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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선불교는 불립문자 곡해해 무지 정당화했다”

기자명 법보
  • 기고
  • 입력 2021.03.03 17:29
  • 수정 2021.03.04 13:05
  • 호수 1576
  • 댓글 18

특별기고-윤창화 민족사 대표

홍인·마조·백장·조주·황벽·원오·대혜 등 선사들도 박학다식
당송시대 선종사원에서도 선원 대중들 경전 대여해서 간경
문자 없으면 깨닫기 어렵고 깨달았더라도 ‘벙어리 냉가슴’

윤창화 대표는 “불립문자 본래 의미는 언어문자에 속박·구속되지 말라는 뜻”이라며 “‘경전 책 읽지 말라’ ‘책은 독약’ 등 해석은 원래 의미 곡해했다”고 지적한다. 사진은 중국 선종의 초조인 달마대사가 머물며 법을 전했다는 소림사. 법보신문 자료사진.
윤창화 대표는 “불립문자 본래 의미는 언어문자에 속박·구속되지 말라는 뜻”이라며 “‘경전 책 읽지 말라’ ‘책은 독약’ 등 해석은 원래 의미 곡해했다”고 지적한다. 사진은 중국 선종의 초조인 달마대사가 머물며 법을 전했다는 소림사. 법보신문 자료사진.

윤창화 민족사 대표가 3월3일 ‘한국선의 병통, 불립문자의 곡해’라는 기고문을 보내왔다. 윤 대표는 지난해 12월11일 ‘전등록’과 ‘백장청규’ 등 선문헌에 대한 고찰로 오늘날 선수행 풍토를 지적했으며, 1월26일에는 ‘누가 더 오래 앉아 있느냐’가 수행의 척도가 되고 있는 선원 문화를 고찰한 글을 보내왔다. 윤 대표는 ‘당송사원의 생활과 철학’을 저술해 불교평론 학술상을 수상했으며, ‘무자화두 10종병에 대한 고찰’ 등 논문이 있다. 편집자

오늘날 한국 선불교의 큰 병통 가운데 하나가 ‘불립문자(不立文字)’에 대한 곡해다. ‘不立文字’를 번역하면 ‘문자를 세우지 않는다’ ‘문자에 의지·의존하지 말라(않는다)’ 등이지만, 그 본래 의미는 ‘언어문자에 구속, 속박되지 말라(不拘文字, 不縛文字)’ 또는 ‘언어문자의 표면적인 뜻이나 개념[名相]에 빠지지 말라’는 뜻이다. ‘불(佛)’이라는 글자 속에는 부처가 없듯이 언어문자의 표상에 함몰하면 선의 본래 모습, 진실상을 볼 수가 없기 때문이다.

‘마음이 곧 부처(心卽是佛)’라고 하여 아교(阿膠)처럼 붙어버리면 그 역시 병이라는 것은 불문가지이다. 그래서 마조선사는 ‘즉심시불’이라고 했다가 그 말에 많은 납자들이 찰떡처럼 집착하자, ‘비심비불(非心非佛, 마음도 부처도 아니다)’이라고 했다는 사실은 너무나도 잘 알려진 사실이다. 문자에 속아 넘어가는 수행자, 문자를 맹신하는 눈 없는 수행자에게 주는 오도(悟道)의 교훈적인 명언이 바로 ‘불립문자’이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나라 선에서는 이 말(불립문자)을 주로 ‘책을 읽으면 알음알이가 생겨서 깨닫지 못한다’ ‘책(경전 등)을 읽지 말라’ ‘책은 독약’ 등으로 해석, 풀이하고 있다. 이것은 불립문자의 본의를 잘 모르는 해석, 표면적인 해석, 불립문자의 의미를 곡해한 과잉 해석이다.

