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가톨릭 성지 순례길’위해 불교유산 껴넣어

  • 집중취재
  • 입력 2022.01.19 10:42
  • 수정 2022.01.19 11:11
  • 호수 1617
  • 댓글 0

광주시, 불교역사 왜곡 가톨릭 순례길 조성 논란

천진암에 세워진 십자가. 천주학을 공부하던 이들을 보호하다 스님들이 희생되고 폐사된 천진암. 사진출처=가톨릭 수원교구 홈페이지
천진암에 세워진 십자가. 천주학을 공부하던 이들을 보호하다 스님들이 희생되고 폐사된 천진암. 사진출처=가톨릭 수원교구 홈페이지

경기도 광주시가 조선말 스님들이 수행하고 천주학을 공부하던 이들을 보호했다고 전해지는 천진암과 주어사를 가톨릭 성지로 둔갑시키고 스님들의 피땀으로 쌓아 올린 남한산성 등을 가톨릭 성지순례길에 편입시키겠다고 밝혀 큰 논란이 일었다.

광주시와 가톨릭 수원교구는 지난해 8월23일 수원교구청에서 ‘천진암 성지 광주 순례길’ 협약을 체결했다. 광주시장은 이날 협약식에서 “경기도 광주시를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처럼 세계인이 찾아오는 명소로 만들겠다”고 공표했다. 

하지만 광주시장이 추진한 가톨릭 성지 순례길에는 남한산성과 천진암, 나눔의집 등 불교계 관련 장소도 포함돼 있어 논란이 일었다. 특히 가톨릭이 한국 천주교 발상지라고 주장하고 있는 ‘천진암(天眞庵)’은 명칭 자체에서 드러나듯 스님들이 머무르며 정진했던 암자였다. 하지만 사찰은 조선 후기 혹독한 박해를 받던 천주교인들을 보호해주다 강제 폐사된 것으로 알려졌다. 천진암과 이웃한 주어사에서도 신유사옥(1801) 당시 천주학을 배우는 이들을 도왔다는 이유로 10여명의 스님이 희생됐다고 전해진다. 때문에 불교계가 목숨걸고 이웃종교인들을 품었지만 돌아오는 것은 ‘불교 흔적 지우기’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우리나라 산성 가운데 시설이 잘 정비된 곳으로 손꼽히는 유네스코 인류문화유산인 ‘남한산성’도 가톨릭 성지만으로는 볼 수 없는 것이 상식이다. 사명대사는 직접 남한산성에 주둔하며 정병(精兵)을 양성하고 산성을 보강했고, 각성 스님을 총섭으로 한 승군이 맡아 1626년 완공시켰다. 남한산성 보수 역시 각성 스님이 맡아 지휘했고, 그 후로도 전국 사찰에서 경기도 14인, 충청도 28인, 강원도 14인, 황해도 4인, 전라도 136인, 경상도 160인 등 총 356인의 승군이 남한산성에 파견돼 2개월마다 윤번으로 충원됐다. 때문에 남한산성 축조와 직접적으로 관련 있는 장경사·망월사·동림사·옥정사·개원사·남단사·한흥사·국청사·천주사 등 숱한 사찰이 현존하고 있음에도 이를 철저히 외면한 채 광주시가 남한산성을 가톨릭 성지로 공인하는 것은 종교 갈등을 불러일으키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지적이 나왔다.

‘나눔의집’의 시작점도 불교계였다. “일본군 위안부”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는 것조차 금기되던 1990년대 초부터 불교인권위원회 위원장이던 월주 스님이 나서 확보한 위안부 할머니들의 쉼터이다. 1992년 8월 일본대사관 앞 수요집회가 활성화되기까지는 불교계 공헌이 가장 컸다고  정대협(정의기억연대 전신) 초창기 구성원들은 입을 모았다. 더욱이 이후 이사 스님들 후원금 횡령 등에 대한 혐의가 전혀 밝혀지지 않았음에도 무리한 행정 처분으로 이사진 전원을 해고한 경기도가 나눔의집을 불교계로 빼앗기 위한 수순을 밟는 데 광주시도 적극 동참한 것이 아니냐는 의문까지 제기됐다. 때문에 광주시가 역사유산 당사자인 불교계와는 논의조차 없이 진행한 ‘천진암 성지 광주 순례길’은 역사 왜곡일 뿐만 아니라 종교 간 갈등을 조장하는 졸속행정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이런 가운데 ‘천진암 성지 광주 순례길’ 조성 사업이 업무협약 한 달 전인 2021년 7월에서는 ‘천년고도 역사전통문화벨트’ 조성 사업으로 기획됐다는 것이 추가로 밝혀지면서 성난 불심에 기름을 부었다. 특히 광주시장은 2020년 12월부터 천진암을 시작으로 광주시 관내 10여개 성당과 가톨릭 수원교구를 방문하며 순례길 조성 약속과 함께 원활한 추진을 위한 적극적 도움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져 “시장이 광주시 역사문화유산을 가톨릭에 헌납한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됐다.

이에 조계종은 지난해 9월13일 광주시에 항의 공문을 발송하며 사업 백지화를 요구했다. 조계종 중앙종회·종교평화위원회·광주불교사암연합회·대한불교청년회·한국대학생불교연합회도 잇따라 성명을 통해 광주시 종교편향을 규탄했으며, 조계종 전국비구니회는 종교편향 대응을 위한 대책위원회를 구성했다. 

그러자 10월5일 광주시가 ‘천진암 성지 광주 순례길’ 사업을 전면 중단하겠다고 공표했다. 또 11월17일 광주시장이 조계종 총무원장 원행 스님을 예방해 사과했지만 불교계 내부에서는 이번 일을 계기로 불교계가 불교문화유산 보존에 적극나서 종교편향 재발을 방지해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나왔다.

특별취재팀

[1617호 / 2022년 1월1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