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인 팩트와 허구인 픽션을 합쳐 ‘팩션’이라고 불리는 소설들이 있다. 사실에 기반한 소설. 작가 유응오는 자신의 소설이 ‘팩션’이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작품은 근대기부터 현대까지, 한반도에서 모스크바를 거쳐 카자흐스탄의 크질오르다까지를 오가며 방대한 사실들을 취합하고 있다. 그 광활한 시공간 속에 등장하고 사라졌던 실존 인물들을 한 권의 책 속에 불러 모으기 위해 작가는 몇몇의 문고리들을 만들어 주었을 뿐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고리는 제법 단단하고 정교해 ‘그 고리를 붙잡고 닫힌 문을 열어보라’고 유혹하기에 충분하다. 소설 ‘
올봄 나는 대학에서 ‘종교와 유튜브’라는 꽤 실험적인 제목의 강의를 시작했다. 유튜버도 아니고 유튜브 열혈 애청자도 아닌 나로서는 상당히 무모한 도전이다. 나는 문서나 책에 익숙한 세대에게 교육을 받았으므로 문자가 아닌 영상 매체는 여전히 내게 ‘주(主)’가 아닌 ‘부(副)’로 남아 있다. 나는 항상 글이 중심인 세상을 살았고, 글로 번역되지 않거나 그럴 가치가 없는 영상은 불신하고 내치는 데 익숙했다. 나는 글의 세계를 옹호하고 글의 세계에 속하기 위해 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글을 쓰고 있다. 텔레비전, 영화, 유튜브는 그저 여가
부처님께서는 시간의 흐름을 무시무종(無始無終)이라고 하셨다. 시작과 끝이 따로 없다는 말이다. 시작이 끝으로 이어지고 끝은 다시 새로운 시작으로 연결된다. 이런 시간의 무한한 흐름을 시작과 끝으로 나누는 것은 그저 사람들의 편의에 따른 것일 뿐이다. 부처님께서는 룸비니에서 태어나셨지만, 이미 과거 무수한 생을 통해 수행과 공덕을 쌓아 현생에 부처님이 되셨다. 그랬기에 태어나자마자 일곱 걸음을 걸으시며 “하늘 위와 아래 나 홀로 존귀하다. 삼계가 고통이니 내 마땅히 그들을 편안케 하리라”라는 선언을 하신 것이다.순례단이 부처님의 열반
사찰에서 기도는 일상적이다. ‘초하루기도’ ‘삼칠일기도’ ‘백일기도’ ‘천일기도’ ‘철야기도’ ‘관음기도’ ‘지장기도’ ‘다라니기도’ ‘방생기도’ 등 숱한 기도들이 있다. 그럼에도 기도는 종종 부정되거나 평가절하된다. 일부 스님과 불교학자들조차 “불교는 자력종교이고 수행의 종교이므로 빌고 바라는 것은 올바르지 않다”라거나 “기도는 하근기 중생을 위한 방편에 불과하다”고 낮잡아 말한다. 이러다 보니 불교 안에서 기도의 위상은 대단히 낮다. 그러면 기도는 불교가 아닌 걸까. 물론 그렇게 볼 수는 없다.“기도는 실천이지 이론이 아니다.
승가의 학인은 이제 막 불교에 입문해 모든 것이 낯설고 어색한 이들이다. 하지만 동시에 그들에게는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구도 원력과 신심이 있다. ‘초발심시 변정각’이라는 ‘화엄경’ 법성게의 말씀이 불가에서 널리 회자되는 이유도 이와 다르지 않다. 초발심의 열기와 향기가 가득 스며들어 있는 학인스님들의 글을 엮은 이 책에서 느껴지는 밝고 당당한 에너지는 어쩌면 깨달음의 또 다른 이면일지 모른다. 해인사승가대학 작문 수업 시간에 과제로 제출한 원고를 정리해서 다시 엮은 것이다. “나는 왜 하필 스님이 되고 싶었을까.” 투박한듯 하지
남원 선원사 명부전에 봉안된 지장시왕도에서 항일 독립운동 때 사용했던 형태의 태극기 그림이 발견됐다. 색채와 선명하게 드러난 4괘를 관찰한 전문가들은 1917년 작으로 보고 있다. 1919년 제작됐을 것으로 추정되는 ‘진관사 태극기’의 4괘 배치와 같기 때문이다. 주지하다시피 보물로 지정된 ‘진관사 태극기’는 항일운동에 나선 후 혹독한 고문을 당했던 초월 스님이 일제 경찰의 눈을 피해 품어온 것이다.지장시왕도 제작 증명으로 진응혜찬 스님(震應 慧燦, 1873~1941)이 명시된 화기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진응 스님은 당대 최고의