당말의 선승 선자덕성(船子德誠) 선사는 문자에 빠진 것을 “일구합두어 만겁계려궐(一句合頭語 萬劫繫驢橛)”이라고 하였다. 즉 선의 진리에 딱 맞는 일구(一句)지만 (그 말에 속박되면) 만겁토록 말뚝에 매여 있는 나귀와 같다는 것이다. 불립문자의 본의를 가장 잘 표현한 말이라고 할 수 있는데, 어떤 공안이나 화두에서 깨달았다고 해도 그 말에 집착하면 공(空), 무집착, 중도가 아니라고 선승들은 말씀했다. 합두어(合頭語)는 ‘본래면목에 딱 맞는 말’, 계려궐(繫驢橛)은 ‘나귀나 말을 묶어 두는 말뚝’을 말한다.

한국 선불교는 불립문자라는 말을 왜곡, 곡해했다. ‘일인전허 만인전실(一人傳虛 萬人傳實, 1인이 虛를 전하자 만인이 實로 착각하여 전함)’, 불립문자를 곡해하여 경전이나 언어문자를 경시했고, 때론 육조혜능의 권위(일자무식이었다는 권위)를 내세워 무지를 정당화하기도 했다. 1960~80년대 선방의 납자들은 학승, 강사, 교학승들을 매우 무시, 폄하했다. 강원에 가거나 교학을 하면 문자나 알 뿐 선을 모르는 맹통, 하근기로 취급했다. 아마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는 선승이 많을 것이다. 이것은 결론적으로 ‘아만의 소산’이라고 생각한다. 좌선을 하면 할수록 입전수수가 되어야 하는데, 실상은 그렇지 않다. 진정한 수행은 무엇인가? 불심(佛心)과 불어(佛語), 선(禪)과 교(敎)는 하나인가? 둘인가? 둘이라면 변견(邊見)이나 단상이견(斷常二見)에 함몰된 것이다.

한국선은 불립문자를 곡해했고 문자를 터부시했다. 그리하여 선의 사상적 경전인 ‘화엄경’ ‘유마경’ ‘금강경’ ‘법화경’ 등 대승경전은 물론이고, 중요한 선어록도 제창(提唱, 강의, 강독, 거양)하지 않는다. 문자를 배격, 도외시했고, 멸시, 경시했다. 심지어는 문자를 몰라야 대기(大器)의 선승, 문자를 쓸 줄 알면 지식 분자, 의리선(義理禪)이나 하는 선승으로 치부되었다.

그 결과 한국 선불교는 결제, 해제일에도 상당법어가 없다. 선승들 사이에서도 공부소통, 언어소통이 없다고 한다. 언어문자와 오래토록 담을 쌓은 결과 점점 선의 대화가 불가능한 상태가 되어 가고 있다. 불립문자의 곡해, 10년만 더 가면 한국선은 생활어 외에는 담론(선 담론, 선의 대화)이 불가능한 선불교가 될 수도 있다고 본다.

우리나라 속담에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근다” 또는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운다”는 말이 있는데, 불립문자의 곡해는 마치 구더기 꼴 보기 싫다고, 빈대 잡자고 초가삼간을 태우는 격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면 옛 선승들도 문자를 몰랐던가? 아니다. 5조홍인, 대통신수, 영가현각, 마조, 백장, 조주, 위산, 황벽, 임제, 설두중현, 운문, 동산수초, 동산양개, 영명연수, 오조법연, 원오극근, 굉지정각, 대혜종고 등 유명한 선승들은 모두 다 박학다식했고 문장과 문자에 능한 지식층들이었다. 특히 설두중현(설두송고로 유명), ‘벽암록’의 찬자 원오극근, ‘종용록’의 굉지정각, 간화선의 대혜종고 등은 안목이 뛰어나고 박학다식해서 많은 문인들이 경모했다.

당시 소동파, 왕안석, 이고(李翶) 등 내로라하는 사대부 문인들도 무심의 경지에서 나오는 탈속한 선승들의 게송에 모두 엎어지고 넘어졌다. 야보도천 선사의 ‘산당정야좌무언(山堂靜夜坐無言), 적적요요본자연(寂寂寥寥本自然)’ 등 선승들의 탈속한 게송은 세속적인 번뇌 망상을 떨쳐버리는 방외의 시(詩), 격외의 선시였다. 송대에는 사대부 지식층들 사이에서도 선을 모르면 담론에도 끼지 못했다.

