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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원에서 자취 감춘 법거량…지금 한국선이 위험하다

기자명 법보
  • 기고
  • 입력 2021.06.15 10:17
  • 수정 2021.06.16 10:21
  • 호수 1590
  • 댓글 14

윤창화 민족사 대표 기고-법거량의 기능과 역할, 필요성

전등록 등장하는 역대 선승들 대부분 법거량 과정서 깨달아
선문답은 말장난 아닌 절차탁마, 수행자 깨달음으로 이끌어
안목교환 없는 선원은 치명적…공부 점검 시스템 꼭 필요해

윤창화 민족사 대표가 6월14일 ‘법거량의 기능과 역할, 필요성’ 제하의 기고문을 보내왔다. 윤 대표는 지난해 12월11일 ‘전등록’과 ‘백장청규’ 등 선문헌에 대한 고찰로 오늘날 선수행 풍토를 지적했으며, 1월26일에는 ‘누가 더 오래 앉아 있느냐’가 수행의 척도가 되고 있는 선원 문화를 고찰했으며, 3월3일에는 ‘한국선의 병통, 불립문자의 곡해’라는 기고를 보내왔다. 한국 선수행에 대한 비판과 대안을 제시하고 있는 윤 대표는 ‘당송사원의 생활과 철학’을 저술해 불교평론 학술상을 수상했으며, ‘무자화두 10종병에 대한 고찰’ 등 논문이 있다. 편집자

달마대사에서 본격화된 동아시아 선은 당송시대를 거치며 탄생한 수많은 명안종사들은 법거량을 통해 수많은 납자들을 깨달음으로 이끌었다. 그림은 15세기 일본 셋슈 토요의 혜가단비도 일부.
달마대사에서 본격화된 동아시아 선은 당송시대를 거치며 탄생한 수많은 명안종사들은 법거량을 통해 수많은 납자들을 깨달음으로 이끌었다. 그림은 15세기 일본 셋슈 토요의 혜가단비도 일부.

“무엇이 부처인가?(如何是佛)”.
운문선사가 답했다.
“똥 막대기(간시궐, 乾屎橛)”
순간 수행자는 깨달았다.

깨달음, 선(禪)의 세계에 대해 나누는 방외(方外)의 대화, 격외의 대화를 선문답, 법거량(法擧揚)이라고 한다. 법(法)을 거양(擧揚, 제기)한다’는 뜻으로, ‘법담(法談)’, ‘법전(法戰)’이라고도 한다.

선문답은 오늘날로 말하면 ‘선의 토론’, 또는 ‘선(禪)을 주제로 나누는 대화’라고 할 수 있다. 선사와 수행자, 조실과 선객, 선승과 선승이 주고받는 탈(脫) 상식, 초(超) 논리적인 대화로, 일반적인 대화방식과는 전혀 다르다. 선문답이 동문서답처럼 들리는 것은 이 때문이다.

선문답은 여러 가지 역할을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가장 큰 기능은 ‘언하대오(言下大悟)’에서도 알 수 있듯이 수행자를 깨닫게 하는 오도(悟道)의 기능을 하고 있다. 수행자는 조실의 일전어(一轉語, 의식의 전환을 이루는 한마디)에 그 자리에서 중생의 옷을 벗고 부처나 조사로 거듭 난다.

또 선승과 선승 사이에 이루어지는 선문답은 깨달음 여부를 점검하는 역할을 한다. 깨달음을 검증하는 데 어떤 공식적인 방법이나 모범 답안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오로지 정견과 정법의 안목을 갖춘 선사만이 가능하다. 그 검증 방법이 바로 선문답이나 법거량, 또는 오도송이다. 또 선문답은 상대방의 경지가 어느 정도인지, 심천(深淺)을 파악해 보는 역할을 한다.

그밖에도 자신의 공부나 견해, 그리고 선의 안목[禪眼]을 나누고 교환하는 역할을 한다. 안목 교환을 통해서 절차탁마하며, 자신의 공부에 문제가 없는지도 점검해 볼 수 있다. 어록도 보지 않고 안목 교환도 없이 혼자 공부하면 항상 의문점(자신의 공부가 올바른 것인지)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때론 독각, 독선이 되기도 하는데 독선은 아집, 에고[ego]로 무명(無明)업식을 가중시킨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서로가 한 수를 배우면서 선안(禪眼)을 넓혀 간다고 할 수 있다.

