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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이승만 건국대통령’ 힘 싣기에 불교계 우려

  • 사회
  • 입력 2023.08.17 13:35
  • 수정 2024.03.31 07:47
  • 호수 1693
  • 댓글 15

윤석열 대통령, 8·15광복절 경축식에서 ‘1948년 건국론’ 옹호
개신교계, 윤 정부 힘 입어 ‘이승만 건국대통령’ 만들기에 총력
“대한민국 시작점은 이승만 정부…탄생배경에 교회 공헌 지대”

윤석열 대통령이 8·15광복절 경축사에서 ‘대한민국 정부가 1948년 8월15일 건국됐다’는 이른바 ‘1948년 건국론’ 주장을 옹호해 논란이 일고 있다. 

‘1948년 건국론’ 추진 세력 가운데는 이승만 전 대통령을 건국의 아버지로 내세워 “대한민국 탄생 배경에 한국교회 공헌이 지대했다”고 못박으려는 개신교계가 있다는 점에서 불교계의 각성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불교학자들은 “1948년 건국 주장은 대한민국 헌법과 1919년 출범한 임시정부의 존재를 부정하고, 일제강점기 친일행위에 정당성을 부여하며, 용성·만해 스님 등 불교계 독립운동 역사를 폄훼하는 행위”라고 비판하고 나섰다.

윤석열 대통령은 8월15일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대강당에서 열린 제78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우리 독립운동은 자유와 인권, 법치가 존중되는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만들기 위한 건국 운동이었다”고 했다. 독립운동을 '건국 운동'이라고 에둘러 표현했지만 이는 3·1운동과 4월11일 임시정부가 수립된 1919년을 대한민국 정체성의 뿌리로 보는 시각을 부정하고, 이승만 정부가 출범한 1948년 8월15일을 실질적 건국일로 간주하는 일부 보수층과 개신교계 의견에 힘을 실어준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주요 교회 기관·단체는 이번 정부를 통해 ‘1948년(이승만 정부) 건국절’ 제정하고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자유한국당 지지세력이었던 한국기독교총연합회를 비롯해 한국교회연합·한국교회총연합·한국장로교총연합회·세계한국인기독교총연합회·한국기독인총연합회·미래목회포럼·한국교회언론회 등은 광복절을 전후해 해방이 아닌 건국에 초점을 둔 성명을 잇따라 발표했다.

한국기독인총연합회는 8월8일 “이승만 대통령은 자유 민주주의를 기반으로 한 대한민국 건국에 헌신했다. 국가 성립의 3가지 요소인 영토, 국민, 주권을 모두 갖춘 이 날이 대한민국의 건국일이다. 우리나라는 분명한 역사적 사료가 있음에도, 건국절 제정을 미루고 있다”고 했다.

사단법인 이승만건국대통령기념사업회(회장 황교안) 홈페이지 캡처.
사단법인 이승만건국대통령기념사업회(회장 황교안) 홈페이지 캡처.

한국교회연합은 8월14일 “해방 후 자유 대한민국이 탄생한 것도 이승만 초대 대통령과 같은 신실한 지도자의 간구에 하나님이 응답하신 열매임을 믿어 의심치 않다”고 했다. 

신학자·목회자 모임 샬롬나비도 8월14일 “1948년을 대한민국 건국절로 정하여 국가정통성을 세우자. 대한민국이 해방 후 자유주의 선진국으로 성공 발전한 배경에는 한국교회의 공헌이 있었다. 이승만을 중심으로 하는 지도자는 대한민국을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세웠다. 여기에는 기독교가 자유민주주의의 뿌리가 되었다. 제헌국회에서 의장이었던 이승만은 감리교 목사였던 이윤영 의원에게 개회기도를 부탁함으로써 제헌의회는 시작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개신교계는 1919년 출범한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국가를 구성하는 요소인 ‘영토' ‘주권' 등이 없었기에 국가가 아니라고 한다. 임시정부는 독립운동 단체일 뿐이고 건국을 위한 과정에 불과하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은 보수세력 내에서조차 공감 받지 못하고 있다. 보수 일각에선 이승만 전 대통령을 건국 대통령으로 추켜세우는 ‘1948년 건국론’에 선을 분명히 긋는 모양새다. 독립운동가의 후손으로 민정당과 민자당 국회의원을 지낸 대표적인 보수 인사 이종찬 광복회장은 8월15일 광복절 경축식에 참석해 “흥망은 있어도 민족의 역사는 끊기지 않았다. 정부는 일시적으로 없어도 나라는 있었다”고 지적했다. 윤 대통령 면전에서 건국절 논란에 일침을 가한 셈이다.

