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정부, 오대산본 실록·의궤 미반환 매우 유감”

  • 성보
  • 입력 2021.06.08 15:01
  • 수정 2021.06.11 16:39
  • 호수 1589
  • 댓글 3

오대산본 실록·의궤환수위원회 대표
제4교구본사 월정사 주지 정념 스님

강원지역 백성·관리·스님들이 지켜낸 유산…문화재 이상 가치
민간단체 힘으로 돌아왔지만 보존 시설 문제로 또 ‘타향살이’
“정부, 불자·도민 염원 외면하지 말고 문화재 반환에 나서야”

문화재 반환운동의 중심에 있는 월정사 주지 정념 스님을 6월2일 조계종 전법회관에서 만났다. 이날 스님은 "오대산사고본 실록·의궤가 제자리를 벗어난다면 그 가치는 퇴색할 수밖에 없다"며 "오대산사고본이 환지본처한다면 불교계와 강원도민들은 선조의 숨결이 담긴 귀중한 문화재를 품었다는 자부심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문화재 반환운동의 중심에 있는 월정사 주지 정념 스님을 6월2일 조계종 전법회관에서 만났다. 이날 스님은 "오대산사고본 실록·의궤가 제자리를 벗어난다면 그 가치는 퇴색할 수밖에 없다"며 "오대산사고본이 환지본처한다면 불교계와 강원도민들은 선조의 숨결이 담긴 귀중한 문화재를 품었다는 자부심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일제강점기 밀반출됐다 국내로 반환됐지만 원소장처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 오대산사고본 조선왕조실록·의궤의 환지본처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강원도의회는 6월1일 성명을 내고 “실록·의궤를 반환하지 않는 정부 입장은 과거 문화재를 침탈해 갔음에도 돌려주지 않고 있는 서구 침탈 논리와 닮아 있다”고 유감을 표했다. 이런 가운데 조계종 4교구본사 월정사를 비롯해 불교계 및 민간단체 등이 환수위원회를 구성, 정부 측에 문화재 반환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반환운동의 중심에 있는 월정사 주지 정념 스님을 최근 만났다. 

▲오대산본 조선왕조실록·의궤 환수위원회가 다시 출범했다. 이번에는 대상이 일본이 아닌 대한민국 정부이다. 소회가 어떤가.

“석연치 않은 이유로 오대산본 실록·의궤를 돌려주지 않는 정부의 대응이 유감스럽다. 일제강점기 약탈됐다 도쿄대학과 일본 궁내청에 소장돼 있던 오대산본 실록·의궤가 2006년과 2011년 국내로 돌아온 것은 불교계가 중심이 된 민간단체와 강원도민 노력이 컸다. 돌아오는 과정도 쉽지 않았다. 하지만 빼앗긴 역사와 정신을 제자리로 돌려놓아야 한다는 발원이 있었다. 정부는 환수 과정에서 이렇다 할 노력을 하지 않았다.”

▲일본으로부터 실록·의궤를 환수할 때 정부는 어떤 입장이었나.

“1965년 일본 정부와 맺은 한일협정으로 정부는 앞서 돌려준 문화재 외에 반환을 요구하는 청구권을 행사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불교계가 중심이 된 민간단체가 나선 것이다. 조선시대 오대산사고의 관리 책임자였던 월정사 주지 명의로 소송을 제기했던 것도 이 때문이다.”

▲오대산사고본 ‘조선왕조실록’ ‘조선왕실의궤’는 어떤 문화재인가.

“선조 39년(1606) 왕실 기록을 보존하고자 설치한 오대산사고에 소장돼 있던 기록유산이다. 실록은 태조부터 철종까지 25대에 걸친 조선왕조 역사를 담아냈다. 의궤는 국가·왕실에서 진행된 행사의 과정을 그린 것이다. 모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됐다. 당시 왕실은 월정사 주지를 사고수호총섭으로 임명해 오대산사고 관리책임을 맡겼다. 이에 스님들은 사고 옆 수직사(守直寺)에서 머물며 기록물이 안전하게 관리될 수 있도록 도왔다. 곰팡이와 좀으로부터 기록물을 보호하고자 수시로 햇볕과 바람에 말렸다. 기록유산이 자연 소실되는 것을 최소화하기 위해서였다.”

▲실록·의궤가 오대산으로 돌아와야 하는 이유는.

“문화재는 원래 있었던 위치에서 그 진가가 발휘된다. 오대산본 실록·의궤에는 당시 문화재를 지키고 보존하려 했던 스님들과 민초들의 염원이 깃들어 있다. 오대산사고본이 제자리를 벗어난다면 가치는 퇴색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환지본처한다면 불교계와 강원도민들은 선조의 숨결이 담긴 귀중한 문화재를 품었다는 자부심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오대산사고본이 국내로 돌아왔다. 그러나 오대산사고본은 정작 원소장처로 돌아오지 못했다. 왜였나.

“오대산에 실록·의궤 보관할 시설이 없다는 이유였다. 문화재 환수를 주도했던 불교계와 민간단체는 정부 태도를 납득할 수 없었다. 2006년 오대산사고 앞에서 열린 환국고유제가 끝나고 실록·의궤가 다시 서울로 향하자 불자·도민들은 ‘93년 만에 귀향한 문화재를 돌려보낼 수 없다’며 찻길을 막고 강하게 반발했다. 그렇지만 ‘문화재의 보존을 위한 시설이 없다’는 정부의 주장을 막을 명분이 부족했다. 아쉬웠으나 요구를 수용했다. 오대산에 문화재 보존 시설이 건립되면 돌려주겠다는 정부의 약속도 믿었다.”

