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이혼율, OECD 국가 중 9위’라는 신문기사를 보고 너무나 놀랐다. 매체에 따라 이혼율에 대한 차이가 있으나 우리나라가 이혼율이 높다는 것에는 변함이 없다. 특히 1997년 IMF사태를 겪은 뒤로 경제적인 이유와 성격차이 등에 의한 이혼율이 급증했다고 한다. 사람과 사람의 인연을 무엇보다 중요시하는 불교의 입장에서 이런 뉴스는 너무나 마음이 아프고 안타깝다. 그러나 결혼이라는 것이 다른 두 사람이 서로에게 맞추고 양보하며 살아가는 것이기에, 다른 사람이 그 관계에 대해 간섭하고 충고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또한 결혼
불교는 윤회라고 하는 끝없는 삶의 연속에서 벗어나 모든 것이 사라진 열반을 증득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종교이다. 이런 불교적 수행을 하기 위해서는 불교로의 입문이 필요하다. 불교인이 되기 위해서는 불, 법, 승 삼보에 귀의하는 것을 기본으로 하고 그 후에 승가라는 수행자 집단의 일원이 되기 위해서 비구(니)계, 사미(니)계, 우바새(이)계 등을 받아 불교의 정식 일원이 되어 함께 수행하며 살아가는 것이다.이러한 불교입문에 특별한 조건이나 제약이 필요하지는 않지만 불교인이 되고자 하는 본인의 의지가 반드시 필요하다. 즉 누군가의 강요
우리는 하루를 살면서도 수많은 사람들과 대화하고 함께 시간을 보낸다. 그 속에서 안락함을 느끼기도 하고 때론 불편함을 느끼기도 한다. 우리는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내며 살아가고 있다. 휴가나 휴식이 필요할 때 홀로 집 안에서 시간을 보내기도 하지만 다시금 사회로 나와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를 사회적 존재라고 부르는 것이다.이러한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의 삶의 모습은 불교에서 말하는 존재의 모습이기도 하다. 불교에서는 모든 것이 인연에 의해 모여져 있고 그것들은 연기(縁起)적 관계 속에서 살아간다고 말한다.
우리는 살면서 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 다양한 일들을 경험하고 배워나가며 주위 사람들로부터 조언을 듣기도 하고 자신이 조언을 해주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사회적 관계 속에서 자신만이 옳다고 생각하거나 남의 조언을 듣기 싫어하며 자기 마음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우리는 ‘구제불능’이라고 부른다. 어떠한 말로도 그 사람을 구제할 수 없다는 뜻으로,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함께 나아갈 수 없는 사람에게 우리는 이런 표현을 사용한다. 어느 사회이든지 이런 부류가 종종 존재하며 그들과 함께 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주위에서 하기
‘나랏말싸미’라는 영화가 여름 내내 뜨거운 화두였다. 한글 창제를 둘러싼 여러 학설 중에 신미대사와 관련된 내용으로, 불교계와 다른 여론들이 역사의 객관성을 두고 수많은 논쟁을 펼쳤고 많은 사찰에서는 단체관람을 하면서 영화를 지지하기도 했다. 해인사에서도 하안거를 마치며 모든 대중들이 근처의 극장을 찾아 다함께 영화를 보았다. 나 역시도 동참하여 여러 이야기들과 대비하며 보려 했으나 영화 속의 다른 내용에 보다 깊은 감동과 관심을 갖게 되었다.영화의 주된 내용은 신미대사가 한글을 창제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고 많은 유학자들의 반
우리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수행은 ‘선(禪)’이다. 고요한 방 안에 좌복을 깔고 편안히 앉아서 온 몸의 힘을 빼고 자신에게 주어진 ‘화두(話頭)’에 집중하는 수행을 우리는 ‘선’ 또는 ‘좌선’이라고 부른다. 여기서 나오는 ‘화두’라는 것은 사전적인 표현으로 ‘조사(祖師)들의 말에서 이루어진 공안(公案)이나 고칙(古則)’을 가리키는 것으로, 선 수행을 하는 수행자 자신의 근기에 맞는 화두를 스승으로부터 받아 그것의 실마리 혹은 근원을 찾는 수행을 쉼 없이 닦는 것이다. 이처럼 ‘선’은 가만히 정지된 상태에서 하는 수행처럼 느껴지지만 그