우리나라 보조지눌, 진각혜심, 함허득통, 서산휴정, 경허성우, 한암중원, 성철스님 등 한국을 대표한 선승들도 모두 문자에 능했다.

유명한 선승 가운데 일자무식이었다고 하는 선승은 육조혜능 선사뿐이다. 돈황본 ‘육조단경’에서 그는 자술 형식으로 땔 나무를 팔아서 모친을 봉양했고 글자를 모른다고 했다. 그러므로 본격적으로 학문을 하지 못했다는 데는 동의하지만, 정말 그가 일자무식이었다면 어떻게 저자거리에서 한 번도 들어보지도 못한 ‘응무소주 이생기심(應無所主 而生其心)’의 ‘금강경’ 구절에서 깨달을 수 있었겠는가? 응무소주, 이생기심은 항상 마음을 공(空), 무집착의 관점에 두라, 무심으로 마음을 내라는 말인데, 적어도 자의(字義) 정도는 알아야만 가능한 일이 아닌가?

육조혜능은 많은 신화를 동반하고 있는 ‘신화(神話)적인 선승’이다. 그의 ‘일자무식 이야기’는 글자를 모르는 일반 대중들도 선연(善緣)이 깊으면 누구나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는 희망을 주기 위한 교화적 차원의 신화거나, 선의 대중화, 민중화, 서민화를 도모한 윤색설화일 것으로 생각한다. 문장을 잘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일자무식은 아니라는 것이다.

당송시대 선종사원에는 장전(藏殿), 즉 장경각(藏經閣)이 있었다. 오늘날 장경각은 대장경 등 경전을 보관해 두는 기능만 하고 있지만, 당송시대 선종사원의 장경각은 두 가지 기능을 하고 있었다. 하나는 경전 보관기능. 하나는 선원의 대중들이 경전을 대출하여 간경(看經) 할 수 있도록 하는 오늘날 대학의 도서관과 같은 기능이었다. 다만 좌선당(선방) 내에서는 그 어떤 책도 볼 수 없었다.

장경각 소임자를 북송시대에는 장주(藏主), 남송시대에는 지장(知藏)이라고 했는데, 장로종색 선사가 북송시대인 1103년에 편찬한 ‘선원청규’ 4권의 ‘장주(藏主, 知藏)’ 편에는 장주 소임에 대하여 “장주는 대중들이 간경하는데 불편함이 없도록 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장주(藏主, 知藏)는 금문(金文, 즉 경전)을 관장하는 소임이다. 정식으로 궤안(几案, 책상)을 마련하고 다탕(茶湯, 차)과 기름(油)과 향촉(香燭, 등불)을 준비하라. 전주(殿主, 藏主, 知藏)는 선원의 길목에 알림장[表白文]을 붙여서 승당의 납자 등 간경하고자 하는 대중들이 (알림장을) 모두 볼 수 있도록 해야 한다.”(‘선원청규’ 4권, ‘藏主’. “藏主, 掌握金文. 嚴設几案, 準備茶湯油火香燭, 選請(靖)殿主 街坊表白, 供瞻本寮及看經大衆.”)

“(장주는) 조신(早晨, 새벽)에 대중들이 기상한 이후, 저녁 방참(放參)할 때까지 장전(殿)의 담당자(主)는 종을 쳐서 경전을 교점(交點, 교환 점검, 즉 대출한 경전을 수납, 점검), 출납(出納, 대출, 수납)해야 한다.”(‘선원청규’ 4권, ‘藏主’. “早晨大衆起, 晚間放參前, 殿主鳴鐘會經交點出納.”)

요점을 정리하면 ①장주(지장)는 경전을 보고자 하는 대중들을 위하여 항상 책상과 차(茶), 기름(油)과 향촉(香燭)을 준비하여 간경(看經)에 불편함이 없도록 하라. ②승당 등 길목에 장경각 개폐 시간에 대한 알림장[表白]을 붙여라. ③경전 열람, 대출시간은 조신(早晨, 8시경)에 대중들이 기상한 이후, 저녁 방참(放參) 시간(4시경) 때까지 등이다.

