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정총림 범어사 교육국장 각전 스님의 일주일은 강의의 연속이다. 범어사금정불교대학에서 ‘금강경오가해’ 강설 등을 비롯해 불자들의 교육과정을 책임지고 있는 스님은 매주 세 강좌, 총 10시간의 강의를 이어가는 강행군을 지속하고 있다. 일주일에 두 번 있는 야간반 수업은 저녁 9시가 되어서야 끝난다. 연일 이어지는 강좌에 몸은 바쁘지만 불교대학 신입생이 늘어난 것은 더할 나위 없는 보람이다. “올해 초 금정불교대학 졸업생이 456명이었습니다. 올해 신입생은 750명이니 졸업생보다 입학생이 300여 명 늘어났죠.”신입생 급등에는 지난 겨
오랜만에 백장암에 왔습니다. 실상사 근처의 백장암은 8년 전 즈음 주지 소임을 도반 스님에게 넘기고 선방에 다닐 때 두 철을 지낸 곳입니다. 반갑게 맞아주는 주지 스님과 도반 스님들이 고맙습니다. 그곳에 문득 가고 싶을 때 늘 자리를 지켜주는 도반이 있는 것은 행복입니다. 저녁 인사를 하고 오랜만에 선방에 홀로 앉았습니다. 한편으로는 다소 낯설기도 했습니다만 고향에 온 듯 편안했습니다. 다음날 새벽 정진 후 아침 공양도 대중과 함께 했습니다. 오전 정진은 혼자 했습니다. 늘 누군가를 의지 삼아서 했었는데 문득 오늘은 저 혼자서도 할
명상은 삶의 최고 선물이다. 삶이 달라지기 시작했으며 행복한 삶으로 가는 최고의 방편이 됐다. 그때도 지금처럼 봄이었다. 마당에 한두 송이 핀 매화가 쓸쓸해 보이는 것이 아직도 추워 꽃잎을 활짝 피워 낼 용기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얼마 후 그렇게 나의 봄은 사라져 버렸다. 50년 이상 살아온 인생이 송두리째 사라지는 고통이 모세혈관을 다 태워버릴 듯 온몸을 질주하고, 머릿속은 희뿌연 안개로 덮여 길을 헤매고 있었다. 수액이 빠져나간 나무처럼 몸은 점점 야위어갔다. 숨조차 쉬어지지 않고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는 위태로운 상황이
체원(體元)은 몽고간섭기인 14세기 전반 해인사를 중심으로 인근 법수사·반룡사·동천사 등 경상도 일원에서 활약한 화엄종 승려였다. 그는 1320~1330년대 ‘화엄경관음지식품’ ‘화엄경관자재보살소설법문별행소’ ‘백화도량발원문약해’ ‘삼십팔공덕소경’ 등의 화엄종 관음신앙에 관한 불서들을 펴냈다. 그 가운데 특히 주목받은 저술은 의상의 찬술로 전해져온 ‘백화도량발원문’을 주해한 ‘백화도량발원문약해’였다. ‘백화도량발원문’은 의상이 당에서 귀국한 직후 낙산을 찾아 관음진신을 친견하고 지은 것으로 전승되어 왔는데, 체원도 의상의 진찬임을
통도사 영산전에는 ‘녹원전법상’이 있습니다. 녹원전법상은 깨달음을 이루신 부처님이 전법을 펼치는 과정을 표현한 그림입니다. 한국불교의 문화적 특징이 잘 표현된 그림입니다. 화면 중앙을 나눠 위쪽에는 양손을 들고 있는 노사나 부처님이 계십니다. 노사나 부처님은 삼신불 가운데 보신(報身)입니다. 보신은 깨달은 부처님을 말합니다. 화면의 아래 중앙에는 계단이 설치돼 있고, 계단을 중심으로 좌우에 다섯 법신이 있습니다. 이는 오분법향(五分法香)을 의미합니다. 저녁예불 때 계향, 정향, 혜향, 해탈향, 해탈지견향이라고 할 때 그분들입니다.