▲환국고유제에서 당시 문화재청장이 했던 발언도 문화재 환수를 긍정적으로 바라봤던 요인이 됐다는 시각도 있다.

“그렇다. 당시 문화재청장은 오대산본 실록·의궤 환국고유제에서 ‘오대산에서 문화재를 관리할 수 있는 인력·시설이 갖춰지면 돌려보내겠다’고 약속했다. 이날 한 국회의원도 ‘문화재청이 (오대산에 박물관을 건립할 수 있는 예산) 50억을 확보해뒀다’고 말했다. 불교계와 강원도민은 이들의 말을 믿었다.

서울 국립고궁박물관에 전시돼 있는 오대산사고본 조선왕조실록 일부. 전시된 실록·의궤를 제외한 나머지는 수장고에 보관돼 있다.
서울 국립고궁박물관에 전시돼 있는 오대산사고본 조선왕조실록 일부. 전시된 실록·의궤를 제외한 나머지는 수장고에 보관돼 있다.

▲그러나 문화재청은 2012년 7월 오대산사고본 실록·의궤의 관리주체를 국립고궁박물관으로 지정했다.

“황당했다. 당시 문화재청은 고궁박물관이 왕실전문 박물관이라는 이유를 들었다. 궁궐과 관련한 기록유산이면 모두 국립고궁박물관에 있어야 하나. 같은 논리라면 불교와 관련된 불상·불화·석탑도 사찰 성보박물관에 있어야지 왜 국립박물관 등에 있는 것인가.”

▲문화재청의 이 같은 발표에 대해 어떻게 대응했나.

“문화재청의 발표 다음날 ‘제자리찾기추진위원회’가 성명을 냈다. 당시 공동대표였던 이광재 의원, 김진선 전 도지사와 함께 ‘(문화재청의 이번 조치는)중앙만 생각하는 전형적인 조직 이기주의’라고 비판했다. 이 무렵은 2018년 동계올림픽 개최지로 평창이 선정돼 있었다. 염동열 의원도 문화재청의 업무보고 자리에서 ‘평창을 찾은 세계인에게 세계기록유산인 실록·의궤를 보여줘야 한다’고 거듭 지적했다. 하지만 문화재청은 실록·의궤의 영인본(복사본)을 제작해 보내왔다.”

2019년 11월 개관한 왕조실록·의궤 박물관. 3500여m² 규모의 지상 2층으로 건립됐다. 사진출처=왕조실록·의궤박물관 홈페이지
2019년 11월 개관한 왕조실록·의궤 박물관. 3500여m² 규모의 지상 2층으로 건립됐다. 사진출처=왕조실록·의궤박물관 홈페이지

▲2019년 11월 월정사 앞에 실록·의궤만을 위한 박물관이 설립됐다. 어떻게 짓게 됐나.

“문화재청이 당시 내세웠던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지자체도 공감했다. 문화체육관광부 지원도 받았다. 3500여m² 규모의 지상 2층으로 건립됐다. 박물관은 오직 실록·의궤 보존과 전시를 위해 세워졌다. 항온·항습장치는 물론 보안 시스템도 갖췄다. 최첨단 시설이다. 박물관 소속 학예연구사들은 실록·의궤가 돌아왔을 때 적용할 전시기법을 연구 중에 있다.”

▲실록·의궤 박물관에 문화재청 예산도 투입됐다고 들었다. 오대산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당위성에 공감한 것 아닌가.

“그렇다. 오대산본 실록·의궤를 위한 박물관을 짓기위해 문화체육관광부와 지자체, 월정사 자부담까지 합쳐 131억원 예산이 투입됐다. 애초 박물관이 건립되면 문화재를 돌려보내겠다는 약속이 있었음을 방증하는 것이다. 문화재청은 최근 문화재를 본래 있었던 자리로 돌려 보내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안동 하회탈(국보)은 2017년 안동시민의 품으로 돌아갔고, 지광국사탑(국보)도 원주로의 귀향을 앞두고 있다. 따라서 오대산본 실록·의궤를 오대산으로 돌려보낸다고 해서 문제될 것은 전혀 없다.”

▲앞으로의 계획은.

“오대산본 실록·의궤가 제자리로 돌아와 제 역할을 할 수 있게 하겠다. 과거처럼 문화재를 수집·보관하는 시대는 끝났다. 전시·관람에 그쳐서는 안된다. 문화아이콘을 만들어 문화산업으로 성장시켜야 한다. 지역 경제도 여기에 달려있다. 조선시대 월정사 주지스님이 그랬듯, 현 시대의 수호총섭으로서 오대산본 실록·의궤가 돌아와 시대에 맞는 문화아이콘이 되도록 역사적 소명을 다하겠다.”

▲불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나.

“일제강점기 약탈됐던 실록·의궤가 국내로 돌아올 수 있었던 건 불교계 역할이 컸다. 조계종 중앙신도회가 적극 나섰고, 많은 불자들이 큰 관심과 성원을 보내줬기 때문에 가능했다. 불교계가 지켜온 소중한 성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이제 국내로 돌아온 우리 선조들의 소중한 문화재가 환지본처 될 수 있도록 계속해서 노력해야 한다. 선대 사부대중의 피땀이 서려 있는 문화재가 고궁박물관의 수장고에 갇혀 생명력을 잃지 않도록 불자들의 성원과 관심이 필요하다. 꼭 함께 해주길 바란다.”

정주연 기자 jeongjy@beopbo.com

[1589호 / 2021년 6월1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관련기사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