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이 변화하고 우리는 괴로워한다. 변화하기 때문에 괴로운 것이 아니라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해서.’‘화엄경’에 나오는 구절이다. 언젠가 ‘여자의 변심은 무죄’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변화가 무죄인 것이 어찌 여자만이겠는가. 아무래도 여자보다는 감성이 무딘 남성들의 변화 속도가 더뎌서 마치 변화 없는 것 같지만 잘 살펴보면 남자들도 늘 변화를 모색하며 변화하고 있다.변화가 문제가 아니라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우리가 문제라고 벌써 2500년 전 세존께서 가르쳐 주셨는데 지금도 그 명제적 진리를 수용하지 못하는 우리는 변화에
올해 3월 말 스님 몇 분과 강화도로 삼사순례를 다녀오면서, 그중 한 곳에 모셔져 있는 함허기화(涵虛己和, 법명 得通; 1376~1433) 스님의 자그마한 부도에 참배하였다. 함께 한 일행과 작고 소박한 스님의 부도를 참배하며 스님이 불교사에 남긴 자취를 잠시 돌아보고 오늘날 한국불교 현실을 그려보는 시간을 가졌다. 그런데 그 부도 옆에 세운 안내판을 보는 순간 답답하고 안타까워 눈을 돌리고 싶어졌다. 그 부도의 주인공인 함허 스님이 어떤 분인지 설명도 없이 부도의 크기와 양식에 대한 이야기로 채워져 있었기 때문이다.1392년 실권
10만 연등이 강물처럼 흘렀다. 무명의 강에서 깨달음의 바다로 향하는 고결한 물길이다. 그 곁에 서 있던 시민과 외국인도 두 손을 모아 부처님의 자비가 온 누리에 깃들기를 염원했다. 올해 봉축표어는 ‘마음의 평화 부처님 세상’이다.‘평화의 원천은 어디에서 솟는가?’라는 물음에 경전은 ‘마음’이라고 명료하게 답하고 있다. ‘나쁜 마음으로 말하거나 행동하면 고통이 그를 따른다. 수레의 바퀴가 소를 따르듯. (법구경 제1게송)’ ‘순수한 마음으로 말하거나 행동하면 기쁨이 그를 따른다. 그림자가 주인을 따르듯. (법구경 제2게송)’ 고통의
“나를 현대과학의 아버지라고 하지만, 과학의 진짜 아버지는 석가모니 부처님이다. 내가 아는 한 진짜 허공을 본 사람은 석가모니밖에 없다. 미래의 종교는 우주적인 종교가 되어야 한다. 그동안 종교는 자연계를 부정해왔다. 모두 절대자가 만든 것이라고만 해 왔다. 그러나 미래의 종교는 자연 세계와 영적인 세계를 똑같이 존중해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통합이기 때문이다. 누군가 내게 현대 과학적 요구에 부응할 수 있는 종교를 꼽으라고 한다면, 나는 불교라고 말하고 싶다.” 인류 역사상 천재로 추앙받는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말이다. 상대성이론
불교문화 전반에 드리운 기본 요소는 ‘전통’과 ‘엄숙, 경건’이 아닐까? 서구 문명의 홍수와 그것을 타고 들어온 기독교를 상대하면서 자연스럽게 불교는 전통을 업을 수밖에 없었고, 그 전통에서 흘러나오는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엄숙함과 경건 쪽으로 치우치게 된 것 같다. 불교박람회 등을 보면 계속 새로워지는 면모를 보이면서도 여전히 그러한 기조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 듯하다. 그리고 그러한 문화적 분위기가 단적으로 드러나는 것이 바로 부처님오신날의 연등축제이다. ‘부처님오신날’의 핵심은 ‘기쁨’이어야 한다. 부처님이 오심으로써 우리 모두에
고용석 한국채식문화원 공동대표가 5월14일 ‘불교의 힌두교에 대한 오해 두 가지’ 제하의 기고를 보내와 이를 게재한다. 고 대표는 지구온난화 비상협의회 대표와 식생활교육 부산 네트워크 공동대표를 역임했으며, 국제 채식연합회(IVU)를 대표해 세계 NGO대회와 유엔회의 활동에도 참여했다. 편집자칼 융의 집단무의식 개념을 비롯하여 다수의 저명한 인류학자에게 영향을 미친 독일 인류학자 아돌프 바스티안(1826~1905)은 전 세계 신화와 종교체계에서 같은 이미지와 주제들이 지속적으로 반복되는 것을 보고 이를 ‘기초발상’이라고 불렀다. 그