연간 약 700만명의 등산객이 오른다는 북한산은 예로부터 명산으로 알려져 왔다. 삼국시대에는 부아악이라고도 하였으며, 한산, 삼각산(三角山) 또는 화산이라고도 불렀다. 전설에 의하면 고구려 동명왕의 아들 비류(沸流)와 온조(溫祚)가 이곳 부아악에 올라 백제를 세울 만한 땅을 찾았다고 하며, 신라시대에는 한강 유역을 둘러싼 삼국의 각축장으로써 이 일대를 장악한 진흥왕이 비봉에 올라 순수비를 세운 곳이다. 여기서 말하는 부아악이 지금의 북한산이며 고려시대에는 삼각산이라 부르던 곳이다. 고려 수도인 개성 송도에서 한양으로 오다가 이 산을
여리청문보살과 해심심의밀의보살의 대화가 끝나자 법용보살이 등장한다.“세존이시여! 제가 과거 세상에 광대명칭이라는 부처님이 계실 때 칠천 명의 외도 수행자들과 승의제(勝義諦)에 관해 의논하고 해석하고 쟁론을 벌였는데 결국에는 무익하며 서로를 괴롭히는 결과만 가져올 뿐이었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그때 세상에 부처님이 나타나심은 매우 희유한 일인데 이러한 일체의 심사를 끊어 승의제상(勝義諦相)을 통달해야만 불법을 증득할 수 있는 것으로 판단하게 되었습니다.”법용보살의 이 질문은 앞의 해심심의밀의보살의 설명과 궤를 같이한다. 법용보살이
초기경전과 주석서에 기반한 사마타 위빠사나 명상법을 1년 9개월에 걸쳐서 다루었다. 이제는 남방불교의 수행전통을 살펴보면서 주요 수행법을 다룰 예정이다. 남방불교의 국가는 스리랑카, 미얀마, 태국이다. 이 세 나라의 불교는 각각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스리랑카가 교학 중심의 불교라면, 태국과 미얀마는 수행을 중시한다. 경율론 3장 중에서 스리랑카 불교가 경장(經藏)을 중시한다면, 태국은 계율과 율장(律藏)을 중시한다. 미얀마는 수행과 아비담마[論藏]을 중시한다. 이렇듯 세 나라 불교는 경률론 삼장을 하나씩 맡아서 중시하는 듯한 특징
나는 몇 번의 글에 걸쳐 ‘성유식론’에 의거해서 ‘마음’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오고 있다. 글의 주제가 처음엔 ‘가짜’로 시작되었다가 어느샌가 ‘마음’으로 바뀌었다. 그런 식으로 흘러간 이유를 잠깐 복기해 보겠다. 미륵의 후예들은 우리의 집착을 일으키는 강력한 힘을 ‘말[言]’에서 찾았다. 모든 집착이란 실은 하나의 빈 이름에 불과한 말에 집착하는 것이다. 그것을 일깨워 주기 위해 다음과 같은 유식(唯識)의 이치를 설한다. ‘모든 말은 본래 가짜 이름으로, 진짜 실재가 아니라 가짜 환영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러한 말과 결합되는 환영들
불상이라고 하면 대부분 황금 불상, 청동 불상, 목조 불상 등을 먼저 떠올린다. 그런데 시멘트 불상이 있다. 그것도 속리산 법주사 미륵대불이 콘크리트 불상이었다는 것을 들어봤는가. 지금이야 화려한 황금 불상으로 거듭났지만, 한때 우리나라 최초의 콘크리트 불상이었다.법주사 미륵대불은 신라 혜공왕 12년(776)에 진표율사(眞表律師)의 원력으로 조성됐었다. 그러나 조선조 고종 9년(1872)에 대원군이 경복궁을 축조하기 위해 발행했던 ‘당백전’이라는 화폐 주조를 위해 불상을 몰수해 감으로써 역사 속에서 사라졌다. 이후 1939년, 일제
‘가을에 으뜸가는 먹을거리는 송이버섯과 잣이라/ 신선이 되는 음식으로 세속의 음식을 하찮게 만드네.’조선중기의 문신 최립(崔岦, 1539~ 1612)의 문집, ‘간이집(簡易集)’에 나오는 송이버섯 상찬이다. 최립뿐만 아니라 고려와 조선의 많은 문인이 가을철 송이버섯을 상찬한 시는 상당히 많다.‘버섯은 반드시 썩은 땅에서 생기거나/ 혹은 나무에서 자라네/ 썩은 곳에서 나기에/ 왕왕 중독이 생기기도 한다네/ 이것은 홀로 소나무 밑에서 생겨나/ 항상 솔잎에 덮여있었고/ 소나무 기운을 쐬어서/ 맑은 향기가 어찌 그리도 그윽한지/ 향기를 좇
[1724호 / 2024년 4월 1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