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들의 삭발한 모습과 잿빛 승복의 이미지는 무엇보다도 엄격한 독신생활(celibacy)을 연상시킨다. 그것은 성(sexuality)의 욕망을 억제하는 수행자의 삶을 압축적으로 상징한다. 불교 전통에서 성은 깨달음의 길에 방해가 되는 불편한 본능임과 동시에 극복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성은 피할 수 없는 자연적 현상이자 반복되는 욕망이며 모든 생명의 연원이다. 우리가 ‘불교의 성’뿐만 아니라 ‘인간의 성’도 외면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이는 불교도 성을 조심스럽지만 진지하게 다루어야 할 사회문화적 맥락으로 작용한다. 마침 이런 인식을
인천 연수구 옥련동 청량산 중턱에 위치한 ‘호불사’는 오랜 역사를 지닌 사찰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간절히 호념하고 중생을 제도하겠다는 호불사(護佛寺). 이 절 이름에는 부처님의 진리와 자비광명이 만 중생의 가슴마다 새겨져 영겁에 길이 남길 바라는 의미가 담겼다. 2010년 입적한 (재)대한불교일붕선교종 종정 붕해 스님이 인연을 맺기 전까지 이곳은 ‘청룡사’라는 이름의 작은 암자였다. 붕해 스님은 1974년 운수행각 중 이곳과 인연이 닿았고, 전법을 통한 중생제도를 서원하며 청룡사에 바랑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서원한 내용 그대로 사
세계국제영화제에서 수상하기도 한 인도 유명배우의 불연이 세상에 알려지며 화제다.‘데칸 크로니클(Deccan Chronicle)’은 3월31일 “티벳 방콕의 왕립사찰인 왓 탓 통(Wat That Thong) 사원에서 2주간의 단기출가를 위해 삭발염의해 주목받았던 유명 인도 배우 가간 말릭이 출가생활을 포기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며 “수행의 연장선에서 인도의 여러 도시를 방문하고 스님들과 함께 배운 것을 공유한 뒤 방콕으로 돌아와 더 많은 일을 할 계획”이라고 전했다.가간 말릭은 2014년 스리랑카에서 촬영된 ‘스리 싯다르타 고타마(
① 태자의 출가를 어떻게 막지?태자가 남문밖 구경을 나갔다가, 병자를 보고 수레를 되돌렸던 일은 금방 부왕께 전해졌다.“태자가 보아서는 안 될 걸 또, 보았구나.이거 이거, 큰일났다!”고민에 고민을 하던 부왕은 다시 신하들을 모아서 의논하고, 국사들, 채녀들과도 의논을 했지. 며느리 야소다라와도 의논을 했거든. 왕은 여러 의견에 따라 태자의 글동무 우다니를 불렀다. 국사의 아들 우다니가 지혜롭고, 말솜씨가 있다는 것이 모두의 이견이었던 것. “태자 싯다르타를 왕궁에 붙잡아 둘 사람이 우다니 너뿐이구나.” 왕은 그에게, 종묘사직을 지
‘하늘의 별들은 왜 항상 외로워야 하는가/ 왜 서로 대화를 트지 않고/ 먼 지상만을 바라다보아야 하는가// 무리를 이루어도 별들은 항상 홀로다/ 늦가을 어스름 저녁답을 보아라/ 난만히 핀 한 떼의 구절초 꽃들은/ 푸른 초원에서만 뜨는 별// 그가 응시하는 것은 왜 항상/ 먼 산맥이어야 하는가’(오세영 시 ‘구절초’ 전문)음력 9월9일에 꺾어야 항염·진통 효과가 좋다는 구절초(九節草). 하얀 꽃잎에 노랑 봉오리의 구절초는 자기보다 키가 큰 나무 아래서는 피지 않는다. 습한 곳도 싫어한다. 볕 잘 드는 산등성이나 들판에 무리 지어 흐드