이 광복회장은 이에 앞서 8월10일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에서 열린 제78주년 광복절 기념 대한민국 정체성 대토론회에서도 “1948년에 대한민국이 건국됐다면 어느날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결과가 된다. 대한민국의 발전이 일본 식민통치로 공짜로 얻어진 것처럼 해석하게 되는데 이런 식의 억지 역사는 항일 독립운동을 의도적으로 부정, 폄훼하며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뒤흔들려는 저의가 있다고 본다”고 거세게 비판했다. 1919년 만들어진 민주 공화정 체제의 임시정부를 이어받은 대한민국 정부는 1948년 8월15일 ‘건국’이 아닌 ‘수립’됐다는 입장은 분명히 한 것이다.

 

이 광복회장은 윤 정부가 460억원을 투입해 추진 중인 ‘이승만 기념관’ 설립에 관해서도 ‘괴물 기념관’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8월3일 서울 영등포구 광복회관에서 열린 ‘대한민국 정체성 선포식’ 개최를 앞두고 미리 공개(8월1일)한 인사말에서 “이승만 기념관을 건립하는 것을 기화로 또다시 이승만 전 대통령을 신격화해 ‘독재하는 왕이나 다름없는 대통령’과 같은 모습으로 몰아가고 있다”고 밝혔다.

노무현 전 대통령 때까지 우리 정부는 일관되게 대한민국 건국이 1919년이라는 입장을 유지해왔다. 헌법 전문부터 3·1 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명시돼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2006년 8월 뉴라이트 계열이었던 이영훈 당시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가 '우리도 건국절을 만들자'라는 제목의 칼럼을 한 일간지에 기고한 것이 발단이었다. 이후 '건국절'이라는 용어가 역사학계에서 처음 공론화되기 시작했고 이명박, 박근혜 정부에서 1948년 건국론을 기반으로한 건국절 제정법이 발의되면서 정치 쟁점화됐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2008년 광복절 경축사에서 “대한민국의 건국은 1948년이고 광복절을 건국절”이라고 칭했다. 박근혜 정부도 1948년 건국이라는 이명박 정부의 입장을 그대로 이어받았다. 국정교과서에 명기하는 방안까지 추진했다. 임시정부기념사업회와 독립유공자회 등 80여개 단체는 건국절 반대 성명을 내 강하게 반발했다. 이 무렵 언론에선 ‘이승만 건국론’ 배후에 이명박·박근혜 정권을 탄생시킨 개신교계 뉴라이트 세력이 있다는 분석이 속속 등장했다. 

그러나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광복절 경축사에서 “2년 후 2019년은 대한민국 건국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는 해”라고 선언해 논란이 일부 해소된 듯 했다. 하지만 최근 윤석열 정부의 연이은 ‘건국’ 관련된 발언으로 광복절-건국절 논란에 다시 불이 붙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7월15일 오전 제주 서귀포시 해비치호텔앤리조트에서 열린 '제46회 대한상의 제주포럼'에 참석해 '경제 성장 이끄는 법무행정과 기업의 역할'을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사진=대한상공회의소 제공
한동훈 법무부 장관. 사진=대한상공회의소

과거 개신교계 뉴라이트의 일방적인 주장이던 ‘이승만 받들기’는 윤석열 대통령 취임 이후 정부 공식 입장으로 바뀌었다. 평소 이념적 색채를 잘 드러내지 않던 한동훈 법무부 장관도 ‘이승만 띄우기’에 가세했다. 7월15일 대한상공회의소 제주포럼에서 한 장관은 “이승만 정부의 농지개혁이야말로 대한민국이 여기까지 오게 된 가장 결정적인 장면”이라고 했다. 

박민식 장관이 보훈처장 당시 3월26일 서울 이화장에서 열린 이승만 대통령 탄생 148주년 행사에 참석했다. 사진=국가보훈처
박민식 장관이 보훈처장 당시 3월26일 서울 이화장에서 열린 이승만 대통령 탄생 148주년 행사에 참석했다. 사진=국가보훈처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은 7월19일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이승만 58주기 추모식에 참석했다. 사진=국가보훈부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은 7월19일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이승만 58주기 추모식에 참석했다. 사진=국가보훈부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은 7월19일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이승만 58주기 추모식에서 “(이승만)기념관 건립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면서 “초대 건국대통령을 복원하는 일은 대한민국의 국격과도 직결되어 있다”고 했다. 박 장관은 보훈처장 당시 그간 서울북부보훈지청장이 방문하던 관례를 깨고, 3월26일 서울 종로구 이화장에서 열린 이승만 탄생 148주년 기념행사에 직접 참석했다. 그는 이명박 대통령 취임준비위 자문위원으로도 활동한 인물이다.

