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게 죽어야 크게 산다’ 경봉 스님은 대오 후 3년 만에 부산에서 배를 타고 양양 대포항에 도착, 낙산사 홍련암으로 가서 기도했다. 만행길의 단순한 기도가 아니라 삼칠일기도로써 깨달음의 인연을 깊이 다지는 일환이었다. 그리고 선정에 들었다가 백의관세음보살을 친견했다. 경봉은 관음보살을 친견하고는 기도를 앞당겨 회향하고 부산으로 돌아오는 길에 대포항에서 시 한 수를 지어 읊조렸다. “여여한 묘한 도는 본래 깨끗하건만/ 모름지기 수행에 힘써야 크게 나타나리/ 10년간 집 안의 보배를 찾다가/ 이제야 겁 밖의 봄소식을 알았다네/ 가고 옴이 역력하여 다른 사람이 아니며/ 말할 때나 묵묵할 때나 분명한 주인일세/ 부처님 항상 계시는 곳 묻지 말게/ 큰 허공
▲스님은 독서량이 상당히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통도사 군자’이자 ‘영축산 도인’으로 추앙받았던 경봉 스님은 18세에서 85세에 이르는 67년 생애를 소상히 담은 ‘삼소굴 일지’를 남겨 후학들에게 길을 제시할 정도로 섬세했던 당대의 선지식이다. 성품 꼿꼿하기가 댓가지 같으면서 더 이상 청정할 수 없는 출가자의 올곧은 모습을 보였던 스님은 자신이 거처하는 방문 앞에 ‘삼소굴(三笑窟)’이라는 현판을 붙여놓았었다. 삼소는 과거·현재·미래의 미소인 삼세(三世)의 소(笑)와 과거·현재·미래의 꿈인 삼세(三世)의 몽(夢)을 초탈한 뜻을 간직하고 있으나, 이런 설명을 알아듣기 어려워하는 사람들에게 스님은 “삼소의 ‘삼’은 우주의 극수인 3이요, ‘
▲ 일타 스님은 경봉 스님의 일기 ‘삼소굴 일지’도 필독을 권유했다. 일타 스님은 나이 26세에 오대산 서대에서 오른쪽 네 손가락 열 두마디를 소지하는 연비공양을 감행한 이후 6년간 태백산에서 홀로 결사를 마쳤음에도 언제나 수행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더불어 경전공부는 물론 책 읽기에도 한 치의 방일함이 없었다. 또한 차(茶)를 사랑하고 좋아하는 마음에서 글쓰기 중 ‘다향산방’을 즐겼고, 조주의 끽다거를 ‘끽다거래’로 표현하며 스스로도 그렇게 살아갔다. 그러했기에 후학들은 스님의 사상을 사교입선(捨敎入禪), 지계청정(持戒淸淨), 자비보시(慈悲布施)로 정리했고, 일부에서는 여기에 더해 화안애어(和顔愛語), 인과윤회(因果輪廻), 광도중생(廣度衆生)으로 스승의
『신심명』을 반야심경처럼 늘 곁에 두고 분명한 깨달음의 길을 발견하라고 당부하던 통도사 극락호국선원장 명정 스님이 부산 원오사에서 직접 ‘신심명’을 교재로 강좌를 개설한다. 명정 스님의 『신심명』 강좌는 5월 26일 오후 2시 원오사 대웅전에서 입재식을 갖고 3개월 동안 매주 화요일마다 실시된다. 한문을 우리말로 옮기는 역경에도 탁월한 표현력을 가진 것으로도 정평이 나 있는 명정 스님은 은사 경봉 스님의 법문을 비롯한 서간문, 일기를 엮은『경봉 스님 말씀』, 『산사에서 부치는 편지』, 『삼소굴 소식』 등 경봉 스님의 법문과 일상에서 드러난 가르침들을 우리말로 풀어냈다. 051)542-7949 주영미 기자
생활의 발견이 곧 자아의 발견일상의 원각인데 모르니 ‘중생’ 영축총림 통도사 극락선원은 근대 고승인 경봉 스님이 주석하며 선풍을 날린 곳이다. 암자에 도착하자마자 경봉 스님의 옛 선취가 남아 있는 삼소굴(三笑窟) 대문 앞으로 다가갔다. “야반삼경(夜半三更)에 대문 빗장을 만져보라.” 1982년 7월 경봉 선사가 남긴 임종게다. 극락암 참배객 중에는 선지식이 남긴 향취나마 느껴보고자 대문 빗장을 직접 만져 보는 이가 적지 않다. 경봉 스님은 왜 대낮도 아닌 한밤중에 가까이 있는 문고리를 놔두고 굳이 대문 빗장을 만져보라 했을까? 이런 사량도 공연한 것이라 여겨져 곧바로 삼소굴 옆 원광재(圓光齋)로 향했다. 경봉 스님의 법호 ‘원광’을 따 지은 명정 스님 거처다. 극락선원장 명정(明正) 스님은 1943년
