인 스님 초청법회-자광 스님’=오전 10시 30
“야반삼경(夜半三更)에 대문 빗장을 만져 보거라”는 임종게를 남기고 통도사 극락암 조실 경봉 스님이 홀연이 원적에 든 지 24년째. 스님의 가르침은 지금까지 생생하게 남아 서간문을 모은 책으로, 법문집으로, 일대기를 그린 소설로, 그리고 제자 스님들의 수행 자체에 올곧이 흐르고 있다. 한국 선불교의 중흥조인 경허 스님의 선법을 이어 많은 후학들을 제접하며 행주좌와 어묵동정에 걸림없는 무애행을 펼친 경봉 스님을 회고하는 법석이 마련된다. 통도사 경봉문도회(회주 원명 스님)는 6월 22일 오전 10시 경남 양산시 통도사 극락암 극락호국선원(선원장 명정 스님) 무량수전에서 경봉대종사 제24주기 추모법회를 봉행한다. 경봉 스님의 추모법회는 해마다 극락암에서 봉행되고 있으며 많은 문도 스
6월 14일 수△능인선원 ‘국녕사 대불 사경봉안 법회’=오전 11시, 국녕사 경내. 02)577-5800△서울 봉은사 ‘수요야간법회-혜거 스님의 유식 30송 강의’=매주 수요일 저녁 7시, 봉은사 법왕루, 8월 30일까지. 02)3218-4821△진각종 ‘창교절 기념불사’=오전 10시, 국내외 각 심인당. 02)913-0751△청공 남성 중창단 ‘창단연주회-대중 속으로’=저녁 7시 30분, 부산 금정문화회관 소극장. 051)727-1216△동산반야회 ‘불교교리 강좌’=저녁 7시, 동산 법당, 8월 23일까지. 02)732-1206△만해사상실천선양회 ‘2006 세계종교지도자대회 폐막식’=오후 6시, 올림픽 파크텔. 02)2253-3993△서울노인복지센터 ‘제4회 열린상담 강좌-노인학대지킴이’=오전 10시, 복
동국대가 개교 100주년을 기념해 공개했던 만해의 친필 한시 심우시(尋牛詩)가 이미 1937년 「불교 新 4집」을 통해 소개됐던 사실이 본지 확인 결과 밝혀졌다. 이 시는 『심우장만필』에도 이미 국역이 되어 소개돼 있다. 동국대 측은 5월 3일 이 한시가 정대철 전 장관의 부인 전금주 씨가 경봉 스님으로부터 직접 받은 만해의 유품으로 이번에 최초 공개된 것이라고 밝혔지만, 사실상 이 시는 『만해전집』에도 수록된 것으로 확인됐다. 이 시는 『만해전집』 권1에서 ‘심우장만필’ 중 ‘심우장설(尋牛莊說)’ 속에서 ‘곽암십우송운(廓庵十牛頌韻)’이라는 제목으로 소개됐다. 『심우장만필』은 만해의 수필, 시, 기행문, 논설 등을 묶은 책으로, 만해는 1933년부터 1944년까지 심우장에서 기거하면서 소설 『흑풍』과
달마대사가 서쪽에서 오신 뜻은 무엇입니까? 빤한 거 아닙니까? 바로 청정한 본심을 가르치기 위해서 온 겁니다. 여러분에게는 청정한 본심이 있고, 이 본심이 바로 부처라는 걸 말하기 위해 온 거예요. 그런데 예전의 조사들은 달마대사가 서쪽에서 오신 뜻에 대해 이렇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청정본심을 가르쳐주기 위해서 왔다고 말하면, 사람들은 그만 ‘내 마음’이라고 하면서 그 낱말만 알아요. 그래서 어떤 조사는 ‘판때기 이에서 털이 나느니라(板齒生毛)’라고 하고, 다른 조사들은 ‘삼서근(麻三斤)’ ‘똥막대기(乾屎)’라고 했어요. 이거 알고 보면 참 잘한 말이에요. 너무나 기막힌 말입니다. 그러면 왜 이렇게 말했나요? 본래의 마음자리라고 하면 이 마음을 알아먹는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그냥 말마디(言句)만 가지고 ‘