이상의 두 인용문에서 확인해 볼 수 있듯이, 송대 선종사원에서는 제도적으로 언제든지 경전을 대출, 간경할 수 있었다. 이것은 필자의 억지 주장이 아니고 자각종색 선사의 ‘선원청규’에 나와 있는 내용이다. 그리고 이 내용은 당시 선원총림에서 시행되고 있는 제도였다.

무량종수 선사의 ‘입중일용(入衆日用)’에는 “승당 내에서는 경전이나 책자를 볼 수 없다(不得在僧堂內, 看經看冊子.”(신찬속장경 63권, p.558a). ‘칙수백장청규’에는 “점심 공양 후에는 승당 내에 모여 잡담할 수 없다. 승당 안에서는 경전이나 책자를 볼 수 없다(齋罷, 僧堂內 不得聚頭說話. 在僧堂中, 看經看冊子)”라고 하여 승당(僧堂, 선당) 안에서는 그 어떤 책도 볼 수가 없었다.

그런데 이런 제도는 최초로 청규를 제정한 백장선사 시대(당 중후기)에도 시행되었다고 보인다. 장로종색의 ‘선원청규’ 10권에는 백장청규의 모습을 전하고 있는 ‘백장규승송(百丈規繩頌)’이 수록되어 있는데, 간경 시 주의사항 등이 열거되어 있기 때문이다.

"모든 요사에서는 고성(高聲)으로 경전을 독송하거나 한잡문자(閑雜文字, 儒家書 등 경전 이외의 서책)를 읽지 말라. 자기 책상과 자리, 선책(禪策, 禪書)과 문자를 항상 가지런히 정돈하라. (‘선원청규’ 10권, ‘百丈規繩頌’. “諸寮舍, 不得高聲讀誦經典, 並閑雜文字. 自己案分禪策文字常蓋齊整.)”

불립문자의 정의에 대하여 동양덕휘 편 ‘칙수백장청규’ 4권 ‘지장(知藏, 藏主)’ 장(章)에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선종은 본래 교외별전이다. 그럼에도 장경각과 전담자(지장)를 둔 것은 부처님의 언행을 가지고 교율(敎律)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 특히 우리 선종에서 증득하고자 하는 바는 문자에 빠지지 않으면서 언행의 표면을 뛰어넘어 자성의 묘함을 보는 데 있다. 조사의 뜻은 우리 종도로 하여금 두루 경전과 갖가지 전적을 탐구하여 외모(外侮, 외부의 경멸과 비난 등)에 대응하며 변화에 무궁하게 대응하게 하기 위해서다. 이것이 이른바 (문자와) 부즉불리(不卽不離)라는 것이다.” (“原吾宗既曰教外別傳, 猶命僧專司其藏者何也. 以佛之所言所行為教律, 而僧有不遵佛之言行乎. 特吾之所證所得不溺於文字, 而超乎言行之表, 以見夫自性之妙焉. 又祖之意, 欲吾徒遍探諸部與外之百氏, 期以折衝外侮, 應變無窮, 所謂不即不離者是也.”(대정장 48권,p.1131a)

중요한 것은 경전 등 문자를 보더라도 그 문자에 빠지지 말고 자성(自性)을 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고, 또 세속인들의 경멸과 비난[外侮] 등에 대처하기 위해서라도 경전을 읽고 문자를 공부해야 한다는 것이다. 매우 훌륭하고 지혜로운 말씀이다. 설사 깨달았다고 해도 문자를 모르면 타인에게 선을 설명할 수가 없다. 벙어리 냉가슴, 이 얼마나 답답한 일인가?

윤창화 민족사 대표
윤창화 민족사 대표

선은 언어도단이지만 언어문자를 떠나서는 설명할 방법도 표현할 길도 없다. 깨달음의 세계를 일체중생, 대중들에게 전하거나 설명하지 못한다면 그 깨달음은 개인적인 가치관에 불과하다. 진리는 공유할 수 있을 때만이 광채를 발휘한다. 벽장 속의 진리는 무용지물이다. 문자의 표면을 보지 말고 그 이면을 본다면 깨닫게 될 것이다.

[1576호 / 2021년 3월1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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