조계종이 전통사찰 보유 불교무형문화유산에 대한 일제조사에 착수한다. 올해 서울·경기·인천 지역 174개 사찰을 시작으로 2005년까지 총 973개의 사찰을 대상으로 실시한다. 이 사업의 마지막 해인 2026년에는 1~4차 현황조사에서 누락된 부분에 대한 보완조사를 진행할 계획이다. 예정대로 6차례에 걸쳐 1000개에 이르는 전통사찰을 집중적으로 조사하면 상당한 무형의 문화유산을 발굴할 수 있기에 귀추가 주목된다. 국가가 지정한 유형문화재 경우 불교문화재가 70%를 차지하는 반면 중요무형문화재는 연등회, 진관사·삼화사·아랫녘수륙재,
‘사람은 누구나 실수한다. 하지만 잘못을 반복하지 않는다면 그는 구름에서 나온 달처럼 능히 세상을 비춘다.’(‘법구경’) 묵원(黙圓) 스님은 부처님 앞에 무릎을 꿇었다. ‘자신이 지은 죄가 산과 바다 같아도 참회하면 소멸한다’는 ‘계초심학인문’의 일언을 품고 온 마음을 다해 올려온 기도다. 1980~90년대 태고종 발전의 기틀을 다진 운산 스님은 총무원장 재임 중 비리 의혹을 받아 2009년 8월 끝내 사임했다. 당시 총무·재무 소임을 보았던 묵원 스님에게도 따가운 시선이 꽂혔다. 그러나 공사(公私)에 관한 한 늘 분명했던 묵원 스
조선 전기 성현(成俔, 1439~1504)이 지은 ‘용재총화(慵齋叢話)’는 고려시대부터 조선 성종 대에 걸쳐 상류층에서부터 일반인 사이에까지 널리 회자 됐던 사람들에 대해 다양한 설화를 담은 책이다. 그 가운데에서도 인상적인 인물이 장원심(長遠心)이라는 스님으로, 성현이 묘사하는 그의 됨됨이는 다음과 같다.“국초(國初)에 장원심이라는 승려가 있었는데,…그 사람됨이 익살스럽고 사심이나 욕심이 없었다. 사는 곳이 일정하지 않았지만 다닐 때는 경계를 벗어나지[出境] 않고, 밤이면 간혹 담벼락에 의지한 채 새벽을 맞이했다. 병이 나면 저자
‘유신헌법·긴급조치’가 관통한 1970년대는 암울한 시대였다. ‘…보이지 않는 공포와 가장 강력한 경멸의 뒤범벅을 우리는 오늘날 삶이라고 부른다. 게다가 그 공포와 경멸을 더 많이 차지하겠다고 사람들은 경쟁적으로 싸우고 있다. 하하. 그러니 그 삶이라는 것에 손이 닿자마자 손은 썩기 시작하고 그 삶이라는 것 속에 발을 들이밀자마자 발은 썩어 버린다. … 그리고 더 많은 거짓을 차지하기 위하여 사람들은 경쟁적으로 싸우고 있다. //술보다 더 지독한 痲藥이 필요하다.’(정현종 시 ‘절망할 수 없는 것조차 절망하지 말고…노트 1975’)
“부처님을 만나기 위해 교구본사를 찾는 시각장애인 불자들이 부처님 말씀을 손끝으로나마 읽고 배우길 바랍니다. 비록 눈으로 세상을 보지 못하더라도 부처님의 가르침을, 그리고 그곳에서 나오는 광명을 느끼길 바래 제작에 나섰습니다. 부디 이 점자 ‘불교성전’이 그들을 보다 밝고 희망찬 세상으로 이끌어주길 바랍니다.”자비화 김정순 마하의료회장이 ‘종단본 불교성전’ 점자불서 제작에 나섰다. 그는 “1999년 조계사에 갔다가 원심회를 알게 되면서 점자책 입력을 시작하게 됐다”며 “얻기 힘들다는 사람의 몸으로 세상에 태어나 뭔가 보람된 일을 하