“유도 아니고 무도 아닌 너는 어디서 주워 왔노.”“저를 속이지 말고 스님 살림살이를 내보이십시오.”“이놈 보그래이. 덕산탁발화(德山托鉢話)를 일러라.” 제 13장 회향 고명인은 송광사 일주문 밖에 차를 세웠다. 혜국은 자신을 송광사까지 태워다 준 고명인에게 미안했던지 소리 없이 웃으며 말했다. “이왕 왔으니 제가 송광사를 구경시켜드리겠습니다.”“스님, 저는 송광사를 보러 온 것은 아닙니다.” 고명인은 송광사보다는 태백산 도솔암으로 가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도솔암으로 가서 단 며칠만이라도 참선을 해본 뒤 미국으로 돌아갈 계획이었다. “고 선생, 그렇다 하더라도 송광사는 우리나라 삼보사찰 중 하나입니다. 법당에 들러 참배를 하십시오. 향을 사르고 절을 하는 것도 좋은 인연을 맺는 일입니다. 복 짓
“수행자라면 모름지기 참선과 불학, 염불, 기도 등 불가의모든 방편이 한데 어우러진 화엄의 바다가 돼야 하네. 그게 연극 같은 인생 멋들어지게 사는 일이 아니겠나.” 제 12장 보살의 길 혜국은 차를 한 잔 더 마신 뒤 잠시 눈을 감았다. 그러더니 일타가 화엄사를 떠나 해인사로 간 얘기까지 마저 했다. “화엄사 하안거를 마친 우리 스님께서는 해인사 퇴설당으로 갔지요. 당시는 퇴설당이 선방이었거든요. 거기서 지월스님, 서옹스님을 모시고 2년 정도 정진하셨지요. 그런데 우리 스님을 조계종에서 놔주지 않았지요. 1962년 4월에 정화대책 중앙종회비상종회의원으로 발탁해 율장 부분을 담당케 했지요. 그런 뒤 그해 8월에는 정식으로 조계종 초대 중앙종회의원으로 선출됐고 더불어 교육위원, 감찰위원,
통도사 극락암 조실을 지낸 경봉 스님의 열반 25주기를 맞아 추모 법회가 봉행된다. 통도사 극락호국선원(선원장 명정)은 7월 11일 오전 10시 통도사 무량수전에서 경봉 대종사 열반 제25주기 추모법회를 봉행한다. 이 자리에서는 재단법인 조계종 경봉장학회(이사장 원명)의 2007년도 장학금 지급식도 함께 봉행된다. 경봉문도회장 원산 스님은 “한국 불교의 큰 별이셨던 경봉 대선사가 만 중생을 향해 전해 준 지혜의 등불은 화두를 참구하는 납자들에게, 기도 정진하는 재가 불자들에게 깊은 신심을 충만케 했다”며 “이 자리가 경봉 대선사의 뜻을 기리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고 소개했다. 이와 함께 “장학금은 통도사 재적 스님 가운데 학사, 석사, 박사 과정 수학자 및 강원 학인 스님과 총림 내 선원 3개소에 전달될
종교인 타락하면 세상도 타락한다모든 인간이 착각하여 자기가 본래 부처임을 모르고 중생 중생이라고 합니다. 중생을 바꾸어 부처가 되라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다만 자기가 중생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인간의 진상을 바로 보면 자기가 원래로 부처라는 것을 알 뿐입니다. 설사 자기의 본면목인 마음속의 부처를 착각하여 중생이다 범부다 오해하고 있더라도 이것은 다만 오해에 그칠 뿐 자기 본면목에는 하등의 변화도 없습니다. 이것을 바로 알면 현실이 원래로 절대이며 중생이 본시불타인 것을 알게 되어 자기가 본래부터 극락세계의 대자유인임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모든 죄악은 본불(本佛)의 착각에서 발생된 망동에서 옵니다. 그리하여 죄는 실재한 것이 아니요 착각에서 온 일시적 환영에 불과합니다. ‘죄를 무서워하며 버리려고도 말라.
