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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보행도로 1105곳에 은밀히 '가톨릭 성지 마크' 새겼다

  • 교계
  • 입력 2022.11.10 13:42
  • 수정 2022.11.15 09:06
  • 호수 1657
  • 댓글 22

시비 98억 투입해 가톨릭순례길 '이정표' 조성
일반인 모르도록 '서울 도보관광'으로만 안내
작은 '하트모양 매듭'으로 가톨릭정체성 표현
서울시 문화관광해설사 가운데 가톨릭신자만
별도 선발해 '성지 순례 프로그램' 운영하기도

서울시(시장 오세훈)가 공공의 역사만이 아니라 공공의 장소까지도 앞장서 가톨릭화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서울시는 '서울순례길'을 안내한다는 명목으로 예산 98억3500만원을 지원해 공물인 보행도로에 가톨릭 정체성을 상징하는 마크를 종로구·중구·용산구·마포구 일대 1105곳에 설치한 것으로 확인됐다. 

서울시 관광체육국이 2017년 9월 제출한 ‘서울 속 순례길 관광 활성화 종합계획’(순례길 종합계획)에 따르면 서울시와 천주교서울대교구는 2017년 7월 민관 합동TF(특별전담 조직)를 구성, 2018년 10월까지 1년 간 서울시를 답사하며 가톨릭 성지순례코스를 만들고 이를 활성화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과정에서 서울시 관광체육국과 천주교서울대교구는 시 예산으로 2018년 3월20~27일 일주일 간 가톨릭 성지를 답사, 스페인 산티아고와 바르셀로나 등 유럽 지역을 여행했으며, 귀국한 뒤 시비 98억3500만원을 투입해 보행도로 곳곳에  '가톨릭 성지 마크'를 새긴 것으로 밝혀졌다. 당시 여행 경비는 비공개로 처리됐다.

서울시는 '순례길 종합계획'에서 "2014년 천주교서울대교구가 만든 서울 순례길은 가톨릭 정체성이 부족하고 성지 표지물 '주목도'도 부족하다"면서 "순례길 인지도를 제고하고 성지를 활성화할 스토리텔링과 브랜드 아이덴티티(B.I)가 필요하다"며 "서울시 보행도로 곳곳에 '산티아고 순례길'의 가리비 문양처럼 가톨릭 순례길 이정표를 심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울시는 천주교서울대교구에 "가톨릭 의미를 함축하면서도 타종교 거부감이 없는 방향으로 B.I를 개발해보라"며 이정표 가이드라인을 제시한다. 이는 가톨릭 정체성을 뚜렷하게 드러내되 '십자가'나 '예수상'이 아닌 표식으로, 타종교인들이 알 수 없도록 '은밀하게' 추진하라는 의미로 풀이된다. 서울시는 안내 책자를 통해서도 "서울 순례길에는 곳곳에 공식 마크가 '숨어' 있다"면서 "공식 마크가 이끄는 길로 순례길을 즐겨보라"고 권하고 있다.

서울시와 천주교서울대교구가 협력해 만든 순례길 이정표 첫 시안. 가장 오른쪽 디자인이 최종 선정됐다.

실제 서울 보행도로 곳곳에 새겨진 이 '바닥안내시안'(성지 마크)은 언뜻 보면 일반 관광지를 안내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가톨릭 성지와는 전혀 상관 없는 서울 남산타워와 한옥·빌딩이 배경으로 그려져 있다. 새겨진 글자도 ‘서울 도보 관광’ ‘SEOUL CITY WALKING TOURS’ 뿐이다.

그러나 초록색 발자국 위로는 천주교서울대교구가 개발한 '매듭으로 만든 하트 모양'이 있다. 서울시의 '순례길 종합계획'에 따르면 이 디자인은 화합과 포용을 상징한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매듭'이 아닌 '포승줄'로 조선시대 가톨릭 신앙을 위해 목숨을 바친 이들의 박해를 상징한다고도 풀이하고 있다. 실제 이 상징은 현재 서울대교구 순교자현양위원회의 대표 문양이기도 하다.