선의 전등사서(傳燈史書)인 ‘전등록’에 올라 있는 깨달은 선승 천여 명 가운데, 좌선하다가 깨달았다는 선승은 극히 드물다. 언하대오(言下大悟)와 같이 대부분 선문답, 법거량에서 깨달았는데, 이것은 선문답이 가장 큰 오도(悟道)의 기능을 하고 있음을 확인해 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반야지혜 중심의 조사, 간화선에서 법거량은 매우 중요한 기능과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다.

선문답에는 여러 가지 유형이 있다. 송고(頌古) 문학을 개척한 분양선사(汾陽, 947-1024)는 선문답의 유형을 열여덟 가지[汾陽十八問]로 구분했다. 선객이나 납자들이 방장화상에게 질문하고 답한 것을 18가지로 분류한 것인데, ‘인천안목’(2권)과 ‘오가종지찬요’ (권상)에 나온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험주문(驗主問)과 탐발문(探拔問)이다. 험주문은 납자가 조실이나 방장의 경지를 시험해 보는 질문으로 그 방법도 법거량, 선문답이다. 모모(某某) 조실스님이 매우 법력이 높다고 하는데, 과연 그가 정견, 정안, 선의 안목을 갖추고 있는지를 테스트해 보는 질문이다. 그리고 탐발문(探拔問)은 상대방의 경지를 탐색해 보기 위한 질문(선문답, 법거량)인데, 이 두 가지는 거의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예컨대 “마음은 안에도 바깥에도 있지 않고 중간에도 있지 않다(心不在內, 不在外, 亦不在內外之間)고 하는데 그렇다면 어디에 있습니까?” 또는 “행주좌와 어묵동정을 떠나서 불법의 대의(大意)를 말해 달라“는 등, 그야말로 대답하기 까칠한 질문을 한다. 이것은 수행자가 어느 정도 안목을 갖추고 있는 상태라고 할 수 있는데, 이런 납자를 만나면 조실이나 방장도 적이 긴장하지 않을 수 없다.

그밖에도 선사에게 가르침, 교시를 청하는 청익문(請益問), 자신의 견해를 제시한 다음 변별(辨別), 또는 인가(印可)를 구하는 찰변문(察辨問)과 정해문(呈解問)이 있고, 논리적으로 따지고 대드는 징문문(徵問問), 이미 자신의 견해를 갖고서 선사가 이것을 어떻게 판별하는지 알기 위한 격담문(擊擔問) 등이 있다. 그 가운데서도 험주문과 탐발문이 대표적인 선문답의 유형이라고 할 수 있다.

고(故)로 조실이나 방장화상이 많은 수행자의 다양한 선문답에 대응하자면 안목이 탁월해야 한다. 그리고 교학적으로도 박학다식해야 하며, 선의 기지(機智)도 있어야 한다. 살인도와 활인검, 파주와 방행의 두 칼을 가지고 수행자의 심병(心病), 문제점을 치료해야 한다. 그러지 않고는 납자들을 제접, 지도할 수 없고, 수백 명이 운집, 수행하고 있는 선원총림을 이끌어 갈 수 없다.

중국 선종사에서 객승에게 식은 땀을 흘린 선승들이 적지 않다. 한 예로 남전보원선사는 유명한 선승이다. 어느 날 어린 사미승(훗날 趙州선사)이 은사스님과 함께 왔다. 그때 남전은 방장실에 누워있다가 불쑥 사미승을 보고 물었다.

“사미는 어디서 왔는고?” “서상원에서 왔습니다.” “서상원(瑞像院)?, 그러면 상서로운 像은 보았느냐?” 사미는 웃으면서 말했다. “상서로운 상(像)은 보지 못하고 누워있는 여래(남전을 지칭)만 보았습니다.”

남전은 비스듬히 누워있다가 사미의 일갈에 그만 정신을 차리고 벌떡 일어났다고 하는 선화(禪話)는 유명하다.

선문답은 다양하다. ‘전등록’에는 1700개의 공안(선문답)이 수록되어 있다고 한다. 그것을 100개로 압축한 것이 임제풍의 ‘벽암록’과 조동풍의 ‘종용록’인데, 이 100칙 공안은 반야지혜의 깨달음을 이루게 하는 선종의 교과서나 마찬가지이다.

선문답이나 법거량, 법전(法戰)은 실전(實戰)을 통한 성불작조의 교육적인 방법으로, 이런 다양한 선문답을 통해서 비로소 조주나 백장, 임제, 남전, 운문, 덕산, 천동정각, 대혜종고 등 법력과 지도력을 갖춘 기라성같은 선승들이 출현한다. 이 역시 선문답의 역할과 기능이라고 할 수 있다.

