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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연종학림 주지 청명 스님

밀교수행은 관음보살 대자비 닮아가려는 공부입니다

한국불교에서 밀교는 신라시대 때부터 이어져 온 오랜 전통
타력신앙이라 하지만 스스로 보리심 내도록 이끄는 자력 신앙
진언을 외든 화두 들든 결국 나와 남이 모두 이로운 공부돼야

이곳 명상센터의 이름은 ‘바즈라(vajra)’입니다. 바즈라는 산스크리트어로 ‘금강’을 뜻합니다. 대중에게 가볍게 접근하기 위해서 명상센터라는 명칭을 붙였습니다만, 크게 보면 명상이고 기본적으로는 수행입니다. 대승불교의 한 부분인 금강승(金剛乘)이라는 가르침의 밀교(密敎)수행입니다. 이곳에서 배우는 수행의 용어나 내용이 낯설 수도 있습니다. 사실 초급반에서 여러분이 하실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냥 가만히 있기만 하면 됩니다. 가만히 있다는 말은 다른 말로 하면 이완을 하는 게 중요하다는 의미입니다. 두 가지 이완을 해야 하는데, 정신적 그리고 육체적인 이완을 하셔야 합니다. 정신적, 육체적 이완이 제가 드리는 말로 가만히 있는 겁니다. 그냥 내려놓고 받아들이기만 하라는 것입니다.

밀교라고 해서 수인을 구체적으로 배우는 과정이 초급반에는 없습니다. 초급반인 여러분이 하실 수 있는 유일한 수인은 합장입니다. 합장도 수인입니다. 이렇게 해서 3개월 정도를 그냥 가만히 계시면 됩니다.

이렇게 말씀드리면 “불교는 자력 수행 아닌가요?”라고 문제를 제기합니다. 그런데 밀교는 타력의 요소가 강합니다. 불보살님의 힘이 여러분에게 미치는 걸 우선으로 삼습니다. 그것이 관세음보살의 대자대비, 즉 관음력입니다.

3개월 동안 제가 여러분에게 ‘가지(加持)’를 해드릴 것입니다. 가지라는 말은 불보살님의 힘을 여러분에게 보내드리는 것입니다. 밀교에서는 가피력 대신 가지라는 말을 씁니다. 제가 가지를 해드리는 동안 무엇인가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말고 정말 가만히 있으면 됩니다. 가만히 있으면 저절로 느낍니다. 그때부터 수행에 들어가면 됩니다.

간화선 수행과는 분명히 이질적일 수 있지만 ‘저런 수행도 있구나’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각 단계에서 일어나는 현상은 저절로 일어납니다. 타력의 장점입니다. 그런데 타력으로 끝까지 가진 않습니다. 어느 정도 수준을 넘어서면 그때부터는 자력으로 돌아갑니다. 마치 어머니가 젖 먹는 아이를 키워주듯이 일정 부분까지만 여러분을 성장시켜 드립니다. 관세음보살님을 의지해서 수행하다가 나중에 관세음보살님처럼 되는 것입니다. 그전까지는 관세음보살님의 젖을 얻어먹는 것과 같습니다. 가지를 할 때 “관음력을 수지하겠습니다”고 말씀하게 됩니다. 관세음보살님에 대한 신심을 일으키고 “당신을 의지하겠습니다” “귀의하겠습니다”하는 발원입니다. 그럴 때 소통이 이뤄집니다. 이렇게 할 때 실질적으로 여러분이 관세음보살님의 가지를 느끼는 겁니다. 3개월 이후 여러분이 가지력을 직접 받고 관정이라는 통과의례를 거치면 그때부터는 자력과 타력이 조화를 이루기 시작합니다. 중급반으로 넘어가면 무드라(수인)와 만트라(진언) 그리고 얀트라(관상)를 배웁니다.

밀교는 원래 초기불교 때부터 있었습니다. 나란다 삼장대학원에서는 밀교가 활성화되면서 연구가 활발했습니다. 그런데 인도 토양에서 불교가 사라지면서 중국와 티베트로 넘어갔고 하나의 종파로 밀교가 자리 잡게 된 것일 뿐입니다. 특히 한국불교는 기본적으로 밀교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미 신라 때 왕오천축국전을 쓰신 혜초 스님, 중국으로 넘어간 현초 아사리, 명랑 법사 등 신라 고승 중에는 밀교를 공부한 분이 많습니다. 대표적으로 명랑 법사가 ‘문두루 비법으로 왜구를 물리쳤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수인을 뜻하는 무드라를 신라 사람들이 한자로 받아들여서 쓰다 보니문두루라고 불렀습니다.

오늘 명상을 시작할 때 독송한 기도문은 ‘신묘장구대다라니’의 산스크리트어 버전입니다. 스님이 왜 이상하게 발음을 하느냐고 묻는데 사실은 여러분이 이상하게 하고 있는 겁니다. 한국의 모든 사찰에서는 법회가 시작될 때 ‘천수경’을 독송합니다. ‘천수경’에 나오는 다라니가 문법에 맞을까요? 산스크리트어 원음과 다소 차이가 있습니다.