2020년 3월 관광체육국이 작성한 '서울순례길 바닥안내사인 설치계획
2020년 3월 관광체육국이 작성한 '서울순례길 바닥안내사인 설치계획' 중 발췌

서울시가 98억 예산을 들여 조성한 '성지 마크'는 2018년부터 2020년까지 모두 1105개이며, 최근까지도 '서울 속 순례길 관광 활성화 보행환경 개선'이라는 이름으로 시비를 투입해 추가, 보수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서울시는 2018년 3~7월까지 종로구 266개, 중구 110개, 용산구 181개로 순례길 구간 17.8㎞에 사업비 3억550만원으로 ‘557개’를 설치했으며, 2019년 6월부터는 동작구 49개, 관악구 155개로 7.7㎞에 1억1000만원을 들여 ‘201개’를, 2020년 4~10월에는 3750만원을 투입해 종로구·중구 구간 12㎞에 ‘75개’를 조성했다. 그해 5~12월에는 종로구·중구 구간 18.7㎞에 다시 ‘252개’를 설치, 363만4360원을 추가 집행했다.

한 도로마다 25~50m의 짧은 간격으로 '성지 마크'를 설치한 것에 대해 서울시는 "1분에서 1분30초 간격으로 성지 안내가 있어야 순례자들이 심리적 편안함을 느낀다"라고 보고서에서 적고 있다.

보행도로에 교묘히 숨어있는 '하트 모양 매듭'은 방향 안내 표지와 지주형 안내 간판에도 새겨져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서울시는 보도의 '성지 마크' 외에도 가톨릭 성지를 안내하는 표지를 500m 간격으로 설치하고, 사람 눈높이에 맞도록 지주형 안내 간판을 설치해 가톨릭 역사를 설명하고 있다. 

서울시는 또 문화관광해설사 가운데 '가톨릭 신자'를 별도로 선발, 2017년 하반기부터 천주교 순례길만 안내할 해설자도 양성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은 매일 오전 10시와 오후 2시, 한 팀당 최대 10명씩 맡아 순례길을 다니며 한국 가톨릭 교회사를 설명했으며 이 프로그램은 현재도 '시비'로 운영되고 있다.

서울 순례길 어플.

이외에도 성지순례길을 안내할 어플리케이션을 비롯해 홍보물(팸플릿), 스탬프 투어책자, 예약페이지도 서울시가 구축, 배포한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서울시가 사업비를 전액 지원해 천주교 서울대교구와 공동 개발·출시한 '서울순례길' 어플리케이션은 명칭에선 가톨릭 색채가 드러나지 않지만 어플에 접속하면 가톨릭 역사와 순례길만 안내하고 있다.

이에 장정화 대한불교청년회장은 "대불청도 지난해 만해 한용운 스님의 흔적을 찾고자 '걸어가는 역사기행'을 추진, 서울시 예산을 받고자 무진장 애썼다"면서 "종교색이 짙지 않았음에도 과정이 쉽지 않더라, 근데 서울시가 알아서 '종교 편향'을 자행하고, 성지마크 조성에 98억원을 투입했다니 어이없고 대한불교청년회장으로서 자괴감이 든다"고 말했다. 

조계종 사회부장 범종 스님은 "어떤 의도에서든 관공서가 앞장서 특정종교에 혜택을 줘선 안된다"면서 "종교편향은 옳지 않다. 다종교 사회에서 우위를 점유하도록 특혜를 주는 것은 지양해야 할 일"이라고 지적했다.

정주연 기자 jeongjy@beopbo.com

[1657호 / 2022년 11월 1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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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관광체육국이 2017년 9월 제출한 ‘서울 속 순례길 관광 활성화 종합계획’(순례길 종합계획) 발췌.
서울시 관광체육국이 2017년 9월 제출한 ‘서울 속 순례길 관광 활성화 종합계획’(순례길 종합계획) 발췌.
서울시 관광체육국이 2017년 9월 제출한 ‘서울 속 순례길 관광 활성화 종합계획’(순례길 종합계획) 발췌.
서울시 관광체육국이 2017년 9월 제출한 ‘서울 속 순례길 관광 활성화 종합계획’(순례길 종합계획) 발췌.
서울시 관광체육국이 2017년 9월 제출한 ‘서울 속 순례길 관광 활성화 종합계획’(순례길 종합계획) 발췌.
서울시 관광체육국이 2017년 9월 제출한 ‘서울 속 순례길 관광 활성화 종합계획’(순례길 종합계획) 발췌.
서소문 역사박물관 입구의 설치작품. 작품명은 '순교자의 칼'이다. 조선시대 죄인들의 목에 씌웠던 칼을 형상화했다고 한다. 매듭이 칼을 감싸고 있다.
서소문 역사박물관 입구의 설치작품. 작품명은 '순교자의 칼'이다. 조선시대 죄인들의 목에 씌웠던 칼을 형상화했다고 한다. 매듭이 칼을 감싸고 있다.
서소문박물관 내부 작품.
서소문박물관 내부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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