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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평화와 공직자의 종교 감수성

  • 법보시론
  • 입력 2024.02.05 10:45
  • 수정 2024.02.17 17:06
  • 호수 1715
  • 댓글 1

종교백화점이라고 부를 정도로 대한민국에는 다양한 종교가 있다. 종교적 열의도 대단하다. 종교와 신앙의 본질적 매력 외에도 식민시대와 전쟁을 겪으며 인간의 한계와 극명하게 대비되어 기대고 싶은 신의 존재가 어느 나라보다 절실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선진국 반열에 오른 요즘은 종교가 위기를 겪는 중이다. 기독교는 신부와 목사가 부족하고 불교도 출가자가 현격히 줄었다. 새로운 신자 구하기도 쉽지 않은 것은 모든 종교의 공통점이다.

이 시대에 가장 활발한 종교는 무종교라고 한다. 처음부터 종교를 갖지 않은 경우도 많지만, 믿던 종교를 떠나온 사람도 상당수다. 종교 환경이 이렇다 보니 어떤 종교는 생존 수단으로 배타성을 동원한다. 일부 종교는 종교적 갈등을 조장하여 신자의 충성을 끌어내는 식의 나쁜 카르텔에 가담하고 있다. 종교가 인간의 경쟁의식과 투쟁심리를 역이용하는 것이다. 이대로 비열한 종교갈등을 다종교 사회의 필요악으로 받아들이고 말 것인가.

조계종 종교평화위원회 제7기 활동이 시작됐다. 종령(宗令)에 따르면, 위원회는 국가기관의 종교 차별과 종교 편향 사건 대응과 예방 및 근절 활동은 물론 종교 평화 실천 활동을 전개하게 된다. 해법을 찾아야 할 문제가 산처럼 쌓였다. 당장 대통령실이 설날을 맞아 불교계에 보낸 명절 선물상자에 교회와 성당 그림과 기도문 카드가 들어 있어 파장이 크다. 교계는 사과를 신속히 받아들이고 집안 단속을 하는 모양새지만 일반 사부대중은 마음이 멍들고 울화통이 치민다. 불교계에 대한 잦은 실수와 사과의 반복은 불교 신자들에 대한 조심성 없는 태도 때문이라고 본다. 불교계 어른들은 올 설에는 그깟 선물 하나쯤은 정중히 사양하여 후대에 귀감이 되도록 해야 한다.

쉽사리 불편한 마음이 떠나지 않는 것은 그동안 불교계가 유사한 일로 상처받은 일이 너무도 많았기 때문이다. 최근 서울시는 서울형 키즈카페 사업을 통하여 아이돌봄 사업을 구체화했다. 그중에는 교회 시설도 무상 임대하고 있다. 미래 세대에 대한 종교 편향적 행위가 발생할 개연성이 없다 할 수 없다. 전남 신안군이 ‘1004섬’으로 개발한 일부 섬에 예수의 12사도 예배당 및 순례길을 조성하고 기독교 체험관을 건립하려 했다. 충남 서산시도 사적지 해미읍성을 천주교 역사에 치우쳐 복원하여 특정 종교 성지화에 가담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중앙행정기관은 물론 지방정부의 공직자에 의한 종교적 차별적 공무수행이 전국적으로 공공연히 일어나고 있음을 말해 준다. 

종교 평화를 위협하는 원인으로는 종교의 세속화와 이념화를 들 수 있다. 종교영토의 확장이라는 세속적 가치에 기반한 판단과 행동, 그리고 종교적 신심을 이념화하여 도그마로 만드는 것은 자비와 사랑으로 삶의 고통에서 헤매는 이들을 위로하여야 할 종교가 그 소임을 저버리는 행위이다. 이런 어리석음으로 인해 신앙의 위기와 종교소멸이 가속화하고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붕어 세 마리가 결국 모두 사라진 연못 이야기가 떠오르는 이유다. 이념과 세대, 빈부와 지역으로 갈등하는 대한민국에서 ‘종교적 평화’는 마지막 보루다. 이제는 국가의 안전보장 차원에서 종교 평화를 보다 면밀하게 다루어야 한다. 

정부의 종교편향 행위에 대한 대책으로는 실시간 모니터링을 통한 신속한 대응이 필요하다. 정부사업은 예산이 전제되기 때문에 정부와 의회에서의 초기 논의부터 찬찬히 살필 필요가 있다. 이러한 ‘입법 모니터링 활동’을 17개 시·도 단위로 불교계가 조직화하고 체계적으로 운영한다면 더욱 효과적일 것이다. 교구별 신도회나 포교사단을 중심으로 전문성을 갖춘 ‘종교왜곡감시 불교시민운동’을 전개할 필요가 있다. 차제에 정부도 향후 공직자들이 유사한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성인지 감수성에 버금가는, 종교 평화 차원에서의 ‘종교 감수성 교육’을 법정 교육화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근본적 문제해결책을 내놓아야 한다. 

이상훈 한국교수불자연합회장 대전대 교수 shlee0044@naver.com

[1715호 / 2024년 2월 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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