불교의 계율 중에는 일상생활에서 주의해야 할 것들에 대한 내용들이 상당히 많다. 특히 의식주와 관련해서 불교인다운 생활방식을 말하며 금지시키는 조항들이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그 중 가장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는 것이 육식과 오신채의 금지이다.우선 육식을 금지하는 이유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불교 승려의 식생활의 기본은 탁발(걸식)이다. 탁발이란 수행공동체인 승가에 재가자들이 공양물을 보시하면 그것으로 승려들이 식사를 하여 건강을 유지하며 수행을 해서 다시 재가자들에게 바른 불법을 전해주는 불교의 중요한 의식이다. 그런 탁발
지난 한 주 동안 거의 모든 미디어 매체에서는 일본의 무역제재와 경제보복, 그리고 우리나라에서의 일본산 물건 불매운동이 뜨겁게 다루어졌고 지금도 진행 중이다. 지난 G20 정상회의가 끝난 직후에 일본에서 지난 정부에서 이루어진 일들을 다시금 거론하며 무역제재를 통해 우리나라에 압박을 가하며 우리나라와 깊이 엉켜있는 문제를 악용하고 있다. 이에 대항하여 우리나라에서도 국민들이 앞장서서 ‘보이콧 재팬(BOYCOTT JAPAN)’이나 ‘독립운동은 못했지만 불매운동은 한다’ 등 시민운동을 일으켜 양 국가 간의 신경전이 극으로 치닫고 있는
요즘 예능프로나 미디어 등에서 ‘금수저’와 ‘흙수저’라는 표현을 쉽게 들을 수 있다. 처음 들었을 때는 다소 낯설고 거부감이 있었으나 이 표현이 지금 우리 사회를 대변하는 것만 같아서 매번 들을 때마다 다소의 불편함과 안타까움이 생겨난다. 그런데 이 표현을 사용하는 경우를 잘 살펴보면 자신에게 ‘금수저’라고 말하는 사람은 거의 보지 못했다. 항상 남의 일상이나 직업 등을 보며 부러움 섞인 듯한 느낌으로 상대방을 ‘금수저’라 하고 그렇지 못한 자신은 ‘흙수저’라고 하며 스스로를 낮추고 가엾게 본다. 이렇게 자신보다 남의 것을 더 부러
잠시 내리던 장맛비가 그치고 어느새 한여름의 더위가 시작됐다. 학생들은 일찍이 방학을 해서 각자 준비하고 계획한 여행이나 학업 등 다양한 일들을 하며 즐겁게 휴일을 보내고 있을 것이다. 직장인을 비롯해 다양한 직업에 종사하시는 분들은 곧 다가올 여름휴가에 들뜬 시간들을 보내고 있을 거라 생각된다.몇 해 전까지만 해도 여름휴가가 되면 외국으로 나가는 인파로 공항이 인산인해가 되었었다. 최근에도 그런 풍경을 쉽게 접할 수 있지만 예년만큼의 혼잡은 아닌 듯하다. 경제적 문제도 있겠지만 바쁜 일상 속에서 지쳐 살다가 휴가 때 잠시 쉬려고
한국전쟁 이후 처음으로 미국의 대통령이 비무장지대(DMZ)에 있는 판문점에서 북한의 지도자와 만나서 함께 남북경계선을 넘었다. 누구나가 꿈꾸던 일이 눈앞에 펼쳐진 것이다. 만남 전날까지만 해도 반신반의하던 사람들이 많았으나 당일 날 오전 우리 대통령의 발표를 통해 실제로 그러한 일이 있을 것이라는 소식에 우리를 비롯한 전 세계가 이목을 집중하고 설렘과 기대 속에서 역사적 광경을 함께 공유하였다. 두 나라 지도자의 만남은 처음에는 벅찬 감동으로 다가왔으나 이내 덤덤한 기분으로 바뀌었다. 무언가 화려하고 갖추어진 만남이 있을 거라는 세
현대사회는 끊임없이 변화하고 발전해가고 있다. 이런 시대상에 따라 불교 내에서도 다양한 변화와 시도들이 이어지고 있다. 4차 산업혁명과 AI(인공지능)시대에 상응하기 위해 여러 경전과 사상의 연구를 통해 새로운 시대상에 맞는 불교의 가르침을 제안하기도 한다. 급변하는 환경에 따라 불교적 삶에 대한 고찰 등이 다양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 속에서도 절대로 바꿀 수 없는 것이 한 가지 있다. 바로 불교의 삼장(三藏) 중의 하나인 ‘율장(律藏)’이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율’이나 “계율을 지켜야 한다”고 말할 때 사용되는
작년 가을 가톨릭 ‘종교간 대화위원회’의 초청으로 이탈리아 바티칸에 방문하여 여러 성당들과 유럽의 여러 문화재를 둘러볼 기회가 있었다. 정교한 대리석 조각상은 어디를 가도 눈길을 끌었다. 공원과 분수에는 화려했던 르네상스의 걸작들이 잘 보존, 유지되어 말 그대로 도시전체가 거대한 문화유산과도 같았다. 이런 비슷한 느낌을 긴 시간 유학을 했던 일본의 교토에서도 느꼈었다. 일본불교의 최고 전성기를 누렸던 교토는 도시전체가 불교사원과 유적으로 이루어진 곳이다. 어디를 가도 단정하게 정리되어 있고 모두가 앞장서서 후손들에게 문화유산을 전해
최근 여러 미디어나 SNS 등을 보면 그야말로 ‘먹방(먹는 방송)’의 시대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맛있는 식당을 소개하는 정도에 그치던 것이, 지금은 과도한 경쟁 속에서 식당 소개는 물론이거니와 음식을 더 맛있게 먹는 방법을 보여주고, 심지어는 수십 인분의 음식을 혼자서 다 먹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과연 이런 것이 ‘먹방’인가 라는 의구심이 생길 정도로 ‘식사’라는 개념에서 벗어난 모습이 다소 불편함을 주기도 한다.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은 현대인들에게 있어 매우 중요한 일이다. 정신없이 바쁜 하루 속에서 거의 유일하게 자신