만해와 경봉이 나눈 선문답의 완결편동국대 도서관, ‘동국 백년전’에 전시 동국대가 건학 100주년을 맞아 공개한 만해의 심우시 병품. 이 시는 만해 스님이 경봉 스님에게 준 것으로 이 시를 경봉 스님으로 부터 받은 정재철 전 장관의 부인 전금주 씨가 보관하다, 부인이 작고한 후 정 전 장관이 동국대 개교 100주년을 기념해 동국대에 기증한 것이다. 만해 한용운 스님의 친필 한시 ‘심우시(尋牛詩)’가 최초로 공개됐다. 동국대학교는 개교 100주년을 기념해 동국대의 100년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동국백년전을 마련했다. 특히 이번 전시회에는 만해 스님의 친필 한시가 쓰여진 10폭짜리 병풍이 공개돼 화제가 됐다. 이 시는 만해 스님이 평소에 아끼던 후배 경봉 스님에
통도사비상대책위원회가 현 주지직무대행 현문 스님에 대한 불신임을 강력하게 주장하고 산중대회를 개최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통도사비상대책위원회(이하 비대위, 의장 목산 스님)는 4월 25일 울산 백양사에서 의장 목산 스님을 비롯해 남현 스님, 범해 스님, 반산 스님 등 비대위 소속 스님들이 참석한 가운데 기자회견을 요청하고 “개인의 사욕을 위해 종헌종법을 악용하는 주지직무대행 현문 스님은 사퇴해야 마땅하며 비대위는 새 주지직무대행 선출을 위한 산중대회를 개최해 총림 정상화에 힘쓸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날 비대위 의장 목산 스님은 “작금의 영축총림 대립사태는 명실상부하게 경봉문도회, 구하문도회의 양측 문도 대표자들이 모여서 초법적으로 결성한 비대위가 앞서서 해결해야 할 상황”이라며 “4월 28일 1차
과수원의 과목(果木) 키우는 법을 배우는데 칠판 강의를 듣거나 말과 글로써 배우더라도 자기가 직접 과수원에서 이삼십년간 과목을 키워보면 선생에게 배운 그 이상의 것을 자기도 모르게 체험을 통해서 알게 된다. 이러한 것을 자기 자식이 제일 가까우니 자식에게 가르친다. 자식에게 가르친다지만 도저히 말로써 가르칠 수 없는 묘한 이치가 있다. 또 말로써 설명해주더라도 듣는 사람이 그 경지에 이르지 못하였으면 무슨 말인지 잘 알아듣지 못하는 것이다. 부처님의 정법안장의 오묘한 진리는 말로써 표현할 수 없고, 글로써 보일 수 없다. 어느 정도는 말과 글로 이야기하여 보여줄 수 있지만 그 경지에 들어가지 못하면 무슨 소린지 모른다. 우리 수행하는 이들은 수행하는 것을 매일 점검해야 하고 또 세속에 사는 이들은
경봉 스님이 생전에 주석하며 손님을 맞이하던 통도사 극락선원 원광제를 찾은 작가 정찬주 씨. 『산은 산 물은 물』의 작가 정찬주 씨가 오랜 만에 큰스님을 모시고 독자들에게 돌아왔다. 올해로 입적 25주기를 맞는 경봉 큰스님이 정찬주 씨의 필봉을 주장자 삼아 성큼 우리 곁에 다가온 것이다. 최근 경봉 큰스님 이야기 『야반삼경에 촛불춤을 추어라』를 출간하고 잠시 숨고르기에 들어간 작가 정찬주 씨는 “취재와 집필에 걸린 꼬박 5년 동안 경봉 스님의 가풍에 푹 빠져 있었다”며 “당분간은 이 향훈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다”는 말로 스님에 대한 깊은 여운을 전했다. 근대 스님을 소재로 한 작품으로는 성철 스님 이후 처음이다. 특별히 경봉 스님의 일대기를 소재로 집필하게 된 이유는. 전국의 선원장 스님이나 큰
