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산굴의 무영수 상·하’ “탄허 스님은 경을 보면서 참선을 하고, 참선을 하면서도 경을 보신 어른이에요. 스님은 경전과 선을 둘로 보신다는 생각을 안 하셨어요. 그래서 스님의 정체성은 어떤 한 가지로 논할 수 없어요. 선사이면서도 강사였으니, 선교겸수라고 할 수 있습니다.-무비 스님” “스님은 교학을 종지적으로 다루고 유불선을 회통하는 안목이 뛰어나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어록이나 경전을 두루 살피셔서 걸림이 없었다고 이야기할 수 있지요. 그러나 활발발한, 무애한 그런 선의 가풍, 선적인 측면도 겸수하였다고 봅니다.-정념 스님” “스님은 공부하는 것을 좋아하셨어요. 공부를 하지 않는 사람은 좋아하지 않았지요. 그리고 공찰 주지를 하는 것을 싫어하고 주
▲불교평론 봄호 불교평론·대각사상서 강한 비판 드러난 문구로 경허 폄하 역사서술 상식도 소홀 윤 대표 “매도 수준 비난” ‘불교평론’에 서운함 밝혀 윤창화 민족사 대표가 지난해 ‘불교평론’ 가을호에서 “경허 스님은 막행막식으로 계율의식을 무너뜨리고 후대 수행자들로 하여금 주색을 답습하게 한 것은 큰 과오다” “경허 스스로도 자신의 기행에 대해 당당하지 못했으며, 만년에 삼수갑산으로 떠난 것도 비난과 시비를 피하기 위한 성격이 짙다”라고 비판해 ‘불교평론’ 폐간 논란까지 불러온 가운데 이번에는 윤 대표의 주장을 반박하는 논문들이 잇따라 발표됐다. 하지만 당사자인 윤 대표는 이들 글에 대해 “매도
대각사상연구원(원장 보광 스님)은 최근 ‘대각사상’ 제18집을 펴냈다. ‘용성 스님의 한글 화엄경과 화엄사’를 특집으로 다룬 이번 호에는 관련 논문으로 △화엄사상(1)-법신사상(도업 스님) △백용성스님 국역 ‘조선글 화엄경’ 연구(보광 스님) △한국불교에서 ‘화엄경’의 위상과 한글 번역-백용성과 이운허의 번역 중 ‘이세간품’을 중심으로(신규탁) △근현대 화엄사의 사격과 진진응․이동헌(김광식) △구도자, 도광 스님 연구-그의 보살행과 구도행각(종석 스님) 등이 실려 있다. 또 기고논문으로 △불교계 고승과 국도 천도-고려 및 조선의 국도를 중심으로(황인규) △경허의 삼수갑산과 상채(償債)(홍현지) △1920~30년대 불교계의 사회주의에 대한 인식(김종인) △김일타, 비구승단의 복원, 그리고 현 조
▲월정사는 2월24일 임진년 동안거 해제와 탄허 대종사 탄신 100주년을 맞아 사부대중 300명이 동참한 가운데 기념법회를 봉행했다. “우리가 우주 삼라만상 속에서 보면 차별이 존재하지만 허공자리에 앉아서 볼 것 같으면 우주 삼라만상이 한 덩어리가 됩니다. 그렇듯 팔만대장경의 교리도 그 학설이 한정이 없지만 화합의 차원에서 보면 한 덩어리인 것입니다. 일체 현인이니 성인이니 하는 선과 악은 한이 없지만 부처님 자리에 이르러서는 모두 한 덩어리가 되는 것입니다.” 2월24일 오전 월정사 적광전에는 탄허 대종사의 육성법문이 흘러나왔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알기 쉽게 풀어내는 자상한 스님의 육성법문은 지난 석 달간 안거를 마치고 이제 막 만행 길에
▲‘되돌아본 100년, 탄허’ “법당 100채를 짓는 것 보다 스님들 공부시키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오대산 사자 탄허 스님은 ‘교육이야말로 불교의 명운을 가르는 가장 핵심적인 시대적 과제’로 여겼던 대표적 학승이다. 때문에 전쟁 후 피폐한 상황에서도 1956년 월정사에 ‘오대산 수도원’을 세워 교육에 매진하며 후학 양성에 정성을 다했다. 이후 스님들이 공부하는 전통불교의 교재들이 모두 한문으로만 되어 있어서 배움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해 모든 교재를 현토하고 번역하는 대업을 완성했다. 스님의 이러한 정진은 불교학은 물론 국가적인 학문 발전에도 크게 기여함에 따라 국민훈장 은관문화훈장을 추서받기에 이르렀다. 또 동국대 대학선원 원장과 조계종 중앙역경원
서울 화계사(주지 수암 스님)는 1월19일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2층 국제회의장에서 오후 1시 ‘삼각산 화계사의 역사와 문화’란 주제로 학술세미나를 개최했다. ‘화계사지’ 발간을 위한 이번 학술세미나에는 △조선후기 왕실과 화계사의 불교사적 가치(오경후 동국대 연구교수) △화계사의 근대사(한상길 동국대 연구교수) △숭산행원 선사의 선사상(신규탁 연세대 교수) △화계사 가람의 특성과 역사성(김성도 문화재청 시설사무관) △화계사 제작 불화의 미술사적 의미(지미령 문화재청 문화재감정위원) 등 논문이 발표됐다. 사회는 서재영 불광연구원 책임연구원이 맡았으며, 토론자로는 손성필 한국고전번역원 연구원, 김광식 동국대 연구교수, 차차석 동방대학원대 교수, 홍병화 불교문화재연구소 연구관, 유근자 동국대 강사가 각각 담당