옛날이나 지금이나 귀에 쏙쏙 들어오는 알기쉽고 재미있는 설법을 해주는 스님을 만나기가 쉽지 않다. 그렇지 않아도 불교경전이나 해설서까지도 이해하기 어려운 한문투성이라 보통 백성들은 읽기도 어렵고 알아보기도 어려운데 스님들의 설법은 더더욱 어려운 한문구절을 끝없이 늘어놓는 경우가 많아 자칫하면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로 들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통도사 극락암의 경봉 큰 스님이 펼쳐주시는 설법은 그야말로 귀에 쏙쏙 들어오는 알기쉬운 명설법이었고, 경봉 큰 스님이 쓰신 글 또한 누구나 단박에 이해할 수 있는 명문이었다. 안이비설신의가 모두 도둑이다 극락암 대중법회에서 경봉 큰 스님이 법좌에 오르셔서 주장자를 세 번 치고 다음과 같이 설법하셨다. “눈, 귀, 코, 혀, 몸, 뜻 이
성철 스님의 일대기 산은 산, 물은 물 저자 정찬주 씨가 이번엔 경봉 스님의 일대기를 소설로 그려낸다. 경봉 스님의 일대기를 다큐멘터리 형식을 통해 사실적으로 묘사하겠다는 원력을 품은 정 씨는 경봉 스님의 출생지인 경남 밀양 등 경봉 스님이 스쳐간 곳을 답사하는 한편 스님의 일기를 비롯해 당대 큰 스님들과 주고받았던 서간 등을 꼼꼼히 분석하고 있다. 이에 따라 정씨는 최근 생전 경봉 스님이 머물렀던 통도사 극락암 삼소굴을 방문, 경봉 스님의 상좌였던 명정 스님으로부터 관련된 각종 자료를 안내 받는 등 본격적인 고증 작업에 들어갔다. 정씨는 경봉 스님에 대한 관련자료를 독자들에게도 요청하고 있다.(061-373-7878)
【부산】근세한국 고승 서간집 《삼소굴 소식》출판 기념회가 지난 1월29일통도사 부방장 청하, 조계종 종회의장 설정, 통도사 주지 월파, 조계종 교육원장 원산, 조계종 승대학원장 무비, 한국불교발전연구원 이사장 월탄스님등5백여명의 대중이 참석한 가운데 봉행됐다. 《삼소굴 소식》역주(역주)를 맡았던 명정스님은 "책으로 출간된 《삼소굴소식》은 삼소굴에서 평생을 보낸 경봉스님의 왕복 서간문을 정리한 것으로1백여년전 스님들의 생활상을 살펴볼 수 있는 매우 귀중한 선서간문(선서간문)"이라며 《삼소굴 소식》의 출간 의의를 새겼다. 《삼소굴 소식》에는 경봉스님이 1백77명의 스님 등과 교류한 편지 2백74통의 내용이 수록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