우리 헌법 제20조에 ‘①모든 국민은 종교의 자유를 가진다. ②국교는 인정되지 아니하며, 종교와 정치는 분리된다’고 규정되어 있다. 따라서, 모든 국민은 어떤 종교든지 선택할 자유가 있고, 종교를 선택하지 않을 자유도 보장된다. 또, 제11조 제1항에서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고 규정되어 있으므로 종교가 있든 없든, 어떤 종교를 선택하든 국가적으로는 물론 사회적, 개인적으로 어떤 차별도 있어서는 안된
돌잔치를 보고 애써 눈을 흘기는 사람은 별로 없다. 다들, 무럭무럭 자라서 훌륭한 사람이 되라고 축원하지. 검찰총장 출신 대통령의 취임 1주년을 두고 많은 국민이 갖게 되는 양가감정이 아닐까 싶다. 윤석열 후보에게 적지 않은 국민이 기꺼이 한 표를 던졌다. 그러고 나서, 1년여. 어쨌든 어린아이로 치면 돌날을 맞이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같이 기뻐하거나 덕담을 건네는 분위기가 전혀 아닌 듯하다. 나 말고도 주변에 이런 사람들이 꽤 있다는 것은, 각종 여론조사의 수치로도 거듭 확인된다. 동네 사람들이 자꾸 이러쿵저러쿵 수군대는 데는 그
“우리의 헌법정신과 우리 사회의 제도, 질서가 다 성경에서 나왔다.” 윤석열 대통령의 말이다. 정교분리 원칙이 명시된 헌법(20조)의 이념을 송두리째 훼손하는 망언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서울시장 당시 “서울시를 하나님께 봉헌”했다면 윤석열 대통령은 한국의 법, 역사, 문학, 예술, 철학, 과학 모두를 즉 ‘대한민국을 봉헌’한 것과 다르지 않다. 교회에서 언급했다고 해서 ‘인사치레의 말’ 정도로 가볍게 볼 사안은 아니다. 윤 대통령은 2022년 12월25일 서울 성북구 영암교회에서 “법학을 공부해보니 헌법 체계나 모든 질서, 제도
나는 불교학생회 출신 스님이다. 고등학교 1학년 때 ‘문학의 밤’에 초대되어 처음 불교를 접했다. 그 시절 시골의 학교는 대부분 사찰로 소풍을 갔고, 나의 유년시절도 초등학교 6년과 중학교 3년, 모두 9년을 아주 먼 거리를 걸어서 사찰로 소풍을 갔다. 그 절에 스님은 아무것도 모르는 코흘리개들에게 무언가를 열심히 설명했다. 9년을 들은 설명이지만 어떤 내용이었는지 기억은 전혀 없다. 아마도 사찰에 대한 연기와 법당에 대한 설명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각인된 기억은 이상한 옷(가사 장삼)을 입은 도인과 같은 스님의 낮선 모습과 곰팡
제주독립운동가 서훈추천위원회는 2월28일 일제강점기에 사교(邪敎)로 내몰려 탄압 받은 무극대도교 사건 피해자의 독립 운동가 서훈 심사를 공정히 해달라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무극대도교는 독립 운동을 했다는 이유로 조선총독부로부터 가혹한 탄압을 받았고, 따라서 2021년 2월 독립유공자 공적 조사서를 보훈청에 접수했지만 “활동 내역의 독립 운동 성격 불분명”이라는 회신을 받았다는 것이다. 1938년 8월에 발생한 무극대도교 사건은 백백교 이후 가장 큰 종교 사건이라 불리기도 했다. 당시에 교주 강승태 이하 67명이 광주지방법원 검사국으
국가지정문화재를 보유한 전국 65개 사찰이 5월4일부터 관람료를 받지 않았다. 이로써 군사·독재 정권의 강요에 의한 사찰 토지 국립공원 편입, 국립공원관리공단의 일방적인 정책 변경 등으로 인해 공공갈등으로까지 촉발된 문화재관람료 문제는 일단락됐다. 문화재관람료는 1962년 12월 해인사가 처음으로 받기 시작했다. 당시 정부가 문화재보호법을 제정한 이유는 의무적으로 문화재를 공개하도록 유도하기 위함이었다. 국가에서 문화재로 지정해도 개인이나 사찰이 소유한 문화재를 국민에게 공개하지 않으면 문화유산을 향유할 국민의 권리가 제한되기 때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