불교학계는 ‘1948년 건국론’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이승만 정부 건국 주장은 대한민국 헌법을 부정하고, 임시정부의 존재를 부정하면서 친일행위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독립운동의 역사를 폄훼한다는 지적이다. 특히 기독교 편향정책 제정일치 사회나 정교일치 사회에서 어울렸음직한 대통령을 건국의 아버지로 만들려는 작업만큼은 불교계가 동조해선 안된다는 입장이다.

△김상영 전 중앙승가대 교수=“상식적인 역사를 공부했다면 광복절을 건국절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은 동의하기 어렵다. 건국절 논란은 개신교계 뉴라이트 사관에서 비롯됐다. 이들은 일제강점기(1910년 한일합병) 시작이 강제가 아니었다고 한다. 상식 밖 관점이다. 대한민국 헌법에 임시정부 역할이 적시돼 있다. 일제강점기는 잃어버린 나라를 되찾기 위한 투쟁의 역사였고 저항의 산물이었다. 하지만 건국절 제정을 문제 삼으면 곧바로 ‘빨갱이냐?’ ‘민주당이냐?’ 하고 지적한다. 이것은 정치 선택 문제가 아니다. 대한민국 역사에서 임시정부 역사를 지우는 일은 없어야 한다.”

△김순석 한국국학진흥원 수석연구위원="이승만 전 대통령은 취임 선서도 헌법이 아닌 성경에 손을 올리고 했다. 기독교 국가를 만들겠다는 포부다. 1948년이 대한민국 출발이 되면 국권을 되찾고자 피땀 흘린 애국지사가 사라진다. 이는 그들의 고귀한 독립 정신을 망각하는 처사이기도 하다. 우리는 안타까운 상황에서 해방을 맞게 됐다. 이것도 역사의 상흔으로 남아 있는데 건국 일자까지 30년이나 물러서 잡아야 하겠는가. 오히려 독립 운동을 위해 헌신한 정신을 계승하려는 데 집중하자. 일제강점기 항일 역사를 부정하는 망동을 해선 안된다.” 

△고영섭 동국대 교수=“저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에 이승만 공적이 컸다고 본다. 김구의 뜨거운 가슴도 좋다. 하지만 이승만 역할이 반드시 필요했다. 다만 이승만 전 대통령은 일본 국왕에게 보낸 공식문서에 직접 자필로 사인해 1919년 4월23일 대한민국이 자주통치국가가 됐음을 문서로 통보했다. 1919년 국가가 있었다는 의미다.  대한민국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게 아니다. 임시정부 출범부터 보는 게 맞다. 하지만 일부 기독교계가 역사를 좁게 해석한다. 이는 분명 곡해이다. 대한민국은 1910년부터 1948년에 걸쳐 건립됐다. 이른바 네이션빌딩(Nation Building·국가건설) 맥락에서 역사를 해석해야 한다. 한 서울대 명예교수가 최근 일간지에 칼럼을 기고했다. ‘해방이 도둑처럼 찾아왔다’고 했다. 하지만 해방은 그저 일어난 게 아니다. 대한민국 정부가 도둑처럼 오지 않았듯.”

△차차석 동방문화대학원대 교수=“정부가 추진하는 이승만 기념관 설립에 찬성한다. 다만 후손에게 있는 그대로 보여줘야 한다. 우상화는 안된다. 또 기념관 건립을 넘어 ‘건국의 아버지’ ‘건국 대통령’ 등으로 만드는 작업은 지양해야 한다. 불교계도 동조해선 안된다. 아직도 법난(유시) 후유증을 겪고 있지 않는가. 조계종·태고종 법난처럼 오늘날 처참한 상황을 맞은 것은 이승만 정부와 관계가 깊다. 1948년 건국론이 완성된다면 현재 다원적인 대한민국 종교 지형도 크게 변할 것이다. 개신교 세력이 대한민국 건립에 가장 큰 기여를 했다는 정당성을 부여받기 때문이다. 불교계도 경각심을 갖고 입장 정리할 필요가 있다.”

△이병두 종교평화연구원장=“이승만 전 대통령의 정책은 종교편향을 넘어섰다. 기독교만 독존하게끔 했다. 감리교 장로였던 대통령은 군종제도를 운영해 ‘기독교 국가’를 만들어 갔다. 기독교 특혜가 어느순간 상식이 된 대한민국이다. 지금이야 광복절·건국절로 논란이 되고 있지만 윤 정부가 강하게 밀어붙여 건국절이 제정되면 어느 순간 대중은 당연하게 여길 것이다. 불교계는 이를 반드시 경계해야 한다.”

정주연 기자 jeongjy@beopbo.com

[1693호 / 2023년 8월 2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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