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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목적이 훌륭하다면 수단도 훌륭해야

  • 데스크칼럼
  • 입력 2024.02.02 20:33
  • 수정 2024.02.05 13:53
  • 호수 1715
  • 댓글 1

십자가·기도문 포장에 담아
불교계에 보낸 대통령 선물
한센인 인식 개선 좋은 취지
그릇된 방법으로 훼손된 꼴

설 명절을 앞두고 윤석열 대통령 내외가 불교계에 보낸 선물이 집중포화를 맞았다. 스님들을 비롯한 불교계 주요 인사들에게 보낸 선물을 십자가가 그려진 포장지에 담아 보냈다. 거기에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로 시작해 ‘아멘’으로 끝나는 소록도병원 한센인의 기도문까지 엽서로 제작해 동봉했다. 불교계를 자극하기 위해서거나 무시할 작정이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선물을 받은 조계종 총무원장 진우 스님이나 원로의원스님들을 비롯해 교구본사 주지스님 등이 이에 대해 공식적인 언급을 하지 않은 것도 ‘고의’는 아니었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대통령 내외 명의로 발송된 설 선물의 포장지.
대통령 내외 명의로 발송된 설 선물의 포장지.

하지만 조계종 총무원 실무진들은 이에 대해 즉각 대통령실에 문제를 제기했다. 선물이 도착한 당일 오후 대통령실 이관섭 비서실장과 황상무 시민사회수석이 황급히 조계종 총무원장 진우 스님을 예방해 사과했다. 그냥 넘어갈 일은 결코 아니었기 때문이다. 

대통령실은 이번 설 선물에 여러 의미를 담고자 한 것 같다. 문제의 포장지 그림은 국립소록도병원에 입원해 있는 한센인 환자들이 그린 것이다. 지난해 11월 소록도를 방문했던 대통령부인 김건희 여사가 직접 담근 유자청을 환자와 의료진에게 전달하며 격려와 희망을 전달했었다는 사실까지 환기시키며 이번 설 선물에 고흥 유자청과 한센인들의 그림이 들어간 이유를 설명했다. 선물 품목도 나름 신경 써서 고른 것으로 보인다. 올해 설 선물의 기본 구성에는 백일주와 소고기 육포가 포함돼 있었지만 불교계에 보낸 선물에는 술과 고기 대신 아카시아꿀과 표고채를 담았다.

한센인들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개선되길 바라는 마음은 불교계도 다르지 않다.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에 대한 지지의 목소리를 가장 선명하고 꾸준히 이어오고 있는 종교가 불교다. 하지만 십자가가 그려진 포장지에 담긴 선물을 받고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라는 기도문이 적힌 엽서를 펼쳐보았을 스님들의 당혹스러움을 생각한다면 이 문제가 대통령실 관계자들의 사과 방문 정도로 끝날 일인가 싶다. 대통령실은 당일 아직 미배송된 선물을 서둘러 회수했다지만 이미 도착한 선물을 스님들에게 전달했을 실무자들의 곤혹, 그 이상의 불쾌감 또한 마찬가지다. 다만, 고의라 생각하지 않기에 이쯤에서 덮어 두는 불교계의 이해심이 언제까지 계속될지 장담하지 못하겠다. 

대통령 내외 이름으로 전달된 선물을 대통령 내외가 직접 고르고 포장하진 않았을 것이다. 결국 대통령을 지근에서 보좌하는 대통령실의 짧은 생각과 무감각이 피할 수 있는 문제를 일으키는 것이다. 

‘중아함경’의 ‘범지타연경’에는 사리푸트라의 옛 친구였던 다난자니[타연]의 일화가 나온다. 다난자니는 부모와 처자를 보살피고, 세금을 내고, 조상을 위한 제사를 지내고, 사문과 바라문에게 보시도 해야 한다는 이유로 계를 어기고, 다른 사람을 속이고, 옳지 않은 방법으로 재물을 모으고 있었다. 이 소식을 들은 사리푸트라가 옛 친구를 찾아간다. “정당한 행위와 정당한 방법과 정당한 공덕의 결과로 재물을 얻어야 한다”고 충고한 사리푸트라는 “그래야 처자와 친족과 이웃과 사문들로부터 존경받을 것”이라고 일러준다. 

남수연 국장
남수연 국장

흔히 목적이 좋기 때문에 수단이 조금 나쁘더라도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경전은 아무리 목적이 훌륭하다 해도 수단이 옳지 않아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가르쳐주고 있다. 소록도 한센인들의 아픔과 차별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사라지길 바란다는 더없이 좋은 뜻을 담아낼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었을 것이다. 굳이 특정 종교의 상징과 기도문을 통해서가 아니라도 말이다. 더군다나 지역, 계층, 학벌, 세대 그리고 무엇보다 종교에 대해 편향과 갈등 때문에 적지 않게 곤혹을 겪으면서도 이런 무신경은 왜 개선되지 않는지 답답할 지경이다. 혹여 이 문제로 인해 대통령실과 정권이 온통 기독교인으로 채워지고 있다는 불교계의 우려가 다시 불거지고, 이를 불식시키기 위해 지금까지 현 정권이 보여온 개선 노력까지 다시 의혹의 시선에 휩싸이는 일이 벌어지지 않길 바란다.

namsy@beopbo.com

[1715호 / 2024년 2월 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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