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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대통령, 대한민국을 ‘봉헌’하려는가

기자명 법보
  • 사설
  • 입력 2023.05.15 10:44
  • 수정 2023.05.15 10:46
  • 호수 1681
  • 댓글 4

사회제도‧문명 “성경서 나왔다!”
맹목적 신앙 집착 ‘위험한 대통령’

정교분리‧중립의무 위반 가능성
외면‧변명 말고 국민 앞에 답해야

[대통령실]
[대통령실]

“우리의 헌법정신과 우리 사회의 제도, 질서가 다 성경에서 나왔다.” 윤석열 대통령의 말이다. 정교분리 원칙이 명시된 헌법(20조)의 이념을 송두리째 훼손하는 망언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서울시장 당시 “서울시를 하나님께 봉헌”했다면 윤석열 대통령은 한국의 법, 역사, 문학, 예술, 철학, 과학 모두를 즉 ‘대한민국을 봉헌’한 것과 다르지 않다. 

교회에서 언급했다고 해서 ‘인사치레의 말’ 정도로 가볍게 볼 사안은 아니다. 윤 대통령은 2022년 12월25일 서울 성북구 영암교회에서 “법학을 공부해보니 헌법 체계나 모든 질서, 제도가 다 성경 말씀에서 나왔다는 것을 알게 됐다”라며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모든 문명과 질서가 예수님의 말씀에서 나온 것”이라고 했다. 지난 4월9일에는 서울 중구 영락교회를 찾아 “저는 늘 자유민주주의라는 우리의 헌법정신, 그리고 우리 사회의 제도와 질서가 다 성경 말씀에 담겨있고 거기서 나왔다고 했다”라고 말했다. 이날 윤 대통령은 직접 성경을 들고 영락교회에 들어섰다. 인사치레의 정도를 넘어선, 윤 대통령만의 ‘신념’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떨칠 수 없다. 

대한민국 헌법의 근간은 어디에서 비롯됐는가? 주지하다시피 제헌헌법은 초대 법제처장을 역임한 유진오 박사가 기초했다. 헌법 전문(前文)을 해설하며 전한 유 박사의 일언을 보자. “우리가 지금 헌법을 제정하여 민주 독립 국가를 수립하고자 하는데 이는 단순한 연합 각국의 승리와 후원의 선물이 아니고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나라 국민이 3·1 정신과 같은 위대한 정신을 가지고 종시 일본 제국주의와 투쟁한 결과이며 금반 헌법을 제정하여 수립하고자 하는 정부도 기미년에 삼천만의 민의에 의하야 수립한 대한민국 임시 정부를 계승하여 재건하는 것이라는 것을 웅장하게 선언한 것이다.” 실제로 제헌헌법은 1919년 3·1운동의 정신과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대한민국임시약헌’과 조소앙의 ‘건국강령’ 등을 기초로 짜였다. 따라서 제헌헌법을 관통하는 건 ‘민족‧민주주의’다. 근대 이후 등장한 자유민주주의와 수천 년 전에 나왔다는 성경과의 연결고리는 없다.

윤 대통령은 “우리 사회의 제도와 질서”도 “성경에서 나왔다”라고 했다. 한국에서 살아가며 지켜야 할 법과 도덕, 관습이 하루아침에 설정된 게 아니라는 건 기본상식에 속한다. 당시의 사회 흐름에 따라 더해지거나 고쳐지고 때로는 사라진다. 교회에서 결혼식을 치르는 인구가 광복 이전보다 늘었다고 해서 ‘한국의 결혼문화’가 성경에서 나온 것은 아니다. 

또한 윤 대통령은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모든 문명과 질서가 예수님의 말씀에서 나온 것”이라고 했다. 이건 또 무슨 해괴한 말인가? 우리의 손안에 있는 스마트폰을 “예수님 말씀에서 나온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불자와 시민들이 향유하고 있는 가야산 해인사의 팔만대장경은 ‘성경의 말씀’이 아닌 ‘부처님 말씀’에서 비롯됐다. 설날 형제 사이에서도 동생이 형에게 먼저 절을 하는 예의 또한 유교 영향을 받았다고는 할 수 있어도 “성경의 말씀에서 나온 것”은 아니다. 

윤 대통령은 “우리의 헌법정신과 사회의 제도, 질서, 문명이 모두 성경과 예수님의 말씀에서 나왔다”라는 이유를 명확히 밝혀야 한다. “기억나지 않는다” “언론에 의해 왜곡되었다” 식의 변명은 통하지 않는다. 윤 대통령이 직접 언급했듯이 “늘” 말해왔던 ‘것’ 아닌가. 신념이라고 한다면 ‘맹목적 신앙’에 집착하는, 그 맹목적 신앙을 국민에게 전파하는 ‘위험한 대통령’을 마주하고 있음이다.

국가권력이 종교선전 또는 종교활동에 개입한 반 헌법적 행위, 종교적 중립성을 훼손하는 등의 공무원 품위유지 의무 위반, 기독교를 믿지 않는 시민도 한국 국민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존중받으며 살아갈 수 있는 행복 추구 권리 침해 등을 따져야 한다. 무엇보다 정교분리 원칙을 명시한 헌법을 위반한 행위는 아닌지 면밀하게 살펴야 한다. 정교분리 원칙을 모범적으로 실천하고 나아가 종교의 자유를 보장해 주어야 할 의무가 정부에 있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은 이에 대한 답변을 국민 앞에 내놓아야 한다. 

[1681호 / 2023년 5월 1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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