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오대산사고본 조선왕조실록, 110년 만에 고향 품으로

  • 성보
  • 입력 2023.02.16 20:45
  • 수정 2023.02.16 21:31
  • 호수 1669
  • 댓글 0

월정사·문화재청·국립고궁박물관, 오대산 실록·의궤 평창 이관 논의
박물관 리모델링으로 1월부터 휴관…실록·의궤 원본전시 10월 예정

서울국립고궁박물관에 소장 중인 오대산사고본 조선왕조실록 75책과 의궤 82책이 올 10월 원소장처인 오대산 월정사로 돌아온다. 1913년 일제로부터 강제 반출된 뒤 2006년 월정사·민간단체 노력으로 국내에 환수됐음에도 문화재청이 장소의 적절성을 문제 삼아 한동안 제자리를 찾지 못했다. 하지만 월정사가 지난해 기부채납 의사를 밝히면서 환지본처에 탄력이 붙었다. 실록은 110년, 의궤는 101년 만에 고향 품인 평창으로 돌아오게 된다.

최응천 문화재청장이 2월14일 월정사 주지 정념 스님을 만나 왕조실록·의궤박물관의 재개관 현황에 대해 논의했다. 이날 최 청장은 “올해 10월 안에는 실록·의궤를 이곳에 전시하겠다”고 공식화했다. 김인규 국립고궁박물관장도 “실록·의궤가 힘들게 고향으로 돌아오는 만큼 지역문화의 중심이 될 수 있도록 온 힘을 쏟겠다”고 전했다.

왕조실록·의궤박물관은 1월1일부터 리모델링 공사를 위한 휴관에 들어간 상태다. 문화재청은 실록·의궤 평창 이관과 관련된 ‘국립조선왕조실록전시관 운영 예산으로 15억4200만원을 확보했다. 전시관 리모델링 공사가 마무리되면 실록·의궤는 10월 박물관으로 옮겨 재개관될 계획이다.

1992년 복원된 오대산사고(五臺山史庫·사적)의 활용 방안도 관심사다. 이번에 돌아오는 조선왕조실록·의궤는 일제에 약탈당하기 전까지 오대산사고에 보관돼 있었다. 한국전쟁 당시 불에 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가 32년 전 다시 건축됐다. 최근 실록·의궤범도민환수위원회는 고궁박물관에서 오는 원본을 박물관에 전시하고 기존의 영인본(影印本·복사본)을 사고에 전시해 학생들의 교육 장소로 활용했으면 한다는 의사를 밝힌 바 있다.

강원도와 평창군도 조선왕조실록과 의궤가 110년 만에 평창으로 귀환하는 만큼 환수 준비를 철저히 하고 있다. 강원도와 평창군은 9000만원씩 1억8000만원을 들여 국립조선왕조실록전시관이 문을 여는 10월 중 세조 순행 재현 등 행사를 개최하기로 했다. 김진태 강원지사는 1월9일 기자간담회를 열고  “조선왕조실록과 의궤의 귀향은 강원 도민과 불교계의 염원, 정부와 국회의 노력이 모여 맺어진 결실”이라며 “환수 준비를 철저히 하고 관련 문화콘텐트 발굴에도 힘쓰겠다”고 강조했다.

조선왕조실록은 조선왕조의 제1대 왕 ‘태조’부터 ‘철종’까지 25대 472년(1392~1863년) 동안 벌어진 역사를 시간 순서에 따라 편년체(編年體·역사의 기록을 연·월·일 순으로 정리하는 편찬 방식)로 기록한 역사서다. 조선왕조실록엔 조선시대의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다양한 역사적 사실이 수록돼 있다. 조선시대를 이해하는 데 있어 가장 기본적인 사료로 세계적으로도 귀중한 문화유산이다. 1973년 12월 31일 국보로, 1997년 10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됐다. 

의궤는 조선 왕실에서 중요한 행사가 있을 때 그 내용을 기록과 그림으로 정리한 국가기록물이다. 의궤 역시 태조 때부터 편찬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임진왜란을 겪으며 조선 전기의 의궤들은 모두 소실됐고 남아 있는 것은 1601년부터 1942년 사이에 제작됐다. 현재 약 4000책의 의궤가 전해지고 있으며 이 중 1757건 2751책이 2016년 5월에 보물로 지정됐다.

실록·의궤가 오대산에 오게 된 것도 임진왜란 때문이다. 조선 왕조는 임란 후 전주 사고에 보관하던 실록의 사본을 4부 더 만들어 태백산·묘향산·마니산 그리고 오대산에 분산 보관했다. 1606년 오대산에 사고를 만든 후 월정사 주지는 당연직으로 ‘실록수호총섭’을 맡게 됐고, 실록 경비를 위해 영감사라는 사찰까지 세워 스님들이 돌아가며 실록을 지켰다. 

고향으로 돌아오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 300년을 오대산에서 잘 지내던 실록은 1913년부터 100년 비운(悲運)과 유랑이 시작됐다. 일제가 1913년 오대산 실록 788책(冊)을 빼내 도쿄제국대학으로 가져간 것이 시작이었다. 동경제대에 보관하던 실록은 10년 후인 1923년간토(關東) 대지진으로 대부분 불에 탔고, 화를 면한 27책이 1932년 경성제국대학으로 돌아왔다. 그렇지만 일본엔 오대산 실록 47책이 더 남아있었다. 이 실록은 한일협정 당시 청구권 목록에 오르지 못했다. 1965년 한일협정으로 약탈 문화재의 반환 청구권을 상실했기 때문.

이에 정부를 대신해 월정사 등 민간단체가 문화재 환수운동을 펼쳤다. 그 결과 실록·의궤가 2006년과 2011년에 어렵게 국내로 돌아왔다. 그렇지만 바로 오대산으로 돌아올 것 같던 실록과 의궤는 한국에 돌아오고 나서도 17년 가까이 서울에 있었다. 정부가 문화재보호법의 규정과 보관 장소 적정성, 학술 연구 등을 이유로 국립고궁박물관에 소장할 것을 결정하면서 제자리를 찾지 못했다.

이에 월정사를 중심으로 한 지역사회단체 등에서 정부를 대상으로 한 반환 캠페인이 이어졌다. 오랜 기다림 끝에 문화재청과 월정사 등은 모두의 의견을 반영, 국립조선왕조실록전시관을 설립하기로 결정했다. 월정사가 오대산사고본 실록·의궤의 오대산 봉안을 위한 항온·항습 시설을 갖춘 왕조실록·의궤박물관을 문화재청에 기부채납하기로 했고 이를 받아들인 문화재청은 행정안전부와 전시관 운영 인원 등에 관한 법률적·행정적 검토를 모두 마무리했다.

 월정사는 실록·의궤가 돌아오면 오대산 전체를 불교 문화, 정신문화, 자연이 어우러진 유네스코 ‘복합 문화유산’으로 등재하는 방안도 추진할 방침이다.

정주연 기자 jeongjy@beopbo.com

[1669호 / 2023년 2월 2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관련기사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