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원 선원사 지장시왕도. 주지 운문 스님은 최근 지옥을 관장하는 10대왕 가운데 제6대왕인 변성대왕 관모에 태극기(확대사진 참조)가 그려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선원사]](https://cdn.beopbo.com/news/photo/202302/314666_91391_2013.jpg)
남원 선원사 명부전에 봉안된 지장시왕도에서 항일독립운동 때 사용됐던 형태의 태극기 그림이 발견돼 비상한 관심을 모은다. 사찰 불화에서 항일운동 당시의 태극기 그림이 발견된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태극기의 변화 과정을 살피는 데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선원사 주지 운문 스님은 2월21일 서울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2층 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경내 명부전에 봉안된 지장시왕도에서 원형 형태의 태극기 그림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2월 선원사 주지로 부임한 스님은 “작년 11월초 어느 날 아침 명부전에서 기도를 드리는데 지장시왕도에서 신비로운 기운을 느꼈다”며 “그래서 시왕도를 자세히 살펴보니 제6 변성대왕 관모에 태극기가 그려져 있는 것을 처음 발견하게 됐다. 불화에 태극기가, 그것도 건곤감리 4괘가 선명히 그려져 있는 원형 그대로의 태극기가 그려져 있는 것은 예사롭지 않다고 판단해 알리게 됐다”고 했다.
태극기는 지장시왕도 중앙에 위치한 지장보살 좌측에 지옥을 관장하는 10대왕 가운데 제6대왕인 변성대왕의 관모에 그려져 있다. 가로 8.5cm, 세로 3cm의 어른 손바닥만 한 크기의 태극기로 가운데 태극의 지름이 2.2cm이다. 태극의 양은 홍색, 음은 뇌녹색으로 채색됐으며, 양 태극을 백색이 둘러싸고 있다. 대개 빨강과 파랑으로 표현되는 태극의 채색이 홍색과 사찰 전각의 단청에 주로 사용되는 옅은 녹색계열을 뇌녹색으로 표현한 것은 일제의 검열을 피하기 위한 의도로 분석되고 있다.
태극을 둘러싸고 네 모서리에 있는 4괘가 선명하게 드러나는 데 상단 왼쪽에 이괘를, 오른쪽에 건괘를 그렸으며 하단 왼쪽에 곤괘를, 오른쪽에 감괘를 그려 넣었다. 이는 현재 규격화된 태극기의 4괘 배치(상단-건괘·감괘, 하단-이괘·곤괘)와는 다르지만, 1919년 제작됐을 것으로 추정되는 ‘진관사 태극기(보물)’의 4괘 배치와 동일하다.

![1919년 제작됐을 것으로 추정되는 진관사 태극기(보물). 태극을 중심으로 4괘의 형태가 신원사 태극기 그림과 일치한다. [문화재청]](https://cdn.beopbo.com/news/photo/202302/314666_91395_2336.jpg)
태극기가 그려진 시기는 1917년으로 추정된다. 지장시왕도 화기(畵記)에 따르면 불화는 대정 6(1917)년 11월5~17일 당시 주지 수룡기선(水龍琪善) 스님이 조선 왕실의 며느리로 알려진 ‘서계화(徐氏 桂花)’보살의 시주로 당대 최고의 화승으로 꼽혔던 만총 스님의 지휘 아래 상오(尙旿), 행은(幸恩), 봉인(奉仁), 명진(明眞), 성열(成烈), 법상(法祥) 스님 등이 제작했다.
화기에는 또 지장시왕도 제작 불사의 증명으로 진응혜찬(震應慧燦, 1873~1942) 스님을 명시했다. 진응 스님은 당대 최고의 학승이자 구례 화엄사 주지로, 화엄사를 본사로 승격시키고 일본의 조동종에 맞서 만해, 석전 스님과 더불어 임제종을 설립해 한국불교의 정통성 계승에 앞장섰던 고승이다. 특히 진응 스님은 만해 스님과 서신을 주고받는 등 교분이 두터웠으며, 1919년 3·1운동 당시 한영, 진호, 성월 스님 등과 더불어 전국사찰에 독립선언서를 배포하는 등 적극적인 항일운동을 펼친 것으로 전해진다. 때문에 지장시왕도는 일제강점기 스님과 불자들의 항일의지를 표출하려는 의도가 담겼다는 분석이 나온다.