중견 작가인 조동수(70·통녕) 거사가 그동안 자신의 참선공부를 담은 ‘오등일지’를 보내왔다. 강원도 산중의 한 사찰에서 기거하던 중 ‘색즉시공’이라는 말에 걸려 밤새 씨름하다 불가사의한 체험을 한 그가 이후 선지식을 찾아다니며 수행을 이어가다 오등선원 조실 대원 스님 회상에서 오도송을 쓰게 된 내용을 담고 있다. 편집자*오도송이 있느냐?계룡산 학림사 오등선원의 대원 스님이 내게 오도송 쓴 게 있느냐고 물었다. 많은 대중들 앞에서 나의 상태를 점검하면서였다. 그리하여 며칠 후, 예전의 메모를 정리하여 보여드렸다.색즉시공 한 마디에
“회주스님이 부처님을 앞에 모시고 걷는데 뭉클하더라고요. 사진을 보는데 괜히 코끝이 찡했어요.” (무진향 불자)“쫄래쫄래 순례단 좇는 강아지 영상을 보고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이 들었습니다. 전생에 선업을 많이 지은 게 분명해요. '스님들 만난 인연으로 다음 생엔 꼭 사람으로 태어나라' 마음 속으로 말했어요.” (일지행 불자)“여기서 할 수 있는 건 순례단이 건강히 돌아오길 바라는 기도밖에 없잖아요. 몸은 떨어져 있어도 간절히 마음은 같이 하고 싶어요. 기도가 인도까지 닿을 수 있게 정진하려고요.” (실상화 불자)부다가야 마하보디 사
신라의 혜초 스님은 뱃길을 따라 인도에 도착해 바라나시를 거쳐 마하보디사원 대탑 앞에 섰다. 멀고도 먼 순례길의 초입에서 혜초 스님은 부처님께서 성도하신 자리에 서 있는 거대한 대탑을 친견하는 순간 곡절 많은 그간의 사연들을 내려놓고 오로지 환희에 찬 시를 남겼다.‘보리대탑 멀다지만 걱정 않고 왔으니, 녹야원의 길인들 어찌 멀다 하리오. 길이 가파르고 험한 것은 근심되지만 개의치 않고 업풍에 날리리라. 여덟 탑을 보기란 실로 어려운 일, 세월을 타서 본래 그대로는 아니지만, 어찌 이리 사람 소원 이루어졌는가. 오늘 아침 내 눈으로
남원 선원사 명부전에 봉안된 지장시왕도에서 항일독립운동 때 사용됐던 형태의 태극기 그림이 발견돼 비상한 관심을 모은다. 사찰 불화에서 항일운동 당시의 태극기 그림이 발견된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태극기의 변화 과정을 살피는 데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선원사 주지 운문 스님은 2월21일 서울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2층 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경내 명부전에 봉안된 지장시왕도에서 원형 형태의 태극기 그림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2월 선원사 주지로 부임한 스님은 “작년 11월초 어느 날 아침 명부전에서 기도를 드리는데 지장시왕도에서
“왕을 비롯하여 수령이나 백성들도 삼보를 매우 숭상한다. 절도 많고 승려도 많았다. 대승불교와 소승불교가 행해지고 있다. 지금은 대식국(이슬람)의 침략으로 나라의 태반이 파괴되었다.”혜초 스님은 ‘왕오천축국전’을 통해 서천축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혜초 스님이 인도에 갔던 8세기는 위쪽으로는 이슬람의 침략으로, 안으로는 힌두교의 발호로 불교가 위기에 직면하고 있었다. 그래서 혜초 스님이 인도 구법의 길에 올랐을 때에는 구법승이 크게 줄었고 혜초 스님 같은 구법승을 통해 오히려 불교를 다시 접했을지 모른다.지금의 인도도 마찬가지다.
수보리 당지시인 성취최상제일희유지법(須菩提 當知是人 成就最上第一希有之法) 약시경전소재지처 즉위유불 약존중제자(若是經典所在之處 卽爲有佛 若尊重弟子) 수보리야 마땅히 알아라. 이 사람은 가장 높고 제일 희유한 법을 성취한 것이니, 만일 이 경전이 있는 곳이면 곧 부처님이 계신 곳이고 이 제자는 존중 받을지니라.금강경 사구게(四句偈)를 여실히 잘 알아 지닌 사람은, 진실로 무상무주(無相無住)의 진리인 무상정등정각(無上正等正覺)의 법을 성취한 것이니, 이 법은 오직 하나의 드문 법이다. 이렇게 희유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법의 이 경전이 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