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제에 의해 강제로 반출된 세계기록문화유산 ‘조선왕조실록·의궤’가 110여년 간 비운의 유랑 끝에 고향의 품에 안겼다.
오대산사고본 조선왕조실록 75책과 의궤 82책이 11월10일 오대산 월정사로 돌아왔다. 1913년 일제로부터 강제 반출된 뒤 실록은 110년, 의궤는 101년 만이다. 임진왜란 당시 실록수호를 위해 건립된 오대산사고로의 귀환이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더욱 뜻깊다. 두 문화유산은 월정사 ‘국립조선왕조실록박물관’에 보관됐으며, ‘성종실록’ ‘중종실록’ ‘선조실록’과 1906년 경운궁을 중건한 공사 과정을 기록한 ‘경운궁중건도감의궤’, 철종(1849∼1863)이 승하한 뒤 국장과 관련한 절차 등을 정리한 ‘철종국장도감의궤’, 의궤에 찍었던 도장인 ‘유서지보’(諭書之寶) 등 1200여 유물이 상설 전시로 공개됐다.


환지본처에 앞서 강원 평창군과 오대산 월정사 일원에서 성대한 환영 행사가 개최됐다. 특히 평창군은 11월9~10일 전통식 ‘조선왕조실록의궤 이운행렬’을 열고 실록과 의궤가 한양 왕실에서 오대산사고까지 이운되는 과정을 재현해 눈길을 끌었다. 평창군청·의회·유림회를 비롯한 지역민 140여명이 평창군 입구에서부터 군청까지의 길을 화려하게 장엄했고, 둔전평농악대와 봉평초 어린이들의 취타대가 길을 열었다. 심현정 의회장이 봉안사, 심재국 평창군수가 원님 역할을 맡았다.
심재국 군수는 이운사에서 “세계적 유산 조선왕조실록과 의궤가 월정사 주지 정념 스님과 평창군, 주민들의 노력 끝에 110여년 만에 고향의 품에 안김을 평창군을 대표해 축하한다”며 “평창군은 ‘조선왕조실록·의궤’가 지닌 문화적 가치를 다양한 콘텐츠로 승화시켜 세계기록유산을 보유한 도시로써 지역문화 창달과 지역경제 활성화를 이뤄내겠다”고 인사했다.
이욱환 평창문화원장도 “외국에 반출된 문화재를 돌려받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며 “월정사 주지 정념 스님을 비롯한 불교계와 강원도민들의 화합으로 이뤄낸 만큼 오대산사고에서 진행될 앞으로의 역사를 수호하고 홍보하는 데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실록·의궤 이운행렬은 11월10일 월정사로 향했다. 수호총섭 정념 스님(월정사 주지)과 월정사 사부대중의 환영인사 속에 ‘국립조선왕조실록박물관’에 안장됐으며, 경내 특별무대에서 ‘유네스코기록유산 도시 선포식’과 축하공연이 열렸다. 11일 오전 10시에는 오대산사고지에서 고유제를 지낸 후 국립조선왕조실록박물관을 개관한다. 대중에는 12일부터 공개된다.
한편 실록·의궤의 유랑은 1913년 일제가 오대산 실록 788책(冊)을 강제 반출하며 시작됐다. 10년여 간 도쿄제국대학에 보관되던 실록·의궤는 1923년 간토 대지진으로 대부분 전소되는 아픔을 겪은 끝에 1932년 일부인 27책만이 경성제국대학으로 돌아왔다. 이후 불교계와 정부가 오대산 실록 전부를 돌려받고자 각고의 노력을 펼쳤고, 2006년 도교대로부터 47책을 환수했다. 2011년 의궤를 돌려받았으며 2017년 1책을 매입해 추가 환수했다.
현재 환수된 오대산사고본 실록은 75책, 의궤는 82책이다. 그동안 국립고궁박물관이 소장하다 올해 2월 월정사에 ‘국립조선왕조실록 전시관 설립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110여년만에 월정사로 돌아왔다.



평창=고민규 기자 mingg@beopbo.com
[1704호 / 2023년 11월 1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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