무한한 자비를 강조하는 불교도 때로는 단호한 투쟁을 강조한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보리수 아래에서 성도(成道)하는 순간 마왕 파순과 벌인 투쟁은 너무도 유명하다. 불교미술에서도 이 순간은 ‘항마’라는 이름으로 자주 도상화 되었다. 또한 인도의 간다라미술에서는 사위성에서 석가모니 부처님이 육사외도에 맞서 펼치신 신변(神變) 역시 중요한 항마 도상으로서 유행하였다. 이 두 항마는 수행-포교에 있어 불가피하게 직면하는 내적-외적 투쟁의 치열함을 반영한다.흥미롭게도 돈황석굴에서는 외도에 대한 항마도상으로서 ‘노도차투성변(勞度叉鬪聖變)’이 더
개안수면(開眼睡眠). 봉선사 회주 밀운(密耘) 스님의 주석처에 걸려있는 편액이다. ‘눈을 뜨고 잠에 드노라!’ 조계종 현대사의 격동을 명징하게 보여주는 기록이 있다. 1962년부터 1986년까지 24년간 무려 25명의 총무원장이 교체됐다는 사실이다. 의현 원장의 취임(1986) 후 다소 안정세를 보이는 듯했으나 강북 조계사에 이어 강남 봉은사에 또 하나의 총무원 현판이 걸리며 강남·북 양 총무원 시대가 열렸다.(1988) 당시 봉은사 주지는 밀운 스님이었다. 이듬해 주지 소임을 내려놓고 봉선사에 방 한 칸 얻어 칩거에 들어갔다.(1
40일 앞으로 다가온 제20대 대통령선거가 무속인의 등장으로 혼탁해 지고 있다.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의 선거대책본부에 ‘건진 법사’로 불리는 무속인이 상주하며 선거업무 전반을 관여한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부터다. 윤 후보는 지난해 10월 국민의힘 대선후보 경선 과정에서도 손바닥에 쓴 ‘왕(王)’자와 ‘천공 스승’이라 불리는 인물로 인해 선거에 무속의 힘을 빌리려는 것 아니냐는 의혹으로 이미 논란의 중심에 섰었다. 그런데 최근 건진 법사로 불리는 무속인의 등장과 함께 배우자 김건희씨가 발표한 4편의 논문 중 3편이 운세와 사주 관련 내
파도는 발아래서 출렁이고 갯바위에 부딪힌 ‘철썩∼’ 소리 청명하게 들려온다. 푸른 바다 위를 걸어 고색창연한 절로 들어서는 것 같다. 바다 위에 처음 절을 세운 스님은 고려의 고승 나옹 혜근(懶翁 慧勤·1320∼1376)이다. 해안가의 비경을 마주한 나옹 선사는 ‘뒤는 산이요 앞은 물이니, 아침에 불공 올리면 저녁에 복 받을 곳(背山臨水 朝誠暮福地)’이라 했다. 길지임을 확신한 나옹 선사는 토굴을 짓고 정진에 들어갔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 전화로 소실되었다가 1930년대 초 통도사 운강 스님이 보문사로 중창한 바 있고, 1970년대
2018년 문화체육관광부에서 발행한 ‘2018 한국의 종교현황’에서는 대한민국 불교 종단 중 현황 파악이 가능한 116개 종단에 모두 3만9866명의 승려가 소속된 것으로 보고되어 있다. 그 밖에 336개의 불교 종단이 추가로 거명되고 있지만 소속 승려에 대한 언급은 없다. 2020년 인구주택총조사에서 확인된 전국 총 인구수가 4858만293명인 것을 감안하면, 현재 우리나라의 승려 수는 넉넉히 보아도 전체 인구의 0.1%를 밑돈다고 할 수 있다. 인구 1,000명 중 승려는 1명 미만인 셈이다.실제로도 일반인의 생활공간에서 삭발염