「법보신문」 논설위원인 윤청광〈사진〉 씨가 지난해 「법보신문」에 연재했던 ‘큰 스승 큰 가르침’에 소개한 큰스님 열아홉 분의 이야기를 엮은 책이다. 경허, 만공, 효봉, 경봉, 청담, 성철 스님 등 익히 잘 알려진 큰스님들의 출가와 득도 과정 등은 물론 큰스님들의 수행 깊이와 성품, 인간적인 따스함까지 느낄 수 있는 일화들이 끝도 없이 이어진다. 실화 바탕으로 집대성 저자는 앞서 편찬한 24권의 『고승 열전』을 통해 이미 여러 큰스님들의 삶을 집대성한 바 있다. 이 과정에서 힘 있게 살아 움직이면서도 긴장감 있는 전개로 독자들의 눈을 놓아주지 않는 특유의 필력을 유감없이 선보였다. 이번 책에서도 저자는 큰스님들의 행적을 마치 생중계하듯 펼쳐 보이고 있다. 책에 소개되고 있는 스님들의 행적이
(주장자를 세 번 치고 대중에게 들어보였다.) 종사가 자리에 앉기 이전에 벌써 알았다 하더라도 그것 역시 제이두(二頭)에 떨어짐을 면치 못합니다. 주장자를 들어 보일 때 계합(契合)했다면 중근기의 사람이라 옳지 못한 것이며, 주장자를 들어 보이고 대중에게 묻고 답할 때 계합했다면 하근기의 사람입니다. 법문 듣는 순간 계합해야 오늘 이 자리에 계시는 대중은 어느 근기에 머물러 있습니까? 세 가지 근기에 머물러 있지 않아도 평지에서 죽음을 면치 못한 사람입니다. 어떠한 것입니까? (양구후에 주장자를 내리친 후에) 두꺼비가 범천에 뛰어 오르고 (蝦跳上梵天) 지렁이가 동해 바다를 곧장 지나감이로다. (蚓驀過東海) 여기서 여러분은 바로 보아야 합니다. 만약 알지 못한다면 그분을 위해서
1982년 7월 17일, 시자 명정 스님은 애써 눈물을 참으며 마지막 법문을 청했다. “스님, 가시면 보고 싶습니다. 어떤 것이 스님의 참모습입니까.” “야반삼경에 대문 빗장을 만져보아라.” 한 시대의 선지식으로 사바세계에 ‘화엄의 바다’를 펼쳐 보이셨던 경봉 스님은 ‘대문의 빗장을 잠그듯’ 열반에 드셨다. 경봉 스님 조명한 첫 장편소설 경봉 스님은 그렇게 홀연 세연을 접었지만 목숨 내던지기를 주저하지 않았던 스님의 치열한 구도행과 중생 제도를 위해 펼쳐 보인 자비로움은 여전히 수행자들의 귀감으로, 재가불자들에게는 그리움으로 남아있다. 명상적 산문과 불교적 사유의 소설을 꾸준히 발표해 온 작가 정찬주 씨가 출간한 장편 소설 『야반삼경에 촛불 춤을 추어라』는 5년 여에 걸친 자료
“방장, 수행의 사표에서 권력의 상징 변질” 비판 야기“수좌회 “종법준수” vs 통도사 “대중공의” 해소 과제 통도사 젊은승가회 스님들이 지난해 9월 21일 방장 추대와 관련, 문제의 원만한 해결을 요구하며 단식정진을 하고 있다.영축총림 통도사 방장 후보로 추대됐던 초우 스님이 3월 9일 공식적으로 사퇴의 뜻을 밝혔다. 이에 따라 월하 스님 입적 이후 초우 스님의 방장 추대를 놓고 안팎의 반대에 직면하며 2년여 동안 표류했던 영축총림 방장 추대는 원점으로 돌아갔다.초우 스님은 3월 8일 밤 주지 현문 스님을 불러 “이제 자연인으로 돌아가 출가사문의 본분사에 전념하겠다”는 뜻을 밝힌데 이어, 9일 오전 현문 스님을 통해 총무원장 지관 스님에게 방장후보 사퇴의 뜻을 담은 서한을 전달했다. 초우 스님
