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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려대회, ‘종교편향’ 깨고 ‘상생’ 드러냈다

기자명 법보
  • 사설
  • 입력 2022.01.21 21:45
  • 수정 2022.01.21 21:56
  • 호수 1618
  • 댓글 3

민주당 의원 36명, 부처님 앞에 ‘무릎’
다종교 모범국가 공고정립 약속
야당·대선후보도 무겁게 바라보아야

1월21일 서울 조계사에서 봉행된 전국승려대회에서 사부대중은 부처님께 이렇게 고했다. “일제강점기 이후 이승만 정권과 미군정은 불교와 전통문화의 영향력을 위축시키고자 노골적인 종교편향과 차별정책을 펼쳤고, 오늘날까지 종교편향과 불교왜곡이 근절되지 않고 있습니다. 이에 위법망구의 파사현정, 호법원력으로 분연히 일어나 엄동설한을 무릅쓰고 전국승려대회라는 승가갈마를 열게 되었습니다.” 

짧은 문장이지만 강렬하다. 목숨을 버려서라도 그릇된 것을 바로 잡겠다는 의지가 표출돼 있기 때문이다. 섣불리 떠올릴 세속의 의지와는 결이 다르다. 경전 한 권을 구하려 바다의 거센 풍랑을 헤치고, 사막의 뜨거운 모래바람을 뚫고, 차디찬 설산의 고원을 넘은 고승의 구법정신을 올곧이 지켜내겠다는 서원을 함축한 의지이다. 

그러한 의지의 열혈로 새긴 ‘파사현정(破邪顯正)’ 깃발은 문재인 정부와 현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목전에 세워졌다. 박근혜 정부의 국정농단 사태 직후 들어선 문재인 정부는 분열된 국론을 통합시키겠다는 약속과 함께 공정을 내세웠다. ‘공정’은 차별하지 않겠다는 또 다른 말이기도 하다. 하여 기대감이 컸다. 역대 정부, 특히 “기독교 국가”를 표방했던 이승만, “집권하면 청와대에 찬송가가 울려 퍼지게 하겠다”던 김영삼, ‘서울시를 하나님께 봉헌한’ 이명박 등의 ‘장로 대통령’들이 서슴없이 자행해 온 종교편향 행보만은 보이지 않을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그 희망은 취임 초기부터 산산이 조각났다. 신부와 수녀를 청와대로 초청해 미사를 보더니 로마 교황청 미사를 공중파로 내보냈다. 해외 순방 때마다 성당 방문을 언론에 노출했고, 남북정상회담 당시 특별수행원 자격으로 동행한 종교인 가운데는 유일하게 가톨릭만 북측 관계자와 접촉할 수 있게 했다. 급기야 여당 의원이 문화재관람료를 통행세로 지칭하여 공분을 사는 과정에서도 문화체육관광부는 보란 듯이 크리스마스 캐럴 전 국민 보급정책을 시행했다. 불교계를 우롱한 것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이대로라면 대한민국에서 불교가 설 자리를 잃을 것”이라는 자조 섞인 비판이 나온 이유가 여기에 있다.

조계종 스님들이 오늘 법회에서 깨려했던 건 ‘종교편향’이고, 드러내려 했던 건 ‘상생’이다. 늦은 감은 있지만 정청래 의원을 비롯한 더불어민주당은 무지로 인해 저지른 잘못을 깊이 참회했다고 본다. 구두 사과를 넘어 문화재·국립공원 정책 개선과 종교평화차별금지를 위한 입법 활동을 약속했기 때문이다. 대선을 의식한 정치 행보라고도 볼 수 있겠지만 더불어민주당 의원 36명은 조계사 법당 부처님 앞에서 허리를 굽히고 무릎을 꿇어가며 108배를 올렸다. 불자 의원만 참여했던 게 아니다. 헌정사상 유례가 없는 일이다. 이날 유정주 의원은 “1700여년 한국불교의 역사와 현재, 그 맥락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가벼이 생각해 커다란 구업을 지었음을 참회하고 참회한다”고 했다. 

승려대회에서 전한 황희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메시지는 의미 있다. “종교편향의 뿌리부터 해소하고 다시는 이런 일들이 벌어지지 않도록 관련법과 제도적 장치를 빠른 시일 안에 완비하겠다”며 “공직 사회의 공평무사한 자세와 투철한 사명의식을 근간으로 세계적인 다종교 모범국가로서의 위상을 견고히 정립해 나가겠다”고 약속했다. 불교계가 수십 년 동안 요구해 온 ‘바로 그것’이다.  

현 정부와 여당에 대한 평가는 사부대중마다 다를 것이다. “진정한 참회”라는 의견과 달리 “사안에 비해 충분치 않다”는 견해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 해도 오늘의 법회가 부처님께 고했듯 ‘승가갈마(僧伽羯磨)’였음을 잊지 말았으면 하는 바람이 크다. 

출가자를 받아들일 때도, 소임자를 선출할 때도, 쟁사(諍事)를 해결할 때도, 범계 여부를 가릴 때도 갈마를 통해 결정·해결했다. 왜인가? 갈등과 분열을 넘어 화합을 도모하기 위해서다. 조계종 종정 진제 스님이 유시를 통해 “중생이 화합하니 법화(法華)의 향기가 시방세계에 진동하네”라고 한 연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물론 파사현정의 승가갈마가 완전히 끝난 건 아니다. 종교편향·훼불이 사라져야만 가능한 일이다. 국민의 힘을 비롯한 현 야당과 대선 후보들도 무겁게 바라보아야 할 승려대회다. 

[1618호 / 2022년 1월2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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