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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훈 시장, 뉴라이트 국정에 편승하는가?

  • 사설
  • 입력 2023.11.27 14:39
  • 수정 2023.11.30 13:55
  • 호수 1706
  • 댓글 1

‘독립·민주’ 혼 깃든 공간
근현대 미술의 진원·산실
역사 왜곡과 갈등 조장할
‘이승만 기념관’은 안 돼

서울시가 ‘송현공원’에 이승만 기념관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조계종 중앙신도회와 중앙종회 종교편향불교왜곡대응특별위원회가 “즉각 중단”을 요구하고 나섰다. 오세훈 시장은 송현공원 조성과 관련해 ‘비우는 다지인’을 강조하며 ‘이건희 기증관’ 외 다른 시설물은 들어서지 않을 것이라고 누차 밝혀왔다. 그런데 돌연 11월9일 서울시청 시장실을 찾은 이승만기념재단 관계자들과의 비공개 회담에서 직접 프레젠테이션까지 발표하며 송현동 부지를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오세훈 시장의 이러한 갑작스러운 행보는 임시정부보다는 해방 후 정부 수립에 무게를 두는 뉴라이트 역사관에 몰두하며 국정을 운영하는 윤석열 정부의 눈에 들려는 ‘꼼수 시정’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보도를 통해 나온 보수계 특정 단체들의 주장을 종합하면 한미동맹을 맺은 이승만 전 대통령은 ‘위대한 인물’이고, ‘한미동맹의 상징적 장소’이기에 기념관 건립 최적지라 꼽고 있다. 한미동맹에 대한 평가는 차체하고라도 미국대사관 직원들의 숙소가 있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한미동맹의 상징을 운운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이승만 전 대통령이 송현동의 일부 땅을 제공한 건 열악한 주거 환경을 탓하며 한국 근무를 기피 하던 일부 미국 장교와 외교관을 조금이나마 달래기 위해서였다. 그뿐이다. 이후 이곳은 높은 담이 설치됐고 미국인만 오고 갈 뿐 문은 늘 굳게 닫혀있었다. 더 이상의 의미 부여가 필요한가. 

조선 개국 직후 풍수지리 관점에서의 비보를 위해 경복궁 동쪽에 소나무 숲을 조성했다. 이후 소나무 언덕 ‘송현(松峴)’으로 불렸다. 동쪽엔 안국동천이, 서쪽엔 삼청동천이 흘러 북악산과 어우러져 비경을 연출했다. 권문세가의 왕래가 잦았고, 한양에 뿌리를 내린 경화세족이 집을 짓고 살았다. 조선 후기에 이르면 그들은 청나라 문물에 눈을 뜨며 서적과 서화, 골동품을 수집했다. 훗날 안국·인사동이 골동품·서화로 유명세를 띈 연유이기도 하다.

‘강화도 조약’이 체결되자 무역에 혈안이었던 미국, 영국, 프랑스, 벨기에, 러시아 등의 외국인들이 서울 정동 일대로 밀려 들어왔다. 그때 송현동 주변에 머물고 있던 지식인들은 새 시대를 꿈꾸고 있었다. 개화사상을 주도했던 김옥균, 서재필과 젊은 청년 박영효, 홍영식, 유길준 등이 대표적이다. 갑신정변 실패, 갑오개혁 단행에 따른 사회변화를 북촌과 송현동, 안국동, 인사동 사람들은 똑똑히 목도했다. 1919년 3·1운동 당시 기미독립선언서를 배포하며 만세운동을 더 강력히 촉발한 젊은이들도 송현동 주변에 하숙하고 있던 청년들이다. 태극기를 손에 들고 만세를 부른 민중들이 지나간 ‘송현 마루턱(안국동 로터리)’에서는 1970·80년대의 학생운동이 펼쳐졌다. 

2013년 박근혜 정부는 “학습환경이 저해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관광호텔 건립을 지원하겠다”고 했다. 다행히도 당시 박원순 서울시장이 나서 “도심 문화유산과 가까운 북촌의 거점 공간이어서 공익적으로 활용하는 게 바람직 하다”고 결론 내렸다. 2014년 대한항공이 호텔을 포함한 한국문화 체험 복합 문화센터를 제안했지만 “역사 문화 공간의 가치를 상품화해 대기업이 소비문화를 조장할 수 있다”는 비판이 쇄도했다. 이후 서울시와 종로는 송현동 부지의 공공성에 방점을 찍었고 2020년 공원화를 선언했다. 

‘책의 전당’을 건립하자는 출판계의 제안도 있었으나 이 공원에 ‘이건희 기증관’이 들어서는 것에 시민들이 큰 반감을 갖지 않는 이유가 있다. 광복 이후 미국대사관으로 사용된 반도호텔 1층에는 서구의 현대미술을 접할 수 있는 ‘반도화랑’이 있었다. 대비적으로 안국동과 인사동이 인접한 송현동 일대에서는 우리의 전통문화와 현대미술을 만날 수 있었다. ‘근현대미술의 진원지’라는 평가가 있을 정도다. 이후 사간동, 북촌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화랑이 들어서면서 송현동 일대는 ‘문화의 거리’로 자리매김했다. 

‘송현동 공원’은 대한독립과 민주화 운동의 숨결이 깃든 땅이다. 근현대 미술의 산실이라고는 해도, 한미동맹의 상징으로 볼 수는 없다. 따라서 오세훈 시장은 시민들에게 송현광장에 이승만 기념관이 들어서야 하는 이유를 명확히 밝혀야 한다.

[1706호 / 2023년 11월 2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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