최근 뉴스나 신문 등을 보면 정치인이나 연예인 등의 유명인들이 자신이 과거에 저질렀던 일들이 뒤늦게 밝혀지면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는 일을 자주 접하게 된다. 철없던 시절에 자신을 과시하기 위해 친구들을 괴롭히며 학교폭력을 저질렀던 일이나, 책임지지 못할 말들로 누군가에게 폭언이나 악성댓글 등을 달았던 일 등의 기억 속에 묻어두고 살았던 지난날의 일들이 한참이 지난 지금에서야 고개를 들어 그들이 쌓아놓은 업적과 평판을 물거품으로 만들고 대중으로부터 질타와 외면을 받게 하고 있다. 여러 기사를 보면 자신이 미숙해서 철없이 그런 일을
어느새 설렘의 5월이 지나고 눈부신 햇살이 내리쬐는 6월이 다가왔다. 올해는 5월의 기념일이 일요일에 있어서 다소 아쉬운 느낌도 있었으나 평일에 부득이하게 출근을 해야 했던 분들도 모처럼 가족들과 일요일의 기념일을 즐길 수 있었다. 특히 많은 불제자분들이 휴일을 이용해 가족들과 사찰을 방문해 ‘부처님오신날’을 축하하고 각종 행사에도 참석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이처럼 ‘부처님오신날’은 누구라도 사찰을 찾아 평안한 마음을 찾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불교인으로서의 마음가짐과 부처님의 가르침을 깊이 생각하는 시
올해 양력 5월12일은 불교에서 가장 중요한 날인 ‘부처님오신날’이었다. 우리나라는 음력 4월8일이 부처님오신날로 제정되어 있어서 매년 날짜가 조금씩 바뀐다. 중국을 비롯해 음력을 사용하는 나라에서는 모두 같은 날 부처님오신날을 기념하지만 일본은 현재 양력을 사용하기에 양력 4월8일 기념을 한다. 음력과 양력의 차이에 따라서 나라마다 부처님오신날의 날짜가 다르지만 모든 불교와 불교인들이 이 날을 특별하게 여기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다시금 깊이 생각한다는 점에는 차이가 없다.우리나라와 중국, 일본 등에도 이렇게 부처님오신날에 차이가 있
불교는 한때 출가를 하는 종교라는 선입견 때문에 동양의 ‘효(孝)’와는 다소 동떨어진 종교로 취급 받아 조선시대에는 억불정책이라는 탄압을 받기도 했었다. 불교의 구성원인 비구, 비구니는 독신 출가자로서 한 평생을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며 깨달음을 추구하는 출가수행자이다. 사랑하는 가족들의 곁을 떠나 삭발을 하고 바깥세상에서 살아오던 자신의 모습과는 다른 출가수행자로서의 삶을 추구해가는 것이다. 이런 출가제도와 비구, 비구니의 모습을 얼핏 보면 자신만을 위해 가족을 떠난 이기주의자와도 같은 모습으로 보일 수 있다. 실제로 그러한 이유
올해 4월에는 참으로 안타까운 일들이 많았다. 우리나라에서는 식목일을 앞두고 강원도에 큰 산불이 발생해 수많은 피해를 남겼고, 프랑스에서는 노트르담 대성당이 화재로 첨탑이 붕괴되는 큰 피해를 입었다. 이번 강원도 산불의 원인을 두고 여러 이야기들이 있는 상황이나, 대체적으로 변압기의 전기 문제를 원인으로 말하고 있다. 이는 조금만 더 안전에 주의를 기울였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수도 있었던 사건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부주의에 의해서 우리는 다시금 돌이킬 수 없는 피해와 상처를 받게 되었다. 산과 나무의 피해뿐만이 아닌 많은 강원도 주민
요즘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소확행’이라는 말이 유행이다. 이는 일본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수필집인 ‘랑겔한스섬의 오후’에 등장하는 표현으로,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의 줄임말이다. 요새같이 모든 것이 풍요롭고 무엇이든지 손쉽게 얻을 수 있는 세상과는 다소 동떨어진 표현인 듯하지만, 이 소확행이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큰 화두가 되고 있다. 그 동안 우리는 성장과 안정을 위해 끊임없이 앞만 보고 달려오며, 무엇 하나라도 불편한 것 없도록 새롭게 만들고 그것을 손에 쥐며 살아왔다. 그러다보니 그것들이 풍요로움을 넘어선 지나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