또 당송시대 선승들은 해제가 되면 행각(만행)을 많이 했다. 오늘날 만행이나 행각은 여행 개념이 되었지만, 당송시대 유명한 선승들은 10여 년 이상 행각 했는데, 목적은 본격적으로 선의 고수(高手)나 종장(宗匠)을 만나서 한 수(一著子)를 배우는 것이었다. 절차탁마를 위한 행각으로 100명을 만나면 100수를 배운다. ‘벽암록’ 100칙을 현장에서 학습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간화선의 대종장인 대혜선사도 35세 무렵부터 45세 무렵까지 약 10여 년 동안 행각 후 비로소 선원을 열고 납자들을 제접, 지도했고, 끽다거, 방하착 등 구순피선(口脣皮禪, 뛰어난 법문)으로 유명한 조주선사도 60세부터 80세까지 20년 동안 행각했다. 그런 뒤에 관음원을 열었다고 한다.

또 선에서 말하는 깨달음 이후의 보임(保任), 점수(漸修) 문제도 사실은 행각을 통하여 이루어지고 납자 제접 방법도 수많은 법거량, 법전(法戰)을 통하여 터득하게 된다. 선기지혜(禪機智慧)가 번뜩이는 종장(宗匠)이라야 촌철살인 같은 한마디로 병통을 고칠 수가 있을 것이다. 물론 때론 선문답은 형식적인 면도 있지만,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긍정적 요소가 훨씬 더 많다는 사실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고 하겠다.

선문답은 반야지혜, 공의 지혜를 바탕으로 전개되는 각자(覺者, 깨달은 자)의 대화이다. 상식을 초월한 초논리적인 대화이므로 정형이 있을 수 없다. 논리적, 상식적인 언어로는 상식 이상의 벽을 허물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선문답을 아무렇게나 즉흥적으로 내뱉는 궤변쯤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언뜻 보기에는 그런 것 같지만, 선문답에는 일정한 기준과 치밀한 선의 논리가 바탕하고 있다. 선문답의 기준은 공(空)·진공묘유(眞空妙有)·중도(中道)·불이(不二)·불성(佛性)·만법일여(一如)·무아(無我)·무집착(無執着)·무분별(無分別)·몰종적(沒蹤迹)·무심(無心)·무사·일체유심조 등 공의 철학과 선의 정신에 바탕하고 있다. 공의 처방전으로 공(空)을 실현시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때론 공, 허무에 떨어져 소생 못하는 낙공자에게는 불공(不空), 진공묘유의 처방전을 내리기도 한다.

선문답의 목적은 반야지혜, 특히 진공묘유의 지혜를 이루는 데 있다. 차별심과 분별심, 자아의식, 집착심, 에고[ego], 번뇌 망념, 고정관념 등 중생적인 사고를 버리고 공(空)의 지혜를 이루게 하는 데 있다. 따라서 선사의 처방전 역시 공(空)과 불공의 묘약으로 응대해야 한다. ‘임제록’의 내용을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진정견해의 확립’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 정견이란 바로 반야공의 지혜를 말한다.

오늘날 한국 선원은 사실상 선문답, 법거량이 사라졌다고 할 수 있다. 물론 그 형식과 주제가 상식적, 일반적인 것이 아니므로 난해하다는 점도 있지만, 그보다는 선어록을 공부하지 않는 독특한 선원문화의 배경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불립문자의 곡해로 인하여 언어문자와는 담을 쌓았기 때문인데, 선(禪)은 언어문자가 닿지 못하는 무언의 세계지만, 전달방법은 언어를 통하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윤창화 민족사 대표
윤창화 민족사 대표

오늘날 우리나라 선원은 수행자 개개인이 자신의 공부와 견해, 그리고 안목을 교환하는 대화 기능이 없다. 고전적인 한자, 한어(漢語) 중심의 방식이 아니더라도 현대적인 대화, 토론, 논의 등 좌담 방식도 있을 수가 있다. 말하자면 소참과 같이 간단하게 차를 마시면서 담론하는 형식인데, 객관적으로 자신의 공부를 점검, 체크해 볼 수 있는 시스템은 절실히 필요하다. 수행자들의 안목을 향상시키는 데 크게 기여할 것으로 본다. 한국의 선수행자들은 때론 정도(正道) 여부도 알 수 없는 위험한 선수행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조실, 방장스님께서도 돌아볼 필요가 있다.

[1590호 / 2021년 6월2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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