태극기 연구 전문가인 송명호 전 문화재청 근대문화재분과 전문위원은 “관모에 태극기가 그려진 변성대왕은 칼산으로 된 도산지옥 등을 관장하며 죄를 지은 자들을 심판하는 대왕”이라며 “변성대왕의 관모에 태극기를 그려 넣은 것은 총칼로 대한제국을 멸망시킨 일제가 결국 총칼로 망할 것이라는 의미를 담은 것”이라고 했다.
![지장시왕도의 조성과정을 설명한 화기. [선원사]](https://cdn.beopbo.com/news/photo/202302/314666_91394_2320.jpg)
그는 또 “일제는 1912년 칙령 19호를 반포해 태극기를 없애고 대신 일장기를 걸도록 했다”며 “이런 점에서 지장시왕도 태극기는 독립을 바라는 불교계의 서원이 담긴 것으로, ‘항일지장시왕도’라고 해도 손색이 없다”고 했다. 이어 “지장시왕도를 그린 화승 만총 스님은 이후에도 정읍 옥천사(1929년 제작) 등 여러 곳에 시왕도를 그렸지만 불화에 태극기를 그린 것은 선원사 지장시왕도가 유일하다”며 “이는 항일운동에 앞장섰던 진응 스님과 선원사 불자들의 염원이 담겼다고 볼 수 있다”고 했다.
남원 선원사는 호남지역의 대표적인 호국사찰로 알려져 있다. 신라 49대 헌강왕 원년(875) 도선국사에 의해 창건된 선원사는 호남지역을 대표하는 대가람이었다. 그러나 숱한 전쟁과 화마로 사격이 크게 위축됐다. 정유재란 당시 남원성을 지키던 의승군의 쉼터이기도 했지만 이 전쟁으로 소실됐다가 영조 때 복원됐다. 이후 선원사는 정유재란 때 남원성에서 순절한 승병과 의병, 장수 등 만인의사를 기리는 재를 봉행해왔다. 극심한 가뭄 때면 백성들과 괘불재를 지내는 등 남원 지역민들의 애환을 함께했던 사찰이기도 하다. 그랬기에 남원사 지장시왕도 태극기 그림은 항일과 독립에 대한 지역민들의 염원이 담겼을 수 있다는 것이다.
지장시왕도 태극기 그림은 문화재적 가치도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송명호 문화재청 전 전문위원은 “불화에서 태극기 그림이 발견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고, 1910년대 이후 사용된 독립운동 시기 태극기 문양과 같다”며 “오늘날 형태로 정착되기 전 단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번에 발견된 그림을 계기로 태극기의 변천 과정은 물론 진응·만해·기선 스님 등의 독립운동을 종합적으로 살필 수 있는 연구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근대문화유산으로서 가치가 충분하다”고 밝혔다.
![지장시왕도가 봉안된 남원 선원사 명부전 내부. [선원사]](https://cdn.beopbo.com/news/photo/202302/314666_91393_237.jpg)
선원사는 이번에 발견된 태극기 그림을 송명호 전 위원의 분석결과 등을 토대로 문화재청에 신고하고 근대문화유산 등록을 추진하기로 했다. 특히 올해 104주년 3·1절을 앞두고 자주독립의 상징인 태극기를 올바로 이해하고 선열들의 독립정신을 계승하는 운동을 펼칠 예정이다.
운문 스님은 “태극기의 의미와 함께 옛 스님들의 대한독립 의지와 투철한 애국심을 널리 기리고 싶다”면서 “이를 위해 2024년 남원시와 공동으로 선원사 괘불 및 태극기를 조명하는 학술대회를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권오영 기자 oyemc@beopbo.com
[1670호 / 2023년 3월 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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