▲청담사상연구소가 11월9일 동국대 덕암세미나에서 제11회 청담사상 학술세미나를 개최했다. 올해 10주년을 맞은 청담사상연구소(소장 허익구, 경남과학기술대학교 교수)가 11월9일 동국대 덕암세미나실에서 제11회 청담사상 학술세미나를 개최했다. 이날 행사는 300여명의 회원들과 연구진들이 참석한 가운데 ‘청담조사의 지계사상’을 주제로 진행됐다. 동국대 명예교수인 김선근 교수가 ‘청담조사의 계율관’을 주제로 발제한데 이어 조선대 최성렬 교수, 한국교원대 박병기 교수, 동국대 김광식 교수가 청담 스님의 지계사상과 관련한 기획논문을 각각 발표했다. 토론자로는 동국대 한상길 교수, 외래교수 강상숙·이정숙 박사, 한국외국어대 조준호
통합종단 50년과 한국대학생불교연합회 창립 50주년을 맞아 광덕 스님의 종단 활동과 대학생 전법에 대해 논의하는 자리가 마련된다. 불광연구원(이사장 지홍스님)이 11월17일 오후 2시 서울 불광사 교육원 강당에서 제16차 불광연구원 학술연찬회를 개최한다. ‘광덕 스님의 종단 활동과 대학생 전법’이란 주제로 열리는 이번 연찬회에선 △광덕 스님의 종단활동과 조계종(김광식 동국대 연구교수) △광덕 스님의 대학생 전법과 대불련(한상길 동국대 연구교수) 등 논문이 발표된다. 토론자로는 김재영 동방불교대 교수, 이종수 동국대 연구교수가 참여한다. 한편 광덕 스님은 조계종 중앙감찰위원(1958), 총무원 서무국장(1962), 조계종 교무부장(1969), 중앙종회의원(197
기독교 왕성한 활동에 자극경전 한글화가 대중화 확신선사임에도 역경불사 착수꼼꼼한 한글 번역이 특징 ▲대각사상연구원이 10월7일 구례 화엄사에서 개최한 학술세미나. 일제강점기 용성(1864~1940) 스님이 참선수행을 했던 선사임에도 경전 번역에 착수한 것은 타종교의 비방과 도전이 계속되고 불교가 침체되는 속에서 이를 극복하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판단했기 때문인 것으로 나타났다. 동국대 교수 보광 스님은 대각사상연구원이 10월7일 구례 화엄사에서 개최한 학술세미나에서 한국 역경사의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꼽히는 ‘조선글 화엄경’(1928년)을 중심으로 용성 스님의 경전번역 이유, 특징, 출판 의의 등에 대
청담사상연구소는 11월9일 오후 2시 동국대 학술문화관 덕암세미나실에서 제11회 학술세미나를 개최한다. ‘청담조사의 지계사상’을 주제로 열리는 이번 학술세미나에선 △청담조사의 계율관(김선근 동국대 명예교수) △삼학의 체계로 본 청담조사의 지계사상(최병렬 조선대 교수) △한국불교의 계율전통에서 본 청담조사의 지계사상(박병기 한국교원대학교 교수) △청담의 지계정신과 불교정화(김광식 동국대 연구교수) 등 논문이 발표된다. 이재형 기자 mitra@beopbo.com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한국불교학회(회장 김용표)는 최근 ‘한국불교학’ 제63집을 펴냈다. ‘오대산 화엄의 특징과 탄허의 원융사상’을 기획논문으로 다룬 이번 호에는 △오대산 문수화엄 신앙의 특수성 고찰(염중섭 / 자현) △탄허 택성의 생애와 사상(고영섭) △한암과 탄허의 동이점 고찰(윤창화) △탄허 택성의 화엄사상(임상희) △탄허의 시대인식과 종교관(김광식) △탄허 스님의 예지, 그 배경과 의의(김성철) 등 논문 6편이 실려 있다. 또 연구논문으로 △조선후기 삼문수학과 선 논쟁의 전개(이종수) △경허성우의 몸과 마음: 파계행 혹은 무심행리(김성순) △티베트불교에서 성불의 의미(양오영) △샨따락시따의 세속과 유식설(박영란 / 현서) △마조선에 나타난 교학사상(정혜련 / 여현) △불성의 본질과 중생의 관계(이석환) △신라불교사에
▲ 신한민보 1919년 8월14일자에 게재된 석전 스님 관련 기사내용. 석전 박한영(1870~1948) 스님이 한성임시정부의 초석이 됐던 1919년 4월 국민대회를 주도했다는 새로운 신문 기록이 발견됐다. 이는 용성·만해 스님 등이 적극 참여했던 3·1운동에 이어 조직적 저항운동의 구심점 역할을 했던 4월 국민대회까지 불교인이 주도했음을 반증한다는 점에서 큰 관심을 모으고 있다. 김상일 동국대 국문학과 교수는 10월4일 동국대 연구실에서 신한민보 1919년 8월14일자에 게재된 ‘한인의 용맹력’ 기사 중 석전 스님과 관련된 내용을 법보신문에 공개했다. 신한민보는 1902년 2월 미국 샌프란시스코 교민단체인 국민회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