9일 지관 원장에 서한…새방장 추대 급물살 20안거 성만 미달 따른 수좌회 반발 결정타 지난해 8월 22일 산중총회에서 영축총림 통도사 방장 후보로 추대된 이후 ‘자격’ 논란에 휘말렸던 초우 스님이 방장 후보를 사퇴했다. 초우 스님은 지난 3월 7일 “산승의 부덕함으로 인하여 우리 조계종단의 종정예하, 총무원장 스님, 원로대덕 법우, 종도 여러분에게 심려를 끼친점을 부끄럽게 생각하며 초발심의 수행납자로 돌아가 출가사문의 본분사를 참구하는데 가행정진 할 것을 불전에 다짐한다”는 짤막한 글로 완곡하게 사퇴 의사를 밝혔다. 초우 스님은 이런 뜻을 통도사 주지 현문 스님을 통해 3월 9일 조계종 총무원장 지관 스님에게 서한으로 전달했다. 이로써 2003년 12월 4일 월하 스님의 입적 이후 통도사 방장
1915년 1월 16일 입적 교학에 뛰어난 학승 31세에 강사로 활동 수행자 계율 강조도 금파 경호 스님은 구한말 한국불교계에서 대강백으로 추앙 받던 인물이다. 스님은 철저한 지계(持戒)를 바탕으로 수행자로서 모범을 보였을 뿐 아니라 벽송사, 대원사, 화엄사, 백양사, 동학사 등 전국의 여러 사찰들을 돌며 수백 명의 후학들에게 불교 교학을 전파했기 때문이다. 1868년 전북 김제에서 태어난 스님은 어려서 부모를 여의고 외가에서 성장했다. 마을에서 ‘기동(奇童)’이라 불릴 정도로 그 영특함을 인정받았던 스님은 한번 배운 것은 쉽게 잊어버리지 않았으며, 매사를 평범하게 보고 넘기는 것이 없을 정도였다. 특히 스님은 한학(漢學)에 심취해 10대에 대부분의 한서(漢書)를 모두 익혔으며, 동시에 의학
경봉 스님 따르던 불자 11명 주축 71년 결성 150명에게 20여차례 걸쳐 8830만원 지급해 일념장학회 회원들이 지난해 12월 장학기금 마련을 위한 큰스님 선서화전을 개최하면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2005년 12월. 을유년(乙酉年)의 끝자락을 부여잡고 재단법인 일념장학회 이영채 이사장은 며칠 째 쉽게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장학회 회원들이 준비한 큰 스님 선서화전(禪書畵展) ‘작은 울림으로 무진등을 밝히나니’가 열리기 때문이다. 이제는 깨달음의 빛으로 화해 적멸(寂滅)에 드신 경봉 스님, 탄허 스님 등 한국을 대표했던 큰스님들의 작품들이 한 점 두 점, 회원들의 장롱을 벗어나 한 자리에 모인다는 생각에 30여 년의 세월이 머릿속에서 주마등처럼 흘렀다. 이날 큰스님들이 남긴 흔적들은
어제-오늘 햇빛 같으니 새해는 처음부터 없어 유위-무위 세계 허물 때 걸림없는 삶 향유 60여년 체득한 法 길 떠난 후학의 등불 간절함 상실하면 나태함만 낳아 묘엄 스님은 화엄경에 담긴 ‘믿음이 도의원천’이라는 말을 전하며 “나태함을 버리고 간절한 마음으로 정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어느 날 청담 스님이 속가 딸인 묘엄 스님에게 물었다. “니, 중 된 거 후회 안 하나?” “예, 스님. 후회 안 합니다.” “그라믄 끝까지 중노릇 잘 할 자신 있나?” “예, 스님.” “그럼 됐다.” 스님은 두 눈을 지그시 감으며 빙긋이 웃었다. 수원 광교산 중턱에 자리 잡은 봉녕사에서 묘엄 스님을 만나 독자를 위한 새해 덕담을 청하자 스님은 미소부터 지어 보이셨다. 순간, 묘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