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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오대산본 실록’ 환지본처 결단 내려라

기자명 법보
  • 사설
  • 입력 2021.04.30 21:06
  • 수정 2021.06.05 16:21
  • 호수 1584
  • 댓글 0

총독부·도쿄대 ‘실록’ 약탈하고도
‘환수’ 아닌 ‘기증’으로 과오 숨겨
실록 돌아오는데 역할 전무했던
서울대·정부 왜 모르쇠 일관하나

국립고궁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오대산본 조선왕조실록·의궤 환수’에 월정사가 직접 나선다고 한다. 2019년 9월 3537m² 규모의 지상2층 조선왕조실록·의궤 박물관이 오대산에 완공됐음에도 진본은 국립고궁박물관에 둔 채 영인본만 보내고 묵묵부답인 정부를 더 이상 믿고 기다릴 수만은 없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일제강점기 당시 조선총독 데라우치 마사타케(寺內 正毅)는 경술국치 해인 1910년 11월 조선의 관습과 제도를 조사한다는 미명으로 ‘불온서적’ 압수를 명했다. 조선총독부 관보에만 근거해도 51종 20여만 권이었는데, 조선역사를 왜곡하기 좋은 자료들 외의 모든 책은 불태웠다.

조선의 문화재를 탐했던 데라우치는 조선의 기록문화 최고봉이라 평가 받는 ‘조선왕조실록’도 하나씩 치밀하게 약탈했다. 정족산사고와 태백산사고의 실록은 일제가 서울에 설립한 경성대학 도서관으로, 적상산사고의 실록은 일제가 세운 조선왕실 유물·서적 보관처인 창경궁의 장서각으로 옮겼다. 그 와중에 총독부는 적상산사고의 실록을 이씨 왕가에 “기증한다”고 했다. 그것도 ‘기증’이라는 도장까지 찍어서 말이다.

데라우치는 급기야 도쿄대학의 시로토리(白鳥庫佶)와 결탁해 1913년 오대산사고에 있던 ‘조선왕조실록’을 일본으로 반출했다. 약탈 10년만인 1923년 9월 ‘관동대지진(關東大地震)’으로 소장돼 있던 오대산본 실록이 불에 타 한 줌 재로 변하고 말았다. 살아남은 건 외부에 대출된 74책뿐이었다. 27책은 경성대학으로 가고 47책은 도쿄대학에 그대로 남았다.

2006년 3월3일 서울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 월정사 주지 정념·봉선사 주지 철안 스님을 공동 대표로 한 조선실록환수위원회가 출범했다. 실록 잔본 환수 운동의 불을 당긴 몇몇 스님들과 이 실록이 약탈되었다는 사실을 학술적으로 입증한 배현숙 교수의 땀과 눈물이 띄운 ‘실록환수위’였다. 조선시대 마지막 관리자였던 월정사는 법정소송도 불사했는데 이것이 주효했다. 도쿄대학이 ‘문화재 약탈대학’으로 지목돼 법정에 선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부담으로 작용됐기 때문이다.

결국 오대산본 실록은 ‘실록환수위’ 결성 4개월만인 그해 7월7일 서울대로 돌아왔다. 법상·혜문 공저 ‘조선왕조실록 돌아오기까지’에서 갈파됐듯 이것은 “빼앗긴 민족의 자존심과 실록에 기록된 역사의 정신을 되찾아”오려는 간절함과 치열함이 일궈낸 쾌거였다.

그런데 도쿄대학은 이 실록을 전하며 서울대 개교 60주년을 빙자해 ‘기증’ 한다고 했다. 약탈해 가져간 것을 기증한다니! 조선총독부 데라우치의 후안무치를 그대로 답습한 도쿄대학이다. 그런데 더 놀라운 건 서울대가 이것을 덥석 받았다는 사실이다. 도쿄대학이 주장하는 ‘기증’에 크게 공감이라도 했단 말인가? 아니면 “식민시대의 청산”과 “민족사의 아픔을 치유”하는 일을 애써 간과하거나 외면하고 싶었던 것인가? 사연 많은 그 실록은 우여곡절을 겪으며 현재 국립고궁박물관이 보관 중이다.

이 시점에서 짚어야 할 건 그 실록이 국립고궁박물관에서 계속 보관하는 게 맞느냐 하는 점이다. 오대산본 실록이 처음 돌아왔을 때 불교계는 물론 ‘우리 문화재 제자리 찾기 범국민운동본부 평창군위원회’를 중심으로 한 민간단체에서 환지본처를 주장했다. 그러나 오대산사고가 보존관리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여론이 있어 접어야 했다. 2006년 당시 유홍준 문화재청장은 불교·민간단체의 환지본처 요구에 “관리할 능력·인력·예산이 없으니 갖춰지면 오대산으로 보내겠다”고 약속했다. 131억원의 예산을 들인 조선왕조실록·의궤 박물관이 완공된 지 1년이 지났다.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한가?

한 가지 분명히 해두자. 오대산본 실록이 이 땅에 다시 돌아오는 데 서울대와 문화재청은 어떤 역할을 했는가? 사실상 전무하다. 환지본처 요구에 서울대와 국립고궁박물관이 불응할만한 이유는 하나도 없다는 얘기다. 혹, 도쿄대학이 서울대에 기증한 것이기에 안 된다는 논리를 필 것이라면 거둬야 한다. 그것은 일제 잔재가 낳는 또 다른 폭력일 뿐이다. 정부도 더 이상 ‘기증’ 뒤에 숨어 있지 말고 결단해야 한다.

[1584호 / 2021년 5월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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