역경(譯經) 대원칙 하나. ‘이해 못 하면 번역할 수 없다!’ 한 사람의 오역은 만 사람의 사상을 왜곡시킬 수 있다. 원전에 대한 철저한 분석과 파악, 그에 따른 통찰이 이뤄졌을 때라야 한 문장 써 내려갈 수 있는 것이다. 운악산 봉선사는 한국 역경사에 한 획을 그은 두 선지식을 품었다. “번역할 때 원전에 있는 말을 빼지도 말고, 없는 말을 보태지도 말라!” 했던 운허(耘虛·1892∼1980) 스님과 ‘한글대장경’ 완간의 주축이었던 제자 월운(月雲·1929∼현재) 스님이 주석한 도량이다.봉선사 조실 월운 스님은 다경실(茶經室)에
한마음선원 울산지원(지원장 혜안 스님)이 12월12일 울산지원 대웅전에서 장학금 전달식을 개최했다. 전달식에는 지원장 혜안 스님을 비롯해 총무 혜자 스님 등 선원 스님과 이상득 동국대 경주캠퍼스 대외협력실장, 배준형 호계고 교감, 문윤군 천곡중 교감, 장학 수혜자인 최민세, 홍지현 씨 등 100여명이 참석했다.행사는 코로나19 상황을 감안해 진행됐으며 장학금 전달식을 통해 호계고, 천공중학교에 각각 장학금 300만원이 전달됐으며, 동국대 경주캠퍼스 재학생 5명에게 장학금이 수여됐다.장학금 수혜자인 최민제씨는 동국대 의예과 입학부터
불기2565(2021)년 12월 6일 주석처인 평택의 만기사에서 홀연히 원적에 든 원경당 성진대종사는 온 몸으로 한국사회의 격동기를 지낸 보기드문 위인입니다. 해방과 분단은 그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고, 불가에 입문한 여로(旅路)가 그 가운데 있습니다.대종사는 남한의 남조선노동당을 이끈 부친 박헌영 거사와 모친 정순년 여사 사이에서 1941년 태어났습니다. 1946년 부친 박헌영 거사가 미군정의 압박을 피해 월북하자 남한에 홀로 남겨져 홀연단신 고아가 되었으며, 일본 동경제국대학에서 부친과 함께 사회주의 운동을 펼치다가 출가한
5월의 햇살이 유난히 따가웠던 날, 청주 혜은사 관세음보살 입상 점안식이 봉행됐다.(1992) 증명법사는 당대 선지식 청화(1924∼2003) 스님. 사자좌에 올라 법문 내리려는 순간 관세음보살상의 머리 위로 무지개처럼 영롱한 반원형의 띠가 나타났다. 야단법석에 운집한 300여명의 사부대중이 합장한 채 술렁였다. ‘저 반원형의 빛 또한 허상’임을 직시하고 있던 덕산(德山) 스님이었지만 차오르는 환희를 억누를 길은 없었다.군 제대 직후 시골에서 농사일을 돕고 있을 때 극심한 오한을 동반한 부종이 생겨 진료를 받았다. 신증후군(Neph
‘일’ 없이 ‘수행’에만 전념하고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막상 이렇게 말을 해놓고 나니, 그러면 과연 ‘수행’이 무엇인가를 설명해야 한다는 생각이 스쳐간다. 짧은 신문 지면에 ‘수행’에 대해 설명하기는 쉽지 않기 때문에, 또 위의 첫 문장에서 전하려는 의도는 ‘일 없이 사는 삶’이기 때문에, 밖으로 드러나는 형태적인 측면에서 ‘수행’을 간단히 말해두기로 한다. 위에서 필자가 말하는 ‘수행’이란, ‘출가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대중들과 함께 정해진 일과(日課)를 보내는 삶’ 정도로 말해두고자 한다.대중들과 함께 조석으로 예불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