중국에서 다라니를 한문식으로 기록했고 세월이 흐르면서 발음이 조금씩 변해가면서 현대 사람들이 독송하기 편한 발음으로 변한 것입니다. 물론 반드시 산스크리트어로 외워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원어를 알고 있다면 원어에 가깝도록 구사하는 것이 맞고 원음의 뜻을 배울 수 있다면 공부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천수경’은 밀교의 경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천수경’에는 다라니만 있는 것이 아니라 무수한 관세음보살님에 관련된 진언이 나옵니다. 이렇게 보면 여러분은 불교를 시작하자마자 밀교를 배운 것입니다.

진언의 정확한 의미는 참다운 말이라는 뜻입니다. 요즘 확언명상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미 부자입니다.” 이렇게 하는 명상입니다. 만트라를 외우는 것도 똑같습니다. 인도에서부터 산스크리트어를 배우거나 그렇지 못한 사람도 산스크리트어 만트라를 외웠습니다. 발음이 틀려도 공덕이 있었던 이유가 이것입니다. 최소한 여러분이 ‘천수경’을 읽을 때 손이 천 개인 관세음보살을 생각하게 됩니다. ‘탐욕의 독을 없애주십시오.’ 이 말은 곧 탐욕을 없애겠다는 말입니다. 이 단어를 무한 반복하다 보면 여러분이 그 몸 그대로, 관세음보살님을 구현해 내는 것입니다.

관세음보살님의 지고지순한 사랑을 서원하고 실천하셔야 합니다. 현교(顯敎)에서는 이것을 발원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항상 사홍서원에서 ‘중생무변서원도’라고 했습니다. 매번 중생을 구원하고 싶다는 생각을 일으키셨습니까? 없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마음을 일으키려면 신, 구, 의 삼업, 즉 삼밀가지(三密加持)를 구족해야 합니다.

삼밀가지는 현교에서 삼업이라고 부릅니다. 수인을 산스크리트어로 무드라, 입으로 하는 진언을 만트라, 머리로 관상, 이미지를 명상하는 것을 얀트라라고 합니다. 비밀스럽다고 해서 삼밀이라고 부르는데 사실 비밀스럽지도 않습니다. 이 세 가지를 갖추는 순간 여러분은 그 몸으로 다른 걸 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합장하고 있으면 딴짓을 하지 않습니다. 입으로 만트라를 염송하고 있으면 딴말을 하지 않습니다. 뜻으로는 얀트라, 머릿속에 불보살의 만다라를 구축해 놓으면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습니다. 관세음보살과 똑같은 손 모양을 하고 있고 관세음보살과 똑같은 말을 하고 있고 관세음보살을 떠올리고 있으면 현실에서 즉신성불입니다. 이 몸이 부처가 아니면 무엇이겠습니까? 밀교에서 보면 법신 비로자나불로부터 각각 분화된 다른 모습입니다. 이미 여러분 안에 비로자나부처님의 씨앗이 있습니다.

대자비, 지고지순한 사랑, 희생, 이런 단어를 계속 외우면 자기 안에 있는 그 정보와 결합을 합니다. 매순간 관세음보살처럼 자비가 나옵니다. 신, 구, 의는 금강신, 금강어, 금강심 이렇게 세 가지로 구족되어 있는데 중생이 여기에 만트라나 수인이나 관상을 하면 그 정보와 결합이 돼서 활짝 꽃을 피우게 됩니다. 타력이라고 부르지만, 사실은 자력인 것입니다. 여러분이 보리심을 내지 않으면 그런 일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밀교에서는 항상 마지막에 ‘스와하’라고 합니다. 한국불교 버전으로 ‘사바하’입니다. “성취하여지이다.” 이런 의미입니다. 이미 부처님의 거룩한 능력과 정보가 있는데 오염으로 덮어진 것을 만트라나 수인이나 기타 불보살님의 가지력에 의해서 다시 활짝 피워내는 것입니다.

어머니는 목숨을 다할 때까지 무한대로 자식에게 베풉니다. 불교는 자식말고 남이어도 자비를 구현해보자는 종교입니다. 그래서 자리이타입니다. 이런 마음의 감정들은 겉으로 잘 드러나거나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밀’이라는 글자를 붙일 뿐입니다. 은밀하다, 숨어져 있다, 비밀스럽다고 하지만 현교와 다를 것이 없습니다. 애초에 현교가 밀교였습니다. 대승경전 대부분에는 진언이 들어있습니다. ‘반야심경’에도 있습니다. “가테가테바라가테 바라상가테 보디스와하.” “수행자여. 수행자여. 피안으로 가는 수행자여. 빨리 성취하여 지이다.” 이런 의미입니다.

밀교는 정신적인 정화까지 진행합니다. 밖으로 착해보이는 사람도 속으로는 스스로 아픈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수행을 해야 합니다. 까르마를 중화시키고 해소할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남을 괴롭히거나 자신을 괴롭히기 때문입니다. 남과 나 모두 다 이로운 일이어야 합니다. 주문을 외우든지 화두를 들든지 공부가 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출가와 재가가 본래 한바탕이고 선악이 한바탕입니다. 서로 이익이 된다면 불교 살림으로 밀교는 탁월한 수행법이라고 말씀드리며 첫 수업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정리=주영미 기자 ez001@beopbo.com

이 법문은 5월5일 부산 연종학림 부설 명상센터 바즈라에서 봉행된 ‘밀교 명상 초급반’ 첫 강좌에서 청명 스님이 설한 내용을 요약한 것입니다.
 

[1588호 / 2021년 6월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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